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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금 1억, 예진이 저금통, 세계여행 적금… 십시일반 온정

강원도 산불 피해 주민 돕기 위한 개인 기부 잇달아

조선일보

9일 강원 고성군 토성면사무소에 익명의 기부자가 현금 1억원을 종이가방에 담아 전달했다(위 사진). 같은 날 마포구 희망브리지 사무실에 ‘예진이 돼지’라고 적힌 저금통과 함께 편지가 배달됐다. /희망브리지

대형 산불 피해를 본 강원도 고성군과 속초·강릉·동해시 주민을 도우려는 온정이 이어지고 있다. 특히 기업·연예인의 고액 기부 못지않게 개인들이 십시일반 보내는 돈과 물품이 산불 이재민에게 큰 힘이 되고 있다.


9일 오후 강원도 산불 피해 성금 모금 부스를 차린 강원도 고성군 토성면사무소로 한 40대 남성이 찾아왔다. 점퍼와 모직 바지를 입은 이 남성은 "사업가라는 남성이 익명으로 성금 배달을 부탁했다"며 종이 쇼핑백을 내려놓았다. 쇼핑백 안엔 현금 5만원권을 100장씩 묶은 다발이 스무 개 들어 있었다. 1억원이었다. 기부자는 이 40대 남성에게 '미국에서 사업하는데 산불 소식에 가슴이 아파 기부했다'는 말만 남겼다고 한다.


같은 날 서울 마포구의 '희망브리지 전국재해구호협회' 사무실엔 초록색 돼지저금통 하나가 배달됐다. 함께 온 편지에는 "저는 경기도 광주의 광주광명초등학교에 다니는 3학년 4반 김예진입니다. 원래는 저금통을 모아 부자가 되고 싶었는데 더 많은 사람을 행복하게 하고 싶어 기부했어요"라는 글씨가 삐뚤 빼뚤 적혀 있었다. 저금통 배를 가르니 지폐와 동전 17만3790원이 나왔다.


한 30대 인터넷 방송 BJ(방송 진행자)는 익명으로 1000만원을 성금으로 내놨다. 애초 세계여행을 가려고 든 적금이 만기가 돼 찾았다고 했다. 이 여성은 "괜히 이 일이 알려져 '이미지를 좋게 하려고 기부한다'는 소리를 들을까 걱정도 됐지만 산불 피해자를 돕고 싶어 용기를 냈다"고 말했다.


전남 여수 수산시장 상인 150명도 600만원을 모아 내놨다. 여수 시장에선 2017년 1월 불이 나 시장 점포 120곳 중 116곳이 전소됐다. 김상민 여수수산시장 상인회장은 "재해를 겪어본 사람만 그 심정을 알 수 있다"며 "상인회에서 말을 꺼내기도 전에 '우리도 국민에게 도움을 받았으니 이번엔 우리 차례'란 말이 시장 여기저기서 나왔다"고 했다.


경기도 고양이민자센터에서는 방글라데시·캄보디아 등 18개국에서 온 외국인 근로자 100여 명이 143만4000원을 모았다. 적게는 2000원부터 많게는 3만원의 소액이었지만 이들에게는 하루 식사비를 모은 큰돈이었다. 박유정 고양이민자통합센터 국장은 "외국인 근로자들이 주머니를 다 뒤져도 천원짜리만 나오자 친구에게 빌려서 1만원을 내고도 연신 '돈이 없어 미안하다'더라"고 했다. 물품 구호도 쏟아지고 있다. 양수현 희망브리지 구호사업팀 주임은 "속초 체육관은 하도 택배가 들어차 물류 창고처럼 된 지 오래"라고 했다. 약국 등에서 "놀란 마음을 가라앉히는 데 쓰라"며 보낸 우황청심환과 피로 해소제는 이재민들을 달래주는 효자 물품이 됐다. 횡성 한우 50인분을 보낸 정육점도 있었다.


[윤수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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