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100년 된 철도관사촌, 튀김 소보로, 첨단 아트 전망대… 이 도시를 누가 ‘노잼’이라 했나

[아무튼, 주말]

성심당 3代 임선이 소개하는

나의 ‘은근잼 도시’ 대전

조선일보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노잼 도시’. 대전광역시의 별명이다. 이름난 산이나 바다 등 자연 풍광도, 오래된 역사 유적이나 전통 음식도, 하다못해 유흥가도 발달하지 않은 ‘재미없는(노잼) 도시’란 뜻이다.


대전 사람들도 인정한다. 지난 2019년 ‘대전 방문의 해’를 맞아 대전시는 ‘노잼 대전의 투어 알고리즘’을 온라인상에 공개했다. 친구가 대전에 놀러 온다고 했을 때 어디를 데려가고 보여줄지를 정하는 알고리즘으로, ‘지인이 다수인가’라는 질문으로 시작해 ‘예’ ‘아니요’ 응답을 따라간다. 중간에 어떤 답을 선택하건 마지막에는 ‘성심당에 들르고 집에 보낸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이 알고리즘은 노잼 도시라는 그다지 명예스럽지 않은 별명을 위트 있게 풀어낸 ‘셀프 디스(자기비하)’ 홍보로 화제가 됐다. 그리고 ‘대전은 기승전-성심당’이라는 말이 나왔다.


대전에는 빵집 하나 말고는 볼거리도, 즐길 거리도, 먹거리도 없을까. 성심당 임선(39) 부장은 “절대 그렇지 않다”며 억울해했다. 임 부장은 1956년 성심당을 설립한 고(故) 임길순 창업자의 맏손녀. 대전에서 태어나고 자라서 일하며 살고 있는 그는 “대전이 노잼, 심지어 핵노잼(매우 재미없는)이라는 선입견이 있지만, 알수록 ‘은근잼(은근히 재미있는) 도시’라는 걸 보여주겠다”며 투어 가이드를 자청했다.


◇ 젊은이들 몰리는 소제동 철도관사촌


임선씨는 “대전을 오롯이 이해하려면 소제동 철도관사촌부터 봐야 한다”고 했다. 열차로 대전에 도착했다면 대전역 대합실을 나와 왼쪽, 광장 반대편으로 나가 계단을 내려가 직진한다. 사거리에서 주차장을 끼고 좌회전하면 동광장로로 이어진다. 이 길을 따라 조금 걷다 보면 양 옆으로 낡은 마을이 모습을 드러낸다.


대전은 철도 덕분에 탄생했다. 정확히 120년 전인 1901년 일제가 경부선 철도공사를 시작했다. 애초 경부선은 당시 충남도청이 있던 공주를 지날 계획이었지만, 유림을 중심으로 한 지역 유지들이 극구 반대했다. 일제는 허허벌판이던 ‘한밭’ 즉 현재의 대전(大田)으로 노선을 틀고 철도를 건설한다. 대전역 뒤 소제동에 있던 연못을 메우고 철도 노동자들이 거주할 관사를 짓는다. 이것이 소제동 철도관사촌이다. 6·25전쟁 당시 폭격을 용케 피한 관사 40여 채가 옹기종기 모여 있다. 대전 도시가스업체 씨앤씨티에너지가 설립한 자회사 ‘관사마을’ 서원희 팀장은 “다닥다닥 붙은 집들은 말단 직원들이, 번듯한 집들은 간부급들이 살던 사택”이라고 했다.


관사마을은 현재 관사촌 활성화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서 팀장은 “관사촌은 일제 때 조성됐지만 해방 후 일본인이 쫓겨나면서 한국인이 산 기간이 더 길다”며 관사마을이 소유한 주택 한 곳의 바닥을 보여줬다. “복원하려고 봤더니 바닥이 다다미가 아니라 구들장을 놓고 온돌로 개조됐더라고요. 1940~1950년대 한국인의 생활상이 그대로 녹아있는 공간이라 복원할 의미가 있겠다 싶었습니다.”


