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세경영의 시작, LG그룹 구광모 회장의 선택은?
4세 경영에 돌입한 LG그룹을 이끄는 인물
LG화학과 LG전자 등의 굴지의 기업들을 주요 계열사로 가지고 있는 LG그룹은 ‘고객가치 창조’와 ‘인간존중’을 이념으로 삼은 2018년 기준 재계서열 4위의 기업집단이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그룹사 중의 하나로 꼽히는 LG그룹은 경영 승계에 있어 장남 승계 원칙을 엄격하게 지키고 있는 그룹으로, 초대 회장인 고 구인회 회장 본인부터 3대 회장인 고 구본무 회장까지 모두 장남이었다. 그리고 지난 5월 20일 오전 9시 향년 73세로 구본무 회장이 사망하면서, LG그룹은 본격적으로 4대 경영의 시대를 맞게 됐다. LG그룹의 4대 회장을 맡게 된 인물 역시 구본무 회장의 장남으로, 지난 2004년 회장의 양자로 입적된 1978년생의 구광모 대표이사 회장(이하 호칭 생략)이었다.
장자승계의 원칙에 따라 LG그룹을 승계한 인물
1978년생의 젊은 나이에 LG그룹을 책임지게 된 구광모 회장 |
1978년 1월 23일 전 KBO 총재이자 희성그룹의 회장인 구본능 회장의 장남으로 태어난 구광모는 고 구본무 회장의 양자로 알려져 있다. 사고로 향년 19세의 외아들을 잃은 구본무 회장의 양자로 2004년 입적한 그는 철저히 장자승계 원칙이 지켜지고 있는 LG그룹의 특성상, 일찌감치 LG그룹의 후계자로 주목을 받았던 인물이었다. 영동고등학교를 졸업한 그는 고등학교 1학년 때는 사촌형, 2년 뒤인 고등학교 3학년 때는 모친을 여의는 슬픔을 겪고 대학교 수능시험을 제대로 보지 못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한 차례의 낙방 이후 재수해서 한양대학교에 합격한 그는 곧 미국의 로체스터 공과대학에서 유학 생활을 시작하게 된다.
미국에서의 유학 생활을 끝내고 LG그룹에 구광모가 입사한 것은 지난 2006년이었다. LG전자 재경부문 금융팀 대리로 입사한 그는 이듬해 미국 스탠퍼드대학교 경영학 석사학위 과정에 입학하고, 이후 실리콘밸리에서 스타트업을 경험하며 조금씩 경영 경험을 쌓아나가게 된다. 미국에서의 생활을 끝내고 그가 LG그룹에 복귀한 것은 2009년 8월이었으며, 복귀 2년 후인 2011년에는 LG전자 홈엔터테인먼트 사업본부 뉴저지법인 차장으로 승진발령을 받아 다시금 미국생활을 시작하게 된다.
LG그룹의 4세 경영이 시작되다
회장에 오르기 전까지, 그는 외부활동이 거의 없었던 인물이었다 |
북미 시장에서의 경영기획과 마케팅을 총괄하는 업무를 맡아 실무 경험을 쌓던 구광모는 귀국후 서울 여의도의 홈엔터테인먼트 사업본부 선행상품기획팀에서 한국 생활을 다시금 시작하게 된다. 그리고 2014년 1월에는 홈어플라이언스 사업본부 기획관리팀으로 이동 후 3개월이 지난 동년 4월에 지주회사인 LG의 시너지팀 부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같은해 11월에는 부장에서 상무로 승진했으며,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LG그룹 회장 후계자로 경영수업을 받게 된다. 이후 근시일 내 다시금 승진이 있을 것이라는 예상과는 달리 그는 상무 직급을 유지하며 LG전자 B2B사업본부로 이동해 계속 업무를 봤다.
