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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by 조선일보

첩첩산중 겨울왕국, 99칸 고택의 하룻밤...‘윤스테이’ 안 부럽네

[아무튼, 주말] 뚜벅뚜벅 소도시 경북 청송 여행


새하얀 눈과 얼음으로 뒤덮인 겨울 장관 앞에선 누구나 동심을 만난다. 동화 같은 풍경 속에서 아이처럼 뛰놀다 보면 매서운 추위도, 코로나로 꽁꽁 언 현실도 잠시나마 잊게 된다.


그래서 떠난 곳이 경북 청송이다. 봉화, 영양과 함께 이른바 ‘BYC’라고 하는 경북 대표 오지다. 몇 해 전 상주영덕고속도로가 개통하면서 접근하기 좋아졌지만 면적의 80%가 산지인 청송은 여전히 첩첩산중이다. 역설적으로 청송의 매력은 바로 여기에 있다. 산골짜기마다 때 묻지 않은 자연과 비경이 숨어 있다. 얼음골도 그중 하나다.


얼음골에선 겨울이면 거대한 빙벽이 펼쳐진다. 높이 62m 인공 폭포가 추위로 꽁꽁 얼면서 새하얀 얼음 폭포가 된다. 시간이 멈춘 듯 얼어버린 물줄기는 영화나 동화에서 볼 법한 신비로운 장관을 연출한다. 얼음골을 ‘한국의 겨울 왕국’이라고 부르는 이유다. 얼음골은 2017년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으로 등재된 청송의 지질 명소 중 한 곳. 얼음골을 시작으로 주왕산과 신성계곡 등 청송의 지질 명소를 둘러볼 수 있다.


지질 명소가 아니라도 청송을 여행하는 법은 다양하다. 조용한 자작나무 숲과 그림 같은 주산지를 찾아도 된다. 작은 위로와 휴식이 될 풍경들이다.


◇얼음골에서 인생샷 찍고 자작나무 숲으로


얼음골은 청송의 동쪽 끝 내룡리 깊은 골짜기에 있다. 여름에는 시원한 바람이, 겨울에는 따뜻한 바람이 나오고 영상 32도가 넘으면 얼음이 어는 신비한 계곡이다. 겨울이면 높이 62m 인공 폭포가 거대한 빙벽으로 변신한다. 새하얀 얼음으로 뒤덮인 빙폭(氷瀑)은 겨울에만 볼 수 있는 장관이다. 동화에서나 볼 법한 얼음골 풍경이 소셜미디어에서 ‘현실판 겨울 왕국’ ‘인생샷 명소’ 등으로 알려지며 올겨울 청송을 찾는 사람이 많아졌다. 아예 동화 속 주인공처럼 요정 복장이나 드레스를 입고 나타나는 사람도 볼 수 있다.


가까이서 보니 그 마음 알 것 같다. 청송이 아니라 다른 나라, 다른 공간에 와 있는 듯한 기분이 들게 하는 마법 같은 풍경이다. 얼음골 빙벽은 12월에서 2월 중순까지 볼 수 있다. 그런데 아쉽게도 취재를 다녀온 다음 날인 21일 청송군은 얼음골을 임시 폐쇄한다고 발표했다. 얼음골을 찾는 관람객이 늘면서 한정된 관람 장소에 인파가 몰려 사고와 코로나 확산이 우려된다는 이유다. 청송군은 확진자 추세와 거리 두기 단계 등을 고려해 곧 개장 여부를 결정하기로 했다. 당분간은 빙벽을 도로에서 차를 타고 가면서 멀리서 감상해야 한다.


얼음골과 함께 요즘 청송 여행 코스로 뜨는 곳이 무포산에 조성된 자작나무 숲이다. 강원도 인제에서나 보던 자작나무 숲을 청송에서 볼 수 있다니! 얼음골에서 914번 지방도를 따라 청송 방향으로 10분 정도 차를 달리면 피나무재(청송군 주왕산면 주산지리 산 40-1)가 나온다. 자작나무 숲으로 향하는 임도가 시작되는 곳이다. 여기서 4㎞를 들어가면 자작나무 숲을 만날 수 있다. 굽이굽이 이어진 좁은 임도를 달리다 보면 어느새 쭉쭉 뻗은 자작나무 하얀 줄기가 눈앞에 나타난다.


