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라희 前 경호원 “핸드폰 정신 팔지 말고, 호신도구 하나쯤 들고 다녀라”
[아무튼, 주말]
홍라희 경호원 출신
이경미가 말하는 ‘호신술’
20대 여성이 엘리베이터에서 무차별 폭행을 당하는 사건이 또 일어났다. 평소처럼 외출을 한 A씨는 12층에서 엘리베이터에 탄 남성에게 구타를 당했고 머리채를 잡혔다. 그 남성은 10층에서 여성을 질질 끌어 내렸다. A씨는 “악, 살려주세요” “도와주세요” 죽을 힘을 다해 비명을 질렀다. 다행히 최악의 상황은 모면했다. 그러나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겼다. 경찰에 붙잡힌 100㎏ 거구의 남자는 성폭행이 목적이었다고 실토했다. 지난 7일 경기 의왕의 한 아파트에서 벌어진 사건이다.
삼성 오너 가족과 골프 선수 박세리를 경호했던 이경미 런업 대표는 “호신의 기본은 체력이다. 내 딸들은 예쁘게 크기보다 강하게 크길 원한다”며 “초등학생인 두 딸은 태권도, 특공무술, 주짓수를 배우고 있는데 어깨가 딱 벌어져서 아무도 얕잡아 보지 못한다”고 했다. /양수열 영상미디어 기자 |
나에게는 일어날 것 같지 않은 ‘묻지마 범죄’라고? 경호원 출신 이경미(48) 런업 대표는 지난 6일 본지와 만나 “누구에게나 벌어질 수 있는 일”이라고 했다. 이 대표는 이재용 삼성 회장의 모친인 홍라희 전 리움미술관 관장, 골프선수 박세리 등을 경호한 프로다. 그는 “늘 누군가의 공격에 대비해야겠다는 마음가짐이 가장 필요하고, 대응할 수 있는 체력을 기르는 게 그만큼 중요하다”고 했다.
최근 부산 돌려차기 사건, 정유정의 과외 학생 위장 살인 사건 등 ‘묻지마 범행’이 이어지고 있다. 생각하는 것조차 끔찍하지만 무방비 상태에서 일면식도 없는 사람에게 공격을 당한다면 나는 어떻게 할까? 이 대표는 “A씨는 짧은 순간이었지만 기지를 발휘했기 때문에 최악의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것”이라며 “그것도 자기방어의 매우 중요한 기술”이라고 했다. 맞서 싸울 수는 없어도 소리를 지르고 도움을 요청할 만한 체력은 기르는 게 호신의 기본이라고. 여기에 호신도구 하나쯤 가지고 다닌다면 더 효과적으로 나를 지킬 수 있다고 했다.
◇핸드폰 보지 않고 이어폰만 안 껴도
이 대표는 “21세기의 호신술은 상대를 업어 치고 목을 조르고 제압하는 게 아니다. 그 기술을 배운다고 해도 실제 상황에서 활용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말했다. 그는 “주변을 좀 더 경계하고 상대의 과녁에서 벗어나는 게 정말 중요하다”고 했다.
-부산 돌려차기 사건을 당했다면 피할 수 있었나.
“나도 솔직히 훈련을 많이 했지만 쉽지 않았을 거다. 누군가 다가오는 인기척을 느끼려면 육감이 살아 있어야 한다. 하지만 일반인이 24시간 레이더를 세우고 어떻게 살겠나.”
-당할 수밖에 없다는 얘기인가.
“항상 준비하는 마음이 필요한데, 안전 불감증이 심각하다. ‘나한테 이런 일이 일어나겠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충분히 발생할 수 있다. 그런 생각을 늘 품고 있어야 한다. 걸을 때 핸드폰만 들여다보지 말고 이어폰을 귀에 꽂지 않는 노력도 필요하다. 이런 상황에서 내가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한 이미지 트레이닝을 한번쯤 해봐야 한다.”
-구체적으로 말해달라.
“묻지마 폭행을 당했을 때, 순간적으로 피하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 이건 화려한 기술이 아니다. 공격이 들어왔을 때 한 발짝 뒤로 피하는 것. 맞을 수밖에 없다면, 덜 맞을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그렇게 소리를 지르고 도움을 요청할 시간을 벌자.”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그래서 호신 도구를 하나씩 가지고 다니길 권하는 것이다. 후추 스프레이나 경보기 등이다. 활용 방법을 제대로 익힌다면 위험한 순간을 모면하는 데 가장 효과적이다. 후추 스프레이를 상대 얼굴에 정면으로 쏘면 상황은 종료된다.”