상무에서 사내이사로 선임된 것은 올해 6월이었다. 6월 29일 오전 서울 여의도 트윈타워에서 열린 임시주총과 이사회에서 구광모 상무를 신임 등기이사와 대표이사 회장으로 선임한 것이다. 이로써 LG그룹은 구인회 창업회장, 구자경 명예회장, 구본무 전 회장에 이어 그룹 창업 71년 만에 4세 총수 시대를 맞게 됐다. 국내 30대 그룹 중에서 4세 경영체제가 시작된 것은 두산그룹에 이어 두 번째로 기록되고 있으며, 국내 30대 그룹 총수 중 최연소 총수라는 타이틀을 달게 됐다. 한편, 구본무 회장 와병 중에 그룹을 대표하는 역할을 했던 구본준 부회장은 즉각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다.
젊은 나이에 회장직에 오르다
남북정상회담에 LG그룹 대표로 참석한 구광모 LG 회장 |
구자경 명예회장과 구본무 회장은 각각 45세와 50세에 회장에 선임된 바 있다. 선대 회장에 비해서 이른 나이에 회장직을 맡게 된 것은 부친의 별세 때문이었다. LG그룹은 구본무 회장의 건강 악화로 인해 승계 작업의 가속화가 필요불가결한 상황이었으며, 그로 인해 지난 5월 주주총회에서 신규 등기이사 선임안이 가결되고 이어 열린 이사회에서 주식회사 LG의 대표이사 회장 선임이 진행된 것이었다. 입사 12년, 상무 승진 4년여 만에 회장에 오른 그의 회장 승진은 그룹사 내에서도 예상치 못한 파격적인 조치로 이야기되고 있다. 그룹의 주요 의사결정에 깊숙이 관여하거나 주요 계열사를 경영한 경험이 없다는 점이 이야기되어왔기 때문이다.
당초에는 보수적인 LG그룹 문화를 고려할 때 사장이나 부회장을 거쳐 회장에 오를 것이라는 예상이 지배적이었다. 삼성그룹의 이재용 부회장이 50세, 현대자동차의 정의선 부회장이 48세인 점을 감안하면, 시대가 변했음을 감안하더라도 이제 막 불혹에 접어든 인물이 그룹사의 경영권을 승계한다는 것은 이른 것으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금번 사례가 역대 최연소의 나이로 그룹사 경영권을 총수 일가 후계자가 승계 받은 사례인 것은 아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39세의 나이로 1998년 사내이사로 선임되고 이후 회장직을 맡았던 것, 그리고 한화그룹의 고종희 전 회장의 타계로 29세의 나이로 회장에 오른 김승연 회장의 사례가 이미 있기 때문이다.
총수직을 맡기 전까지의 구광모 회장
승진 직전까지는 디스플레이 사업의 돌파구를 모색하던 중이었다 |
그가 LG그룹 회장직에 오르기 전까지 주력하던 사업부문은 정보디스플레이 사업이었다. 구광모는 2017년 말 임원인사에서 LG전자 B2B사업본부의 정보디스플레이 사업부장으로 자리를 옮긴 바 있으며, 여기에서 올레드 사이니지 등의 디스플레이 신사업을 주도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현재 디스플레이 시장은 중국발 치킨게임으로 홍역을 앓고 있으며, LG디스플레이는 올해 2분기 매출에서 영업손실 2,281억 원을 기록한 바 있다. 매출도 줄고 있으며 영업이익은 전년 동기 적자로 전환한 이래 줄곧 어려움을 겪고 있다. LG디스플레이는 팔수록 손해를 보고 있는 LCD 사업 비중을 줄이고 신사업인 OLED 비중을 높이기 위한 작업에 착수한 상태며, 그는 이 과정에서 글로벌 시장을 두루 누비면서 경쟁력 확보에 힘쓰던 중이었다.
정보디스플레이 사업 전에는 그룹 차원에서 새롭게 만들어진 조직인 LG 시너지팀에서 2014년부터 근무한 바 있다. 시너지팀은 2012년 그룹 차원에서 만들어진 조직으로, 그룹 주력사업 간의 시너지 활동을 강화하기 위해 만들어진 팀이다. 구광모는 시너지팀에서 근무하며 신사업을 발굴하고, 그룹 주요 계열사의 현안을 파악하며 그룹사 경영을 준비해 왔던 것으로 전해진다. 그는 회장직에 오르기 전까지는 공개석상에 모습을 드러낸 적이 거의 없었으며, 경영전면에도 나서지 않아왔다. LG그룹 내에서 그는 선후배들과 격의 없이 지내 사내 평판이 좋은 인물로 평가되고 있다.
