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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前 번역한 ‘삼국지’… 그 인세가 생활비 될 줄 몰랐다

['삼국지' 개정 출간한 이문열]


"멋과 의리, 의연함 그린 고전이라 오래 읽히는 것 아니겠나…

20대 이야기인 ‘젊은 날의 초상’ 그 시절 날 떠올리면 가슴 미어져

내 책 90여권, 차례로 다시 낼 것"


“예전엔 섭섭하기도 했어요. ‘사람의 아들’ 이문열, ‘젊은 날의 초상’ 이문열도 아니고, ‘삼국지’ 이문열이라니. 2000년대 이후에 대학생들 만나면 전부 삼국지 봤다는 얘기밖에 안 하니까.”


1990년대 초반 '삼국지를 15번 읽었다'는 서울대 합격자의 한 마디는 출판계를 뒤집어 놨다. 그중에서도 1988년 출간된 이문열 삼국지는 2000만부 팔리며 삼국지 열풍을 이끌었다. 40년간 함께 일해온 민음사와 지난해 계약을 해지한 이문열(71)은 최근 RHK에서 새롭게 삼국지 개정판을 냈다. 한자어 독음과 주석을 달고 젊은 세대도 쉽게 읽을 수 있도록 문장을 다듬었다. 고풍스러웠던 표지도 게임 캐릭터 같은 그림으로 바뀌었다. 24일 경기도 이천 자택에서 만난 그는 "요즘엔 삼국지라도 안 했으면 어쩔 뻔했나 싶다"면서 "몇 달 전까지만 해도 생활비를 해결해 준 건 삼국지 인세였다"고 했다.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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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여 년 지난 요즘도 삼국지 인기는 여전하다. '설민석의 삼국지'도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중국사에서 지식인의 의식이 최고 수준에 달했을 때가 삼국시대라고들 한다. 100여 년의 짧은 시기에 다른 어떤 시대보다 날카롭고 치밀한 의식을 보여 줬다. 삼국정립이란 이론도 사실 제갈량 혼자가 아닌 그 당시 지식인들이 머리를 쥐어짜내 만든 것이다. 위기의 세상을 만나서 생존을 위해 어려움을 타개하는 방식, 그 과정에서의 멋과 의리, 의연함을 시각적으로 그려낸 고전이라 오래 읽히는 것 아니겠나."


―'이문열의 삼국지'는 인기만큼이나 오류 지적도 많았다.


"진짜로 틀려서 속상했던 것도 있고 알면서도 이해를 위해 비틀어서 번역한 것도 있다. 젊어서 부족했고 자료가 없으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내 삼국지의 오류를 지적하며 '삼국지가 울고 있네'라며 책을 쓴 사람도 있었다. 사람 부끄럽게 만든 그 친구 덕분에 큰 실수를 바로잡을 수 있었다. 고마워서 고친 뒤에 책도 보내줬다."


―당시엔 자료를 어떻게 구했나.


"그때는 한문으로 된 삼국지 원본 하나도 국내에서 구하기가 어려웠다. 중국 출입도 못 하는 시절이니 대만 박물관에서 자료 필름을 사왔다. 그 필름을 읽기 위해 당시 150만원 하는 판독기까지 외국에서 사들였다."


평생 쓴 소설보다 번역한 삼국지가 더 많이 팔렸다는 일본 소설가 요시카와 에이지를 보고 삼국지를 써보기로 결심했다. "이제 막 출발한 신예가 이런 거나 하고 있나"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그도 삼국지 판매 부수가 소설 판매 부수를 뛰어넘은 지 오래다. "20년 전쯤에 내 책을 태우는 장례식이 벌어지고 그때 이후로 내 책이 베스트셀러 20위권 안에 든 적이 없다. 책 판매 사이트에 서평은 없고 '죽일 놈' '보수 꼴통' 욕만 달렸으니까."


이문열의 책상에는 '젊은 날의 초상' 원고가 있었다. 삼국지를 시작으로 '사람의 아들' '젊은 날의 초상' 등 자신의 책 90여 권을 차례로 다시 낼 계획이다. 서른한 살에 발표한 원고를 보려면 이젠 안경을 쓰고 돋보기까지 들어야 한다.


―교정을 보면 어떤 부분을 고치나.


"40년이란 시간이 우리말을 많이 바꿨다. '한다구요' 했던 서울 사투리도 싹 사라져서 '한다고요'로 고쳤다. 우리 때는 동년배지만 친하지 않은 친구끼리는 '했소' '안 했소'라고 많이들 했는데 요즘엔 아무도 그런 말을 안 쓴다. 내가 말이 바뀐 한 세대 동안 책을 팔고 있었던 거다."


―초기작부터 다시 읽으면 인생을 돌아보는 느낌일 것 같다.


“'젊은 날의 초상'은 내 스물한 살 때쯤의 얘기가 많이 담겨 있다. 그런 글이 나올 수 있었던 심리 상태를 떠올리면 그때의 나 자신이 애처롭기도 하고 가슴이 미어지기도 한다. 그럴 때면 계속 읽을 수가 없어 몇 번 멈췄다 다시 읽는다.”


[이천=백수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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