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자였던 현대카드를 빅3 수준으로 끌어올린 '정태영 대표이사'
요즘 출시되는 신용카드들은 과거의 것들과는 달리 디자인의 면에서 상당히 빼어난 모습을 보인다. 투박하게 양각 처리된 신용카드 번호, 화려한 문양의 전면 디자인 등 투박한 천편일률적인 신용카드들은 더 이상 찾아보기 힘들다. 대신 지극히 심플함을 지향한 세련된 디자인의 신용카드들이 시장을 선도하고 있다. 신용카드 시장에서 카드의 디자인을 무기로 삼아 성공을 거두고, 디자인 열풍을 불러온 회사는 ‘현대카드’다. 그리고 현대카드의 디자인 혁신을 일으킨 인물은 현재 현대카드, 현대캐피탈, 현대커머셜의 대표이사를 맡고 있는 ‘정태영 현대카드 대표이사 부회장(이하 직함 생략)’이 꼽힌다.
태초에 어려움을 겪던 현대카드
1960년 4월 11일, 종로학원을 세운 정경진의 장남으로 태어난 정태영은 고려대학교 사범대학 부속고등학교를 거쳐 서울대학교 불어불문학과를 졸업, 메사추세츠 공과대학교 대학원 경영학과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그리고 1985년에는 현대자동차그룹 정몽구 회장의 차녀인 현대커머셜 정명이 고문과 결혼하면서 현대그룹과 연을 맺게 된다. 그는 1987년 현대종합상사 기획실에 입사해 근무하다가 현대정공 도쿄지사 담당을 시작으로 해외에서 근무하며 그룹 내에서 경력을 쌓아가기 시작했다.
어려움을 겪던 현대카드를 일으킨 인물, 정태영 대표이사 부회장 |
현대정공 미주 법인장, 멕시코 법인장, 현대모비스 기획재정본부장, 그리고 기아차 구매본부장으로 재직하던 그가 현대카드의 임직원이 된 것은 2003년이었다. 그가 대표직을 맡은 때, 현대카드의 이미지는 ‘현대자동차 직원만 쓰는 카드’였다. 신용카드 시장의 점유율은 1.8%에 불과했으며, 영업적자 규모는 6,090억 원에 달했다. 여기에 현대캐피탈의 영업적자 2,250억 원이 더해져, 양사의 영업적자는 8,340억 원에 달했다.
착실하게 내실을 다지기 시작
현대카드의 구원투수로 그가 발탁된 이유를, 그 자신은 “현대차그룹에서 금융을 잘 아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대표 취임 직후 그는 가장 먼저 부실 고객 정리에 나섰다. 신용카드 시장 경쟁이 무리한 외형 경쟁으로 치달은 영향으로 현대카드를 비롯해 신용카드사들의 내실은 해가 다르게 악화되던 중이었다. 정태영은 현금서비스, 카드론 등 대출에 의한 충당금을 100% 쌓도록 했고, 신용카드 본연의 기능인 신용판매 기능 강화에 나섰다.
정태영은 전폭적 투자를 통해 2016-17시즌 우승한 현대캐피탈 스카이워커스의 구단주이기도 하다 |
정책을 바꾼 이후 현대카드는 이윤이 높은 금융업무에 너무 소극적이라는 비판을 받기도 했지만, 정태영은 신용카드는 대출카드가 아니라는 원칙을 고수했다. 천천히 내실을 다져가면서 현대카드는 점차 실적이 개선되기 시작했다. 그러자 투자금이 모였다. 당시 우량 기업의 상징이었던 GE가 2004년 8월 현대캐피탈에 9,500억 원을 투자했다. 이듬해 8월에도 6,800억 원의 투자가 이뤄졌다. GE의 파견 인사인 버나드 반 버닉 부사장은 투자의 배경으로 현대카드의 우량한 고객, 우수한 인재풀 등을 꼽은 것으로 전해진다.
신용카드 업계 빅3로 도약하다
정태영이 취임한 2003년 현대캐피탈은 영업수익 1조 6,419억 원, 적자 1,872억 원을 기록했다. 이듬해에도 적자가 이어졌지만 대규모의 투자를 유치한 2005년에는 흑자로 돌아섰다. 2005년 현대캐피탈의 영업수익은 1조 862억 원으로 다소 줄어들었지만 순이익은 4,041억 원을 기록했다. 2006년에는 영업수익도 늘어 2조 2,093억 원이 되었고, 순익도 3,404억 원을 기록했다.
신용카드 업계에 디자인 경쟁을 불러온 정태영의 야심작 ‘현대카드M’ |
2001년 10월 대우그룹으로부터 다이너스클럽 코리아를 사들여 계열사로 편입시킨 현대카드의 체질도 개선됐다. 2003년 5월 출시된 업계 최초의 ‘카드 포인트 선지급 서비스’ 도입 신용카드 ‘현대카드M’이 돌풍을 일으켰다. 세계적인 디자이너 ‘카림 라시드’를 기용해 카드 옆면에 색깔을 넣는 등의 디자인 혁신을 일으킨 점도 한몫을 했다. 덕분에 카드 출시 1년 만에 회원 숫자는 100만 명을 돌파했으며, 신용카드 단일 브랜드로는 국내 최대 규모인 800여만 명이 가입했다. 정태영은 뒤이어 2007년 4월 현대카드V, 2008년 2월 현대카드H, 2010년 11월에는 현대카드 플래티넘 시리즈를 잇달아 선보이면서 신용카드 시장에서 도약하기 시작했다.
