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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by 조선일보

퀴즈왕 출신 흙수저, 1%의 주주 권리로 K팝 지축 흔들다

[이혜운 기자의 살롱]

[아무튼, 주말]

한류 공룡 SM 지배구조 바꿔버린

행동주의 펀드 이창환 얼라인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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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자, 책방으로!”


2004년 어느 여름날. 대구 반야월에 살던 세 모자(母子)는 자전거를 타고 서점으로 향했다. 생활보호대상자로 넉넉하지 않았던 형편의 그들에게 서점은 유일한 놀이터였다. 시원한 에어컨, 가득 찬 책들. 책을 보다 출출해지면 몰래 구석으로 가 준비해온 볶음밥 한 통을 나눠 먹었다. 서점 문이 닫히고, 다시 자전거를 타고 강변을 따라 달릴 때 얼굴에 닿던 바람은 시원하고 행복했다.


그로부터 20년. 홀로 두 아들의 생계를 책임졌던 어머니는 고졸 검정고시를 통과하고 10급 기능직 공무원이 됐다. 고1이던 차남은 카이스트에 진학해 박사과정을 밟고 있다. 고3이었던 장남은 KBS ‘퀴즈 대한민국’을 최연소로 우승한 뒤, 서울대 경영학과를 거쳐 금융맨이 됐다. 요즘 대한민국 엔터테인먼트 업계를 뒤흔들고 있는 ‘SM 파동’의 주역 이창환(37) 얼라인파트너스 자산운용 대표다.


개천에서 더는 용이 나지 않는 시대, 어려운 가정 환경을 딛고 서울대에 합격한 18세 이창환은 화제의 인물이었다. 이미 전국고교생 증권경시대회와 경제경시대회를 휩쓸었다. 당시 본지와 인터뷰에서 “제 꿈은 창의력과 지식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는 최고경영자가 되는 것이다. 퀴즈왕보다 훨씬 크고 좋은 모습으로 돌아오겠다”고 했다.


행동주의 펀드를 표방한 투자사의 CEO로 돌아온 그를 지난 19일 서울 여의도에서 만났다.


◇ K팝 지형 뒤흔든 1%의 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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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라인이 SM엔터테인먼트 지분을 사들인 건 2021년 9월이다. 그는 1% 지분을 확보한 후 매출의 6%를 가져가는 창업자 이수만의 개인 회사인 라이크 기획 계약 문제 해결과 지배구조 개선을 요구했다. SM은 얼라인의 요구 사항을 전격 수용했고, 지난 3일에는 이수만 없는 멀티 프로듀싱 체제 ‘SM 3.0′을 발표했다. 카카오가 신주 및 전환 사채 발행을 통해 9% 지분을 확보해 2대 주주로 들어오게 된다고도 했다.


이에 반발한 이수만은 최대 주주의 동의 없이 결정된 신주 발행 및 전환사채 발행은 금지라며 가처분 신청에 들어갔고, 경쟁사인 하이브에 자신의 지분 14.8%를 매각했다. 하이브는 경영권을 위한 지분 40%를 확보하기 위해 주당 12만원에 공개 매수에 나섰다. 카카오는 법원의 판결을 기다려야 하고, 영향권 행사를 위한 추가 매수에 들어가야 한다. 얼라인의 1%가 30년 역사의 K팝 지형을 뒤흔들어 놓은 것이다.


-왜 SM이었나.


“내가 SM지분을 산 건 K팝의 미래 가치와 음반 판매량, 매출 등에 비해 SM 주가가 저평가돼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코로나 팬데믹이 시작되고 K팝 회사들 주가는 잠시 주춤했지만, 오히려 음반 판매량이 증가하면서 매출은 오르고 있었다. 방탄소년단이 빌보드 차트 1위를 하며 K팝 팬들은 더 늘어났고, 유튜브를 통해 K팝 시장은 더욱 확대될 조짐이었다. 그래서 하이브와 JYP에 비해 너무 낮은 SM 주가는 개선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개인적으로는 어릴 때부터 S.E.S를 좋아해 게릴라콘서트도 가고, 보아 1집부터 있는 핑크블러드(SM팬)이기도 했다.”


-K팝 지형이 이렇게 흔들릴 줄 예상했나?


“몰랐다. 난 SM의 경영진도, 이사회 멤버도 아니다. 주주로서 SM의 발전을 저해하고 주가에 영향을 끼치는 ‘라이크 기획’ 같은 문제들의 해결 방안을 요구했을 뿐이다.”


-일각에서는 음악이라는 업(業)을 모르는 사람이 잘 굴러가던 SM을 흔들어 놨다고 생각한다.