잊힌 관사촌마을에 젊은이들이 찾기 시작한 건 2010년대 중반부터. 레트로 바람이 불면서 철도관사촌이 “옛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했다”며 명소로 떠올랐다. 버려졌기에 원래 모습이 고스란히 남았고, 역설적으로 이것이 젊은 층을 끌어들였다. 개성 있는 카페, 레스토랑이 하나둘 생겨나면서 소제동 관사촌마을은 전국에서 찾아오는 ‘핫 플레이스’가 됐다.


철도관사촌은 재개발을 앞두고 있다. 서 팀장은 “대부분의 집들이 곧 철거돼 내후년이면 아파트촌으로 변할 것”이라며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은 8채 정도만 남는다”고 했다. 관사촌마을이 궁금하다면 지금 가봐야 하는 이유다.


철도관사촌에는 멋진 카페와 식당이 속속 들어서고 있다. 블렌딩티(차)를 전문으로 하는 ‘풍뉴가’(風流家·070-4107-1111)는 마당을 빽빽하게 채운 대나무숲이 멋지다. 서 팀장은 “원래 살던 할아버지께서 아내를 기쁘게 하려고 심었는데 할머니가 아프셔서 집을 30여 년 방치한 동안 이렇게 멋지게 컸다”고 했다. 카페 안에 앉아 통유리창 너머 대나무숲을 감상하면서 마시는 산딸기차, 애플티 칵테일 등 독특한 블렌딩티 마시는 맛이 운치 있다.


흰색 타일로 벽을 바르고 알록달록한 스테인드글라스 로고가 세련된 ‘베리도넛’(070-8806-0208)은 대전에서 생산되는 골든베리·라즈베리·블루베리로 채우거나 장식한 상큼한 도넛이 인기. ‘파운드’(070-4449-8381)는 ‘서천 김 페스토 파스타’ ‘부여 양송이 크림 스테이크 파스타’ 등 충청도산 식재료를 이용한 파스타 메뉴로 이름났다. ‘관사 16호’(070-8633-8180)는 미술 전시가 열리는 복합문화예술공간으로 운영되고 있다.


◇옛 충남도지사 공관과 ‘테미오래’


“친구들 오면 여기를 꼭 데려와요. 건물이 너무 세련되고 멋지거든요.” 붉은 벽돌과 파란 기와로 마감한 건물은 얕은 경사와 지붕, 단순한 장식이 미국의 세계적 현대 건축가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의 로비하우스를 떠올린다. 대전 대흥동에 있는 옛 충남도지사 공관이다.


대전은 1932년 충청남도 청사가 공주에서 이전하면서 충청도의 중심으로 자리매김한다. 도지사 공관과 국장급 이상 고위 관료들의 관사가 주변에 세워지자 철도관사촌과는 또 다른 ‘관사촌’이 조성됐다. 2013년 도청이 다시 홍성으로 이전하면서 대전시가 매입해 2019년 복합문화예술공간 ‘테미오래’(042-335-5701)로 재탄생했다. 해설·안내를 맡고 있는 대전향토문화연구회 백남우 회장은 “테미는 ‘둘러쌓은 작은 산성’을, 오래는 ‘한 동네 몇 집이 이웃으로 사는 구역’이라는 뜻으로 시민 공모로 붙여진 이름”이라고 했다.


6·25 당시 이승만 대통령이 머물기도 했고, 유엔군 참전을 공식적으로 요청하는 등 현대사의 무대이기도 했다. “이 주변은 2012년까지만 해도 금단의 땅이었어요. 골목 입구에 경비가 서 있고, 뒤로 숨듯 자리한 안가(安家)에 운동권 학생들이 끌려오기도 했어요. 시민들은 무서워서 올 엄두도 못 냈죠.”


건립 당시 세계적으로 유행한 아르데코 양식이 섞인 1930년대 건축물이 원형 그대로 보존된 드문 경우다. 가로세로 직선으로 구획을 나누고 여기저기 색을 넣은 원형·직사각형 창문이 몬드리안 작품 같다. 영화 ‘더킹’ ‘마약왕’을 여기서 촬영했다. 관사 뒤 오래된 정원들이 쪽문을 통해 이어진다.


◇대전 최고의 전망 엑스포타워


임선씨가 “대전 최고의 전망을 보러 가자”며 자신의 차에 타라고 했다. 자동차는 대전 원도심을 관통하는 대전천을 따라 도룡동 엑스포과학공원 부지로 달렸다. 대도시 한복판이라고 믿기 힘든 시골 천변 풍광이 길 옆으로 흘렀다.


