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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by 조선일보

2030부터 할머니까지… 웬만해선 ‘플플’ 열풍을 막을 수 없다

[故 이세이 미야케 30년 스테디셀러]

옷 전체가 주름인 ‘플리츠 플리즈’

이달 초 디자이너 타계 후 더 관심

사이즈·몸매 신경 안쓰는 편한 차림

‘기능에 충실하자’ 이세이 철학 담겨

3代가 입어 ‘플플 적금’ 유행어까지

“매장 들여놓자마자 순식간에 팔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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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 옷'에서 2030 인기 패션으로 자리잡은 디자이너 이세이 미야케의 플리츠 플리즈. 가는 주름부터 굵은 주름까지 주름의 굵기와 형태도 다양하다. 온라인 쇼핑 플랫폼 SSF에 입점한 뒤 올들어 2030세대 신규 고객만 5000여명이 늘어났다. /SSF홈페이지 캡쳐

‘확찐자도 사이즈 얽매일 필요 없고, 없는 몸매도 만들어 주고 세탁 관리도 편한 데다, 할머니 될 때까지 입을 수 있으니 다른 선택 할 이유 있나요.’


‘불매운동 이후 멀리했는데 옷장 뒤져 다시 다 꺼내 입었잖아요. 70살까지 입는다 치고 40년 만기 ‘플플적금’ 다시 시작해요!’


샤넬·롤렉스만 ‘오픈런’(매장 개점 시간 기다리다 열릴 때 달려가 구매하는 일)이 있는 게 아니다. 요즘 각종 패션 커뮤니티를 뜨겁게 달구는 단어, 바로 플리츠 플리즈(Pleats Please)다. 지난 5일 간암으로 타계한 일본 출신인 세계적 패션 디자이너 이세이 미야케(84)가 1993년 선보인 브랜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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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이 미야케

1974년 프랑스 파리 패션위크 무대에 나선 첫 외국인이었던 이세이 미야케는 애플의 스티브 잡스 하면 떠오르는 검은 터틀넥 디자이너로도 잘 알려져 있다. 미야케가 개발한 ‘플리츠 플리즈’는 ‘Pleats’(플리츠·주름)라는 이름처럼 옷 전체에 얇은 주름이 있다. 대형 원단을 먼저 재단하고 형태를 잡아 재봉한 뒤 특별 가공을 한다. 마치 아코디언처럼 잘 늘어났다가도 제 모습을 찾는 게 특징이다.


유명 디자이너가 특정 브랜드와 작별하거나, 작고했을 때 ‘더는 구할 수 없다’는 생각에 때아닌 ‘품절’을 빚는 경우는 종종 있다. 하지만 플리츠 플리즈는 세상에 등장한 지 30년 가까이 된 스테디 셀러. 코로나 시기를 맞아 편한 의상을 찾는 트렌드가 주효했다. 해외 직구(직접 구매) 관련 카페에는 일명 ‘플플’(플리츠 플리즈의 약자) 공수 방법이 잔뜩 있다. 게시 글마다 ‘플플 늪에 빠져 헤어나올 수 없다’ ‘요즘 최고의 문신템(계속 입는다는 뜻)!’ ‘여행 갈 때 옷 짐 한 트럭을 한 줌으로 만들어주는 효자템’ 같은 댓글이 수두룩하다.


플리츠 플리즈는 불과 몇 년 전만 하더라도 ‘할머니 패션’ ‘청담동 사모 패션’의 대명사였다. 편하긴 해도 자칫 펑퍼짐해보이고, 일부의 광택이 나이 들어 보이게 한다는 평도 있었다. 게다가 3~4년 전 반일 감정이 고조되면서 ‘불매운동’의 대표 브랜드로 꼽히기도 했다. 2019년 8월 당시만 해도 매출은 백화점 기준 전년 대비 10% 하락했다. 하지만 상황은 다시 반전. 지난해 말 기준 전년 대비 30%가까이 상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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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름 블라우스와 치마를 산뜻하게 연출한 가수 강민경. '사복 장인'으로 불리는 가수 강민경이 플리츠 플리즈 제품으로 멋을 냈다. '주름 패션'하면 보통 '어머니 의상'으로 알려졌지만 강민경 등 스타들이 산뜻하게 소화해 내면서 젊은 층에도 인기 아이템이 됐다. /강민경 인스타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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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구 스타 형제 허훈(왼쪽), 허웅은 그들 표현대로 '골지 패션' 즉 플리츠 제품 마니아로 알려져 있다. 그들이 위 아래로 빼입은 제품은 플리츠 플리즈의 남성 라인인 옴므 플리세 의상이다 /허훈 인스타그램