“SM은 잘 굴러가지 않았다. 우리가 주장한 것은 ‘SM 경영진 사퇴’가 아니었다. ‘지속 가능한 프로듀싱 체제를 만들라’였다. 투자자 입장에서는 기업이 지속 가능해야 아티스트가 잘되고, 팬들과 직원도 잘된다. 그런데 내가 주주총회에서 ‘만약 이수만이 은퇴하거나 무슨 일이 발생하면 어떻게 할 것이냐’고 묻자, SM은 ‘선생님이 안 계시면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답하더라. 당시 이수만은 이사회 의장도 아니고, 라이크 기획이라는 외부 회사의 프로듀서로 등록된 사람이었다. 이런 상황만 봐도 SM은 경쟁력이 떨어지고 있었다. 음원 성적은 물론, 앨범이 나오는 숫자도, 신인이 데뷔하는 횟수도 줄어들었다. 걸그룹 에스파가 보이그룹 NCT 데뷔 후 4년 만에 나온 유일한 신인이다.”


-음악을 너무 숫자로만 보는 거 아닌가?


“그럼 왜 SM 직원 대부분과 팬들은 ‘SM 3.0′을 지지할까. 직원의 85%가 반(反)이수만이 됐을까. 지금은 나와 경영진이 한팀처럼 돼 있지만, 사실 우리는 주총에서 대놓고 큰소리로 다툰 적이 많았다. 내가 원한 건 투자자로서의 ‘지속 가능한 거버넌스(지배 구조)’다. 그 문제에 대해 경영진과 직원들이 머리를 맞대어 도출한 결과가 ‘SM 3.0′이다. 다들 최대 주주가 막강 권력을 휘두르니 말을 못 했을 뿐, 회사에 대해 엄청난 걱정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시총 2조원에 달하는 주식회사가 이수만이라는 개인의 영달을 지키는 방향으로 가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창업주가 외주 프로듀서 상태로 계약을 맺어 모든 결정을 내리고, 책임은 안 진다는 건 말이 안 되는 시스템이다.”


-그래서 경영권 분쟁이 발생한 것인가.


“이 상황은 경영권 분쟁이 아니다. 대체 누구와 누구의 경영권 분쟁인가. 경영권 분쟁이라고 한다면, 누군가 지분을 모아서 이사회를 교체하려는 시도를 해야 한다. 그러나 경영진은 주주가 아니다. 심지어 그 경영진은 이수만이 임명한 사람들이다. 어떻게 최대주주(이수만)와 경영진(이성수 탁영준)이 경영권 분쟁을 할 수 있나. 만약 이걸 경영권 분쟁이라고 한다면, 앞으로 모든 주주 행동이 다 경영권 분쟁이 된다. 말이 안 되는 것이다.”


-현재 SM을 놓고 하이브와 카카오가 지분 대결을 펼치는 상황에서, 카카오에는 중국 자본이 있기 때문에 반대하는 여론도 있다.


“국민연금이 해외에 투자하는 주식 비율이 얼마인 줄 아는가? 27.8%로 국내 주식 15.1%보다 많다. 그 말을 하는 사람들은 국민연금이 외국에서 그런 대접을 받아도 된다는 뜻인가. 이제 우리나라도 과거와 다르다. 2014년부터 ‘순투자국’이다. 외국인이 우리나라에 투자한 것보다 우리나라가 외국에 투자한 것이 더 많다는 것이다. 돈에는 국적이 없다.”


-앞으로 어떻게 흘러갈까.


“난 하이브나 카카오나 가격을 올리며 매수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SM은 충분히 성장 가능한 회사다. 라이크 기획에 대한 문제가 해소됐고, 지속 가능한 지배 구조가 형성됐기 때문에 주가는 더 오를 것이다. SM 주주로서, 팬으로서, 가장 이상적인 상황은 하이브가 현재 지분만 보유하고, 카카오가 9%를 보유해 현 직원들이 안정적으로 이수만 없는 SM 3.0을 시도하는 것이다. 그것이 K팝 시장에 더 건강한 시스템이라고 본다.”


◇짐 로저스를 꿈꾼 소년


-왜 투자자가 됐나.


“고등학교 때 짐 로저스의 ‘어드벤처 캐피탈리스트’란 책을 읽었다. 그는 여행하면서도 각 나라의 특징을 찾아내고, 투자 아이디어로 활용한다. 그 직업이 좋아 보였다. 투자자란, 남들이 모르는 가치를 찾아내 돈을 버는 직업이다. 어릴 때부터 돈으로부터 자유로운 사람이 돼, 하고 싶은 거 다 하고 살고 싶었다.”


