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찌르고, 때리고, 태우고… ‘저주 인형’에 복수하는 사람들

[아무튼, 주말]

“나 힘든 만큼만 돌려받길”

구매 리뷰 100건 살펴보니

“음기 가득한 자정부터 과일에 북어, 술까지 올려 상차림하고 그 못된 인간들 사진도 부적에 함께 넣고 간절히 기도했어요.”


학교 폭력 피해 가족으로 추정되는 구매자가 ‘저주 인형(voodoo doll)’ 사용 후기를 남겼다. “신기하게도 어느 정도 효과를 본 것 같아요. 저희 아이를 괴롭힌 세 명 모두 구설수나 망신살이 들어갔고 한 명은 지지부진하던 조사도 전보다 적극적으로 흘러갔어요. 하지만 아직 죗값을 덜 받은 것 같고 두 명은 여전히 괴롭히고 있어요.” 판매자가 답글을 달았다. “대부분의 고객님 사연이 기구합니다. 솔직히 이 제품이 많이 팔린다는 게 슬픈 현실인 것 같습니다.”


원한의 대상을 떠올리며 못으로 혈자리를 찌르고, 냉동실에 넣어 얼리고, 저주의 부적과 불태우도록 제작된 작은 밀짚 인형. ‘저주 인형’을 찾는 사람이 늘고 있다. 온라인 상점 수십 곳에서 1만원 미만의 싼값에 절찬리 판매되는 중이다. 사람 크기의 대형 허수아비가 해외(중국)에서 배송되기도 한다. “효과가 100% 확정된 제품이 절대 아닙니다. 스트레스 해소 및 심신의 안정을 위해서 사용을 권장드립니다.” 이들은 왜, 누구 때문에 ‘저주 인형’을 주문하는가. 리뷰 수백 건 중 구매 목적과 사연이 드러난 100건을 추려 분석해 봤다. 한국 사회의 고질적 병폐가 함축된 자료였다.

◇직장 내 괴롭힘부터 층간소음까지


조선일보

그래픽=송윤혜

‘저주 인형’ 구매를 부추긴 저주의 대상은 직접 복수가 어려운 상대가 대부분이었다. 대거리할 수 있다면 저주 같은 건 필요 없을 것이다. 가장 큰 비율을 차지한 대상은 직장 상사(43%)였다. 갑질 신고 등 제도적 장치가 있긴 하지만 부담을 느끼는 경우가 많고, 괴롭힘으로 단정 짓기 애매한 업무적 불화까지 해결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사무실 서랍에 두고 짜증 날 때마다 한 대씩 때리는 중입니다.” 파국으로 끝난 전 연인의 파멸을 기원하는 경우(28%)도 상당수였다. “소원 제대로 이뤄졌네요. 지질한 놈. 얼마 전에 차인 것 같던데, 평생 꽃뱀이나 만나 아파하고 세월 다 보내길.”


사법 당국에 잡히지 않은 사기꾼(16%)도 ‘저주 인형’ 활황의 큰 이유. 대검찰청에 따르면 국내 사기 범죄는 2021년 29만8586건, 2022년 33만390건, 올해 2분기는 전년 동기 대비 7.5% 증가세를 보였다. 그리고 가장 한국적인 갈등, 층간소음(4%)이 있다. 인구 밀집과 이기주의, 대응 불가의 총체이기 때문이다. 살인까지 야기하는 심각한 피해지만, 직접 찾아가 항의할 경우 되레 스토킹 혐의로 처벌받을 수도 있다. ‘저주 인형’을 사는 이유다. “7년간 층간소음으로 불안 장애와 공황 장애 약까지 먹고 있다. 부탁도 하고 선물도 하고 하소연도 하고…. 이제 나도 못 참아. 벌 좀 받았으면.”

◇“바보 같지만 이렇게라도 풀어야”


조선일보

한 '저주 인형' 구매자가 판매자에게 보냈다며 홍보에 활용되고 있는 메시지 내용. /인터넷 캡처

동봉된 부적에 저주 대상의 이름 등 인적 사항을 적고, 저주의 내용을 적은 뒤 주머니에 넣어 인형 목에 걸어둔다. 그리고 나름의 처형을 거행한다. 물론 미신에 불과하다. 이런 흑주술(黑呪術) 자체가 “바보 같아 보일 수 있다”는 점도 구매자 대부분이 인지하고 있었다. 일부러 택배 상자에 붙이는 송장에서 제품명을 지우고 출고해 달라는 요청이 적지 않은 이유다. 그러나 “저주가 통하든 통하지 않든 확실히 스트레스가 풀린다”는 고백이 리뷰의 대다수를 차지한다. “음식 말고 이렇게 자주 재구매한 건 처음이네요.”


