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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도한 설정-짜깁기는 NO… 원래 모습을 보여줘”

‘악마의 편집’ 피해자들 비판 목소리

SNS에 ‘방송 실상’ 폭로

“제작진 의도대로 짜여진 예능, 각본 있는 드라마와 똑같아”

동아일보

최근 한 유튜브 채널에서 과거 ‘쇼미더머니’ 시즌5에 출연했을 때의 편집의 부당함에 대해 이야기하는 래퍼 원썬(왼쪽 사진). 스윙스가 최근 출연한 ‘쇼미더머니’ 시즌9 장면(가운데 사진). 스윙스는 제작진의 과도한 편집을 비판했다. ‘언프리티 랩스타’에 나왔던 졸리브이가 유튜브 채널에서 억울함을 토로하고 있다. 유튜브 채널 ‘근황올림픽’·‘Mnet Official’·‘VOTUS’ 화면 캡처

“왜 내 작품을 자꾸 이렇게 난도질하는 거냐.”


최근 방송 중인 Mnet의 힙합 오디션 예능 ‘쇼미더머니’ 시즌9에 출연한 래퍼 스윙스는 지난달 2화 방송이 끝난 후 자신의 인스타그램을 통해 ‘악마의 편집’에 대해 불만을 표출했다. 제작진은 프로그램 막바지에 그의 경연 무대를 배치하면서 전체를 다 보여주는 대신 일부 장면만을 편집한 채 방송을 마무리했다. 언뜻 보면 다음 에피소드를 궁금하게 만들지만 시청자 대부분은 그가 경연에서 큰 실수를 저지른 듯한 분위기로 받아들였다.


실제 상황은 달랐다. 그가 심사위원들의 호평을 받으며 성공적으로 무대를 마친 것. 스윙스는 방송 다음 날 “날 예능적으로 이용하는 거 좋다. 다 돈 벌고 보는 사람도 할 말 많아지면 그게 엔터테인먼트”라면서도 “그런데 내 음악을 있는 그대로 좀 내보내주면 시청률이 내려가냐. 왜 그렇게 과욕을 부리냐”며 제작진을 비판했다. 다음 화 방송에 이어 무삭제 버전 유튜브 영상을 접한 시청자들도 “일부러 논란인 것처럼 만드는 건 진짜 옛날 스타일이다. 촌스럽다”며 배신감을 나타냈다. 몇몇 해외 시청자 역시 “각본이 짜여진 예능 편집은 드라마랑 다를 게 없다”고 밝혔다.


한편으로는 이 프로그램에 수차례 심사위원으로 참여하며 흥행의 키를 쥔 스윙스의 불만 표출이 짜여진 각본에 따른 ‘노이즈 마케팅’의 일환이라는 견해도 있다. 동시에 덜 유명한 참가자였다면 편집으로 인한 피해에 대해 공개적으로 문제 제기조차 할 수 없었을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결과적으로 제작진의 작전이 통한 걸까. 프로그램의 클립 영상 조회 수는 네이버 유튜브 등에서 2000만 회를 넘어섰다. 이는 지난 시즌 영상에 비해 회당 300만 회를 크게 웃도는 수치다.


경연, 리얼리티 예능 프로그램 속 악마의 편집이 다시 도마에 올랐다. 특히 과도한 편집으로 여론의 뭇매를 맞았던 피해자들이 잇따라 유튜브,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실상을 폭로하고 있고 시청자들은 악마의 편집에 흥미보다 피로감을 느끼고 있다.


악마의 편집은 본래 상황을 오해하도록 왜곡하는 편집을 비판하는 인터넷 용어에서 나왔다. 촬영한 순서를 재배치하고 자막 및 배경음악을 삽입하며 주변 반응을 짜깁기하는 등 편집을 할 때 의도를 갖고 특정 분위기로 몰아간다. 2010년 Mnet의 오디션 프로그램 ‘슈퍼스타K’에서 한 출연자가 악의적 편집으로 비판을 받았던 사실이 알려지며 악마의 편집이라는 말이 널리 알려졌다.


악마의 편집은 출연자들의 경쟁심을 유발하는 서바이벌 예능이나 관찰·리얼리티 예능에서 주로 사용된다. 극적 상황이나 갈등을 연출하거나 출연자별 캐릭터를 설정하기 위해서다. 예를 들어 한 출연자의 공연이 끝난 후 이와 상관없이 재채기를 하다 인상을 찌푸린 다른 참가자의 얼굴을 비춤으로써 ‘무대를 심각하게 망쳤다’는 의미를 전달하는 식이다. 여러 화면을 병치시킬 때 맥락, 연결 장면에 따라 같은 장면이라도 전혀 다른 정서적 효과를 불러올 수 있다는 ‘쿨레쇼프 효과’로 불리기도 한다.


