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는 안 된다? 편견 깨고 만든 영화
여성 감독이 만들면 흥행 안 된다? 많은 사랑을 받은 여성 감독이 만든 영화
전 세계적으로 영화는 전통적으로 남성 중심의 시각에서 만들어졌다. 남성 감독이 만든 영화에 주인공은 대부분 남성이었으며, 여성은 보통 남성의 시각적 쾌락의 대상으로 이용되거나 수동적인 존재, 혹은 남성 주인공의 조력자 역할을 맡았다. 실제로 2017년 한국 상업영화 83편 중 여성 감독의 작품은 고작 7편이었다. 수많은 남성 감독도 소수만 성공하는 영화 산업에서 여성 감독에게 요구되는 잣대는 훨씬 높다. 여성이 제작한 소수 영화가 한 번만 흥행에 실패도 ‘여성 감독 영화라 그래’라는 선입견을 갖기도 한다. 그러나 점차 여성 감독의 수가 증가하고, 여성 감독이 만든 다양한 장르의 영화가 흥행하면서 주목받고 있다. 그렇다면 여성 감독이 메가폰을 잡아 많은 사람들에게 회자되는 영화는 뭐가 있을까? 여성 감독 특유의 신선한 시각으로 제작돼, 국내에서 큰 사랑을 받은 영화를 소개한다.
원더우먼
원더우먼 역의 갤 가돗, 패티 젠킨스 감독 (사진: 영화 '원더우먼' 스틸컷) |
영화 <원더우먼>은 아마존데미스키라 왕국의 공주였던 다이애나 프린스가 1차 세계 대전에 참전하고, 세상을 구하는 진정한 히어로로 거듭나면서 이야기가 진행된다. DC 확장 유니버스는 <맨 오브 스틸>로 시작하여 <배트맨 대 슈퍼맨: 저스티스의 시작>, <수어사이드 스쿼드>, <원더우먼>, <저스티스 리그>를 선보였으며 최근엔 <아쿠아맨>까지 개봉했다.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에 비해 맥을 못 추던 DC 확장 유니버스는 <원더우먼>이 흥행에 크게 성공하자 이를 기반으로 다시 기세를 펼칠 준비를 하고 있다. <원더우먼>은 개봉 첫 주 주말에만 1억 달러 이상의 수익을 올리면서 역대 여성감독 작품 중 최고의 오프닝 기록을 갖고 있다. 패티 젠킨스 감독은 여성 감독이 코미디나 로맨스가 아닌 슈퍼히어로 장르물에서 인정을 받았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받는다.
인턴
벤 역의 로버트 드 니로, 줄스 역의 앤 해서웨이, 낸시 마이어스 감독 (사진: 영화 '인턴'의 스틸컷) |
젊은 CEO ‘줄스’가 70세의 벤을 인턴으로 채용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고 있는 <인턴>은 국내에서만 360만 명이 넘는 관객을 모으며 흥행에 성공했다. 유쾌한 코미디인 듯하지만, 그 안에 담긴 이야기가 마냥 가볍지만은 않다. 낸시 마이어스 감독은 한 인터뷰에서 ‘여성을 긍정적으로 그리고 싶었고, 남자와 달리 여자가 성공할 경우 불이익이 주어지는 모습도 보여주고 싶었다’고 전했다. 낸시 마이어스 감독은 6편의 장편 영화로 평균 1억 5천만 달러의 수익을 올렸고, 이 중 4편이 1억 달러 이상 벌어들였으며, 로맨틱 코미디의 장인으로 평가받고 있다.
리틀 포레스트
혜원 역의 김태리, 임순례 감독 (사진: 영화 '리틀 포레스트'의 스틸컷) |
충무로의 블루칩으로 떠오르는 김태리가 <아가씨> 이후 주연 작품으로 선택해 화제를 모은 <리틀 포레스트>는 느림의 미학, 소소한 일상 속 여유로움을 보여주었다. 150만 명의 관객을 모은 이 영화는 유독 2, 3번씩 봤다는 사람이 많을 만큼 마니아층을 형성했으며, ‘퇴사 권장 영화’라는 우스갯소리가 있는 정도로 영화 그 자체가 ‘힐링’이라는 평을 많이 받았다. 임순례 감독은 교훈을 강요하거나 가르치려 하지 않고, 마음을 움직이는 휴머니즘 감독으로 널리 알려졌다. 특히 동물보호시민단체 대표도 역임할 만큼, 소외된 존재들을 조명하기로 유명하다.
미쓰백
백상아 역의 한지민, 이지원 감독 (사진: 영화 '미쓰백'의 스틸컷, 시사회 현장) |
전과자인 ‘백상아’가 길에서 아동학대를 당한 ‘지은’을 마주하게 되면서 극이 전개되는 <미쓰백>은 저예산 영화로 72만 명의 관객을 모아 손익분기점을 돌파했다. 절대적인 수치로 봤을 때, 흥행에는 크게 성공하지 못했지만, 영화의 원톱 주인공인 한지민이 이 영화로 2018년 청룡영화상 여우주연상을 받으며 화제를 모았다. 아동학대라는 사회 문제를 상업영화에 잘 녹아냈다는 평을 받았다. 이지원 감독은 한 인터뷰에서 ‘앞으로도 주체적인 여성 캐릭터가 등장하는 영화를 계속 만들고 싶다’라는 포부를 밝히기도 했다.
