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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실 또는 붕괴로 이제는 볼 수 없는 우리나라의 문화재들

흔적만 남아 안타까운 우리나라의 유물, 유적들

소실 또는 붕괴로 이제는 볼 수 없는

우리나라의 자랑스러운 역사의 흔적은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지만, 대부분의 유물과 유적은 소실된 것도 많다. 긴 역사만큼이나 많은 침략을 당했고 이런 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해 노력했지만, 그 과정에서 큰 피해가 잇달았다. 우리나라의 자랑스러운 역사를 대변하지만 안타깝게도 소실되어 흔적만 남아있거나 복원된 형태로 있는 문화재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 알아보자.

경주 황룡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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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룡사는 경주에 있는 가장 큰 사찰이었다. 신라에서부터 고려 시대에 이르기까지 국가적 대 사찰로서 이름을 떨쳤다. 그러나 고려 고종 때 몽골의 침입으로 소실되었다. 이곳에 있던 황룡사 9층 목탑 역시 몽골의 침입으로 완전히 전소하여 사라졌다. 현재는 황룡사와 9층 목탑이 있던 터만 황룡사지라는 이름으로 남아있다.

고구려 안학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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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학궁은 한때 고구려의 궁이었다. 고구려가 많은 영토를 차지하고 강성하던 장수왕 시기에 건립되었다. 그만큼 우리나라의 역사상 가장 거대했던 궁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의 규모를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현재는 소실되어 궁의 터만 남아있다. 안학궁이 소실되지 않았다면 웅장한 고구려의 기상과 문화를 볼 수 있었을 것이다.

경복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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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복궁은 조선 개국 후 1395년에 창건되어 법궁으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1592년 임진왜란 때 완전히 불에 타 흔적만 남았다. 현재 경복궁의 모습은 고종 때 복원된 모습이다. 안타깝게도 조선 전기의 순수한 경복궁의 모습은 다시 찾아볼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많은 사람이 초기 경복궁의 형태를 재현하기 위해 많은 역사적 사료들을 재검토하고 있다.

조선 왕들의 어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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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의 초상화를 뜻하는 어진은 임진왜란 때 궁궐이 모두 불타면서 현재는 세조와 태조의 어진을 제외하고는 거의 다 소실되었다. 어진은 조선 시대에 많이 그려졌는데, 궁의 최고 화가들이 모여서 왕의 모습을 털 하나까지 섬세하게 그렸다고 한다. 이를 생각하면 어진이 모두 불에 타서 소실된 것은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익산 미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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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산 미륵사는 백제 무왕 때의 사찰이다. 이 사찰에는 동방의 최대 규모라고 불리는 탑이 있는데, 서쪽에 있는 탑은 현재 국보 제11호인 미륵사지 석탑이다. 동쪽의 탑은 완전히 소실되었으나 복원된 형태로 자리 잡고 있다. 또한 목탑은 완전히 소실되어 터만 남아있다. 미륵사지 석탑 또한 반쯤 파손되어 있으며 붕괴 위험이 있는 상태이다.

고구려 대동강 목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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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다리는 5세기 초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데, 폭이 9m에 길이가 375m에 달하는 어마어마한 크기의 다리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이 목교는 고구려의 궁궐로 향하는 진입로 역할을 한 것으로 파악된다고 한다. 이를 통해 고구려 사람들의 목조 건축기술이 얼마나 발전했는지 알 수 있지만 소실되어 현재는 흔적도 찾아볼 수 없다.

개성 만월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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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를 세운 왕건이 개성을 수도로 지정하고 건축한 궁궐이 바로 만월대이다. 고려 왕조의 상징이 된 만월대는 위기를 두 번 겪는데, 처음은 거란의 침략이었다. 이를 대비하여 성벽을 더 쌓아 방어력을 높였다. 그러나 홍건적의 침입으로 건물이 불타서 지금은 구조물만 땅속에 남아 있는 형태이다. 구조물의 흔적만 남아 안타까운 유적지이다.

초조대장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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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에서 간행한 대장경에는 초조대장경, 속대장경, 팔만대장경이 있다. 그중 초조대장경은 거란의 침입을 받아 나라가 위급한 상황일 때 대장경판을 만들면서 불심으로 위기를 타파할 목적으로 간행한 것이었다. 그러나 몽골의 침입을 받아 모두 불타버렸다. 현재는 흔적도 없이 소실되었으며 일부만이 일본에 남아있다고 한다.

낙산사 동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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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산사 동종은 고려 종의 모습을 잘 보여주던 소중한 문화재였다. 높이가 158cm가 되는 대형 범종으로 보물 제479호에 오를 정도였다. 그러나 2005년 강원도 양양과 고성 지역의 대형 화재 때 완전히 용해되어 소실되었다. 이후 종의 모습을 다시 복원하여 달아 놓았으나 예전의 모습을 완전히 복원할 수는 없어 안타깝다.

감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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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은사는 신라 시대의 절이다. 삼국 통일을 이룬 신라 문무왕이 나라를 더욱 강성하게 하기 위해서 감은사를 건축하기 시작하여 신문왕 때 완공하였다. 통일신라 때 호국 사찰로서 큰 역할을 했으나 몽골의 침입으로 소실되었다. 현재는 감은사지 터에 돌탑 두 개만이 덩그러니 놓여있으며 구조물의 흔적만이 남아있을 뿐이다.

 

글 : 김선우 press@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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