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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처]by 조선일보

‘타향살이’ 돌풍에 피로 쓴 팬레터 받은…'1930년대판 임영웅'을 아십니까

[아무튼, 주말-장유정의 알고보면 더 재미있는 미스트롯2]


‘당신의 눈물’ ‘훨훨훨’ ‘바람길’

부초의 고단한 인생을 위로하다



조선일보

‘내일은 미스트롯2’ 준결승전 레전드 미션에서 별사랑이 무명 시절의 설움을 떠올리며 ‘당신의 눈물’을 열창하고 있다. / TV조선 캡처

살면서 우리는 경험으로 안다. 그 누구의 삶도 녹록하지 않다는 것을. 사람 사는 게 모두 거기서 거기고, 대단해 보이는 너의 삶과 초라해 보이는 나의 삶이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수많은 노래가 인생을 이야기하는 것도 바로 그러한 연유에서 비롯한다.


‘미스트롯2’의 참가자들이 선곡한 노래에서도 많은 인생을 만난다. 강혜연과 별사랑이 팀 미션에서 남진의 ‘빈 잔’을 부르며 “어차피 인생은 빈 술잔 들고 취하는 것”이라 노래할 때 “그렇지!” 하며 고개를 끄덕이고, 미스유랑단의 ‘부초 같은 인생’(원곡 김용임)을 들으면서는 “어차피 내가 택한 길이 아니냐. 웃으면서 살아가보자” 하며 스스로를 다독인다. 준결승전에서 별사랑이 노래한 ‘당신의 눈물’(원곡 태진아)은 “외로워도 힘들어도 말도 못”한 별사랑 자신의 10년 무명 세월을 위로하는 노래였다. “그렇게 살아온 긴 세월 동안 외로워도 힘들어도 말도 못 하고 아, 당신은 언제나 눈물을 감추고 있었나”라고 할 때 지난한 무명의 삶을 견딘 별사랑처럼 저마다의 인생이 떠올라 눈시울 붉힌 이 많았을 것이다.


10대들도 인생을 노래했다. 김다현의 ‘훨훨훨’(원곡 김용임)은 우리에게 “미움도 욕심도 내려놓고 물같이 바람같이 살라”고 한다. 원곡 가수 장윤정도 승복한 김태연의 ‘바람길’은 압권이었다. “이런 무대를 또 볼 수 있을까”란 극찬을 받으며 ‘박설가(박선주+독설가)’의 눈물을 자아낸 ‘바람길’은 섣불리 희망을 말하지 않는다. 오히려 “길을 걷는다. 끝이 없는 이 길, 걷다가 울다가 서러워서 웃는다. 스치듯 지나는 바람의 기억보다 더 에일 듯 시리운 텅 빈 내 가슴”이라며 쓸쓸하고도 허무한 인생길을 그대로 노래한다.


누군가는 10대가 트로트를 부르는 데 우려를 드러낸다. 하지만 10대라고 인생을 모를까. 아픔이 없을까. 누구가의 10대는 그저 철없이 지나가는 시간이지만, 누군가의 10대는 인생을 ‘제대로' 배우는 시간이다. 그래서 ‘미스터트롯’ 출신의 10대 정동원이 “청춘은 붉은색도 아니고 사랑은 핑크빛도 아니더라. 마음에 따라서 변하는 욕심 속 물감의 장난이지. 그게 인생인 거야”(여백)라고 열창할 때 울컥하게 되는 것이다.


‘미스트롯2′에선 아직 나오지 않았지만, 인생을 노래한 트로트로 빼놓을 수 없는 노래가 ‘타향’(1934년)이다. ‘타향살이’란 제목으로 익숙한 바로 그 노래다. ‘이원애곡’과 더불어 고복수의 데뷔곡이기도 한 이 노래는 당대는 물론 지금까지도 고향을 잃고 떠도는 누군가의 마음을 대변하고 위로해준다.


고복수가 데뷔한 이야기도 재밌다. 이른바 1930년대 판 ‘미스터트롯’ 출신이기 때문이다. 당시 ‘대중적 명가수 선발 음악 대회’ 내지는 ‘천재 가수 선발 대회’ 등의 제목으로 열린 경연은 콜롬비아음반회사가 주최하고 조선일보가 후원했다. 1933년에 서울, 평양, 신의주, 함흥, 원산, 부산, 대구, 군산, 청주 등 10도시에서 지역별로 세 명 정도 가수가 뽑힌 뒤, 1934년 2월 서울에서 열린 최종 결선에서 1등 정일경(전남 대표)에 이어 고복수(경남 대표)와 조금자(함북 대표)가 당선되었다.


가수가 된 고복수는 ‘타향살이’로 스타 반열에 오른다. ‘타향살이’를 작곡한 손목인의 회상에 따르면, 고복수의 인기가 상당해서 “가는 곳마다 객석을 울음바다로 만들었고, 어떤 열렬한 여성 팬은 울다가 까무러치는 소동을 빚기도 했다”고 한다. 심지어 어떤 극성 팬은 혈서로 손수건에 ‘사랑 애(愛)’를 써 보내서 고복수가 질겁한 일도 있었다니, 그 인기가 얼마나 대단했는지 짐작할 수 있다.


이 노래를 작사한 사람은 고향인 ‘금릉’을 따라 ‘금(김)릉인’이란 예명을 쓴 승응순이다. 27세 젊은 나이에 요절한 승응순은 죽기 전까지 대중가요 80여 편을 남겼다. 그는 당시 자신의 10여 년 표박(瓢泊) 생활을 솔직하게 고백한 것이 ‘타향살이’라 한 바 있다. 그렇게 해서 “타향살이 몇 해런가 손꼽아 헤여 보니 고향 떠나 십여 년에 청춘만 늙고”와 같은 노래가 태어났다.


일제강점기뿐 아니라 광복 이후 1950년대 한국전쟁과 피란 생활, 1960~1970년대 산업화와 도시화를 거치면서도 이 노래가 지속적으로 호명된 것은 여전히 타향살이를 하고 있는 우리 처지를 노래가 어루만져주기 때문이다.


누구에게나 인생살이는 고단하지만, 굽이굽이 노래 한 곡이 있어 웃음과 눈물로 우리를 위로한다. 영화 ‘원더’에 이런 말이 나온다. “힘든 싸움을 하고 있는 모든 이들에게 친절하라”고. 그러니 각자 자신의 삶에서 고군분투하는 모든 이에게 축복 있으라. 아울러 ‘미스트롯2’의 최종 7명은 물론 경연에 지원했던 모든 이에게 축복이 있으라. 경연에서 실패했다고 인생에서 실패한 것은 아니다.


우리는 모두 각자의 인생길 위에 있다. 꽃길이 펼쳐지리라 장담할 수 없으나, 그래도 참고 견디다 보면 어느 날엔가 홍지윤이 불렀던 ‘꽃바람’(원곡 김용임)처럼 “꽃바람이 살랑살랑” 불어올 날도 있으리라. 그러니 그때까지 우리 모두 각자 자리에서 “으라차차!”다.


[장유정 단국대 자유교양학부 교수 대중음악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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