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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by 조선일보

195㎝ 배구선수 한성정 “134㎝ 아버지, 누구보다 큰 분”

우리카드 배구선수 한성정 父子

우리카드 배구선수 한성정 父子


배구선수 한성정(27·우리카드)에게 아버지 한은범(58)씨는 누구보다 큰 존재다. 아들 키는 195㎝. 아버지는 134㎝. 아들이 61cm 더 크다. 아버지는 아들을 항상 올려 봐야 한다. 아들은 “저를 이렇게 잘 키워주신 아버지야말로 인생 롤 모델”이라고 말했다. 오는 17일 대학 때부터 교제한 이유나(28)씨와 백년가약을 맺는 그는 “저도 아버지가 되면 비로소 제 아버지를 100% 이해하겠죠”라면서 “아버지만 한 아버지가 될 수 있을지 걱정”이라고 말했다.


아버지 은범씨는 지체장애 3급(왜소증)이다. 9남매 중 일곱째로 태어났다. “태어난 지 몇 개월도 안 돼 일하러 나간 부모님을 대신해 저를 돌보던 형이 업고 있다가 떨어뜨렸다고 했다”면서 “그때 충격을 받은 것 같다”고 전했다. “원래 집안은 (체구가) 큰 편이다. 제 아버지는 씨름 선수로 소도 타셨다”고도 덧붙였다. 50년 전 키가 자라지 않아 병원에 가고 장애등급을 받을 때 의사도 무슨 병인지 정확히 몰랐다고 한다.


한성정은 그런 아버지 품에서 4살 아래의 남동생과 무럭무럭 자랐다. 혹시나 걱정했지만 유치원 때부터 또래보다 머리 하나가 더 있었을 정도로 건장했다. 충북 옥천 삼양초 시절 배구부에서 권유를 받고 5학년 때 본격적으로 코트를 밟았다. 키보다 더 걱정인 건 가정 형편이었다. 아버지는 “운동하려면 돈이 많이 들잖아요. 막노동하고 나라에서 나오는 돈으로 생활하고 있었는데, 잘 챙겨줄 수 있을까 걱정이 됐다”고 돌아봤다. 그러나 아들에게 뭔가 보람을 찾아주고 싶어 허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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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은 혼신을 다해 배구에 열정을 쏟았다. 그런데 아버지는 경기장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처음엔 ‘바쁘셔서 못 오시는구나’ 했죠. 그런데 직접 물어보니, ‘네가 불편할까 봐 못 가겠다’고 하시더라고요. 순간 너무 화가 났습니다. 전 정말 괜찮으니 꼭 와달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아버지가 오시면 더 잘할 것 같다’라고도 했죠.” 그 뒤로 아버지는 지금까지 아들의 경기를 빼놓지 않고 지켜보고 있다.


아버지 응원 덕분일까. 한성정의 기량도 일취월장했다. 옥천고를 거쳐 홍익대에 진학하면서 팀 주포로 대학배구 최초 정규리그 전승 우승도 이끌었다. 그는 3학년을 마치고 프로배구 신인 드래프트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대학 입학 전부터 가정 형편 때문에 (감독에게) 일찍 드래프트에 나가고 싶다고 얘기했고 약속도 받았다”고 했다. 2017년 신인드래프트에서 그는 전체 1순위로 우리카드의 지명을 받았다. 아버지는 “어리둥절했다. 드래프트 현장에 (아들과 사진 찍기 위해) 나가니 카메라 플래시가 쉴 새 없이 터졌다”고 회고했다. 아들은 입단 계약금 1억5000여만원을 아버지께 드렸다.


한성정은 이후 우리카드에서 4시즌 넘게 공수에 능한 아웃사이드 히터로 활약하다 2021-2022시즌 도중 KB손해보험으로 이적했다. 그러다 2023-2024시즌을 앞두고 지난달 다시 ‘친정팀’으로 돌아왔다. 어느덧 리그 7년 차. 한성정은 “더 이상 팀에서 ‘막내 라인’이 아니다. 다음 시즌엔 팀의 ‘허리’로 더욱 좋은 모습을 보여야 한다”며 “아직 선수로 우승을 한 적이 없는데, 팀 우승에 기여하는 게 목표”라고 강조했다.


아버지는 “아들(한성정)이 있기 전까진 ‘죽어도 좋다’는 생각으로 살기도 했다. 하지만 속 썩인 적 한번 없는 자식 크는 맛에 삶의 의미를 되찾았다. (아들이) 기죽지 않고 떳떳하게 컸다. 친구들에게 아들 자랑 늘어놓기 바쁘다. 자식 잘 되는 게 제일 좋다”면서 웃었다. 한성정은 “어려서부터 아버지께선 인성(人性)이 제일 중요하다고 얘기하셨다”면서 “예전에 초등학교 때 아버지가 저를 데리러 오셨는데, 그때 옆에 있는 장애인 친구의 신발 가방을 제가 안 들어줬던 적이 있었어요. 그때 무척 혼났습니다. 공부 못한다고 혼난 적은 한 번도 없었는데 말이죠. 아버지께선 힘세고 건강한 네가 약한 자들을 지키고 도와야 한다고 항상 말씀하셨어요.”


결혼을 앞둔 한성정은 “일찍부터 안정적인 생활을 하고 싶었다. 예비 장인도 사고로 한 팔을 잃은 분이라 (우리 집안 처지를) 공감해주신다”면서 “예비 신부가 일단 배구 훈련에 집중하라고 해 신혼여행은 내년에 시즌이 끝나고 갈 생각”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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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구선수 한성정(오른쪽)과 예비 신부 이유나씨의 웨딩 화보. 오는 17일 둘은 백년가약을 맺는다. /한성정 제공

남자부 첫 대회인 KOVO(한국배구연맹)컵 대회는 오는 8월 초 열린다. 한씨 부자의 감동 배구는 앞으로 (우리카드 연고지인) 서울 장충체육관에서 계속 된다.


수원=박강현 기자


[수원=박강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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