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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드]by 조선일보

3代째 이어온 손맛… 손님들의 믿음으로 전쟁도 이겨냈다

할머니 때 그대로 代 이은 서울 맛집

3代째 이어온 손맛… 손님들의 믿음으

①꼬리곰탕으로 유명한 남대문 은호식당의 3대 정용식·전경숙씨 부부와 4대인 아들 정희석씨. 은호식당은 무명의 해장국집으로 시작해 ‘평화옥’ ‘은성옥’ ‘은호식당’으로 간판만 바뀌었을 뿐 맛은 대물림되고 있다. ‘은호’는 은빛호수(銀湖)란 뜻으로 잘 끓여낸 곰탕과 설렁탕 빛이 은빛호수와 같다는 뜻을 담았다고 한다. ②동신면가의 맛을 지키고 있는 2대 박영수·김문자씨 부부와 3대인 아들 박헌웅씨. ③대대로 내려오는 삼계탕 육수 레시피에 자신만의 수비드 조리법을 적용해 ‘온고지신’ 삼계탕을 만든 서초동 3대삼계장인의 정창원씨. / 백이현 영상미디어 객원기자·장은주 영상미디어 객원기자

야심 차게 창업했다가 1년도 못 버티고 문을 닫는 곳이 많다. 음식점은 폐업률이 으뜸인 업종으로 꼽힌다. 노포(老鋪)도 개발로 밀려나거나 대중의 입맛 변화로 고전하곤 한다. 하지만 변화의 파도가 높은 서울에서 3대(代)째 손맛을 이어가는 식당들이 있다. 세대교체와 진통을 겪으면서도 맛의 계보(系譜)를 지켜온 이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3~4대 걸쳐 변치 않는 맛

3代째 이어온 손맛… 손님들의 믿음으

큼지막한 소꼬리 두 토막이 들어간 남대문시장 은호식당의 ‘꼬리토막’. / 장은주 영상미디어 객원기자

서울 남대문 은호식당 꼬리곰탕은 말간 국물 한 숟가락만 떠먹어도 깊고 묵직한 맛에 '캬~' 소리가 절로 나온다. '세월'이라는 양념이 더해져 감칠맛이 난다. 4대에 걸쳐 87년 동안 전통 방식 그대로 꼬리곰탕을 끓여 낸다.


시간을 잘 맞춰 삶아낸 살코기는 야들야들하고 부드럽게 씹힌다. 꼬리 살은 부추를 넣은 양념장에 살짝 찍어 먹으면 풍미가 산다. 꼬리토막엔 살코기가 푸짐하게 붙은 소꼬리 두 토막이 들어간다. 발라 먹는 재미가 쏠쏠하다. 곰탕이나 꼬리토막을 주문하면 밥과 국수는 양껏 추가해 먹을 수 있다.


은호식당 꼬리곰탕은 예나 지금이나 맛이 다르지 않다. 창업주 고(故) 김은임씨가 끓여내던 방식을 수양딸이던 2대 고 이명순씨와 정태희(86)씨 부부가 물려받았고 다시 3대 아들 정용식(60)씨와 며느리 전경숙(58)씨로 이어졌다. 남대문 대도상가 앞 무명 해장국집에서 시작해 6·25와 남대문 화재 등을 거치며 간판만 바꿔 달았을 뿐이다. 2014년엔 4대 정희석(34)씨까지 은호식당 운영에 나서며 꼬리곰탕 명가의 맛을 지키고 있다.


은호식당에서 파는 모든 메뉴를 요즘은 인천의 자체 식품 제조 공장에서 만들어 매일 아침 실어 나른다. 주방에선 주문과 동시에 알맞은 온도로 음식을 끓여낸다. "한때 남대문시장 재개발 사업이 논의되면서 본점 이전을 목적으로 2002년 서소문, 2005년 여의도에 각각 직영점을 냈어요. 오래된 건물인 남대문시장 은호식당 주방에선 세 곳의 음식들을 전부 만들기가 어려웠죠. 공장을 그즈음 꾸렸습니다." 재개발 사업이 지연되면서 현재는 남대문 본점과 여의도점을 운영 중이다.