-자본 소득을 통한 경제적 자유라는 개념을 고등학교 때 알았다는 뜻인가.


“경제적 자유에 눈뜬 건 중학교 때다. 우리 집은 어머니가 학교 급식실에서 번 돈 50만원으로 생활했기 때문에, 방과 후 나는 다른 친구들처럼 갈 학원이 없었다. 늘 동네 책방으로 달려가 ‘드래곤 라자’나 ‘묵향’ 같은 무협소설을 읽었다. 그때 옆 책장에 꽂혀 있던 로버트 기요사키의 ‘부자 아빠 가난한 아빠’가 눈에 띄었다. 그 책에는 돈을 벌려면 어떻게 해야 하고, 어떻게 하면 내가 자유로운 삶을 살 수 있는지가 나온다. 지금으로 치면 ‘파이어(FIRE·경제적 자립+조기 은퇴)’ 같은 개념인데 이 책이 내 삶의 이정표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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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넉넉지 않은 형편에 일찍 철이 든 건가?


“가난으로 돈에 일찍 눈을 뜬 건 맞지만, 철은 지금도 안 든 것 같다. 만약 내가 철이 들었다면 조금 더 안정적인 직업을 선택했겠지. 내가 다닌 대구외고 친구들은 대부분 교대나 사대, 경찰대나 의대, 육·해·공군 사관학교 등으로 진학했다. 반대로 난 항상 도전하는 삶을 택했다. 그 배경엔 어머니가 있었다.”


그의 어머니는 경제적 문제로 남편과 헤어진 뒤 가장이 돼 어린 두 아들을 키웠다. 주부였던 여자가 할 만한 일을 찾기는 쉽지 않았다. 식당에서 일하기엔 퇴근 시간이 너무 늦어 아이들이 눈에 밟혔고, 마트는 수입이 너무 적었다. 그래서 선택한 곳이 두 아들 다니는 초등학교 급식실이었다.


-어머니가 급식실에서 일하는 것이 불편하지 않았나.


“전혀. 우리 세 식구가 종일 함께 있을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행복했다. 물론 월급이 적은 계약직이라 살림은 어려웠다. 자식들이 커가는 만큼 어머니의 등짐도 무거워졌다.”


-그래서 공부를 열심히 했나?


“대학을 가면 아르바이트라도 해서 어머니 고생을 덜어 드리고 싶었다. 그런데 어머니는 그런 생각 하는 것도 싫어하셨다. 초등학교 6학년 때 친구들과 처음 대중목욕탕에 갔다. 3시간 정도 놀다 보니 목이 말랐다. 그런데 매점에 파는 음료수는 가게에서 파는 것보다 300원이 비쌌다. 꾹 참고 동네 할인점에 가서 똑같은 음료수를 사먹은 뒤 어머니에게 자랑했는데, 오히려 속상해하시더라.”


-그래선지 고생을 많이 한 얼굴은 아니다.


“내가 참 철이 없었다. 외고에는 부잣집 친구가 많았는데, 기죽지 않으려고 어머니의 피 같은 돈을 잘도 받아 썼다. 가장 답답한 게 수학이었다. 다들 학원에서 선행학습을 해와서 수업 시간에 나만 알아듣지 못했다. 그래서 겨울방학 동안 어머니 한 달 치 월급인 50만원을 들여 과외 수업을 받았다. 생활비에 구멍이 뚫리자 어머니는 밤에도 마트에 나가 이중으로 일을 하셨다.”



-어머니가 대단한 분이시다.


“중학교밖에 졸업을 못 했지만, 머리가 좋으셨다. 조리 보조원 월급만으로는 생활이 벅차게 되자 정식 조리사가 되고 싶어했다. 그러려면 고등학교 졸업장이 필요하니 석 달간 주경야독(晝耕夜讀)해 검정고시를 통과했다. 내친김에 대구시 교육청에서 뽑는 10급 기능직 공무원 시험에도 도전하더라. 20명 모집에 1600명이 몰린 경쟁률을 어머니가 뚫은 거다. 평소에도 우리 집은 항상 공부하는 분위기였다. 어머니는 매일 새벽 5시 반이면 영어회화 테이프를 틀어주셨다.”


-원래 공부를 좋아했나.


