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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처]by 조선일보

황금보다 좋아했다, 신라인의 유리 사랑

국립경주박물관 ‘오색영롱’展, 고대 유리 1만8000여 점 선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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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장 한복판에 놓인 황남대총 남분 출토 봉황 모양 유리병(국보 제193호). 높이 24.7cm. 손잡이 부분에 금실을 감아 보수한 흔적이 있으며, 성분 분석 결과 중앙아시아에서 제작된 수입품으로 밝혀졌다. /국립경주박물관

짙은 코발트빛의 높이 7.4㎝ 유리잔이 입구에서 관람객을 맞는다. 1973년 신라 천마총에서 출토돼 조사단을 놀라게 한 유물이다. 이국적인 푸른빛, 연속되는 세로 줄무늬와 벌집무늬. 한눈에 봐도 ‘물 건너온’ 작품이었다. 조사 결과는 ‘메이드 인 이집트’. 지중해를 건너 산맥⋅협곡을 넘고 끝없이 펼쳐진 초원을 가로질러 유라시아 동쪽 끝 신라에 다다르기까지, 1500년 전 유물의 지구 반 바퀴 여정이 초대형 영상으로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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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천마총에서 출토된 유리잔(보물 제620호). 높이 7.4cm. /국립경주박물관

국립경주박물관이 지난 8일 특별전 ‘오색영롱, 한국 고대 유리와 신라’를 개막했다. 신라인들이 아끼고 사랑한 유리를 중심으로 국내 거의 모든 고대 유리를 한데 모았다. 한국 고대 유리를 주제로 한 첫 대규모 특별전으로, 철기시대부터 통일신라에 이르는 유리 제품 1만8000여 점을 선보인다.

황남대총 봉황 모양 유리병은 ‘메이드 인 중앙아시아’

4500년 전 지중해 지역에서 탄생한 유리는 기원전 1세기 ‘대롱 불기’라는 혁신 기법이 개발되면서 로마 제국에서 널리 제작됐다. 고대 동아시아에서 유리는 서역에서 온 진기한 보물이었다. 주로 장신구에 활용됐고, 서방에 비해 그릇·잔 같은 용기는 보편화되지 않았다. 김도윤 학예연구사는 “유리잔을 제작하는 건 유리구슬을 만드는 것과는 전혀 다른 차원의 기술”이라고 했다.

신라 능묘에서 출토된 유리잔과 그릇. /국립경주박물관

그런데 천마총을 비롯해 황남대총·서봉총·금령총 등 5~6세기 신라 왕릉급 무덤에서 제대로 형태를 갖춘 유리 용기 15점이 발견된 것이다. 물을 따르는 주구부(注口部)가 봉황 머리같이 생긴 유리병, 표면을 깎아 무늬를 만든 투명 그릇···. 박물관은 일본 오카야마 시립 오리엔트 미술관과 공동으로 성분 분석을 실시해 15점의 제작지와 이동 경로를 처음 밝혀냈다.


모두 수입품이지만 생산지는 크게 세 곳으로 나뉜다. ①천마총 유리잔처럼 푸른빛이 선명한 용기들은 이집트 ②황남대총 남분 봉황 모양 유리병 등 연녹색 계열은 중앙아시아 ③황남대총 북분에서 출토된 커팅(cutting) 장식 유리 그릇은 시리아-팔레스타인 지역에서 만들어진 뒤 흑해 연안에서 표면을 깎는 장식이 추가됐다는 결과가 나왔다. 김도윤 학예사는 “유라시아를 가로지르는 육로와 해로를 통해 신라로 전해진 유리그릇은 당시 활발했던 국제 교류와 무역상, 신라인들의 국제 감각을 보여준다”고 했다.

신라 능묘에서 출토된 유리병과 잔, 그릇이 전시장 한복판에 한데 놓여있다. 모두 수입품이다. /국립경주박물관

이 명품 수입품들이 4부 한복판에 모여 있다. 어두운 전시 공간, 가장 높은 진열대 위에 오른 봉황 모양 유리병을 중심으로 청색·황색·연녹색 유리잔과 그릇들이 조명을 받아 투명하게 반짝인다. 특히 눈길 끄는 건 유리병 손잡이 부분에 감겨 있는 금실. 박물관은 “취약한 부분을 금실로 보강하려 한 것은 당시 신라인들이 유리를 얼마나 귀하게 여겼는지를 잘 드러내는 부분”이라며 “신라인들이 황금을 사랑했지만 금은 지방 세력에도 많이 나눠준 반면 유리는 오로지 왕릉급 무덤에서만 나온다. 그만큼 애착이 강했고 귀한 수입품이었다는 얘기”라고 했다.

유리는 부처에 바치는 귀한 보석

고대 유리의 주류를 이루는 구슬의 다양한 변주도 볼 수 있다. 삼국시대엔 나라별 특색도 뚜렷해 ‘백제의 다채로운 색, 신라의 청색 물결, 가야는 수정과 유리의 조화'로 비교 감상하는 재미가 있다. 백제는 작고 다양한 색을 지닌 인도-태평양 유리구슬과 당시 최고의 귀중품 중 하나인 중층 유리구슬이 많고, 신라에선 지름 1㎝ 안팎의 짙은 청색 유리구슬이 주로 출토됐다. 가야지역은 유리구슬과 함께 수정·마노·비취 곱은옥 등이 세트를 이룬 경우가 많다.

공주 무령왕릉에서 나온 유리구슬. 구슬 지름 0.2~0.5cm. /국립경주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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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황남대총 남분에서 나온 청색 구슬. 구슬 지름 약 1.0cm. /국립경주박물관

마지막엔 불교가 유입되면서 종교적 상징이 더해진 유리를 소개한다. 경주 구황동 삼층석탑에서 나온 다량의 유리구슬은 유리가 부처에게 바치는 귀한 보석이었음을 보여준다. 왕궁리 오층석탑 사리병, 칠곡 송림사 오층전탑 유리잔과 사리병 등으로 눈이 호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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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곡 송림사 오층전탑 유리 사리기(보물 제325호). 사리병 높이 6.3cm. /국립경주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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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산 왕궁리 오층석탑 유리 사리병(국보 제123호). 사리병 높이 6.8cm. /국립경주박물관

이재열 국립경주박물관 학예연구과장은 “작년 초부터 서양의 고대 유리를 소장하고 있는 일본의 미호미술관, 오카야마시립 오리엔트미술관과 함께 국제교류 순회전으로 ‘고대유리’전을 준비했으나 코로나 여파로 일본에서 작품 출품이 불가능해져 ‘한국의 고대 유리’로 주제를 변경했다”고 했다. 내년 3월 1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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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미추왕릉 상감 유리구슬 목걸이(보물 제634호). 길이 24.0cm. /국립경주박물관

[경주=허윤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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