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는 셋째 딸 같다”던 박찬호 “어려워도 재밌으면 지치지 않는다”[이헌재의 인생홈런]
“내가 LA 다저스에 있을 때…”. ‘코리안 특급’ 박찬호가 야구 선수로 전성기를 보낸 LA 다저스 시절. 동아일보 DB |
한 때 ‘코리안 특급’으로 메이저리그를 호령했던 박찬호(50). 그가 메이저리그에서 거둔 124승은 여전히 아시아 선수 최다승 기록으로 남아 있다.
일본 프로야구 오릭스와 한국 프로야구 한화를 거쳐 그가 은퇴한 지도 벌써 10년이 넘었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팬들에게 친근한 존재다. “내가 LA 다저스에 있을 때~”로 시작하는 레퍼토리는 그의 트레이드마크다. 덕분에 그는 ‘투 머치 토커’라는 애칭으로 불린다.
박찬호는 은퇴 후에도 바쁘게 살고 있다. 조금 과장해서 표현하면 동에서 번쩍, 서에서 번쩍이다. 올해만 해도 그는 2월 미국 애리조나 주에서 열린 키움 히어로즈의 스프링캠프에 투수 인스트럭터로 활동했다. 이후 한 방송사 해설위원 자격으로 2023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한국 대표팀과 KBO리그 각 팀들을 방문했다. WBC 대회 기간에는 대회가 열린 일본 도쿄돔에서 마이크를 잡았다. 이달 초에는 공주고 동기동창인 홍원기 감독이 지휘봉을 잡고 있는 키움의 개막전을 찾았다. 이 자리에는 같은 박 씨로 그와 친분이 깊은 박세리 전 한국 여자 골프대표팀 감독과 ‘수영 레전드’ 박태환이 함께 했다. 미국에서는 김하성이 뛰고 있는 메이저리그 팀 샌디에이고 파드리스의 특별 고문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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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저리그 경기를 보다 보면 백네트 뒤 관중석에서 경기를 지켜보는 그의 모습을 가끔 발견할 수 있다. 이처럼 뼛속까지 야구인인 박찬호지만 야구 못지않게 사랑에 빠진 게 있다. 바로 골프다. 박찬호는 평생 해 온 야구 선수 생활을 마친 뒤 큰 공허함을 느꼈다. 이 때 빈 공간을 채워준 게 골프였다
그는 드라이버로 300m를 날리는 장타자다. 좋은 체격에서 뿜어져 나오는 스윙에는 힘이 넘친다. 박찬호는 투수로 주로 뛰었지만 고교 때까지는 타자로도 나섰다. 그가 메이저리그에서 주로 뛰었던 내셔널리그에서는 당시 투수도 타석에 들어서야 했기에 타격 연습도 해야 했다. 실제로 2000년도에 그는 타자로 홈런도 2개나 쳤다. 필라델피아에서 뛰던 2009년에도 홈런을 하나 추가해 그의 통산 홈런 개수는 3개다.
대회 도중 퍼팅을 성공시킨 뒤 익살스런 표정을 짓는 박찬호. KPGA 제공 |
처음에는 골프 연습도 야구처럼 죽기 살기로 했다. 그는 “무식하게 하루에 드라이버를 1000개씩 때린 날도 있다. 하루에 7~8시간을 연습했다. 그러면 다음 날 바로 몸살이 났다. 며칠 앓다가 몸이 또 괜찮아졌다 싶으면 또 700, 800개를 때렸다”고 했다. 그렇게 모든 것을 쏟아부었으니 실력도 금방 부쩍 늘었다. 현재 그의 핸디캡은 ‘3’ 정도다. 박찬호는 “핸디캡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을 많이 한다. 연습을 꾸준히 하고 일주일에 라운딩도 두 번 정도 한다”고 했다.
이미 준프로급 실력을 갖춘 그이기에 프로 무대에서 뛸 기회도 얻었다. 그는 2021년 한국프로골프(KPGA) 코리안투어 군산CC 오픈을 시작으로 그해 YAMAHA HONORS K 오픈 with 솔라고CC에 출전했다. 지난해에도 우리금융 챔피언십와 SK텔레콤 오픈에 추천 선수 자격으로 출전했다. 프로의 높은 벽을 넘지 못하고 4번 모두 최하위권 성적으로 컷 탈락했지만 마흔 즈음에 본격적으로 골프를 시작해 대회에 출전했다는 자체가 대단한 일이다. 박찬호는 대한골프협회의 공인 핸디캡 3 이하 증명서를 보유하고 있었기에 대회에 출전할 수 있었다.
