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가 평평하다는 황당한 주장, 유튜브선 먹힌다
시청시간 늘리는 알고리즘으로 극단적 콘텐츠도 수억번 추천돼
유튜버들|크리스 스토클-워커 지음|엄창호 옮김|미래의창|336쪽|1만6000원 지구가 평평하다는 주장을 지지하는 사람이 있을까? 유튜브 내에는 있다. 전직 유튜브 엔지니어 기욤 샤슬로의 조사에 따르면 지구가 평평하다고 주장하는 동영상은 유튜브의 자체 알고리즘에 의해 수억 번 추천됐다. 교양 있는 지성인이나 과학자는 그런 동영상을 보더라도 ‘참 멍청한 동영상이네’라고 웃어넘기고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는다. 하지만 매월 유튜브를 보는 20억명 가까운 사람 모두가 박사학위 소지자는 아니다. 일부는 동영상 내용을 그대로 믿는다.
이른바 '빨간약' 동영상으로 불리는 '가짜 뉴스'가 활개치는 것도 그 때문이다. '빨간약'은 영화 '매트릭스' 주인공이 빨간약을 먹은 다음 진짜 세상을 보게 된다는 것에서 유래한 말. 유튜브는 "빨간약을 먹었다"고 주장하며 음모론을 퍼뜨리는 사람들이 활개치는 공간이다. 알렉스 존스는 '유대인 마피아'가 세계를 좌지우지한다는 견해를 퍼뜨렸다. 그는 2018년 8월 채널이 폐쇄되기까지 240만명이 넘는 구독자를 보유했다.
영국 칼럼니스트이자 유튜브 관련 특종으로 유명한 저자는 지난해 출간된 이 책에서 "믿을 수 없고 혐오스러운 내용을 선동하는 사람들이 소셜미디어를 통해 이전에는 고립돼 있던 동조자들과 연결되고 있다"고 말한다. 미국의 테러리즘 감시 조직 SITE 인텔리전스 그룹의 리타 카츠는 최근까지도 유튜브가 지하드 전사들에게 중요한 볼거리였다고 말한다. 알카에다와 ISIS는 이제 입장 표명을 위해 유튜브보다는 데일리모션, 드롭박스를 이용한다. 그럼에도 유튜브에는 여전히 극단적인 콘텐츠가 존재한다.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이 처형됐다는 동영상은 그나마 약한 편이다. 한 달에 채널 1000개가 '폭력과 심한 극단주의를 조장한다'는 이유로 제거되고 매달 동영상 약 3만1000개가 지나치게 폭력적이라는 이유로 삭제된다. 샤슬로는 "유튜브가 시청 시간을 늘릴 목적으로 극단적인 음모론을 조작한다"고 주장한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광고 대참사(adpocalypse)'는 유튜브의 극단성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다. 2017년 2월 영국 '타임스'는 게릴라 테러리스트들이 동부 아프리카 테러리스트 집단인 알 샤바브에 충성을 맹세하는 유튜브 영상에 휴가지 배너 광고가 실렸다는 걸 폭로했다. 벤츠, 혼다, 버라이즌 등 유명 브랜드들이 신나치주의자, 이슬람 테러리스트처럼 증오를 퍼뜨리는 악당의 무리가 나오는 동영상에 대거 등장하기도 했다. 펩시, 월마트, 존슨앤드존슨 등 다국적 기업은 유튜브가 상황을 정리할 때까지 광고 게재를 중단했다. 2019년 초에 두 번째 광고 대참사가 일어났다. 어린아이가 등장하는 여러 동영상 댓글에서 소아성애적 내용이 발견돼 네슬레 같은 광고주들이 광고를 거둬들인 것이다.
유튜브는 2005년 이민자 출신의 25세 청년 자베드 카림이 샌디에이고 동물원 코끼리 우리 앞에서 "코끼리 코가 참 길다"는 의미 없는 멘트를 날리며 엉성한 19초짜리 동영상 하나를 찍어 동료들과 함께 유튜브닷컴이라는 사이트에 올리며 탄생했다. 2006년 10월 구글이 16억5000만달러에 매입했다. 오늘날 유튜브의 가치는 어림잡아 1400억달러는 나간다. 지난 5년 동안 유튜브 시청 시간은 하루 1억 시간에서 10억 시간으로 치솟았다. 전체 인터넷 사용자의 69%가 이용해 사람들이 가장 많이 보는 동영상 서비스다. 날마다 새로 올라오는 동영상은 약 57만6000시간 분량인데, 이는 넷플릭스보다 훨씬 많다. 인터넷 방문 순위도 구글에 이어 2위이며 페이스북보다 앞선다.
언어 장벽도 없다. 유튜브 채널 10개 중 채널 3개만이 영어 사용권 국가에 기반을 두고 있으며, 미국과 영국에 기반을 둔 유튜버 중 3분의 1가량이 영어 이외 언어로 방송한다. 인터넷 사용자의 95%가 약 100개의 현지어로 번역된 사이트를 통해 유튜브를 보고 있다. 구글은 약 90국에 광고 수입에 대한 수익금을 보낸다.
저자는 “유튜브는 인간 세상의 부자와 괴짜, 선남선녀와 미치광이를 흉내 낸 콘텐츠로 가득한, 영상과 음향 콘텐츠의 만화경”이라 말한다. 유튜브의 역사, 해악, 유튜버들의 등장 등을 비판적으로 파헤친 책으로 기술적 지식 없이도 흥미롭게 읽힌다. “유튜브로 인해 사회적 통념을 불신하는 세대가 등장해 그 세력을 넓혀가고 있으며 그를 막기엔 이미 너무 늦었다. 유튜브의 알고리즘은 정상적인 사회 구성원을 은둔형 외톨이로 손쉽게 바꿀 수 있다”는 저자의 우려가 절절하다. 원제 YouTubers.
[곽아람 기자]
- Copyrights ⓒ 조선일보 & 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