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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처]by 조선일보

한달 넘게 기다려도 찾아가는 사진관

찍고 싶어도 쉽게 찍을 수 없는 사진관이 있다. 촬영을 위해 인터넷 예약을 받는 날에는 경쟁이 치열하다. 예약 시작 30초면 마감된다. 흑백 사진 한 장을 받기 위해 촬영을 한 뒤 한 달을 기다린다. 사람들의 초상을 담아내는 사진관 두 곳, '시현하다'와 '연희동 사진관'을 찾았다.

컬러 증명사진관 ‘시현하다’

한달 넘게 기다려도 찾아가는 사진관

사진관 '시현하다'

서울 서초구 논현역 인근에 있는 사진관 '시현하다’. 문을 열면 다양한 배경색에 담긴 증명사진들이 걸려 있다. 인스타그램 팔로어 수가 21만 명을 훌쩍 넘긴 ‘시현하다’는 다음 달 촬영 예약이 30초 만에 마감된다. 예약을 위해 재수· 삼수를 하기도 한다. 고3 학생 사이에선 ‘시현하다’에서 촬영한 증명사진으로 주민등록증을 만드는 게 버킷리스트다.


김시현 (26) 사진가는 초등학생 때 생일 선물로 받은 카메라에 주변 친구들을 담으며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본인이 직접 찍고 보정한 사진을 친구들이 학생증과 주민등록증 사진으로 활용할 때 보람을 느꼈다. 고등학교 졸업앨범을 직접 만들기도 했다. 사진학과에 입학해 '사진관 언니'의 꿈을 키우던 김 작가는 TV에서 익살스러운 표정의 사진으로 만든 연예인 노홍철의 사원증을 인상 깊게 봤다. "작업은 당신과 내가 다르다는 걸 보여주는 것"이라는 교수의 조언을 듣고 개성을 담은 증명사진 작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한달 넘게 기다려도 찾아가는 사진관

사진가 김시현 제공

평범한 증명사진과는 달리 조명과 구도, 배경색에서 다양한 시도를 했다. 이런 개성 넘치는 사진도 증명사진 규정만 지키면 실제 주민등록증과 운전면허증에 사용할 수 있다. 지인과 지원자를 받아 만든 작업실이 사진관이 됐다. 단순한 제출용 증명사진이 아니라 정해진 규칙 안에서도 개성을 뽐내고 싶은 사람들 사이에서 입소문이 퍼지면서 유명해졌다.

한달 넘게 기다려도 찾아가는 사진관

‘시현하다’는 예약제로 이뤄진다. 사진관에 들어가면 김 작가와 대화를 나누며 본인에게 어울리는 배경지를 정한다. 촬영은 5분 정도 걸린다. 김 작가는 개인의 개성을 표현하는 표정과 구도를 집중적으로 이끌어낸다. 이후엔 같이 모니터를 보고 일대일 보정 작업을 거쳐 현장에서 인화한 사진을 받아 볼 수 있다.

한달 넘게 기다려도 찾아가는 사진관

김해린씨는 "스무살이 되면 ‘시현하다’에서 사진을 찍고 싶었는데 소원을 이뤄서 행복하다"며 사진이 담긴 액자를 들어 보였다.

애초 100명을 목표로 했던 김 작가의 초상 프로젝트는 1000명을 훌쩍 넘었다. 지금까지 작업한 사진을 모아 현재 서울 강남구 캐논 갤러리에서 전시하고 있다.

한달 넘게 기다려도 찾아가는 사진관
한달 넘게 기다려도 찾아가는 사진관
한달 넘게 기다려도 찾아가는 사진관

김시현 작가가 고등학교 후배들이 김 작가의 작업을 오마쥬해 만든 고등학교 졸업앨범을 들어 보이고 있다.

김 작가는 "공장식으로 찍고, 제출하고 나면 다시 보지 않는 증명사진 문화를 바꾸고 싶다"고 말한다.

아날로그 인물 사진을 담는 연희동 사진관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 주택가 골목으로 깊숙이 들어가면 '연희동 사진관'이 자리하고 있다. 주변에서 보기 드문 흑백 필름 사진을 찍는다. 찍으면 바로 볼 수 있는 디지털 사진과 달리 흑백 필름 사진은 현상과 밀착, 인화 과정을 거친다. 액자에 담긴 사진을 받으려면 한 달 가까이 소요된다. 시간과 정성이 필요하기에 일주일에 10팀 내외만 촬영이 가능하다. 기다림을 즐길 줄 아는 손님들이 찾는다.

한달 넘게 기다려도 찾아가는 사진관

연희동 사진관

연희동 사진관 김규현(32) 사진가는 취미로 사진을 찍다 고1 때 암실을 접했다. 흑백 사진에 대한 흥미로 사진학과에 입학했다. 하지만 제대하고 복학하니 세상이 바뀌었다. 필름 대신 디지털 사진이 대세였다. 흐름을 따라가기 위해 디지털카메라를 잡았다. 웨딩 사진가로 일하며 수백 장을 연사로 찍고 고른 후 나머지는 버리는 디지털 사진의 작업 방식이 늘 아쉬웠다. 필름 사진 작업에 목이 말라 아날로그 인물 사진관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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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현 사진가가 즉석 흑백사진으로 최종훈씨의 가족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많은 사람의 눈에 띄어야겠다는 생각으로 지하 대신 1층에 자리했다. 아날로그 인물 사진관을 드러내기 위해 현판과 외관을 원목으로 직접 디렉팅했다. 촬영을 위한 배경지와 조명 때문에 실내는 소박한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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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석 흑백사진으로 촬영한 가족사진. 단 한 장만 촬영한다.

연희동 사진관의 흑백 필름 촬영은 12번의 기회가 주어진다. 포토샵 보정도 불가능하다. 연예인 화보 같은 화려한 사진 대신 조금 어색하더라도 소박한 사진을 찍고 싶은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진다. 주 고객은 연인과 가족이다. 추억을 남기거나 특별한 날을 기념하기 위해 찾는다. 재방문율도 높다. 흑백 사진을 많은 사람이 경험할 수 있도록 즉석 흑백 사진 촬영을 진행한다. 필름이 단종돼 재고가 없어 올해 말까지만 촬영이 가능하다. 주말엔 길게 줄이 늘어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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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서산에서 올라온 신동명 씨 가족이 사진관 외관을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남기고 있다.

연희동 사진관은 소셜미디어를 활용한 홍보를 하지 않는다. 아날로그 사진관이 온라인으로 홍보하면 모순이라는 생각에서다. 고객들이 소셜미디어 연희동 사진관 외관을 배경으로 한 기념사진과 흑백사진을 올리면서 자연스럽게 입소문을 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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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달 넘게 기다려도 찾아가는 사진관

김규현 사진가는 필름만이 가진 제한된 컷 수가 주는 묘한 긴장감이 좋다고 말한다. 그래서 촬영 간에 이야기를 많이 나누고 평생 남는 순간을 위해 행복한 표정을 주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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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현 사진가는 아날로그 사진을 지키는 파수꾼을 자처한다. "암실에서 배운 사진의 매력을 손님들이 경험을 할 수 있도록, 개인의 역사를 오랫동안 담는 사진관으로 남고 싶다"고 말한다.


사진·글=고운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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