1996년부터 청송군이 무포산에 조성한 자작나무 숲은 8만㎡ 규모다. 추운 지역에서 주로 자라는 자작나무가 청송 산지에서 울창한 숲을 이뤘다. 자작나무 숲에는 산책로가 조성돼 있다. A코스(2.1㎞)·B코스(1.1㎞) 어느 쪽이든 가볍게 걸을 만하다. 새하얀 자작나무 숲은 겨울에도 아늑한 풍경을 선사한다. 숲을 배경 삼아 사진 찍는 사람이 많다. 사진으로 담기에도 좋지만 조용해서 쉬어 가기에도 좋은 숲이다. 임도가 좁고 교행 가능한 곳이 많지 않으므로 차를 몰 때 안전에 유의해야 한다. 피나무재 입구에서 걸어 이동하는 것도 방법이다.


◇자연이 빚은 예술, 청송의 지질 명소


주왕산은 겨울에도 빼놓을 수 없는 청송의 대표 여행지다.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에 등재된 지질 명소 24곳 중 9곳이 주왕산에 있다. 주왕산국립공원 입구에 있는 대전사(大典寺)에서 용추폭포까지 2.2㎞ 구간은 주왕산의 절경을 감상할 수 있는 트레킹 코스다. 주방천을 따라 이어지는 탐방로는 마치 거대한 협곡과 기암괴석, 주상절리 등 자연이 빚은 예술품을 감상하는 갤러리 같다. 겨울이라 한적한 산길을 걸으며 여유롭게 감상할 수 있다.


시작부터 압도적이다. 대전사 보광전 뒤로 보이는 ‘기암 단애’를 두고 하는 말이다. 일곱 바위가 동그랗게 솟은 모습이 산봉우리를 움켜쥔 손 같다. 수천만년 전 주왕산 일대에서 일어난 화산 폭발로 화산재와 용암이 엉겨 붙어 굳어진 응회암 덩어리가 침식돼 만들어진 절경이다. 주왕산에서 만나는 장관은 대부분 이렇게 만들어졌다. 가파른 절벽과 골짜기가 이어지는 ‘용추협곡'은 주왕산 최고 절경으로 꼽을 만하다. 자하교에서 용추폭포까지 1㎞ 구간은 보이는 풍경 하나하나가 예술이다. 옛 선비들이 신선 세계로 가는 길이라고 한 이유를 알 듯하다.


청송의 또 다른 지질 명소를 보고 싶다면 신성계곡으로 가야 한다. 길안천 따라 이어지는 15㎞ 구간에 방호정, 신성리 공룡발자국 화석, 만안자암 단애, 백석탄 포트홀 등 지질 명소가 모여 있다. 가장 하류에 있는 백석탄(白石灘)은 신성계곡의 하이라이트다. ‘하얀 돌이 반짝이는 개울’이란 이름처럼 하얗고 눈부신 퇴적암이 계곡에 깔려 있다. 마치 춤을 추듯 곡선을 그리는 바위 모양이 신기하다. 알프스 연봉의 설산을 축소해 놓은 듯해 ‘미니 알프스’라고도 한다. 백석탄은 개울 바닥의 바위가 오랜 세월 풍화·침식되면서 깊은 구멍이 생긴 포트홀(pothole·돌개구멍)이다. 상상할 수 없는 시간이 만들어낸 작품을 느긋하게 감상해보길 권한다.


◇자연이 그리는 수묵화 한 폭


주산지에 갈 땐 새벽 일찍 서둘러야 한다. 새벽 물안개 피어오르는 장관을 눈에 담기 위해서다. 물안개를 놓치더라도 아쉬울 건 없다. 이른 아침 호젓한 주산지 풍경을 만끽할 수 있으니. 주산지는 조선 경종 때(1721년) 완공한 농업용 저수지다. 길이 200m, 폭 100m로 규모가 크진 않지만 아무리 가물어도 300년이나 물이 마른 적 없다고 한다.


주산지로 향하는 숲길도 아름답지만 산으로 둘러싸인 주산지의 아늑한 풍경은 언제 봐도 그림 같다. 주산지 풍경을 완성하는 건 물속에 뿌리 내린 고목들이다. 물에서 자라는 수령 300년 이상의 왕버들은 신선 같은 자태를 뽐낸다. 꽁꽁 얼어버린 저수지에 서 있는 왕버들은 하얀 눈 세상과 어우러져 담백한 수묵화를 그려낸다.