1997년 이명순씨가 무릎 관절 수술 도중 쇼크사하며 하마터면 대물림이 끊길 뻔했다. 마음의 준비 없이 식당을 물려받은 정용식 대표는 "어머니의 오랜 단골손님들이 찾아오셔서 식사 후 '어머니가 내시던 맛 그대로'라고 해서 자신감을 얻었다"고 했다. 현재는 정씨 부부의 2남 1녀 모두 은호식당 운영을 돕고 있다. 그동안 프랜차이즈 제안이나 백화점 입점 의뢰도 받았지만 정 대표는 "대를 잇는 맛집은 주인이 결국 카운터(매출)가 아니라 주방(맛)을 지켜야 오래가더라"며 당분간은 현 상태를 유지할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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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식 추탕의 명맥을 잇는 다동 용금옥의 ‘추탕’. / 장은주 영상미디어 객원기자

'부민옥' '남포면옥' 등 서울 중구 다동엔 노포 여럿이 모여 있다. 재개발로 어수선한 골목의 안쪽 용금옥은 미꾸라지를 통째로 넣어 끓여낸 '추탕(鰍湯)'으로 87년째 서울식 추어탕의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오랜 세월만큼 일화도 무수하다. 1973년 서울에서 열린 남북조절위 제3차 회의에 참석한 북한대표단의 박성철 부주석이 "용금옥은 아직 잘 있습니까?"라고 물어봤다는 얘기는 유명하다. 다만 용금옥 추탕은 창업주 홍기녀씨 작고 후 1997년 홍씨의 손자 신동민(57) 대표가 운영에 나서며 다동 용금옥 '큰아들네'와 막내며느리 한정자(76) 대표가 운영하는 종로구 통인동 용금옥 '막내며느리네'로 갈라졌다.


소의 내장(곱창)을 넣어 육수를 내는 용금옥 전통 서울식 추탕은 다동 용금옥에서 고수하고 있다. 내장 육수가 어우러진 얼큰하고 구수한 추탕은 저절로 술을 부른다. 국내산(産) 미꾸라지를 통으로 넣고 조리하는 게 대대로 내려온 방식이다. 보통 뚝배기 하나에 미꾸라지 10마리가 들어간다. 원하면 미꾸라지를 삶아 갈아 넣어주기도 한다. 미꾸라지를 바삭하게 튀겨낸 미꾸라지 부침을 곁들이기 좋다. "알고 찾아오시는 분들이 대부분이에요. 그분들이 있는 한 어려워도 가업이 이어지리라 믿습니다." 신 대표의 말이다.

 

3代째 이어온 손맛… 손님들의 믿음으

을지로 안동장의 ‘굴짬뽕’. / 장은주 영상미디어 객원기자

중구 을지로 안동장의 굴, 배추를 듬뿍 넣은 굴짬뽕도 대를 잇고 있다. 1948년 창업주 고 왕충요, 2대인 왕용성(67) 대표에 이어 그의 아들 왕홍덕(40)씨가 가업 승계를 위해 2010년부터 틈틈이 일하고 있다. 아직은 왕 대표와 주방장이 맛을 담당하고 홍덕씨는 식당 운영에 대해 배우는 중. 시원하면서도 담백한 맛과 향이 우러나는 굴짬뽕은 인근 직장인들에게 해장용으로도 인기다. 하얀 굴짬뽕과 매운 굴짬뽕 두 가지 버전으로 맛볼 수 있다.

세대교체 거치며 맛, 메뉴 변화 갖기도

분단 후 평양냉면은 반드시 지켜내야 할 음식처럼 여겨진다. 우래옥, 남포면옥, 을지면옥 등 전국의 많은 냉면집이 대를 이으며 계보를 지켜나가는 중이다.

 

3代째 이어온 손맛… 손님들의 믿음으

자가제면 하는 암사동 동신면가의 ‘반반 떡갈비’ ‘평안냉면’ ‘보따리만두’. / 장은주 영상미디어 객원기자

강동구 암사동 동신면가의 냉면 한 그릇엔 사연이 많다. 1964년 평북 정주 출신인 1대 고 박지원, 황해도 사리원 출신인 이응복(91)씨 부부가 경기도 동두천에 정착해 '평안냉면'집을 연 후 몇 번의 시행착오와 진화를 거쳐 지금에 이르렀다.


3남 1녀를 키우느라 호구지책으로 시작한 조그만 국숫집이었다. "이북이 고향인 부부가 평양냉면 정통 방식인 동치미 국물로 맛을 내니 여기저기 소문이 났죠. 하지만 냉면만 팔아선 생계를 유지하기가 어려웠어요. 여름에 툭하면 콜레라, 장티푸스가 돌았고 그때마다 찬 음식은 먹지 말라고 방송을 했죠. 그해 가을엔 등록금 내기가 어려웠어요." 부모님 가업을 이어 동신면가를 운영하는 2대 박영수(67) 대표가 당시를 회상하며 웃었다. 여름마다 고비를 겪으며 떡갈비와 고기, 만둣국 등 따뜻한 메뉴가 추가됐다.