-정유정 사건도 막을 수 있었을까.
“경계했다면 어땠을까 싶다. 외국에선 낯선 사람을 집에 들이지 않는다. 우리나라는 유독 관대하다.”
-우리는 자주 낯선 사람과 마주한다.
“어쩔 수 없는 상황은 수용해야 한다. 다만 늘 대비를 해야 한다는 얘기다. 가스 검침원 등도 똑같은 상황에 처할 수 있기 때문에 그들을 상대로도 방어 기술을 교육하고 있다.”
-집에서의 대응은 어때야 하나.
“나라면 충분히 도구를 이용했을 거다. 어떤 도구든 정확하게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을 알아야 한다. 당황하지 말고.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났다면 어떻게 했을까’를 평상시에 생각해봐야 한다.”
-쉬운 얘기처럼 들리는데 또 어려운 얘기다.
“묻지마 범죄의 강도는 점점 더 세지고 있다. 그런데 불감증은 더 심해진다. 특히 약물. 최근 강남에서 마약 든 음료 시음 행사 사건이 있지 않았나. 약물이 들어가면 끝이다. 호신이 아무 의미가 없다.”
-그럴 땐 어떻게 해야 하나.
“‘모르고 마셨는데 어떻게 해요?’라고 묻는다. 딱 하나 말해주고 싶다. 이런 상황을 만들면 안 된다. 안 마셔야 한다. 사전에 이 상황을 차단해야 한다. 미국, 유럽 등에선 카페에서 음료를 마시다가 잠깐 자리를 비울 때 음료를 가지고 나간다. 누가 뭘 탈지 모르기 때문이다.”
-불신의 시대다.
“그 대상이 내가 되지 않으리란 법은 없다. 커피까지 가지고 다니라고 하면 ‘오버한다’고 한다. 그런데 이미 그런 일을 당한 사람에게는 절대 오버가 아니다. 의식 자체를 개조해야 한다.”
이경미 런업 대표는 정유정 사건처럼 집안에서 ‘묻지 마 공격’을 당할 경우, 순간적 기지를 발휘해 책상으로 막고(위 사진), 의자 등으로 한 차례 더 방어해야 한다고 말했다. 시간을 번 뒤, 음성 인식을 통한 112 전화 걸기를 하는 모습. |
◇딴짓하지 말고, 당당하게 걷자
이 대표는 “인터뷰를 앞두고 걱정이 많이 됐다”고 했다. “호신하려면 체력을 먼저 길러야 한다”고 말하면 악플에 시달릴 것 같아서라고. 그러나 그는 “그래도 어쩌겠나. 그 뻔한 얘기를 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요새는 여자만 당하는 세상도 아니다.
“그렇다. 남자가 덜 당하는 건 군대에서 다양한 사건을 직간접적으로 겪고 나왔기 때문이지, 여자든 남자든 묻지마 범죄의 대상이 되기는 마찬가지다.”
-호신이라고 하면 돌려차기부터 떠오른다.
“20세기 호신술이다. 21세기에는 생활 습관에 맞는 의식, 가벼운 교육 등을 통해서도 몸을 보호할 수 있는 시대가 됐다. 현명한 방법을 찾아야 한다. 최소한의 안전 의식을 가져야 하고, 가장 수월한 방법은 도구를 이용하는 것이다. 내가 못 한다고 하면 할 수 없지만 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면 또 할 수 있는 게 호신이다.”
-돌려차기를 안 배워도 된다는 말인가.
“기업 등에 ‘자기 방어 교육’을 가서 도구 이용법을 가르치면 재미없어한다. 화려한 기술을 보여주길 기대한다. 손목 꺾고 업어치면 통쾌하게 생각한다. 그러나 너무 허무하다. 멋있다고 박수 치지만, 그 두어 시간이 지나고 문 열고 나가면서 다 잊어버린다. 일반인이 상황을 마주했을 때 그 기술을 쓸 수 있나? 못 한다. 그런데도 그걸 원한다. 그건 진짜 호신이 아니다.”