둔산대교를 건너자 다시 첨단 도시가 펼쳐졌다. 엑스포과학공원 부지는 올해 크게 달라졌다. 지난 8월 대전 신세계 아트앤사이언스점과 타워동 엑스포타워가 함께 들어섰다. 임선씨는 “신세계와 엑스포타워, 오노마 호텔이 들어서면서 이 주변이 주말 가족 여행지가 됐다”고 했다. “엄마는 쇼핑, 아이들은 체험, 아빠는 레저 등 온 가족이 주말 지내기 딱 좋거든요. 대전 웬만한 맛집은 모두 여기에 분점을 냈으니 원도심 들어갈 필요 없이 간편하게 왔다가 돌아갈 수 있고요.”

조선일보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대전에서 가장 높은 42층 193m 엑스포타워 꼭대기엔 전망대와 미술관이 결합한 ‘디 아트 스페이스 193′(042-607-8670)이 개관했다. 백화점과 연결된 타워동 지하 1층에서 엘리베이터를 타면 50초 만에 40층에 도착한다. 정면으로는 대전 도심 전망이, 반대편으로는 엑스포의 상징 한빛탑과 유성온천, 계룡산, 대덕연구단지가 한눈에 들어온다.


미술관이 결합된 이 특별한 전망대에는 덴마크 출신의 세계적 설치미술가 올라푸르 엘리아손의 작품이 전시돼 있다. 40층에서 42층으로 이어지는 계단 앞 천장에 매달린 다면체와 42층 전체에 배치된 터널, 돔 형식의 작품 6점까지 모두 7점이다. 입장료 성인 1만8000원, 청소년 1만5000원(11세 미만 입장 불가)을 내면 세계적 작가의 설치미술과 대전 전경을 한꺼번에 감상할 수 있다. 임선씨는 “전시를 굳이 보지 않아도 된다면 38층에 있는 스타벅스 매장에 가도 된다”고 했다. “전망대보다 2층 낮으니 똑같은 경치는 아니지만요(웃음).”


◇한밭수목원 & 이응노미술관


원도심으로 돌아오는 길에 ‘한밭수목원’(042-270-8452)에 들렀다. “1993년 대전엑스포 당시 아스팔트 광장과 주차장이었던 자리라니 믿어지세요? 여기에 대전 지하철 공사 때 나온 흙과 주변 산에서 나무와 풀을 옮겨와 조성한 수목원이래요.” 총 38만㎡ 넓이에 24개 주제별 공간이 있어서 다양한 산책 코스가 가능하다.


수목원 앞에 이응노미술관(042-611-9800)이 있다. 소나무 한 그루가 입구를 지키는 순백색 미술관 건물 외벽에 햇볕이 비켜 그은 그림자들이 인상적이었다. 큐레이터 김현지씨는 “프랑스 출신 세계적 건축가 로랑 보두앵이 고암 이응노 선생의 문자 추상 ‘수(壽)’를 건축적으로 해석하고 상징화했다”고 설명했다.


최근 미술계 권력자로 떠오른 방탄소년단 리더 RM이 국립현대미술관에 전시된 이응노 작품 앞에서 찍은 ‘인증샷’을 소셜네트워크에 올려 화제가 됐다. 김 큐레이터는 “RM이 우리 미술관에도 오기를 바란다”며 웃었다.


◇빵·칼국수·짬뽕… ‘밀부심’의 도시

조선일보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Tip!

이 쯤에서, 여행지가 더 궁금해졌다면?!

호텔 예약은 호텔스컴바인에서! 


원도심으로 돌아온 자동차가 성심당 앞 주차장에 멈췄다. ‘대전 여행의 결론은 역시 여기인가’ 했는데 아니었다. “우리 빵집 앞에 떡볶이 맛있는 집이 있어요.” 떡볶이 노점상들이 늘어선 가운데 임선씨는 “여기가 저의 단골”이라며 ‘먹고갈래’ 앞에 섰다. 떡볶이 떡은 가래떡을 3분의 1로 자른 정도 크기로 큼직했다.