캐나다 윌프리드로리에대학교 연구진은 저주 인형에 화풀이하면 그렇지 않을 때보다 실제 스트레스 수치가 내려간다는 사실을 실험으로 증명해 2018년 ‘이그노벨상(괴짜노벨상)’을 받았다. “가상의 복수가 가치가 있다”는 것이다. 다만 김경일 아주대 심리학과 교수는 “인형이 저주 대상과 너무 똑같은 모습이면 오히려 효과가 반감될 수 있다”고 조언했다. 지난해 출간한 책에 실린 ‘저주 인형, 정말 효과가 있을까?’라는 글이다. “저주하려는 사람과 똑같이 생긴 인형에 핀을 찌르면 그 사람에게 진짜 물리적인 상해를 입히는 것 같아 죄책감이 들 수 있기 때문이죠. 즉 스스로를 통제하지 못하고 너무 과하게 행동한 것은 아닌지 후회하면서, 마음이 정화되기보다 되레 기분이 나빠지는 경우도 생깁니다.”

◇저주, 합법과 불법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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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한의 상대방을 떠올리면서 스트레스를 해소하라며 '저주 인형' 판매자가 올린 예시 사진. /인터넷 캡처

‘저주 인형’ 판매자들은 “효과가 입증되지 않았다”고 빠져나갈 구멍을 마련해 두면서도 “저주 상대의 머리카락 또는 손톱, 없다면 생년월일이 적힌 종이와 쌀 한 줌을 부적 주머니에 넣고 인형과 함께 묶으라”는 근거 없는 사용법을 고지하거나 “날카로운 못이나 가위를 준비해 아프게 찌르라”며 자극한다. 께름칙하지만 이 같은 저주가 형사 처벌 대상이 되지는 않는다는 것이 법조계 판단. 법무법인 수안 조성우 변호사는 “혼자 인형에 저주를 거는 것만으로는 상대방에 대한 해악이 고지되지 않아 협박죄 등이 성립하지 않는다”면서도 “소셜미디어 등을 통해 상대를 특정할 수 있는 단서가 사진·영상으로 유통될 경우 모욕죄로 처벌받을 수 있다”고 했다.


간혹 공개 저주가 이뤄지기도 한다. 지난 2월 한 좌파 시민 단체는 대통령 얼굴 사진을 붙인 인형에 장난감 활을 쏘도록 하는 ‘윤석열 대통령에게 활쏘기’라는 저주의 이벤트를 열어 빈축을 샀고, 지난해 대선 기간에는 반대 진영의 한 지지자가 “이제부터 오살(五殺) 의식을 시작하겠다”며 윤 대통령을 겨냥한 인형을 날카로운 흉기로 찌른 사진을 페이스북에 게시해 논란이 일었다. 비판이 거세지자 게시글은 삭제됐다.

◇저주는 무덤을 두 개 파는 일

저주를 뒤집으면 ‘주저’가 된다. “죽이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혐오스러운 인간이 있어 구입했는데 막상 받고 나니 저주를 걸지 말지 주저하게 되네요. 화가 가라앉으면 저 자신을 위해 기도하려고요.” 복수의 여정을 시작하기 전에는 두 개의 무덤을 파라는 옛말이 있다. 누군가를 해하려 할 때 자신도 다칠 수 있기 때문이다. “진짜 이렇게까지 해야 할까 하면서 나를 슬프고 힘들게 한 인간 때문에 주문했어요. 근데 저주하려고 마음 먹은 순간부터 자꾸 몸이 아프네요.” 부정적인 기운이 전신을 지배한 탓이다.


저주 인형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유서가 깊으나 늘 화가 뒤따랐다. 연산군의 모친인 폐비 윤씨, 숙종의 후궁 장희빈 등이 저주 인형으로 악행을 벌여 사약을 받았다고 전해진다. ‘세종실록’에도 섬뜩한 기록이 남아있다. 1424년, 사촌과의 간통이 탄로 날까 두려워 남편을 없애려 한 제주도 여자 장이(長伊). 무녀를 통해 남편의 머리카락과 풀로 인형을 만들어 온몸에 유자나무 가시를 꽂고, 3일 내에 급사하라는 저주의 부적까지 써 신당 밑에 묻었다. 정말 며칠 지나지 않아 남편은 숨졌다고 한다. 그러나 결국 범행이 발각돼 장이는 능지처참됐고, 공모자들도 큰 벌을 받았다.


[정상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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