-진짜 호신은 뭔가.
“기술은 수만 가지가 있다. 그러나 솔직히 나 같은 사람만 할 수 있지, 일반인은 못한다. 솔직해져야 한다. 기술은 굉장히 유익하고 대처가 가능하지만, 아무나 할 수 있는 건 아니다. 그럴 거면 체육관을 가라고 하는 게 맞는다.”
-그렇다면?
“기본 체력이 중요하다. 도망가고 싶은데 체력이 안 되면 못 뛴다. 묻지마 폭행에서 가장 중요한 건 이탈이다. 우선 그 상황에서 빨리 벗어나야 한다. 공격은 어렵다. 잡혔을 때, 또는 한 차례 맞았을 때 기본적으로 힘이 있어야 한다. 그 뒤가 내 몸의 무게를 활용할 기술을 몇 가지 익혀서 버티는 것이다. 요즘 여성 분들은 아름답지만 체력이 없다. 방어술을 알려줘도 할 수가 없는 몸이다. 건강한 다이어트를 해야 한다.”
-또 있나.
“애초에 범행 타깃에서 벗어나는 일이다. 어렵다고 생각하지만 아주 쉬운 것이다. 범죄자도 버겁다고 판단하는 사람을 타깃으로 정하진 않는다. 딴짓하지 말고 어깨 펴고 당당하게 걷는 것만으로도 범접하기 힘들다. 그래서 걸음걸이부터 바꾸라고 조언한다. 나를 우습게 보지 말라는 자신감을 드러내라는 뜻이다.”
-너무 이상적이다.
“나는 딸만 둘이다. 초등 3학년, 5학년. 애들이 예쁘게만 자라길 바라지 않는다. 세상이 너무 위험하기 때문에 아주 강하게 키운다. 격투기, 특공무술, 주짓수까지 가르친다. 눈빛부터 다르다. 누가 봐도 쉽게 다가가기 어렵겠다는 분위기를 풍긴다. 자세도 딱 직각으로 펴져 있다.”
◇호신도구 꼭 구비해야
태권도 등 무술 총합이 10단인 이 대표는 용인대 경호학과를 나와 스물셋에 삼성그룹에 입사, 오너 가족을 5년 정도 밀착 경호했다. 부상을 당해 인력개발원으로 자리를 옮겼지만 경호 교육을 담당하며 여성 최연소 과장 타이틀도 달았다. 10년간 삼성맨 생활을 끝낸 이후 남편을 따라 독일에서 살다가 2014년 귀국했다. 모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쳤고 최근에 안전센터인 ‘런업’을 창업했다. 자기방어술, 응급기술 등도 교육하고 있다. 그런 그도 가방엔 호신용품을 넣고 다닌다. 열쇠고리엔 호신 기능이 있는 후추 스프레이가 달려 있었다.
-경호원 출신도 호신용품을 들고 다닌다니.
“답답한 소리 좀 그만해라. 주변에 너무 예쁜 분들이 많다. 그런데 무방비 상태로 다닌다. 내가 일반인보다 유리한 건 힘이 세기 때문이 아니다. 힘을 이용할 수 있는 방법을 알기 때문이다. 내가 아무리 체력이 좋아도 도구가 있고 없고의 차이는 굉장하다. 호신도구를 제대로 쓴다면 쉽게 제압할 수 있다.”
-살면서 호신술을 써본 일이 있나.
“솔직히 없다. 학생 때도 누가 저를 괴롭히겠나. 일단 뿜어져 나오는 이미지가 ‘쟤 잘못 건드리면 큰일 나겠다’ 싶은 인상 아니냐(웃음). 그래서 눈빛, 자세, 걸음걸이 이런 게 중요하다는 것이다.”
-도구는 어떻게 활용하나.
“다양하다. 핸드폰, 우산, 가방, 책 모두가 나를 보호할 무기가 될 수 있다. 그걸로 상대를 때려 눕힌다는 생각보다 방어를 어떻게 할지 생각해야 한다. 뒤에서 목을 잡혔을 때 들고 있던 핸드폰으로 상대의 손등 어디를 찍어야 가장 큰 고통을 줄 수 있는가 등을 배워야 한다.”
[김아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