주산지에 자연이 그린 수묵화가 있다면 진보면 신촌리 군립청송야송미술관엔 인간이 그려낸 거대한 수묵화가 있다. ‘청량대운도(淸凉大雲圖)’는 경북 봉화 청량산을 그린 세계 최대 실경 산수화다. 가로 46m, 높이 7m, 전지 400장 분량에 이른다. 야송 이원좌(1939~2019) 화백이 1992년 180일에 걸쳐 완성한 초대형 작품이다. 그러나 유례없는 크기 때문에 변변한 전시조차 못 한 채 20년간 수장고에 머물러야 했다.


2013년 군립청송야송미술관에 청량대운도전시관이 세워지면서 빛을 보게 됐다. 청량대운도전시관은 청량대운도만을 위한 미술관이다. 오직 한 작품을 위한 전시관이지만 거대한 작품이 공간을 꽉 채운다. 1, 2층을 오가며 작품을 자세히 들여다볼 수 있다.


다만 전시관은 코로나 확산 방지를 위해 휴관 중이다. 전시관이 다시 문을 열면 세계 최대 실경 산수화와 한 작품을 위한 특별한 미술관을 잊지 말고 꼭 들르기를 추천한다. 차로 10분 거리에 김주영 작가의 대하소설 ‘객주'를 주제로 만든 객주문학관도 있다.


◇청송에서 보내는 색다른 밤


‘윤스테이’처럼 고택에서 보내는 하루는 어떨까? 최근 tvN 예능 프로그램 ‘윤스테이’를 보며 고택에 대한 호기심이 생겼다면 청송에서 체험해보는 것도 좋겠다.


청송 파천면 덕천마을에는 강릉 선교장, 보은 선병국 가옥과 함께 ’99칸 고택'으로 꼽히는 송소고택이 있다. 1880년 조선 영조 때 만석꾼 소리를 들은 심처대의 7세손 송소 심호택이 지은 집이다. 경주 최 부자와 함께 9대에 걸쳐 250년 동안 만석의 부를 누린 영남 대부호의 고택답게 조선시대 상류 주택의 특징을 잘 간직하고 있다. 송소고택에서 묵으며 뜨끈한 온돌방과 한옥의 운치를 즐길 수 있다. 책방, 누마루방, 행랑채 등 2인 5만~10만원, 큰사랑채, 안사랑방 등 4인 12만~15만원에 하룻밤을 보낼 수 있다.


송소고택 외에도 송정고택, 창실 고택 등 덕천마을에는 숙박 체험 가능한 고택이 많다. 송소고택 앞 ‘심부자밥상’에서 식사할 수 있고 바로 옆 한옥 카페 ‘백일홍’은 쉼터가 돼준다.


편안한 리조트를 원하면 ‘소노벨 청송’(구 대명리조트 청송)을 찾을 것. 노천에서 온천욕을 즐기는 솔샘온천이 있어 피로를 풀기 좋다. 솔기온천이 유명한 ‘주왕산온천관광호텔’도 있다.


청송에서 한 끼는 부곡리 달기약수와 진보면 신촌리 신촌약수 등 이름난 약수로 끓여 낸 ‘약수닭백숙’이 진리다. 달기약수와 신촌약수 모두 탄산이 많고 철 성분을 함유해 위장병, 피부병, 신경통 등에 효능이 있다고 전해진다. 약수로 끓인 백숙은 푸른 빛이 돌고 기름이 적으며 부드럽다. 달기약수와 신촌약수 주변에 이름난 닭백숙 식당이 모여 있다.


닭불고기도 인기다. 퍽퍽한 닭가슴살을 다져서 직화로 구워 낸다. 닭불고기의 원조라는 신촌식당의 ‘닭불백숙’은 닭다리를 약수로 끓인 백숙과 불향 가득한 부드러운 닭불고기를 세트로 맛볼 수 있다.


청송송어장횟집의 송어찜과 송어회는 닭 요리 일색인 청송에서 별미로 꼽힌다. 청송 사과로 만든 새콤달콤한 ‘청송 사과 막걸리’를 곁들이면 금상첨화.


[청송=강정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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