취임 100일차, 본격화되는 대외 활동
세계 시장을 무대로 움직이는 그룹사를 앞으로 어떻게 움직여 나갈 것인가 |
그가 그룹사의 회장직으로 취임한 이후 승계의 과정은 여타 그룹사의 그것보다 훨씬 속도가 빨랐다. 이는 LG그룹이 지주사를 기반으로 한 전문경영인 체제가 안착돼 있었던 덕분으로 이야기된다. LG그룹은 전자, 통신, 화학, 생활건강 등의 각 사업군의 전문경영인 책임 경영 체제로 운영되고 있으며, 회장에 변경이 있더라도 계열사의 경영은 크게 흔들리지 않는 체제를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구광모 회장은 취임 직후 보도자료를 통해 지주회사의 경영 현안들을 챙겨나가면서, 상당 기간 동안 미래를 준비하기 위한 경영 구상에 집중할 계획이라는 뜻을 밝힌 바 있다. 이는 앞으로 당분간은 경영 일선에서 한 발 물러나 있을 것이라는 의도로 풀이된다.
지난 10월 6일자로 취임 100일을 맞았던 구광모는 11월 초로 예상되는 계열사의 보고회와 임원 인사를 통해 차근차근 자신의 경영 색깔을 나타낼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LG그룹의 계열사들은 매년 4분기의 업적보고회에서 실적을 평가받고, 그 결과를 임원 인사에 반영해 오고 있다. 이미 그는 취임 직후 그룹 내 2인자로 불리는 LG 부회장과 인사팀장을 교체한 바 있다. 아울러 구본준 LG 부회장이 올해 연말 임원 인사에서 물러난 뒤 LG이노텍, LG상사, 혹은 LG전자 전장부품 사업부문의 계열분리를 할 것이라는 전망이 조심스레 나오고 있다. 인사 발령과 계열 분리를 시작으로 내실을 챙기던 구광모의 그룹사 회장으로의 대외 활동이 곧 본격화될 것으로 보인다.
곧 사업 포트폴리오 재조정에 나설 것
어려움을 겪고 있는 스마트폰 사업 등 구광모 회장이 풀어야 할 숙제가 산적해 있다 |
70개 계열사를 거느린 연매출 160조 원의 글로벌 기업을 이끌어야 한다는 책임감은 그야말로 막중할 것이다. 일단 당분간은 LG그룹은 기존처럼 순항을 이어갈 것으로 전망된다. 이는 그룹사가 일찌감치 지주회사 체제를 갖췄던 덕에 지배구조 변화에 따른 충격이 타 그룹사에 비해 크지 않으며, 주요 계열사가 책임경영 체계로 호실적을 내고 있다는 점에 기인한다. LG그룹은 작년 사상 처음으로 연매출 60조 원의 시대를 열어젖혔으며, 영업이익도 2조 4,685억 원으로 지난 2009년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이 벌어들이는 호실적을 기록한 바 있다.
하지만 기존의 사업들이 과거처럼 폭발적인 성장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점은 그가 해결해야 할 가장 큰 숙제가 될 것이다. LG전자가 높은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는 백색가전, 배터리 분야가 성장 정체기에 진입했으며, 디스플레이 분야는 6년 만에 영업적자를 기록하며 직접적인 어려움에 직면해 있다. 올해에도 영업손실을 기록하고 있는 스마트폰 사업 또한 LG그룹의 발목을 잡고 있다. LG그룹의 신임 회장은 앞으로 새로운 경영 체제를 정착시키고 난 뒤, 기존 주력사업의 재조정, 신수종 사업 육성 등 새로운 사업 포트폴리오를 구상하기 위해 적극적인 움직임을 띌 것으로 전망된다.
글 : 최덕수 press@dail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