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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by 덴 매거진

무협지를 따라 떠나는 여행, 무림기행

소싯적에 무협소설 한 번 안 읽어본 남자가 있을까? 허구인 줄 뻔히 알지만 배경은 실재하기 때문에 왠지 더 궁금한 그곳, 중원(中原)의 오악(五嶽)을 찾아가 본다.

ⓒ 김구용

중국의 전통 지리 개념, 오악

고대 중국에서는 오행(五行)의 개념에 따라 국토의 다섯 방위에 해당하는 명산을 꼽아 ‘오악(五嶽)’이라 불렀다. 동악 태산(泰山), 서악 화산(華山), 남악 형산(衡山), 북악 항산(恒山), 중악 숭산(嵩山)이 바로 그것. 고대 중국인은 오악의 안쪽 지역을 ‘중원(中原)’이라 칭했으며, 바깥 지역은 오랑캐의 땅으로 여겼다. 오악은 무협소설 이전에 중국의 역사와 문화를 상징하는 중요한 개념이며, 그만큼 경치도 수려하고 얽힌 이야기도 많아 중국을 대표하는 인문학 여행지로서 손색이 없다.


청나라 문인 위원(魏源)은 ‘형악음(衡岳吟)’에서 “항산은 걷는 듯하고(恒山如行), 태산은 앉은 듯하며(泰山如坐), 화산은 우뚝 섰고(華山如立), 숭산은 누운 듯하고(嵩山如臥), 형산은 나는 듯하다(唯有南岳獨如飛)”라는 시구로 오악의 형세를 묘사했다. 또 명나라 때 지리학자 서하객(徐霞客)은 <서하객유기(徐霞客遊記)>에서 “오악을 돌아보고 나니 다른 산이 눈에 안 들어온다(五岳归来不看山)”라며 오악의 경치를 칭송했다.

신필(神筆) 김용(金庸)이 만든 세계관

우리가 소비하는 무협지의 큰 틀은 홍콩 작가 김용의 <사조삼부곡(射鵰三部曲)>에서 찾아볼 수 있다. 국내에는 1980년대 <영웅문> 3부작으로 출간돼 무려 800만 부가 넘게 팔렸다. 이후 역시 김용 원작의 <소오강호(笑傲江湖)>가 영화 <동방불패>로 흥행하면서 ‘무협=김용’이라는 공식이 성립됐다.


무협소설의 배경으로 가장 유명한 것은 <영웅문>에 등장하는 ‘화산논검(華山論劍)’의 무대인 화산이다. 김용은 <영웅문> 시리즈 외에도 <소오강호>, <벽혈검(碧血劍)> 등의 작품에서 화산파를 주인공의 소속 문파로 설정했다. 국내 웹소설 역사상 최고의 히트작이 <화산귀환(華山歸還)>이라는 점도 무협소설에서 화산이 갖는 상징성을 잘 보여준다. 이후 김용은 <소오강호>에서 아예 ‘오악검파’라는 개념을 선보였는데, 명산에 자리한 각 문파의 고수들이 무공을 겨루는 클리셰는 무협소설의 기본 개념으로 자리 잡았다. 다만 이런 설정은 어디까지나 허구이며, 숭산의 소림사를 제외하면 실제 문파가 존재하지는 않는다.

ⓒ 김구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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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쪽에 우뚝 솟은 산, 화산(華山)

무협소설의 단골 배경


중국의 오악 가운데 서쪽 방위를 차지한 산이다. <영웅문>에 등장하는 천하오절(天下五絶)이 무림 지존의 자리를 놓고 겨룬, 화산논검의 장소로 유명하다. 이 때문에 화산 등산로 곳곳에 ‘華山論劍’을 새겨놓은 비석이 있다. 또 화산은 <소오강호>와 <벽혈검> 속 주인공이 속한 문파로 나오는 등 무협소설의 주요 무대로 등장한다. 최근에는 웹소설 <화산귀환>이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면서 더 유명해졌다.



기암괴석이 빚어내는 절경


화산은 전형적인 악산(岳山)이다. 북봉 정상에서 주봉인 연화봉(莲花峰)을 바라보면 산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바위로 이뤄진 장관을 볼 수 있다. 연화봉의 서쪽 면은 마치 도끼로 쪼개놓은 듯 무시무시한 절벽으로, 이 풍경이 화산의 상징이다.


