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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향 담은 월세방, 갤러리 품은 7평 집… 그들의 ‘주거 실험’

집은 공간이라는 형식으로 구현된 삶이다. 여기 이 명제를 실천한 두 남자가 있다. 전세방 인테리어로 자신만의 공간을 꾸민 ‘첫 집 연대기’(웨일북) 저자 박찬용(38)씨. 그리고 아파트, 빌라, 한옥을 거쳐 협소주택에 정착한 ‘집을 쫓는 모험’(브.레드) 저자 정성갑(45)씨. 마침 둘 다 잡지 에디터 출신이고 둘 다 집 이야기를 최근 책으로 냈다. 셋방도 좁은 집도 취향을 담은 보금자리가 될 수 있다는 메시지가 담겨 있다.

조선일보

'첫 집 연대기'의 배경이 된 서대문구 전세방에 앉은 박찬용씨. 이 집에 살기 위해 도배를 했고 화장실을 고쳤다. 바닥에 원목 마루를 깔기 위해 시공 전문가까지 구했으나 집 주인이 장판을 깔아 주는 바람에 마루는 포기했다. /장련성 기자

전세방에서의 취향 실험

서울 서대문구 언덕배기 단독주택 2층의 박찬용씨 방에는 어찌할 수 없는 낡음의 흔적들이 곳곳에 뚜렷했다. 동시에 이 방엔 단지 낡기만 한 여느 셋방들과는 분명 다른 점도 있었다. 예컨대 화장실 바닥의 적갈색 타일은 어느 건축 자재 도매상에 남아 있던 이탈리아제를 발품으로 구해다 깐 것이다. 스위스제 의자나 아일랜드산 대리석 북엔드처럼 틈틈이 사 모은 물건들이 남다른데 책장·옷장과 침대는 이케아 제품이다. 큰 가구는 형편에 맞게 저렴한 것을 사되 “최대한 서글픈 티가 덜 나게” 흰색으로 통일했다고 한다.


박씨는 2017년부터 이 방에서 살고 있다. 부모님과 살던 아파트에서 독립하면서 “넓고 마당 있는 집에서 살고 싶어서” 보증금 500만원에 월세 35만원을 주고 계약했다. 인테리어에 돈을 들였지만 박씨는 “4년 동안 월세를 조금씩 더 냈다고 생각하면 전혀 아깝지 않다”면서 “인테리어 공사를 또 한다면 덜 헤맬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박씨는 “이 집이 라이프 스타일의 어떤 대안이라고 주장할 생각은 전혀 없다”면서도 이 집의 의의를 “저성장 시대의 취향 추구 실험”으로 정리했다. “저희 세대는 높아진 눈만큼 잔액은 올라가지 않은 채로 어른이 돼 가고 있습니다. 이런 시대에 ‘젊은 어른’들이 어떻게 살 수 있을지 개인을 재료로 실험을 한번 해본 셈이죠.”


집이 달라지면 생활도 달라진다. 박씨는 이 집에 살면서 “챙겨줄 사람이 없으니 운동도 더 하고 건강에 신경 쓰게 됐다”고 했다. 배달 음식도 줄였다. 아파트와 달리 이곳에선 음식을 받으려면 외부 계단을 내려가 대문까지 나가야 하기 때문이다.

취향 담은 월세방, 갤러리 품은 7평 집… 그들의 ‘주거 실험’

서울 누하동에 지은 주택 3층 주방에 선 정성갑씨. "한 번 더 짓는다면 더 잘 지을 수 있을 것 같다. 집을 지은 게 끝이 아니라 시작"이라고 했다. /김지호 기자

아파트 대신 협소 주택

종로구 ‘서촌’에 있는 정성갑씨네 3층집은 좁았다. “땅이 18평, 1층 7평, 2층 6평, 3층은 8평”이라고 했다. 1층은 거실이자 정씨가 대표로 있는 한 점 갤러리 ‘클립’, 2층은 두 딸의 방, 3층은 주방과 안방이다. 창 밖으로 인왕산과 300년 된 배화여대 회화나무가 보였다. 정씨는 “집이 좁아서 창문을 크게 냈는데 운 좋게 좋은 풍경을 담은 액자처럼 보인다”고 했다.


정씨는 “협소주택에도 중요한 공간 한두 곳은 확보할 수 있는 것 같다”고 했다. 이 집에선 갤러리와 욕조가 그런 곳이다. 갤러리는 1층의 1평 정도를 비워서 사진·공예 등 작품을 1점씩 선보이고 판매하는 공간이다. 2층 화장실은 세면대도 밖에 둘 만큼 좁지만 목욕 좋아하는 가족들을 위해 욕조를 3층 주방 옆에 따로 만들었다.


2019년 가을 이 집을 짓기까지 정씨는 아파트, 빌라, 한옥에 살았다. 이사를 다니며 “아파트는 나하고 안 맞는다는 걸 알게 됐다”고 했다. “아파트 사는 동안 좋았던 건 가격이 오른다는 사실이었지만, 답답했어요. 그땐 몰랐는데 한옥에 살면서 알게 됐죠. 밖에서 스트레스 받아도 마당에서 몸을 움직이고 바람을 쐬면 자연스럽게 풀리곤 했는데 아파트엔 그런 충전되는 느낌이 없어요.”


책에서 그는 아파트를 사고팔아 돈 벌고 손해 본 얘기, 집 짓는 데 땅값까지 6억원 정도 들어간 내역까지 상세하게 밝혔다. 한국에서 환금성은 주거 선택의 중요한 기준이지만 정씨는 집을 지으며 그 점은 고려하지 않았다고 했다. “환금성이란 건 2~3년 뒤에 어떻게 될지 모르는 거잖아요. 그 막연한 미래를 위해 사는 삶보다는 오늘, 이번 주말, 이 계절에 느끼는 행복이 저에겐 더 중요합니다.” 채민기 기자


[채민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