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여행 필요 없다, 삼각지 뒷골목은 ‘세계음식 천국’
현지 느낌 가득 ‘용리단길’
점심으로는 이탈리아 로마식 포카치아 피자를, 저녁으로는 중국식 비빔면을 먹는다. 일본식 선술집에서 선 채로 하이볼 위스키 한잔을 마시며 하루를 털어낸다. 이 거리에 입장하면 ‘비행기를 타고 어디 외국에 온 것은 아닌가’ 자문하게 된다.
코로나로 하늘길이 사실상 닫힌 지 2년이 지났다. 좀이 쑤신 사람들은 서울 지하철 4호선 삼각지역과 신용산역 사이에 있는 골목 ‘용리단길’을 찾고 있다. 간판은 물론 화장실·와이파이·비상구 안내문까지 현지어로 표기한 현지 느낌 120% 식당들이 지난 1~2년 사이 이곳에 생겨났다. 음식 국적도 라오스·베트남·이탈리아·일본·중국·태국·홍콩 등으로 다양하다.
라오스식 쌀국수집 ‘라오삐약’.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
지난해 3월 문을 연 포카치아델라스트라다는 이름처럼 이탈리아 납작 빵(플랫브레드) ‘포카치아’가 주력 메뉴다. 이탈리아에서는 포카치아빵을 파는 곳을 ‘포카체리아’라고 부르는데, 한국에 얼마 안 되는 현지식 맛집이라는 평이다. 이탈리아 출신 방송인 알베르토 몬디가 “한국에서 이탈리아의 맛을 느낄 수 있었다”고 인증한 집이다. 이탈리아산 밀가루·올리브유·소금을 쓰고 염장한 햄 ‘프로슈토’를 써는 기계도 이탈리아에서 들여왔다. 포카치아와 샌드위치를 넣어둔 진열장마저 이탈리아 길거리 포카체리아를 떠올리게 한다는 평이다.
포카치아델라스트라다의 프로슈토 샌드위치(왼쪽)와 마르게리타 피자/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
맛도 외양에 부응한다. 맛있는 식사빵이 흔치 않은 한국에서 제대로 구워낸 포카치아를 선사하는 집이다. 이 집은 포카치아 위에 토핑을 올린 로마식 피자와 속재료를 넣어 만든 샌드위치를 식사 메뉴로 판다. 포카치아는 겉은 바삭하고 속은 쫄깃하다. 피자(마르게리타 1조각 4800원)로 먹으면 치즈의 부드러움과 도우의 바삭한 맛을 함께 느낄 수 있다. 이탈리아 파르마산 햄 프로슈토, 모차렐라 치즈, 루콜라를 넣은 샌드위치는 염장 햄을 넣었지만 짜지 않고, 치즈를 듬뿍 넣었지만 느끼하지 않았다. 반주형 셰프는 “프랑스식 햄인 잠봉을 넣은 샌드위치보다 덜 짜서 좋다는 말을 듣는다”고 했다.
광둥식 중국음식을 파는 '꺼거'.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
이 골목에서 가장 줄이 긴 집은 중국집 ‘꺼거(哥哥·형이라는 뜻)’다. 바깥에서 보면 중국인만 오는 집인가 싶을 정도로 중국어로 된 간판이 존재감을 뽐낸다. 메뉴판에 사진과 번호를 붙여둔 것도 외국인 손님을 상대하는 현지 식당에 왔다는 느낌을 선사했다. 오후 5시 반이 되자 웨이팅 리스트에 이름을 올려뒀던 사람들이 재빨리 자리를 채우고는 ‘원앙볶음밥’(1만5000원) ‘비빔면’ ‘오이무침’ 따위를 시켜먹었다. 광둥식 중국음식을 표방하는데, 노출 콘크리트, 중국풍 조명, 플라스틱 식탁 등으로 중국 뒷골목 감성을 재현했다. “여기가 홍콩인가 서울인가”라며 인증샷부터 찍는 사람이 많았다.
'로스트 인 홍콩'의 BBQ 덮밥. 돼지 차슈, 닭, 삼겹살을 안남미 위에 올려 낸다./양지호 기자 |
인근에 있는 ‘로스트 인 홍콩’은 홍콩식 돼지고기·닭고기 BBQ를 안남미(길쭉한 쌀) 위에 얹어 내는 덮밥과 소[牛] 양을 넣어 만든 양국수 등을 판다. 작은 브라운관 TV에서 홍콩 영화 ‘화양연화’와 ‘중경삼림’을 틀어두며 홍콩 분위기를 냈다.
일본식 선술집 '키보'.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
키보는 지난해 9월 문을 연 일본식 선술집(立ち飲み·다치노미)이다. 정말 서서 술을 마신다. 실내외는 일본어로 된 소품을 갑주처럼 겹겹이 두르고 있었다. 키보 관계자는 “현지 느낌을 최대한 살리려고 했다”며 “일본 현지에서 공수해온 소품도 있다”고 말했다. 평일 오후 6시인데 퇴근하고 한잔하려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위스키 칵테일 하이볼(8000원부터)과 오뎅·감자사라다 같은 간단한 안주를 두고 사람들은 1시간 이상 수다를 떨었다.
선술집 '키보'의 진 토닉, 감자사라다, 오뎅, 하이볼(왼쪽부터)/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
이 밖에도 라오스식 생면 쌀국수를 파는 ‘라오삐약’ 태국음식점 ‘쏭타이치앙마이’ 미국 캘리포니아식 이탈리아 음식을 파는 ‘쌤쌤썜’이 용리단길에 있다. 모두 간판에서 한국어를 찾기 힘들다. 여행을 떠나지는 못해도, 현지 느낌을 만끽하기엔 충분하다.
[양지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