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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by 조선일보

코로나 이후 패션계 화두? ‘뭘 살까’ 아닌 ‘뭘 안 살까’가 중요해질 것

유니클로 크리에이티브 총괄

편집장 출신 ‘꽃중년’ 기노시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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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니클로의 매장 디자인과 브랜딩 등을 총괄하는 기노시타 다카히로(53)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유니클로

옷 잘 입는 남자들 사이에 ‘스타일 교본’으로 통하는 해외 ‘꽃중년’이 몇몇 있다. 그중 하나가 기노시타 다카히로(53) 유니클로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한국에도 마니아층이 있는 일본 패션 잡지 ‘뽀빠이’ 편집장 출신으로, 요즘 인기 있는 망원동·성수동 스타일의 원류를 찾다 보면 그의 이름이 빠지지 않는다.


3년 전 유니클로 야나이 다다시 회장은 “정보 편집력이 더 중요해진다”면서 이례적으로 잡지 편집장 출신인 그를 크리에이티브 수장으로 영입했다. 공식 직함은 패스트리테일링 그룹 수석경영책임자. 브랜딩, 마케팅, 매장 디자인을 총괄한다. 그가 유니클로를 맡고 한 대표적 시도는 뜻밖에 ‘라이프웨어(LifeWear)’라는 이름의 잡지를 창간해 매장에 두는 것이었다. 모바일 전성시대에 왜 아날로그 상징인 잡지를 선택했을까. 도쿄에 있는 그를 화상으로 만났다.


-인쇄 매체가 점점 사라져 가는 디지털 시대다. 패션 회사에서 왜 ‘종이 잡지’를 펴낼 생각을 했나.


“어떤 미디어가 옳다기보다는 ‘터치 포인트’의 차이라고 생각한다. 매장에 온 고객이 손으로 직접 집어서 가져갈 수 있는 선물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종이 잡지를 만들었다. 개인적으로 잡지는 하나의 문화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 가치를 이어가고 싶다. 신문 냄새를 맡아야 아침이 온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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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 하루키 등 명사 인터뷰가 실린 유니클로 잡지 '라이프웨어(LifeWear). /유니클로 제공

-카탈로그 수준이 아니더라.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 건축가 안도 다다오, 헤르조그 앤드 드 뫼롱(영국 테이트 모던 미술관 설계자) 등 유명 인사 인터뷰도 있어 일부러 수집하는 이들도 있던데.


“의식주가 균형을 이루는 것이 삶의 기반을 구축하는 중요한 요소라고 생각한다. 옷을 다루는 회사이지만 궁극적으로 사람들의 생활을 어떻게 풍요롭게 할 것인가가 우리 관심사이기 때문에 건축, 문화 등 다양한 영역을 다뤘다.”


-일본판 킨포크(소박한 멋에 가치를 두는 태도)라 할 수 있는 ‘시티 보이(City Boy)’ 개념을 유행시킨 주인공이다. ‘시티 보이’가 뭔가.


“1976년 잡지 ‘뽀빠이’가 창간됐을 때 내세운 슬로건이 ‘시티 보이’였다. 도시 생활을 동경하는 젊은이들을 겨냥한 라이프스타일을 제안하자는 의도였다. 36년 뒤인 2012년 내가 편집장이 됐을 때 ‘시티 보이’는 사어(死語)였다. 일본 젊은이들은 더 이상 도시를 동경하지 않았다. 자신의 삶을 중시하는 스타일로 바뀌었다. ‘시티 보이’에 스며 있는 감상적인 느낌을 유지하면서 개념을 재정의해 보기로 했다. 사는 장소, 나이에 관계없이 하루키 소설과 버튼다운 셔츠를 좋아할 것 같은 사람들이 지닌 가치관 같은 것이다.”


-한국 젊은 세대에까지 영향을 미친 ‘아메토라(아메리칸 트래디셔널의 일본식 준말)’를 이끈 인물로도 꼽힌다.