우리들
선 역의 최수인, 지아 역의 설혜인, 윤가은 감독 (사진: 영화 '우리들' 스틸컷, 베를린 영화제 현장) |
<우리들>은 각종 영화제에서 상을 휩쓴 윤가은 감독의 장편 데뷔작으로, 베를린 영화제, 캐나다, 이탈리아, 벨기에 등 수많은 국제적 영화제에 초청되면서 극찬을 받은 작품이다. 초등학생들의 갈등과 우정에 다룬 이야기로 아이들을 앞세우고 있지만, 어른들의 마음을 움직인 작품으로 인정받았다. 영화 <우리들>은 다양성 영화로, 쟁쟁한 상업영화들 속에서 약 5만 관객을 모았다. 전혀 생각지도 못한 흥행이었다. “다음 영화가 첫 영화라는 생각이 든다”는 윤 감독의 말이 앞으로의 차기작을 더욱 기대하게 한다.
카트
선희 역의 염정아, 혜미 역의 문정희, 부지영 감독 (사진: 영화'카트' 스틸컷) |
부지영 감독의 첫 번째 상업영화인 <카트>는 이랜드 홈에버 파업, 홍익대 청소 노동자 파업 등을 모티브로 삼아,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목소리를 담았다. 80만 명이라는 다소 적은 관객 수가 동원됐지만, 한국 상업영화 최초로 비정규직 노동 문제를 다뤄 다소 어렵고, 무거운 주제를 대중 영화에 녹이는 데 성공했다는 평을 받는다. 비정규직과 노동 탄압, 대량 해고 등 소설이 아닌 현실을 영화 속에 녹이는 연출력이 대단하다.
미쓰 홍당무
양미숙 역의 공효진, 이경미 감독 (사진: 영화 '미쓰 홍당무' 스틸컷) |
<미쓰 홍당무>는 취향을 타기는 하지만 신선한 시각인 것만은 분명한 영화로, 이경미 감독의 성공적인 첫 장편 연출작으로 인정받았다. 2008년 작인 <미쓰 홍당무>는 관객 수 53만 명이 조금 넘는 작품으로 흥행에는 큰 성공을 이루지 못했어도 배우 공효진을 재발견한 작품이기도 하고, 기존의 한국영화의 틀을 깨버리는 실험적인 코미디라는 평을 받으며 화제를 모았다. 8년 뒤 개봉한 <비밀은 없다>도 손예진의 물오른 연기력과 어느 한 장르에 정의하기 모호한 개성 있는 작품으로 인정받으며 특유의 이경미 감독의 영화 세계관을 구축하기에 이르렀다.
화차
장문호 역의 이선균, 차경선 역의 김민희, 변영주 감독 (사진: 영화 '화차' 스틸컷) |
<화차>는 변영주 감독의 대표작으로 손꼽히며, 한국 미스터리 영화에 신선한 한 획을 그은 영화이다. 결혼 전 약혼녀가 사라지면서 진행되는 이야기로, 관객들에게 몰입도가 높은 영화라는 평을 받았다. 실제로 240만 명이 넘은 관객을 모아 흥행에 성공했으며 백상예술대상 영화 감독상을 받기도 했다. 특히 변영주 감독은 최근 JTBC 영화 프로그램 <방구석 1열>에서 영화에 대한 깊이 있는 통찰을 보여줘, 많은 시청자의 사랑을 받고 있다. ‘관객의 만족과 예술가의 야심을 잘 조율하는 게 대중 예술’이라고 생각한다는 변 감독은 한국 독립영화를 대표하는 감독이면서 동시에 장르영화 감독으로 정체성을 확장시킨 인물로 평가받고 있다.
미씽: 사라진 여자
지선 역의 엄지원, 한매 역의 공효진, 이언희 감독 (사진: 영화 '미씽: 사라진 여자' 스틸컷, 제작보고회 현장) |
영화 <미씽: 사라진 여자>의 ‘지선’은 이혼 후 어린 딸과 함께 살고 있는 워킹맘이다. 일하느라 아이를 돌보기 쉽지 않아 보모를 뒀는데, 어느 날 흔적도 없이 보모와 딸이 사라지고 지선이 이들을 추적하는 이야기가 전개된다. 이 영화를 연출한 이언희 감독은 여성영화라는 이유로 투자를 받기 어려웠다고 전했다. 결국, 원래 예산에서 10억 원을 깎은 다음 제작할 수 있었다고 한다. 이런 우여곡절에도 110만 명이 넘는 관객 수를 모으며, 좋은 흥행 성적을 받았다. 한국 영화에서 보기 드문 여성 투톱 영화로, 배우 엄지원, 공효진의 연기력을 입증한 영화라고 평가받는다.
집으로
할머니 역의 김을분, 상우 역의 유승호 (사진: 영화 '집으로' 스틸컷), 이정향 감독 (사진: 영화'데몰리션' VIP 시사회) |
청룡영화상, 한국영화평론가협회상 등 그해 신인감독상을 휩쓴 <미술관 옆 동물원>은 이정향 감독의 데뷔작이다. 준비된 신인이라는 평가를 받은 그의 이름을 더욱 드높인 영화는 <집으로>다. 당시 어린 남자아이와 등이 다 굽은 할머니 등 영화계에서 비주류라고 여겨지는 요소를 내세워 400만 명이 넘는 관객을 동원하며 흥행에 성공했다. 할머니와 그의 7살 난 손자, 아무것도 없는 농촌 배경 등 비상업적인 요소만 가득하지만, 아직 사람들 사이에서 회자될 정도로 이 영화는 한국 영화계에 한 획을 그은 작품이라 할 수 있다.
글 : 이윤서 press@dail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