“야구, 게임, 책을 좋아했다. 야구를 특히 좋아해 스포츠 신문을 사달라고 졸랐더니 어머니가 조선일보를 구독해주시며 ‘중앙지에도 스포츠 면이 있으니 골고루 읽어라. 뭐든 편식하는 건 좋지 않다’고 하셨다. 처음엔 스포츠 면만 봤는데, 언젠가부터 내가 경제면도 읽고 있더라. 그때 내가 경제에 관심이 많다는 걸 알게 됐다.”


-주식투자는 언제 처음 시작했나?


“중학교 때 어머니의 공모주 투자를 도와드린 적이 있다. 어느 날 어머니가 ‘공모주가 뭔지 아니?’ 물으시더라. 당시 바이코리아 펀드가 유행하고 벤처 열풍으로 코스닥이 오르자 동네 아주머니들이 공모주에 대해 말하는 걸 들으신 거다. 당시 신문 경제면을 열심히 읽어 공모주 지식이 많았던 나는 어머니와 매일 머리를 맞대고 상의한 뒤 엔씨소프트와 네오위즈 공모에 참여했다. 각각 1주와 4주밖에 받지 못했지만, 배를 넘는 수익률을 올렸으니 성공한 투자였다.”


-전국고교생 증권경시대회에서도 수상했다.


“그때 여의도에 처음 와봤다. 상금 500만원으로 과학고에 입학한 동생에게 구두와 휴대전화를 사주고, 어머니에겐 세탁기 한 대를 선물했다.”


-사춘기나 슬럼프는 없었나.


“고3때 좋아하던 여자 후배에게 고백을 거절당해 실망한 적은 있다(웃음). 난 무언가에 쫓기며 공부를 한 적이 없었다. 어머니는 내가 무협소설이나 리니지 게임에 24시간 빠져 있을 때도 야단치지 않고 알아서 하게 했다. 그런 신뢰를 받아보지 않은 사람은 이 느낌을 모른다. 난 무협소설을 읽으며 꿈을 키웠고, 리니지 하며 공부 잘하는 법을 배웠다.”


-게임을 통해 어떻게 공부 잘하는 법을 배우나?


“리니지는 괴물을 하나하나 처리해가면서 레벨을 올리고 힘을 키우는 게임이다. 마치 우리가 책을 읽고 지식을 쌓아가는 과정과 비슷하다. 리니지에서는 수준에 맞지 않는 강한 괴물을 처치하려고 하면 잘 죽지도 않고 돈도 많이 든다. 난 이를 통해 ‘너무 높은 수준의 학습 과정을 성급하게 따라잡지 말자’고 생각했다. 선행학습 열심히 한 친구들이 고등학교 가서 다른 학생들과 수준이 같아지는 걸 자주 봤다. 선행학습 효과는 몇 년을 못 간다. 그 시간에 좀 더 다양한 경험을 하는 것이 효과적이라고 생각한다.”


-공부하다가 모르는 게 생기면 어떻게 하나?


“무지막지하게 물어본다. 경제경시대회 준비할 때는 ‘맨큐의 경제학’ ‘거시경제학’ 등으로 공부했는데 모르는 부분이 나오면 한국은행에 연락해 직원에게 물었다(웃음).”


-집안 형편이 좋지 않아 원망스러운 적은 없었나.


“이렇게 사는 게 우리 탓은 아니니까. 한번은 음악 시간에 자신이 할 줄 아는 악기로 연주를 해야 했다. 다들 비싼 플루트, 바이올린 등을 연주하는데, 난 리코더밖에 할 수 없었다. 그래서 리코더와 가장 잘 어울릴 것 같은 비제의 ‘아를르의 여인’을 열심히 연습해 A+를 받았다. 아무리 어려운 상황이어도 마음먹기에 따라선 자신에게 유리한 것이 될 수 있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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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생활은 어땠나.


“싱가포르 국부펀드 장학생으로 뽑혀 싱가포르 경영대로 교환학생을 다녀왔고, 이라크 파병도 6개월 다녀왔다. 그때 받은 사단장 특별 휴가로 17박 18일 유럽 배낭여행도 다녀왔다.”


-이라크 파병?


“자원해서 갔다. 육군 통역병이었는데, 어차피 복무할 군대 제대로 경험해보자 생각했다.”


-졸업 후 골드만삭스를 거쳐 세계 최대 사모펀드인 KKR에서 8년 일했다.


