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주교는 자살 금하지 않나요?" 염 추기경 조문에 설왕설래
천주교 교리엔 "자살은 죄이지만
자살한 사람에 대한 기도는 허용"
염수정 추기경이 11일 종로구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 차려진 고 박원순 서울시장의 빈소를 찾아 조문하고 있다.(서울시 제공)/뉴시스 |
“천주교는 자살을 큰 죄로 여기지 않나요?”
지난 11일 오전 천주교 서울대교구장 염수정 추기경이 서울대병원에 마련된 고(故) 박원순 서울시장 빈소를 찾아 조문한 이후 이 같은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박 시장의 빈소엔 각 종교 지도자들이 잇달아 찾아 조문하고 있다. 지난 10일 오후 대한불교조계종 총무원장 원행 스님이 빈소를 찾았다. 박 시장은 고교 시절 불교학생회 활동을 했다. 개신교계 인사들도 조문한 것으로 알려졌다.
염 추기경은 11일 오후엔 100세를 일기로 별세한 백선엽 장군의 빈소도 찾아 조문했다. 그럼에도 염 추기경의 박 시장 조문에 시선이 쏠린 것은 천주교가 자살을 엄격히 금지했던 기억이 뚜렷하기 때문이다. 염 추기경의 조문이 자살을 금한 천주교 교리와 배치되지 않느냐는 이야기다.
이에 대해 12일 천주교 서울대교구 홍보위원회 부위원장 허영엽 신부는 “천주교 교리가 자살을 큰 죄로 규정하고 금지하는 것은 맞지만 자살자를 위해 기도하는 것이 교리에 어긋나는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허 신부에 따르면 ‘가톨릭 교회 교리서’는 크게 세 가지 이유에서 자살을 큰 죄로 여기고 있다. 첫째 ‘우리는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맡기신 생명의 관리지이지 소유주가 아니다. 우리는 우리의 생명을 마음대로 처분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 또 ‘자살은 자기 생명을 보존하고 영속시키고자 하는 인간의 본성적 경향에 상반되는 것이며 올바른 자기 사랑에도 어긋나며, 이웃사랑도 어기는 것’이라고 규정했다. 또한 자살이 모방 행위로 이어질 것을 우려하는 차원에서 금지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금지 규정 다음엔 이런 구절이 있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람들의 영원한 구원에 대해 절망해서는 안 된다. 하느님께서는 당신만이 아시는 길을 통해서 그들에게 구원에 필요한 회개의 기회를 주실 수 있다. 교회는 자기 생명을 끊어 버린 사람들을 위해서도 기도한다.’
허 신부는 “가톨릭교회는 자살에 대해 반대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다. 하지만 자살한 이들을 위해서도 기도를 한다. 그들이야말로 위로와 기도가 필요한 이들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천주교 서울대교구 내에서도 박 시장에 대한 조문이 적당한지에 대한 논의가 있었으나 ‘위로한 기도가 필요한 이’라는 점이 감안돼 염 추기경의 조문을 결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프란치스코 교황도 “교회는 자살한 사람을 위해 장례식을 행하지 않는다”며 “사람이 목표를 향해 계속 걷지 않고, 혹은 자기 삶의 고난을 극복하지 못하고 스스로 삶을 포기했기 때문”이라며 자살에 대해 반대입장을 분명히 한 바 있다. 그러나 교황도 “그러나 나는 그들을 부인하고 싶지 않다. 오로지 그 문제는 하느님의 손에 맡길 수 밖에 없기 때문”이라고 말한 바 있다.
요약하면, 가톨릭 교회 교리는 자살 자체는 반대하고 금하지만 자살한 사람에 대해서는 기도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교리에 근거해 지난 2009년 노무현 전 대통령의 영결식엔 당시 천주교 서울대교구장 정진석 추기경이 불교, 개신교, 원불교 지도자와 함께 참석하기도 했다. 노 전 대통령은 ‘유스토’란 이름으로 세례 받은 천주교 신자였다.
염 추기경은 11일 박 시장 빈소를 찾아 조문을 마치고 나오며 취재진에 “박 시장님이 갑자기 세상을 떠나 참 안타깝다”며 “유족에게 위로하고 고인을 위해 기도했다”고 말했다. 자살한 이에 대한 교리의 범위 내에서 위로하고 기도했다는 뜻이다.
[김한수 종교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