야구 선수 출신 가운데 골프를 잘 치는 선수가 꽤 된다. 특히 타자 출신보다는 투수 출신이 많다. 박찬호는 이에 대해 “투수들과 골퍼들의 운동과 메커니즘이 비슷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투수에게는 피칭의 일관성이 중요하다. 골프의 스윙 역시 일관성이 있어야 한다. 투수를 하면서 가졌던 집중력도 골프를 할 때 큰 도움이 됐다. 대회를 전후해 가끔 프로 골퍼들과 라운딩을 할 때가 있는데 이때 프로들이 얘기해주는 팀과 가르침이 잘 이해가 된다”고 말했다. 될 듯 하면서도 잘 되지 않는 것도 골프의 매력이라고. 세 딸의 아버이지기도 한 그는 “골프는 셋째 딸 같다. 너무 사랑스럽고 좋은데 마음 같이 안 된다”는 명언(?)을 남기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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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프를 비롯해 꾸준히 자기관리를 하고 있는 박찬호는 자신과 비슷한 연배인 40~50대에게 ‘현명한 생활 습관’을 조언했다. 그는 “100세 인생에서 40~50대는 남은 인생의 기로에 서 있게 되는 시기”라며 “현명하고 똑똑하게 건강을 관리하는 걸 습관화할 때다. 한 살이라도 어릴 때 해야 한다. 잘 먹되 지나치게 먹지 말고, 운동도 할 때 확실하게 하지만 쉴 땐 확실하게 쉬는 게 좋다”고 했다.
선수 시절 “고기를 안 먹으면 밥을 먹은 것 같지가 않다”고 말할 정도로 대식가였던 그는 요즘엔 야채 위주로 간단한 식사를 하려 한다. 그는 “선수 때에 비하면 먹는 양이 3분의 1로 줄은 것 같다”고 했다.
대신 선수 때에 비하면 많은 걸 내려놨다. 예전엔 햄버거 등 패스트 푸드를 아예 먹지 않았지만 요즘엔 가끔씩 당길 때 먹는다. 요리에 맞춰 술을 마시기도 한다. 박찬호는 “식사를 맛있고 즐겁게 하려 한다. 파스타 같은 이탈리안 요리엔 와인도 한 잔씩 하고, 찌개류를 먹을 땐 소주를 곁들이기도 한다. 다만 과음은 절대 하지 않는다”고 했다.
박찬호는 미국 로스앤젤레스에 있는 집에 머물 때는 세 딸들과 함께 보내는 시간이 많다. 아침은 딸들과 함께 운동을 하면서 시작한다. 아침에 일어나서 러닝과 스트레칭을 한 뒤 명상을 함께 한다. 명상은 그가 야구 선수 시절부터 해 온 오랜 습관이다. 박찬호는 “명상을 통해서 하루 일과를 반성하고 계획도 세운다. 몸의 피곤한 부분, 경직된 부분들을 이완시키며 아침잠을 깨는 역할도 한다”고 했다. 일과 중에는 틈날 때마다 스트레칭을 하고, 규칙적으로 근력 운동도 한다.
박찬호는 “중요한 것은 내 삶에서 내가 좋아하는 것을 찾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야구, 골프를 포함해 어떤 운동이건 실력은 연습과 비례하게 되어 있다. 그 훈련을 소화하려면 체력이 있어야 한다”며 “내 경우엔 야구가 재미있었고, 이후엔 골프가 재미있었다. 하는 게 재미있고 즐거우면 아무리 연습을 해도 지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건강을 유지하는 최고의 방법은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바쁘게 사는 것 같다”고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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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의 골프 치는 모습을 어릴 때부터 봐온 큰 딸 애린 양은 몇 해 전부터 본격적으로 골프를 시작했다. 박찬호는 최근 자신의 소셜미디어에 애린 양이 출전한 지역 대회에서 챔피언 메달을 들고 있는 사진을 올렸다. 어느덧 차세대 프로 골퍼를 꿈꾸는 골퍼 유망주로 성장한 것. 박찬호 역시 ‘골프 대디’가 됐다. 몇 년 뒤엔 박찬호의 이름 앞에 ‘프로골퍼 박애린의 아버지’라는 수식어가 추가될지도 모를 일이다.
이헌재 기자 un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