1984년 동두천에서 서울 강동구로 확장 이전하며 심심한 정통 평양냉면보다 육수로 맛을 낸 '서울식 냉면'을 찾는 이들이 늘었다. 냉면 육수도 달라졌다. 기존 동치미 국물에 고기 육수를 적절히 배합해 동신면가만의 육수를 탄생시킨 것. 여기에 제분기로 직접 메밀 면을 만들어 넣어 메밀 향이 은은하게 퍼지는 평안냉면을 완성했다. 사실 맛의 대를 이은 사람은 박 대표의 아내이자 이씨의 며느리 김문자(68)씨였다. 김씨는 평안냉면은 물론 떡갈비(소 떡갈비, 돼지 떡갈비, 반반 떡갈비)에 보따리만두, 각종 양념까지 시어머니 요리법 그대로 만들어내고 있다. 육수의 묵직한 맛과 메밀 향이 어우러진 평안냉면은 중독성이 강하다. 간간하면서 두툼한 떡갈비와 소가 꽉 찬 보따리만두는 평안냉면과 제법 잘 어울린다. 보따리만두는 피란길에 싸던 보따리처럼 생겨 붙여진 이름이다. 고추장아찌로 만든 양념장에 찍어 먹으면 더 맛있다.


동신면가의 3대 가업은 박 대표의 아들 박헌웅(31)씨가 맡는다. 가업을 잇기 위해 뒤늦게 외식경영을 전공한 박씨는 현재 마포구 상암동에서 구이 전문점 동신화로를 따로 운영 중이다. 그는 "부모님이 이어오신 평안냉면과 떡갈비만으로는 다양한 고객을 확보하기 어렵다고 판단해 새로운 메뉴를 개발하고 있다"고 했다. 건물 이전 문제로 부득이 양쪽에서 식당을 운영하고 있다는 부자는 "당장은 어렵겠지만 노포의 노하우에 새로운 감각을 더한 동신면가의 맛을 기대하라"고 했다.

 

3代째 이어온 손맛… 손님들의 믿음으

수비드 조리법으로 맛을 낸 서초동 3대삼계장인의 ‘쑥 삼계탕’. / 장은주 영상미디어 객원기자

서울 서초동 3대삼계장인은 보양식 하나로 3대를 이어온 곳이다. 1970년대 후반 창업주 고 정동연·박영례씨 부부가 서초시장에서 보양식을 만들어 팔며 유명해졌다. 부부의 아들인 2대 정무관(60) 대표는 부모가 일군 삶의 터전을 외면할 수 없었다. 가업을 이어받아 불로집을 도맡았다. 법원 부근 변호사 사무실이 밀집된 지역에서 보양식들은 인기 메뉴로 꼽혔다. 특히 고 노무현 대통령은 변호사 시절 이 집 음식을 즐겨 먹었다고 한다.


정 대표의 아들 3대 정창원(31)씨는 20대 초반부터 아버지 일을 도우며 좀 더 색다른 삼계탕 메뉴를 연구했다. 3년 전 아버지로부터 독립해 3대삼계장인을 열었다. 아버지가 운영하는 불로집의 보신탕은 메뉴에서 뺐다. 정창원씨는 "아버지가 가업을 이을 당시엔 보신탕 문화가 일반적이었지만 지금은 시대 분위기에 따라 오직 삼계탕만으로 승부하고 싶었다"고 했다. 정창원씨는 할머니가 육수를 끓이던 방식에 좋은 재료를 더해 수비드 기법(sous-vide·미지근한 물에 천천히 익혀 영양소를 보존하는 방식)을 적용했다. 시루에 찐 닭을 따로 끓인 육수에 넣어 다시 한 번 끓여낸다. "처음부터 닭을 육수에 넣어 끓이면 육질이 질겨진다"는 게 정창원씨의 설명이다.


잣 삼계탕, 녹두 삼계탕, 쑥 삼계탕이 대표 메뉴다. 특히 봄엔 쑥 삼계탕을 찾는 이들이 많다. 진한 초록색에 쑥 향이 은은하게 우러나오는 삼계탕은 닭 특유의 비린 맛이 나지 않고 개운하다. "왜 우리나라는 일본처럼 5~6대를 이어가는 식당이 없는지 고민했다"는 정씨는 "노포들이 스토리는 있지만 변화하는 입맛에 부응하지 못하면 가업을 잇기 어렵다는 게 내 결론"이라고 했다.


박근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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