서봉에 조성해 놓은 장공잔도(长空栈道)는 화산의 특징을 가장 잘 보여주는 관광 포인트. 깎아지른 절벽의 벽면에 기둥을 박아 넣고 그 위에 널빤지를 올려 만든 잔도를 걷는다. 이 밖에도 거대한 바위산 중간중간에 힘들게 뿌리를 내린 소나무가 광활한 하늘을 배경으로 뻗어 나온 모습이나, 발 디딜 틈도 없어 보이는 뾰족한 산 꼭대기에 세워놓은 정자 등 ‘동양적’이라고 표현할 만한 전형적 풍경이 산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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西岳出浮云,积雪在太清

눈 쌓인 연화봉 꼭대기는 구름 뚫고 솟아 하늘에 닿은 듯

‘화악(華岳)’ 왕유(王维, 699~759, 당나라 시인)

중국에서 가장 험한 등산로


험준하기로는 중국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운 산이며, 지옥으로 가는 길을 걷는 듯한 악랄한 계단이 특징이다. 화산의 등산로는 시작부터 끝까지 모두 계단으로 이뤄졌다. 산 정상은 동서남북 네 방향의 봉우리가 능선을 따라 이어지는 등산로로 연결된다. 이 때문에 보통 케이블카를 타고 북봉으로 올라간 후 남봉, 중봉, 동봉을 지나 서봉에서 다시 케이블카를 타고 나오는 루트를 많이 탄다. 다만 계단의 경사와 난도가 상상을 초월하므로 관절 건강에 자신이 없다면 등산로를 걷는 건 추천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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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vel Info

◾가는 법

인천에서 시안(西安)으로 가는 직항 노선이 있다. 시안에서는 기차로 화산북역(华山北站)까지 갈 수 있다.


◾여행 코스

시안북역(西安北站)에서 화산북역으로 가는 고속철도를 타면 30분 만에 도착한다. 이후 화산북역에서 택시나 무료 셔틀버스(1번 또는 2번)를 타면 화산풍경구 입구까지 갈 수 있다. 화산풍경구 입구에서 케이블카를 타고 북봉이나 서봉에 오르는 데까지 약 1시간이 걸리며, 이후 등산로는 개개인에 따라 다르지만 일주하는 데 약 5~6시간이 소요된다. 보통 화산을 베이스캠프 삼아 아침 일찍 출발해 해 질 녘에 돌아오는 일정을 주로 택한다.


◾비용(*1위안=약 188원)

입장료: 성수기(3~11월) 160위안, 비수기(12~2월) 100위안

셔틀버스: 서봉 방향 40위안, 북봉 방향 20위안

케이블카: 북봉(편도) 성수기 80위안·비수기 45위안, 서봉(편도) 성수기 140위안·비수기 120위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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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악 중 으뜸, 태산(泰山)

중국인의 영산(靈山)


정통 무협소설에서 태산파가 등장한 건 <소오강호> 정도다. 무림의 모든 문파가 태산 정상에 모여 ‘태산대회’를 열었던 에피소드로 등장하지만 소설에서의 역할은 미미하다. 오악검파라는 클리셰를 활용한 국내 무협소설에는 종종 등장하지만 역시 비중은 크지 않다.


태산은 소설보다도 중국 역사에서 차지하는 상징성으로 더 유명하다. 진시황이 최초로 중국 천하를 통일한 후, 바다에 이르기 직전 마주한 산이 바로 태산이다. 중국 서부에서 진나라를 세운 진시황은 동진(東進)을 마치고 태산에 올라 자신이 황제가 되었음을 하늘에 고하는 ‘봉선(封禪)’ 의식을 행했다. 이후 중국의 역대 황제는 황위에 오르면 진시황처럼 태산에 올라 자신의 정당성을 하늘에 고했다. 태산 정상에는 ‘당마애(唐摩崖)’라는 암벽이 있는데, 봉선을 하러 온 황제나 실력자들이 자신이 다녀간 증거를 글로 남겨 유명해졌다. 한마디로 역대 황제들의 인증샷 ‘핫플’인 셈. 이 때문에 태산은 모든 산 중 으뜸이라는 뜻의 ‘오악독존(五岳獨尊)’이라는 수식어를 얻었으며, 우리나라 백두산처럼 민족의 영산으로 여겨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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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는 작은 산


‘태산이 높다 하되 하늘 아래 뫼이로다’라는 구절로 유명한 양사언의 시조 때문에 착각할 수 있지만, 사실 태산의 해발고도는 1535m로 오악 중에서도 가장 낮은 산이다. 이름에 ‘클 태(泰)’ 자가 들어간 것 치고는 너무 낮아 의아할 텐데, 중국 지도에서 태산의 위치를 찾아보면 납득이 간다. 태산이 위치한 산둥성에는 태산을 제외하면 높은 산이 없으며, 어디서 보더라도 태산이 가장 높은 산이기 때문에 ‘큰 산’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태산이 높다 하되 하늘 아래 뫼이로다