탁월한 마케팅 전략이 성공의 핵심
현대카드의 시장점유율은 빠른 속도로 증가했다. 1%대의 점유율은 2017년 기준 13.1%로 올랐고, 현재는 신한카드, 삼성카드와 함께 업계 빅3로 꼽히고 있다. 정태영은 2003년 현대카드 부사장으로 취임한 이후 동년 10월에는 대표이사 사장으로, 그리고 현대카드 성장의 공로를 인정받아 2015년 5월에는 현대카드, 현대캐피탈, 현대커머셜 대표이사 부회장 자리에 올랐다. 현대커머셜은 현대캐피탈의 산업재 사업을 모태로, 기업금융을 전문적으로 담당하기 위해 2007년 3월 설립된 회사다.
현대카드 마케팅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는 ‘문화 마케팅’ |
현대카드의 폭발적 성장에 있어, 앞서 거론되지 않은 중요한 또 하나의 요소가 바로 ‘문화 마케팅’이다. 2007년부터 매년 세계적인 유명 음악가를 섭외해 대규모의 공연을 개최하는 ‘현대카드 슈퍼콘서트’가 대표적이다. ‘컬쳐 프로젝트’라는 이름으로 연극, 전시전, 건축전 등 다양한 문화공연도 함께 펼치고 있다. 현대카드를 디자인이 예쁘고 혜택이 많은 신용카드를 내놓는, 그뿐만 아니라 다양한 문화공연을 개최하는 브랜드로 대중들에게 각인시킨 것은 신용카드 업계에서 가장 성공적인 마케팅의 사례로 이야기되고 있다.
지금은 어려움을 겪고 있는
하지만 현대카드가 매년 계속 성장만 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특히 작년부터는 급속도로 실적이 나빠지고 있는 상황이다. 대부분의 카드사가 실적 악화를 겪고 있지만 그중에서도 현대카드의 하락폭은 더욱 크다. 현대카드는 2018년 3분기까지 매출 2조 2,470억 원, 영업이익 1,616억 원, 순이익 1,278억 원을 기록했다. 여전히 순익을 내고 있는 회사지만, 문제는 2017년 동기에 비해 영업이익이 30%가량 급감한 점이 문제로 지적됐다. 현대커머셜 또한 동기간 누적 순이익이 75.5%가 줄어들었다.
정태영은 보험업에 진출해 신통치 않은 성적을 거두기도 했다 |
결국 현대카드는 구조조정을 진행할 수밖에 없었다. 보스턴컨설팅그룹(BCG)의 컨설팅 결과도 수익성 개선을 위해 임직원 400명을 감축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2018년 말 현대카드는 창사 이래 처음으로 희망퇴직을 진행했고, 그 결과 정규직 200여 명을 줄일 수 있었다. 이로 인해 현대카드 정규직은 2018년 상반기 1,775명에서 올해 상반기 1,376명 규모로 축소됐으며, 그에 따라 상반기 기준 인건비도 작년 1,145억 원에서 올해 934억 원으로 200억 원가량 줄어들게 됐다.
앞으로 남은 현대카드의 숙제
현대카드는 작년 삼성카드를 제치고, 2019년 5월 24일부터 10년 동안 쓰일 코스트코의 결제카드로 선정됐다. 올해 상반기 현대카드는 당기순이익 1,218억 원을 기록해 전년 동기의 790억 원에 비해 428억 원이 증가한 실적을 기록했다. 이는 수익 약 200억 원으로 추정되는 코스트코와의 계약, 그리고 여기에 더해 줄어든 인건비 덕으로 분석된다. 당장의 수익성 개선은 이뤘지만, 문제는 현대카드가 카드 수수료 인하와 같은 외부요인 속에서 보다 장기적인 관점의 해법을 아직 내놓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코스트코, 희망퇴직 등으로 단기적 실적은 개선했지만, 아직 장기적 해법을 내놓지 못하고 있는 상황 |
정태영은 신용카드 시장에서는 혁신의 아이콘으로 불린다. 특히 마케팅의 관점에서는 다른 어떤 기업인보다도 탁월한 시각을 가진 인물로 이야기된다. 자유로운 출퇴근 시간을 보장하는 플렉스 타임, 개인의 취향과 업무 효율성을 고려한 근무복장 제도 등 파격적인 기업문화를 조성한 점도 높이 평가된다. 하지만 혁신을 실적으로 잇지 못했다는 점, 그리고 위기에서 해법을 내놓지 못한다는 점 때문에 지금은 과거와 달리 경영능력의 자질에 제기되는 의문이 점차 늘고 있다. 올해 상반기 실적을 계기로 한숨을 돌렸지만, 앞으로도 정태영은 자신의 자질을 새삼 다시 한 번 검증받기 위해 지속적인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최덕수 press@dail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