최근 들어선 2030세대가 ‘알아서’ 먼저 찾는다. 주름의 굵기와 깊이 등 종류가 다양해지고, 색상도 원색부터 파스텔톤까지 화려한 데다 달마다 바뀌며 선보이는 제품까지 더해져 선택의 폭을 넓혔다. 옷 잘 입기로 유명한 가수 강민경이 연출한 주름 치마와 블라우스는 ‘완판 행렬’이었다.


지난해 농구 스타 허훈이 예능 프로그램에 등장해 ‘골지’(골이 있어 신축성이 좋고 물 빠짐이 빠른 원단)라 부르며 주름 패션 찬사론을 읊자 ‘허훈 패션’ ‘골지 패션’ 등이 온라인을 뜨겁게 달궜다. 허훈의 의상은 플리츠 플리즈의 남성 라인인 옴므 플리세. 굵은 주름은 체형을 가리지 않는다. 깡마른 체형의 연예계 대표 ‘소식좌’(적게 먹는 사람) 코드 쿤스트부터 패셔니스타 배우 유아인·봉태규, 근육질 몸매의 허훈·허웅 농구 스타 형제까지 두루두루 애용한다.


마니아들 사이에선 ‘플플 적금’이란 유행어도 생겨났다. 마치 적금 든 것처럼 노후 준비를 위해 사 모은다는 뜻. 인기 원피스는 대략 50만~60만원대로, 30~40년 입는다고 계산하면 다른 제품보다 합리적인 소비라고 설명한다. 한 벌로 딸-엄마-할머니 혹은 아들-아버지가 같이 입기도 한다.


기능에 충실한 옷은 이세이 미야케의 평생 소망이었다. 1960년대 파리에서 오트 쿠튀르(고급 맞춤복) 기술을 익혔지만, 그는 “디자인은 철학이 아닌, 삶을 위한 것”이라며 ‘살기 위한 옷’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단순해보이는 디자인이지만 천 한 조각으로 만들기, 가위질·바느질 하지 않고 가봉하기, 쉽게 빨고 건조하기 등 각종 실험을 해왔다. 이세이 미야케 브랜드를 수입하는 삼성물산 패션 부문 관계자는 “브랜드 측에서 고인 49재 기간인 다음 달 23일까지 조용하게 추모해 달라는 뜻을 밝혀와 조심스럽지만, 들여놓기 무섭게 품절되며 인기 있는 건 맞는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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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이너 이세이 미야케는 건축에도 일가견있었다. 3d프린터가 나오기 전부터 3d 디자인 연구에 몰두하는가 하면, 단순해 보이는 주름 의상 역시 건축적인 구조로 체형을 유지하는 게 특징이다. 과거 ‘할머니 패션’의 대명사로 불렸지만, 활동하기 편하고 세탁과 보관도 간단해 코로나 시기와 맞물려 많은 인기를 끌고 있다. 이세이 미야케 플리츠 플리즈 의상은 국내 DDP를 디자인한 건축가 자하 하디드가 즐겨 입은 의상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이세이 미야케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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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복도 마치 무용수가 입는 것처럼 움직임에 거침이 없어야 한다고 생각했던 이세이 미야케. 스티브 잡스는 그가 1980년대 디자인한 소니 유니폼의 간결성과 기능성에 반해 애플 유니폼을 의뢰하려다 결국 자신의 상징인 터틀넥100개를 주문한 걸로 알려졌다. 소니 유니폼은 집업 점퍼 형식으로 어깨에 지퍼가 달려 조끼로 변신하는 스타일로, 시대를 앞서간 '패션 혁신가'였다./이세이 미야케 플리츠 플리즈 홈페이지

[최보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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