오르고 또 오르면 못 오를 리 없건마는

사람이 제 아니 오르고 뫼만 높다 하더라

‘태산이 높다 하되’ 양사언(楊士彦, 1517~1584, 조선 서예가)

악명 높은 십팔반과 운해


‘십팔반(十八盤)’은 등산로 중간인 중천문(中天門)부터 정상의 남천문(南天門)까지 직선으로 뻗은 계단 길이다. 정상까지 올라가려면 열여덟 번은 넘어져야 할 정도로 험하다고 해서 붙은 이름으로 태산의 상징이다. 케이블카가 다니기 때문에 굳이 이 길을 탈 이유는 없지만, 중국인 사이에 “태산은 두 다리로 걸어 올라야 한다”는 불문율이 있다. ‘황제가 걸은 길을 직접 걷는다’는 게 이유다. 그래서 산 아래부터 정상까지 약 9.5km, 8000개에 달하는 계단 길을 걸어 오르는 이도 많다. 그러나 일반적으로는 등산로 입구인 천외촌(天外村)에서 중천문까지 셔틀버스를 타고 간 후 십팔반을 걸어 남천문에 오른다. 중천문에서 남천문까지도 케이블카가 있기 때문에 관절이 약하다면 케이블카만으로 정상에 오를 수도 있다.


남천문을 지나면 ‘천가(天街)’라는 호텔과 음식점 밀집 지역이 나오며, 여기서 하루를 묵고 다음 날 새벽 일출을 보는 사람도 많다. 정상인 옥황정(玉皇顶)에서 바라보는 운해는 태산을 대표하는 절경으로, 구름 위로 떠오르는 해가 사위를 금빛으로 물들이는 장면은 그야말로 장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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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vel Info

◾가는 법

인천에서 직항 노선이 없어 칭다오(青岛)에 간 뒤 고속철도를 타고 타이안(泰安)으로 간다. 타이안은 태산 남쪽 자락의 작은 도시로 태산 관광의 베이스캠프다.


◾여행 코스

타이안 시내 어디서 묵든 택시로 10~20분이면 태산 등산로 입구에 닿는다. 등산로 입구는 천외촌과 홍문(紅門)으로 나뉘는데, 처음부터 걸어간다면 홍문으로, 셔틀버스와 케이블카를 이용하려면 천외촌으로 가야 한다. 천외촌에서는 셔틀버스를 타고 중천문까지 간 뒤 십팔반을 걸어 남천문까지 간다. 남천문을 지나면 정상인 옥황정에 닿는데, 1시간 정도면 정상을 모두 둘러볼 수 있다. 이후 남천문에서 케이블카를 타고 중천문으로 내려와 다시 셔틀버스를 타고 입구로 돌아 나온다.


◾비용

입장료: 115위안

셔틀버스: 천외촌~중천문(편도) 35위안

케이블카: 중천문~남천문(편도) 100위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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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방의 경계, 항산(恒山)

가장 아름다운 비구니의 이야기


<소오강호>에 등장한 항산파(恒山派)는 비구니로만 이뤄진 문파다. 주인공 영호충에게 순애보적 사랑을 바친 ‘의림’은 작중 가장 아름다운 여인 중 한 명으로 꼽힌다. 이 때문에 <소오강호>를 주기적으로 영화나 드라마로 리메이크하는 중국에서는 의림을 연기하는 배우로 누구를 캐스팅하느냐가 논란거리가 될 정도. 다른 곳과 마찬가지로 항산파는 허구지만, 항산 자체는 예로부터 중국의 북방 국경선으로 기능하면서 험악한 산세에 ‘상무정신(尙武精神)’이 깃든 곳이다.



유목민족이 중원을 탐낸 이유


항산은 중국 북방을 북동쪽에서 남서쪽으로 150km가량 가로지르는 항산산맥의 봉우리 중 하나다. <삼국지>로 유명한 조조도 유목민족을 방어하기 위해 항산에 올라 군을 지휘했을 정도로 유서 깊은 국방의 요지였다. 항산 정상에 오르면 그 이유를 대번에 알 수 있는데, 항산 북서쪽은 황량하기 짝이 없는 황무지인 반면, 남동쪽은 비옥한 농경지가 끝도 없이 펼쳐진다. 몽골계 유목민족은 항산 계곡만 타 넘으면 옥토(沃土)가 기다리고 있으니 끊임없이 이 루트를 통해 남진을 시도했다.


