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시위 ‘웡 할머니’ 어느날 갑자기 사라졌던 까닭
“선전 집에서 꼼짝 못하고 갇혀”
“애국심 고취한다며 강제로 중국국기 흔들게 해” 주장
지난해 홍콩 민주화 시위 당시 사라졌던 64세의 여성이 14개월만에 나타나 1년간 중국 당국에 의해 구금됐었다고 폭로했다. 시위대 사이에서 ‘웡 할머니(Grandma Wong)’라는 애칭으로 알려졌던 알렉산드라 웡은 지난 17일 홍콩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자신의 실종 경위에 대해 밝혔다.
지난해 8월 14일 중국 광둥성 선전시 접경지대 검문소에서 체포된 후 1년 이상 선전시에 있는 자신의 집에서 갇혀지냈다는 것이다. 그는 홍콩인 신분으로 14년째 홍콩과 가장 가까운 본토 도시인 선전에 거주해왔다.
그는 시위 현장에서 종종 영국 국기를 흔들고 있는 모습이 사진에 포착되면서 주목받았다. 홍콩의 옛 식민국가인 영국은 홍콩인의 민주화 시위를 적극 지지해왔고, 홍콩인의 영국 거주를 위한 특별 비자 발급 방침도 밝힌 바 있다.
홍콩 민주화 시위대의 알렉산드라 웡이 지난해 실종전에 참가한 시위에서 깃발을 흔드는 모습 Ian Birrel 트위터 l |
웡은 “검문소에서 경찰들이 나를 큰 방으로 데려가 수색한 경찰서로 압송했으며, 시위활동에 참여한 행동을 후회한다는 내용의 조서에 서명하라고 강요했다”고 주장했다. 이후 40여일간 구금됐다는 것이다. 웡은 “내가 무슨 혐의를 받는지도 몰랐다”며 “그들은 내가 누구와 함께 시위에 참여했는지, 사람들이 폭력을 행사하는 것을 봤는지를 오랫동안 취조했다”고 말했다. 웡은 이어 "경찰이 나를 중국 국기인 오성홍기 앞에서 몇시간 동안 계속 서 있도록 했으며, 이후 애국심 고취 여행이라는 명목으로 산시성으로 데려가 닷새간 머물면서 오성홍기를 흔들며 중국 국가를 부르는 모습을 촬영해야했다고 밝혔다.
웡은 “구금시설에서 죽을까봐 두려웠다”며 풀려날 때 카메라 앞에서 나는 고문을 당하지 않았으며, 언론과 인터뷰를 하거나 시위에 참여하지 않겠다고 서약할 것을 강요당하기도 했다고 밝혔다.
웡은 1년간 집이 있는 선전에만 머무른다는 조건하에 보석으로 풀려났다. 이러한 상황은 지난달 말에야 해제돼, 그는 지난 2일 홍콩으로 왔다.
서방 언론들은 웡의 기자회견 내용을 자세하게 전했다.
AFP통신은 “이는 많은 홍콩인들이 자신들에게도 곧 웡이 겪은 일이 닥칠 것이라고 두려워하는 것”이라고 보도했다.
웡은 “현재로서는 정치 상황이 급변하지 않는 한 다시 선전으로 돌아갈 용기가 없다”고 말했다. 웡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대만으로 밀항하다 체포돼 중국에 구금 중인 홍콩인 12명의 석방을 요구했다.
한편 올해 노벨평화상 후보로 유력하게 거론됐던 스웨덴의 청소년 환경운동가 그레타 툰베리가 중국에 구금된 12명의 홍콩인 석방 운동에 동참했다. 19일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에 따르면 툰베리는 지난 17일 자신의 트위터에 ’12명의 젊은 홍콩인을 구하라'는 뜻의 해시태그 ‘세이브12HK유스’(‘#SAVE12HKYOUTH’)라고 적힌 팻말을 들고 있는 사진을 올렸다.
그는 홍콩 민주화 운동가 조슈아 웡이 지난 12일 12명의 홍콩인 구출 운동에 동참을 호소하며 올린 트윗에 이렇게 응답했다.
앞서 홍콩 민주화 활동가 12명은 지난 8월 23일 대만으로 밀항을 시도하다가 광둥성 해안경비대에 체포됐다. 이들 중에는 지난해 홍콩 민주화 시위에 참여했다가 체포됐던 이들도 여럿 포함된 것으로 전해졌다.
[정지섭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