“1950년대 미국 동부 아이비리그에서 시작된 패션 스타일을 이른바 ‘아이비 스타일’이라고 한다. 1960년대, 일본 잡지 ‘멘즈 클럽’이 아이비 스타일을 담아 출간한 사진집 ‘TAKE IVY(테이크 아이비)’가 일본 전역에 전파되며 큰 인기를 끌었다. 이것이 미국 패션을 일본식으로 해석한 ‘아메토라’의 시작이다. 2010년대 미국에서 뒤늦게 이 사진집이 주목받았다. 아메리칸 클래식을 개성 있게 재해석한 미국 디자이너 톰 브라운이 일본과 미국에서 인기 끈 것도 이 무렵이다. ‘아메토라’가 미국으로 역수출됐고, 다른 나라에도 영향을 미쳤다.” 서양 음식인 돈가스가 일본화된 다음 해외로 역수출된 것과 비슷한 개념인 셈이다.


-10여 년간 한국 남성 패션이 급격히 바뀌었다. 일본 남성 패션도 과거 그런 변화를 겪었다. 이유가 뭘까.


“아시아 남성들은 기본적으로 성실하고 꼼꼼하며 배우려는 자세를 가졌다. 유럽, 미국 남성들은 패션을 자연스러운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깊이 생각하지 않는데, 아시아 남성에겐 패션 감각이 뒤떨어져 있다는 열등의식이 있다. 그걸 채우려고 정보를 적극적으로 수집하고 열심히 패션을 공부한다. 결국 패션 지식도 깊어지고 옷도 잘 입게 된 것 같다.”


-한국은 여러 측면에서 일본 사회를 닮아가고 있다. 패션도 예외는 아닌 듯한데.


“몇 년 전만 해도 한국 패션이 약간 시차를 두고 일본을 따라오는 것 같았지만, 지금은 역전돼 한국이 앞서가고 있다. BTS, 블랙핑크 등 한국 아이돌 패션이 일본 젊은이에게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요즘은 세계가 ‘K스타일’에 영향받고 있지 않은가.”


-당신이 생각하는 K스타일이 뭔가.


“한국 패션은 미국 힙합계나 래퍼 영향을 많이 받았는데, 지금은 상황이 바뀌었다. 한국 뮤지션이 전 세계에서 인기를 끌면서 그들의 패션도 함께 영향을 미치고 있다. 미국에서 ‘아메토라’를 역수입한 것처럼, 지금은 미국 스트리트 패션에서 영향을 받은 ‘한국 스트리트 스타일’을 미국이 역수입하고 있다.”


-유니클로 회장이 당신을 영입할 때 ‘정보 편집력이 중요해진다’고 했다. 어떤 의미일까.


“내가 10~20대 땐 찾으러 가지 않으면 정보를 알 수 없는 세상이었지만, 그 과정에서 풍요를 느꼈다. 지금은 정보가 넘쳐나는데 정보의 빈곤을 느낄 때가 종종 있다. 정보량이 많은 사회가 반드시 월등한 사회는 아니다. 의미 있는 정보를 정리해줄 사람이 필요하다.”


-코로나 이후 라이프스타일엔 어떤 변화가 있을까.


“팬데믹이 큰 영향을 미쳤지만 인간은 회복력을 지녔다. 코로나보다 ‘지속 가능성’ 이슈가 미치는 영향이 클 거라고 생각한다. 앞으론 패션뿐만 아니라 전반적으로 불필요한 물건을 사지 않으려는 경향이 강해질 듯하다.”


-유니클로는 패스트 패션이다. 지속 가능성의 적 아닌가.


“우리는 금방 쓰고 버리는 옷이 아니라 좋게 만들어서 오래 쓰도록 하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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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바 ‘옷 잘 입는 아저씨’ 문화를 이끈 사람인데, 본인만의 스타일 공식이 있다면.


“거의 매일 흰색 면 티셔츠에 파란 줄무늬 긴소매 셔츠를 입고, 바지는 일자형 청바지나 카키색 면바지, 올리브색 워크 팬츠(작업 바지 스타일)를 주로 입는다. 가을에는 그 위에 니트를 입고, 겨울에는 깃이 세워진 형태의 코트나 다운 재킷을 걸친다. 옷이 자주 바뀌는 사람보다 항상 같은 스타일로 입는 사람에게 매력을 느낀다. 늘 깨끗하게 세탁한 옷을 입는 사람, 신발이나 시계를 제대로 관리한 사람, 셔츠 소매를 멋지게 접어 입는 사람을 눈여겨봐라. 분명 멋쟁이일 테니!”


김미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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