최근 유튜브 채널 ‘VOTUS’에는 2015년 방송된 Mnet의 ‘언프리티 랩스타’의 래퍼 ‘졸리브이’가 등장해 억울함을 토로했다. 그는 래퍼 ‘치타’와 함께 오른 합동 공연에서 실력이 없어 무대를 망친 장본인에 비호감이라는 이미지가 덧씌워져 비판받았다. 그의 영상은 수차례 편집, 확대 재생산되면서 놀림거리가 됐다. 그가 공연하는 사이사이 찌푸린 심사위원들의 얼굴이 나가면서 무대가 엉망인 것같이 보이게 했다는 것이다.


그는 “저는 ‘랩 대결 최강자’라는 캐릭터로 설정됐다. 무대가 떨려 과도하게 흥분했던 건 맞다”면서도 “방송을 보면 다른 래퍼의 공연에는 심사위원들이 화색인데 제가 공연할 때만 심하게 정색한다. 제 앞에 있는 사람이 저렇게 정색하며 공연을 보는데 어떻게 제가 그걸 무시하고 공연을 하겠냐. 좀 이상하지 않냐”고 해명했다. 실제 촬영 중 몇몇 심사위원들이 그에게 따뜻한 조언을 건네는 장면도 있었지만, 그 장면은 방송되지 않았다.


과거 MBC ‘진짜사나이 여군 특집’에 출연했던 맹승지도 대표적 피해자다. 그는 훈련소 입소 과정에서 배꼽티에 핑크색 트렁크를 들고 간 ‘무개념녀’로 전파를 탔다. 고된 훈련 과정 중 “원래 여자는 이렇게 하는 겁니다”라는 발언은 편의를 봐달라는 요청으로 비치며 뭇매를 맞았다. 유튜브 채널 ‘까레라이스TV’에 출연한 그는 “소속사에서 어떤 프로그램 출연인지 전혀 설명하지 않았다. 다른 참가자처럼 고데기, 인형, 트렁크 등 특정 소품을 지참하라고 전해 들었다”고 밝혔다. 또 훈련에 대해선 “헬스장에서 배운 대로 무릎을 댄 채 팔굽혀펴기를 하면 훈련을 완수할 수 있을 것 같기에 다른 이에게 피해를 주고 싶지 않아 한 말인데 ‘난 여자니까 우대해 달라’는 식으로 편집돼 인생 최대의 욕을 먹었다”고 말했다.


Mnet의 쇼미더머니 시즌5에 출연했던 래퍼 ‘원썬’도 유튜브 채널 ‘근황올림픽’에서 웃음거리가 된 과거를 털어놨다. 그는 방송에서 자신의 연륜, 경력만 강조하는 ‘꼰대’로 비치며 대중의 욕설과 비난을 감내해야 했다. 그는 “누군가 희생양으로 삼을 베테랑 1세대 래퍼가 필요했던 것 같다. 제가 맡았던 역할은 쇼미더머니에서 바보였다”고 했다.


숱한 논란, 폭로, 비판에도 악마의 편집이 계속되는 이유는 뭘까. 화제성과 시청률이 도덕적 논란이나 무관심보다는 낫기 때문이다. 한 방송국의 예능PD는 “시청자에게 기대감도 줘야 하고, 화제성도 얻어야 한다는 부담감이 크다. 비판이 있더라도 일정 수준의 편집을 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김헌식 대중문화평론가는 “악마의 편집은 유독 약자에게 가혹하다. 인지도가 있는 사람은 사전 조율을 거치는 편이지만 출연 기회 자체가 중요한 약자들은 전권을 제작진에 맡기기 때문에 피해가 반복된다”고 분석했다. 이어 “원칙상 출연자들이 어떤 모습으로 방송에 나갈지 사전 동의를 거쳐야 한다. 하지만 잘못된 방송 관행으로 모든 연출권이 PD에게 있고, 출연자는 이에 이의를 제기하면 눈치를 봐야 하는 풍토가 만들어졌다”고 지적했다.

쿨레쇼프 효과

소련의 영화감독 겸 이론가 레프 쿨레쇼프가 주창한 ‘숏(shot)’ 편집의 효과. 숏과 숏을 병치시키는 과정에서 편집에 의해 맥락에 따라 색다른 의미와 정서적인 효과를 유발할 수 있다고 말한 이론. 똑같은 표정의 인물도 함께 보여지는 이미지에 따라 완전히 느낌이 달라질 수 있다.

김기윤 기자 pep@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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