위원이 ‘항산은 걷는 듯하다’고 말한 대로 항산의 산세는 웅장한 봉우리가 계속해서 늘어서 위압감이 대단하다. 또 항산이 위치한 훈위안현(浑源县)은 안개가 짙게 끼는 지역인데, 안개가 낀 날 산 정상에 올라 산 아래를 내려다보면 그야말로 선경(仙境)을 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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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岳擎天一柱尊,云中独立几千春

북악(항산)은 하늘을 찌를 듯 우뚝 솟아,

구름 속에 고고히 서서 수천 년을 지냈네

‘북악묘(北岳庙)’, 이백(李白, 701~762, 당나라 시인)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건축물, 현공사


항산이 유명한 가장 큰 이유는 산 초입에 자리한 ‘현공사(懸空寺)’ 때문이다. 북위(北魏) 때인 491년에 만들어진 사원으로 ‘절벽에 매달린 사원’으로 유명하다. 전설에 따르면 구겸지(寇謙之)라는 도사가 꿈에 “하늘에 매달린 도관을 만들어라”라는 계시를 받고 제자에게 이를 유언으로 남겨 건설했다고 한다. 길이 3m 이상의 단단한 나무 기둥을 절벽에 박아 넣고 그 위에 건물을 얹는 방식으로 지었다. 사원 법당이나 방은 절벽에 굴을 파서 만들었으며, 그 앞을 다니는 길은 잔도라서 내려다보면 바로 천길 낭떠러지다. 난간이 낮아 사람이 몰리면 위험할 수 있으며, 고소공포증이 있다면 참관을 재고하는 게 좋다.


원래 도교의 도관으로 만들었으나 훗날 삼교전(三教殿)에 석가모니, 공자, 노자의 신상을 함께 모시고 ‘종교 대통합의 장’을 만들었다. 무려 1500년이나 별다른 보수 없이 원형을 유지하고 있어 ‘세계의 불가사의’ 같은 콘텐츠를 만들 때 자주 거론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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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vel Info

◾가는 법

인천이나 부산에서 베이징으로 간 뒤 고속철도를 타고 다퉁(大同)으로 간다. 항산이 있는 훈위안현은 작은 시골 마을이라 다퉁을 기점으로 움직여야 한다. 다퉁에서 훈위안으로 가는 버스가 있지만 늦은 오전 시간에 출발해 일정을 짜기 난감하다. 따라서 패키지 여행이 아니라면 현지 택시를 대절해 움직이는 게 제일 편하다. 하루 종일 차를 대절하는 비용이 약 300위안(5만~6만원)이어서 크게 부담스럽지 않다.


◾여행 코스

다퉁에서 훈위안까지는 차로 약 1시간 30분이 걸린다. 항산 정상까지 케이블카를 타고가는 코스와 현공사 코스로 동선이 나뉜다. 택시를 대절했다면 우선 현공사에 들러 참관(1시간 소요)한 뒤 케이블카(恒山索道) 탑승장으로 이동해 케이블카를 타고 산 정상 바로 아래까지 간다. 정상까지는 도보로 약 1시간이 걸린다. 항산 정상까지는 외길이라 성수기에 사람이 몰리면 줄을 서서 정상에 올라야 할 수도 있다.


◾비용

입장료: 현공사 115위안, 항산 45위안

케이블카: 70위안(편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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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원의 상징, 숭산(嵩山)

무림 태산북두, 소림사


무협지를 읽어본 적이 없어도 한 번쯤은 들어봤을 이름이다. 중국 무학(武學)의 뿌리라고 하는 소림사는 무당파(武當派)와 더불어 실존하는 몇 안 되는 문파로 숭산의 지류인 소실산(小室山) 자락에 있다.


‘소림칠십이예(少林七十二藝)’라는 비급(祕笈)이 ‘무림절학(武林絶學)’으로 꼽히는 클리셰인데, 소림사에는 실제로 칠십이예가 있다. 다만 이는 소림사의 독문 무술은 아니고, 중국 각지의 무술과 신체 단련법을 모아 집대성한 것이다. 사료에 따르면 당나라 태종 이세민(李世民)이 수나라와 싸울 때 소림의 무술승 13인의 도움을 받아 승리한 후 소림사(小林寺)에 한해 무장과 승병 양성을 허락했고, 이때부터 체계적으로 소림 무술이 정리됐다고 한다.