“서울 사무소가 처음 생길 때라 말단인 나와 대표님 딱 두 명만 있었다. OB맥주 매각 등 큰일도 많았다. 해외 파트너들과 일하며 코리아 디스카운트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한국이 주가가 낮은 이유 중 하나가 배당률이 너무 낮다는 것이다. 이 문제만 해소하면 한국 경제도 좋아지고, 돈도 벌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투자자는 누구나 자신이 직접 투자 결정을 하고 싶어 하는데 KKR에선 그럴 수 없어 얼라인을 창업했다.”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해소하라


여의도 증권가에서 이창환은 계란으로 바위 치기에 성공한 사람이다. 기업 저격수이자, 주가를 올리는 미다스의 손이기도 하다. 국내 기업들은 오너 가문이 작은 지분율로 막대한 이사회 권력을 휘두르기 때문에 주주 제안이 나오더라도 받아들여진 적이 거의 없다. 그러나 그는 SM 이사회를 설득해 주주총회 표 대결에서 이겨 변화를 만들어 냈고, 7대 시중은행을 상대로 주주행동 캠페인을 시작해 6개 은행이 얼라인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창업한 지 2년도 안 된 얼라인의 움직임에 다른 개미 주주들도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다음 타깃을 7대 시중은행으로 잡은 이유는?


“주가도 너무 싸고, 밸류에이션(기업가치 평가)도 너무 낮았다. 이럴 땐 자사주 매입이나 배당을 늘리면 효과적이다. 해외 은행들은 이익의 65%를 배당하는데 우리나라는 25%밖에 안 한다. PBR(자산 대비 주가)은 0.3배밖에 되지 않는다. 이러면 위기가 왔을 때 자본 조달이 되지 않고, 결국 정부에서 세금을 투입해야 한다. 반면 해외 은행들은 PBR이 평균 1.3배다. 주식 발행을 통해 자본 조달을 할 수 있다. 은행이 배당을 정상적으로 하게 되면 자연스럽게 대출 여력이 줄어든다. 그러면 국가 부채 문제도 완화돼 모두에게 윈윈이다.”


-현재 어떻게 진행 중인가.


“7개 시중은행 중 JB금융지주를 제외한 6곳이 우리 제안을 받아들였다. 그 과정에서 은행 주가도 올해 들어 2주간 평균 20% 상승했다. 배당 등 주주환원 확대에 대한 기대감 등으로 외국인 투자자들이 몰렸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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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행동주의 펀드를 택했나.


“행동주의란 주가가 상대적으로 낮은 기업의 지분을 확보해 기업의 지배구조와 투명 경영에 목소리를 내는 것이다. 가치 투자의 아버지 벤저민 그레이엄이나 워런 버핏도 행동주의자들이다. 나도 마찬가지다. 펀드 회사란, 남의 돈을 받아 투자하는 사람들이다. 투자를 했으면 목소리를 내야 할 의무가 있다. 드라마 ‘재벌집 막내아들’의 미라클도 행동주의 투자자다. 과연 10년 전이었다면 이런 드라마가 인기를 얻었을까? 요즘 투자자들은 공부도 많이 하고 똑똑하다. 주주 행동주의의 흐름은 대세가 됐다.”


-국내에서 행동주의 펀드에 대한 이미지는 좋은 편이 아니다. SK는 소버린에게 빼앗길 뻔했고, 삼성 역시 엘리엇에게 위협당한 기억이 있다.


“그래서 안타깝다. 우리에겐 국내 우량 기업을 해외 투자자들에게 저가로 팔았던 IMF 트라우마가 있으니. 그러나 안 팔았으면 어떻게 했을 건가. 행동주의 펀드라는 건 자본 시장에서 중요한 요소다. 우리는 이해관계 충돌을 너무 나쁘게만 생각한다. 이걸 ‘싸움’이라고 본다. 그러나 자본주의는 항상 이렇게 발전한다. 결국엔 서로 만족할 만한 딜메이킹(dealmaking·거래 성립)을 하는 것이 목적이다.”


-앞으로의 목표는?


“우리나라 기업에 만연한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해소하고, 이를 통해 큰 수익을 번 회사로 만들고 싶다. 주주행동주의 흐름이 강해질수록 코리아 디스카운트는 축소되고, 우리 회사는 돈을 벌 것이다. 주주의 권리는 재산권 보호다. 장기적으로는 나처럼 형편은 어렵지만, 재능이 있는 학생들을 위한 장학재단을 운영하고 싶다. 사람들은 나보고 흙수저라고 할지 모르지만, 우린 그냥 꿈 많고 사랑 많은 가족이었다. 가난을 희망의 대명사쯤 여기며 살았다. 그럴 수 있었던 것에는 어머니의 희생도 있지만, EBS 교재를 구해다 준 선생님, 살 집을 무상 임대해준 경북대 교수님 등 많은 분들의 도움이 있었다. 그 은혜를 갚으며 살고 싶다.”


[이혜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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