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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9, 육영수 피격… 역사의 현장 포착한 한 장의 사진

[인물과 사건으로 본 조선일보 100년] [46] 시대를 기록한 특종 사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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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1년 6월 10일 열린 군법회의 언도 공판에서 죄수복을 입고 고개 숙인 엄마의 손을 어린아이가 붙잡고 있다. 본지 사진기자 정범태가 찍은 사진이다. ‘결정적 순간’이라는 제목을 붙였다. 이날 쿠데타 군부의 이른바 ‘혁명재판소’에 선 시민 39명 중 이 여인 한 명만이 무죄 선고를 받았다.

1961년 6월 10일 서울·경기 고등군법회의 언도 공판이 열린 경기도청 회의실. 창문으로 오후 햇살이 비쳐 들었다. 죄수복을 입고 고개 숙인 여자의 그림자가 길어졌다. 군재(軍裁) 판사가 판결문을 낭독하려는 순간 ‘자박자박’ 발자국 소리가 났다. 두세 살쯤 돼 보이는 아이가 아장걸음으로 방청석에서 나와 여자의 손을 꼭 잡더니, 판사석을 바라봤다. 현장을 찍은 본지 사진기자 정범태는 훗날 “아이는 말 없이도 ‘우리 엄마를 살려주세요’라고 간절히 호소하는 듯했다”고 회고했다. 군사정부가 부정부패를 일소하겠다며 시민들을 이른바 ‘혁명재판소’ 법정에 세우던 시절이었다. 정범태는 이 사진에 사진가 카르티에-브레송의 용어를 빌려 ‘결정적 순간’이라는 제목을 붙였다. 그해 말 일본 아사히 국제사진전에서 ’10대 걸작'으로 선정됐다.


보도 사진의 힘은 때로 신문 지면의 영향력을 넘어선다. 가슴을 치는 휴머니즘이, 참혹한 한 시대의 민낯이 사진 안에 기적처럼 오롯이 자리 잡는다. 휘발돼 사라질 뻔한 순간을 붙잡아 지면에 담은 것은, 목숨을 걸고 현장으로 달려갔던 사진기자들의 투지와 끈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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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위에 나섰다가 소위 ‘정치 깡패’들의 습격을 받아 한밤의 서울 거리에 처참히 쓰러진 고려대생들의 모습을 보도한 1960년 4월 19일 자 본지 사회면. /조선일보DB

한 해 전인 1960년 4월 19일 아침, 본지 조간 사회면에 실린 특종 사진은 타오르던 시민들의 분노에 기름을 부었다. 정치 깡패들에게 무참히 폭행당해 피 흘리며 쓰러진 고려대 학생들의 모습이었다. 전날 저녁, 부정선거 규탄 시위를 마친 고대생들이 쇠갈고리와 쇠파이프 등을 든 깡패들의 습격을 받았다. 순식간에 학생 40여명과 기자 6명이 쓰러졌다. 본지 사진기자 정범태는 소리가 나는 쪽으로 각도를 잡고 셔터를 눌렀다. 미리 봐둔 골목길로 정신없이 뛰는 그의 뒤에서 깡패들의 거친 목소리가 들려왔다. “누구야? 어떤 놈이 사진 찍었어!” 정범태는 “그 한 장의 사진이 4·19 의거의 불을 붙이는 작은 불씨가 되었다고 감히 자부하고 있다”고 회고했다. 정범태는 1960년 1월 설날 전야 서울역에서 31명이 죽고 41명이 다친 사상 최악의 압사 사고도 특종 보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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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 1월 26일 설날 전야, 서울역에서 발생한 사상 최악의 압사 사건 현장을 보여주는 1월 27일 자 조선일보 사회면 사진들. /조선일보DB

1970년에는 본지 사진기자 전창우가 일본항공 여객기 ‘요도호(號)’를 납치한 적군파 테러범이 부기장의 목에 일본도를 대며 위협하는 사진을 보도했다. 납치범들은 당초 평양행을 요구했으나 일단 김포공항에 내렸다. 협상이 진행되는 동안 기자 200여 명이 현장 부근에 진을 쳤다. 전창우는 공수부대 참모의 도움으로 군복으로 갈아입고 현장에 접근했다. 비행기 머리가 보이는 포탄 야적장에 숨은 채 한 시간 이상을 기다려, 조종석 창가에서 부기장의 목숨을 위협하는 범인을 목격했다. 망원렌즈로 재빨리 두 장을 찍은 그는 필름을 꺼내 양말 속에 넣었다. 전창우는 “활주로를 빠져나오다 헌병대에 체포됐지만, 카메라 속 빈 필름을 꺼내 발로 뭉개 보이는 허세를 부리며 촬영한 필름을 지킬 수 있었다”고 회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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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극좌파 테러 조직 적군파 조직원이 조종석 창밖으로 몸을 내밀고 납치한 일본항공 여객기 부기장의 목에 일본도를 들이대며 위협하는 모습. 1970년 4월 3일 자 본지 1면 사진이다. /조선일보DB

1974년 8월 15일 아침, 광복절 기념식 행사 중 발생한 총격 사건으로 전국이 충격에 휩싸였다. 단상 위 박정희 대통령을 향해 괴한 한 명이 객석 뒤쪽에서 권총을 쏜 것이다. 대부분 사진기자들이 그 날 예정됐던 지하철 1호선 개통식으로 빠져나간 뒤였지만, 행사장에 남아 있던 본지 사진기자 임희순은 무대를 향해 카메라 셔터를 눌렀다. 단상 위 내빈들은 보이지 않았고, 대통령 부인 육영수만이 의자에 앉은 채 목을 뒤로 떨궜다. 잠시 후 ‘연설을 계속하겠습니다’는 박 대통령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격범 문세광은 5발을 쐈고, 그중 한 발이 육영수 여사의 머리에 맞았다. 임희순의 특종 사진은 육 여사의 영결식이 끝난 뒤인 8월 21일 자 조선일보에 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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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4년 8월 15일 서울 장충동 국립극장에서 열린 광복절 기념식 도중 육영수 여사가 피격당하자, 대통령 경호실 수행계장 박상범이 권총을 들고 박 대통령이 숨어 있는 연단을 호위하고 있다. 총격을 당한 육영수 여사의 모습도 보인다. 본지 사진부 임희순 기자의 특종 사진. /조선일보DB

[이태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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