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급 홍보 성과는 A급… 병맛나는 충주시 영상, 클릭을 부르고
[아무튼, 주말] B급 홍보의 달인이 된 충주
같은 옷을 입은 남자 네 명를 세워놓고 교관으로 보이는 한 남자가 물었다.
“자 이제 눈치 게임 시작하겠다. 충주야, 청주야?”
네 사람 입에서 충주와 청주가 뒤섞여 “췅주”라는 대답이 나오자 교관은 “청주라고 한 XX 누구야. 당장 나와”라고 소리를 질렀다.
유튜브에서 인기를 끌었던 예능 프로그램 ‘가짜 사나이’를 패러디한 ‘가짜, 가짜 사나이’의 한 장면. 교관은 ‘충주시 홍보맨’으로 알려진 시청 공무원 김선태 주무관, 훈련생으로 등장한 사람은 모두 유튜브를 통해 모집한 일반인이다. 김 주무관이 ‘가짜 사나이’의 유행어 “너 인성에 문제 있어”와 “4번은 이기주의야”를 써가며 일반인에게 기합을 주는 이 영상은 유튜브의 충주시 공식 채널 ‘충TV’에 올라왔다. 대체 이 영상과 충주시 홍보는 무슨 관계가 있을까. 조회 수 46만이 넘는 이 영상에서 훈련생은 충주시 특산물인 산척 고구마가 새겨진 티셔츠를 입고 있었다.
충주시를 홍보하는 소셜 미디어에는 관공서에서 내놨다기엔 너무 재기가 넘치고, 공무원이 만들었다기엔 꽤나 발랄한 콘텐츠들이 있다. ‘양반의 도시’로 잘 알려진 충주에서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충TV가 있기 전에 충주시 페이스북이 있었다. “충성할 때 충! 충주시청” “믿음, 소망, 사과. 사과는 충주 사과” 등 말장난 같은 홍보 문구와 대충 그린 듯한 그림이 합쳐진 홍보 포스터가 페이스북의 충주시청 페이지에서 인기를 끌었다. 그다음에 나온 게 시청 홍보팀 김선태 주무관이 운영하는 충TV와 농정과 유통팀이 만든 ‘충주씨’ 유튜브 채널이다. 충주씨는 충주시를 대표하는 캐릭터 수달의 이름으로 사과, 고구마, 밤 등 특산품 홍보에 특화가 됐다.
충주시 유튜브에는 주로 B급 패러디 영상과 공무원 인터뷰, 먹방 콘텐츠가 올라오고, 김선태 주무관의 브이로그(개인의 일상을 담은 셀프 카메라)와 상황극도 있다. 여느 유튜브 예능 프로그램과 다를 게 없지만 충주시 홍보가 빠지지 않고 들어간다. 김 주무관이 충주시 하수처리장에서 밥을 먹는 먹방을 선보이면서 하수처리장 공무원이 하는 일을 보여주고, ‘가짜 사나이2’ 지원 영상을 찍으면서 체력 테스트를 하는 과정에선 보건소 홍보를 함께하는 식이다. 지금까지 가장 인기가 많았던 영상은 관짝 소년단 밈(가나에서 관을 든 상여꾼들이 춤을 추는 영상을 패러디한 것)을 만들어서 코로나 예방법을 홍보한 것으로 조회 수 400만이 넘었다. 충주시 채널의 구독자는 12만6000명. 13만7000 구독자를 보유한 서울시 채널에 이어 지자체 유튜브 중에서 2위를 차지했다. 서울시 채널의 유튜브 1년 예산이 6억원인데, 충TV는 60만원에 불과하다.
충주씨도 B급과 병맛(맥락 없고 어이없음)으론 만만치 않다. 충주씨는 주로 노래를 통해서 홍보를 많이 하는데, 대표곡 ‘사과하십쇼’는 오규석 부산 기장 군수가 군정 질의 도중에 “사과하십쇼”를 400번 이상 외친 것을 패러디한 것. 나이트클럽에서나 들을 수 있을 법한 박자와 선율로 이뤄졌지만 묘하게 중독성이 있는 곡으로 ‘사과’의 중의적인 의미를 살렸다. ‘사과하십쇼’를 반복하다가 어물쩍 ‘사과 사십쇼’로 넘어가는 게 포인트. 조회 수가 50만 가까이 됐고, “일하면서 듣고 싶다”는 청원이 이어지자 9시간 동안 이 노래를 무한 반복하는 음원도 만들었다. 이 외에도 가수 배기성과 함께 부른 트로트 ‘비겁하다 옥수수다’, 래퍼 지코의 ‘아무 노래’를 패러디한 힙합 ‘아무 고구마’ 등이 있다.
충주는 재미나 유흥 하면 떠오르는 도시는 아니기 때문에 B급·병맛 홍보물이 가져오는 충격과 반전 효과가 더 크다. 교육방송이 ‘펭수’ 같은 캐릭터를 만든 게 흥미를 끄는 것과 비슷한 이치다. 충주씨를 만든 공무원 중 한 명인 이래관 주무관은 차분하고 담담한 말투로 “충주는 양반의 도시이고, 충주인들은 감정을 밖으로 드러내지 않는다고 알려져 있다. 그것은 편견이다”라고 했다. 그와 동료들은 지자체에서 농산물을 홍보하기 위해 만든 문구가 하나같이 ‘푸른 물, 맑은 공기’로 시작하는 것을 보고 이를 탈피하기 위해 노래를 만들었다. 이 주무관은 “사과와 관련된 단어를 찾기 위해 시도 때도 없이 ‘사과, 사과’를 되뇌다가 ‘사과하십쇼’가 떠올랐다”고 했다.
김 주무관은 “충TV가 ‘개인 유튜브처럼 재미만 강조한다’ ‘시정을 더 많이 반영해야 한다’는 내부적인 비판도 있지만, 일단 충주시를 알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충주는 존재감이 크지 않고, 재미 없단 인상을 주는 도시이기 때문에 눈길부터 끌어야 했다”고 했다. “결재를 받고 올리는 게 맞냐”는 댓글 반응에 대해선 “결재 과정이 거의 없다. 예를 들어 홍보물의 글씨 크기 갖고 누군가는 크다고, 누군가는 작다고 지적한다. 그들의 취향을 다 맞추려면 너무 무난하고 지루한 결과물이 나온다”고 했다. 충TV와 충주씨는 충주를 ‘노잼’(재미 없음) 도시에서 묘한 매력이 있는 도시, 독특한 도시로 만들었다. ‘사과하십쇼’ 영상에는 이런 댓글이 있다. “진짜 코로나 끝나면 충주 여행 간다. 그곳은 어떤 곳일까.”
[변희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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