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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by 조선일보

합판 벽으로 구분된 '닭장 방' 소음 무방비… 곰팡이 서린 습기에 온몸이 금세 끈적끈적

[1인 가구주거 공간]

本紙 기자, 고시원 3주간 살아보니

합판 벽으로 구분된 '닭장 방' 소음

서울 종로구 한 고시원에서 본지 기자가 새우잠을 자고 있다. 방이 1평(3.3㎡)도 되지 않아 ‘닭장’ 같았다. 곰팡이 냄새가 코를 찔렀고, 얇은 벽은 소음을 막지 못했다. / 양수열 영상미디어 기자

7명이 숨지는 등 18명이 사상한 종로 고시원 화재 다음 날, 기자는 사고 현장에서 반경 1㎞ 안에 있는 한 고시원에 둥지를 틀었다. '지옥고' 중 하나인 고시원은 최저 주거 기준에도 못 미치는 회색지대다. 3주간 머물며 우리 사회 밑바닥의 인간 군상을 보았다. 2018년 고시원에서 청운(靑雲)의 꿈은 사라진 지 오래였다.


23만원을 선입금하니 열쇠 하나를 내줬다. 고시원 총무는 "2개 층 50여 개 방 중 가장 저렴한 곳"이라고 소개했다. 창문이 없는 방은 빛이 들지 않아 까맣다고 해서 '먹방'이라 불린다. 가로 1m, 세로 2m의 '닭장 같은 공간'에 처음 들어섰을 때 메스꺼운 곰팡이 냄새가 코끝을 찔렀다. 습기 때문에 온몸이 금세 끈적끈적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가구는 책상과 매트리스, 선풍기로 단출했다. 벽에 옷걸이 2개가 걸려 있었다. 방 한쪽을 차지한 나무 책상 위로는 10인치 TV가 놓여 있었고, 아래로 매트리스가 지나갔다. 이 공간 활용 덕분에 책상 반쪽에서만 노트북을 펼칠 수 있었다.


키가 180㎝가 안 되는 기자도 웅크린 채 '새우잠'을 자야 했다. 방문 손잡이는 쓰다 버린 USB 케이블로 묶어 활짝 열 수 없었다. 복도 폭이 70㎝로 비좁아 앞방과 동시에 문을 열면 나올 수 없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불이 나면 죽을 수밖에 없겠구나' 싶었다.


고시원에서는 '절대 정숙'이 중요했다. 얇은 패널로 만든 벽은 아무런 소음도 막지 못했다. 한 투숙자가 "이곳에선 하나도 내 마음대로 할 수 없다"며 이어플러그(귀마개)를 건넸다. 한 층에 2개씩 있는 샤워실과 화장실은 모두 함께 쓴다. 세면도구와 속옷을 일일이 챙겨야 하는 게 불편했지만, 걱정과 달리 온수는 막힘없이 나왔다. 화장실은 허름한 노포(老鋪)의 그것을 연상케 했다. 특유의 찌든 냄새가 났고 담배꽁초가 흩어진 바닥은 너저분했다. '볼일'은 주변 커피숍에서 해결하는 게 낫겠구나.


밥과 김치, 계란이 무한 제공되는 주방은 고시원에서 거의 유일한 '만남의 광장'. 그나마 의례적인 대화가 오고 가는 곳이다. 총무는 "반찬만 가져오라"고 자신만만하게 소리쳤지만, 하나 있는 백색 냉장고엔 이미 정체 모를 검은색 비닐봉지 수십 개가 가득 차 있었다.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어 보였다.


소설가 박민규는 고시원을 '모든 것을 잃은 사람에게도 손을 내밀어줄 수 있는 공간'이라고 표현했다. 이 고시원 투숙자 중 절반은 건설 현장 일용직 노동자라고 한다. 주변에 인력사무소가 10여 개 있다. 일당 11만원을 받고 건설현장 막일꾼으로 일하는 전모(55)씨는 "매일 4시 반에는 일어나야 하니 고시원에서 지내는 게 가장 편하고 경제적"이라고 했다. 종로 고시원 화재 당시 사상자 대부분은 50대 이상 중년 남성들로, 다수는 주변 건설현장 노동자로 확인됐다. '눌러앉은' 독거노인들 모습도 보였다. 일부는 기초생활수급자로 받은 생계비로 고시원 월세를 충당한다. 총무는 "원룸 보증금 몇백만원도 감당하기 어려운 사람이 온다"고 했다. 조선족 종업원도 있었다. 간판은 고시원이지만 '고시생'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앞서 고시원 생활을 겪은 이들은 "머물수록 우울해지고 신경이 예민해진다"고 입을 모았다. 외부인을 초대하는 행위는 엄격하게 금지된다. 빛도 들어오지 않고, 혼자 있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우울감이 더 커져갔다. 2주차에 접어들자 맨정신으로 고시원에 귀가하는 건 힘든 일이었다. 술에 취해 들어가는 날이 점점 많아졌다.


김은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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