오징어 튀김도 떡볶이 떡만큼 컸다. 그래도 임선씨는 “어, 오늘은 평소보다 작네?”라며 의아해했다. “단골 왔다”며 반기던 가게 주인은 “앞서 온 손님들이 큰 건 다 골라가고 작은 것들만 남았다”고 했다. “여기 닭꼬치도 맛있어요. 예전엔 닭꼬치 옆에 떡이 조르륵 올려져 있었어요. 닭꼬치 먹고 떡은 마음대로 먹을 수 있었죠.” 떡볶이 3000원, 튀김 2000원, 닭꼬치 2000원, 어묵 2000원.


어묵 국물에 양념장을 타서 마시던 임선씨가 “대전 사람들은 ‘밀부심(밀+자부심)’이 있다”며 웃었다. “빵, 칼국수, 짬뽕 등 밀가루로 만든 음식이 맛있고 싸고 다양하단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는 거죠.”

조선일보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대전만큼 빵이 상향 평준화된 도시도 드물다. 전국 최고 빵집 중 하나로 꼽히는 성심당은 물론 ‘한스브레드’(042-255-0089) 등 성심당 출신 제빵사들이 독립해 차린 빵집이 많다. ‘슬로우브레드’(042-861-0425)와 ‘하레하레’(0507-1424-1595)는 ‘세계 제빵 월드컵’에서 우승한 명장(名匠)들이 운영한다.


칼국수집이 대전만큼 많은 도시도 드물다. 임선씨는 “칼국수집이 두 집 걸러 하나는 되는 것 같다”고 했다. “칼국수집만 570곳이 넘고 칼국수도 파는 음식점을 합하면 1500곳이 넘는다네요. 6·25전쟁 후 미국에서 구호물자로 나눠준 밀가루가 철도교통 중심지였던 대전에서 전국으로 퍼져나가다 보니 칼국수집이 많아졌다고 해요.” 육수도 서울과 다르다. “소고기·멸치는 물론이고 매콤하게 고추장을 넣거나, 들깨가루를 풀어서 구수하게 끓이거나, 동죽 조개만 넣어 시원하게 국물을 내는 집 등 변주가 다양해요.”


가장 독특한 칼국수집을 꼽으라면 ‘소나무집’(042-256-1464)이 빠질 수 없다. 면도날처럼 얇게 썬 무김치와 오징어를 넣고 끓인 국물에 칼국수 면을 넣어 익혀 먹는다. “시큼하기만 하지 별 대단한 맛 같지는 않은데, 희한하게 중독성이 있어요.” 1인분 5000원을 주문하면 국물만 나오고, 칼국수 사리(1000원)나 공기밥(1000원)을 추가 주문해야 한다. 두부부침(2000원)도 맛있다.


대전만의 음식으로는 두루치기가 있다. 두루치기 전문점이 아니라도 웬만하면 두루치기를 판다. 임선씨가 “보문산 등산하고 즐겨 찾는 보리밥집”이라며 소개한 ‘반찬식당’(042-253-2794) 역시 두루치기를 팔았다. 주인 오순씨는 “1960년 보문산 초입에서 어머니가 등산객들에게 막걸리 주문하면 보리밥과 된장찌개를 공짜로 내드렸는데, 손님들이 ‘돈 받고 팔라’는 성화에 보리밥집을 하게 됐다”며 웃었다. 보리밥 6000원, 두루치기 9000원.


두루치기는 돼지고기가 일반적이지만, 대전식에는 돼지고기 대신 두부가 들어간다. 두부조림보다 국물이 더 자박자박하면서 볶은 맛이다. 두부를 큼직한 네모로 잘라 고춧가루·마늘·간장·참기름 등으로 양념한다. 밥, 칼국수·우동 등 각종 면 사리, 부침개와 두루 어울리고 술안주로도 그만이다. 그리고 얼얼하게 맵다. “예전에는 그렇게 맵지 않았는데, 갈수록 더 매워지는 것 같아요.”


은근히 먹을 것 많고 은근히 볼거리 많은 도시, 은근잼 대전이었다.


[대전=김성윤 음식전문기자]


- Copyrights ⓒ 조선일보 & 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Tip!

여행 계획의 시작! 호텔스컴바인에서

전 세계 최저가 숙소를 비교해보세요. 

오늘의 실시간
BEST
chosun
채널명
조선일보
소개글
대한민국 대표신문 조선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