무술 학교는 따로 있다


경내에는 방장의 암자와 달마조사전 등 암자가 자리하고 있다. 이 중 달마조사를 기리기 위한 사당 ‘서방성인전(西方聖人殿)’은 수백 년 동안 승려들이 무술을 수련하면서 진각(震脚)을 밟아대는 바람에 바닥이 울퉁불퉁하게 파인 것으로 유명하다. 그러나 현재 소림사 경내에는 무술을 수련하는 장소가 따로 없으며, 무술 교육과 관련한 시설은 소림사 인근 무술 학교로 모두 이전한 상태다. 관광객을 대상으로 1~2시간짜리 속성 체험 코스를 운영하니 관심이 있다면 한 번쯤 방문해 보는 것도 좋겠다.

Travel Info

◾가는 법

대한항공과 중국 남방항공이 정저우(郑州)까지 가는 직항 노선을 운항한다.


◾여행 코스

정저우역에서 소림사 입구까지 가는 셔틀버스(약 2시간 소요)가 있다. 소림사 경내는 생각보다 작아 1시간이면 충분히 돌아볼 수 있다. 이후 케이블카(嵩阳索道)[혜박1] [k2] 를 타고 소림사 맞은편 산 중턱에 올라 이조암(二祖庵)을 둘러본 뒤 숭산과 소림사의 전경을 감상하고 내려오면 된다.


◾비용

입장료: 80위안

케이블카: 60위안(편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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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교의 성지, 종남산(終南山)

※ 남악 형산은 <소오강호>에 한 번 나온 것을 제외하면 무협소설에서 따로 다뤄진 적이 없다. 대신 <영웅문>의 주요 무대인 종남산을 소개한다.



<신조협려>의 무대


<영웅문> 시리즈를 관통하는 문파는 도교 문파인 ‘전진파(全眞派)’다. 12세기에 활동한 실제 도사 왕중양(王重陽)이 개파한 문파로, 소설에 나오는 전진칠자(全眞七子) 역시 실존 인물. 종남산(終南山)은 왕중양이 전진교를 창건한 곳으로, 실제로 중국 도교의 성지다. <신조협려(神鵰俠侶)>의 주인공인 양과와 소용녀가 종남산 활사인묘(活死人墓)에서 수련하며 전진파와 대립하는 설정이었다.


국내 무협소설에서는 용대운이 쓴 <군림천하>의 주인공이 종남파의 장문인으로 나오는데, 무렵 20년째 연재를 이어가고 있다. <군림천하>가 연재 초기 엄청나게 인기를 끌면서 이후 국내 무협소설에는 종남파가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출세의 지름길, 종남산


종남산은 시안의 남산(南山)이다. 시안 시내에서 지하철과 버스를 갈아타고 갈 수 있을 정도로 가깝다. 시안이 수도였던 당나라 시절에는 과거 제도가 제대로 정비되지 않았기 때문에 황제에게 인재를 직접 추천하는 ‘천거(薦擧)’라는 제도가 있었다. 이런 이유로 벼슬길에 나가려는 이들이 종남산(終南山)을 찾아 은거하며 ‘여기 이런 은자(隱者)가 있소’라고 소문을 내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황제가 찾을 때 가능한 한 빨리 황궁에 들어가려면 아무래도 수도에서 가까운 산이 편리했기 때문인데, 이른바 ‘종남첩경(終南捷徑)’이라는 고사의 유래다.

Travel Info

◾가는 법

대한항공과 중국 대부분 항공사가 인천과 시안을 잇는 직항 노선을 운항한다.


◾여행 코스

시안 시내에서 지하철 2호선 종점(何家营, 허자잉역)으로 간 뒤 버스나 택시를 타고 ‘종남산남오대풍경구(終南山南五台风景區)’로 간다.(1시간~1시간 30분 소요) 산 중턱까지는 셔틀버스로 이동(약 11km)해 등산로를 따라 다섯 개의 누대(청량대, 문수대, 현신대, 영응대, 관음대)를 일주한 후 다시 셔틀버스를 타고 입구로 내려온다. 등산로는 계단과 평지가 적절히 섞여 있어 걷기에 수월한 편이다. 약 4~5시간 소요.


◾비용

입장료: 성수기(3월~11월) 45위안, (비수기)12월~2월 25위안

셔틀버스: 20위안(편도)

김구용(자유기고가) denmagazine@mcircle.bi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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