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가 내 새끼” 눈물의 장례식장… 스타트업이 애견 봉안까지 책임집니다
펫 장례문화 바꾸는 <21그램>
지난 2일 오후 경기도 광주시 오포읍의 동물장례식장 21그램. 황토빛 2층 벽돌 건물 안으로 들어서니 잔잔한 클래식 음악이 흘러나왔다. 향 냄새도 나지 않았다. 마치 북유럽풍 카페에 온 듯했다. 단지 대기실 벽 뒤에서 들리는 숨죽여 우는 소리와 다과 옆에 놓인 진통제가 이곳이 카페가 아닌 장례식장임을 알게 해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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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새 경기도 안양으로 출장 나갔던 운구차가 도착했다. 장례지도사 민관홍 팀장이 카니발 운구차 운전석에서 먼저 내려 너비 1m, 높이 20㎝ 크기의 파란 상자를 꺼냈다. 그 안에는 12세 반려견 향이가 누워 있었다. 다른 직원들이 뒤따라 내리는 50대 여성을 대기실로 안내했다. 염습실에서 반려견을 수습하는 동안, 두 평 남짓한 추모실 왼쪽 벽에는 생전 향이 사진들이 빔프로젝트를 통해 비춰졌다. 10분 뒤 사다리꼴 모양 종이관에 담긴 향이가 추모실 안으로 들어왔다. 장례지도사가 조용히 문을 닫았다. 민 팀장은 “화장 전 아이와 마지막 정을 나누는 시간”이라고 했다. 문 뒤로 흐느끼는 소리가 들렸다.
◇반려동물 인구 1500만명 시대… 장례와 추모 책임지는 스타트업
동물의 사체는 ‘폐기물'로 분류된다. 동물보호법상 반려동물이 죽으면 동물병원에서 의료 폐기물로 ‘처리’하거나, 생활 쓰레기봉투에 넣어 ‘배출’하거나, 합법 장례시설에서 화장(火葬)해야 한다. 21그램은 동물 장례식장을 운영하는 스타트업이다. 국내 반려동물 가족 1500만명 시대를 맞아 이제 반려동물의 마지막 가는 길까지 책임지는 스타트업까지 생겨나고 있는 것이다.
7년 전 전국에 10곳 남짓했던 동물 장례식장은 현재 48곳까지 늘어났다. Mint는 최근 3일간 21그램 장례식장에 머물며 총 11건의 장례를 지켜봤다. 슬픔 속에서도 가족들은 테이블에 놓인 판촉물을 보며 ‘우리 아이' 마지막 가는 길에 무슨 옷을 입힐지, 유골을 보석으로 가공할지 고민했다. 이곳은 반려동물의 마지막 가는 길을 배웅하는 곳이면서도, 반려동물 장례 산업이 태동하는 시작점처럼 보였다. 직원들은 장례가 없으면 서울 지역 동물병원을 돌며 제휴 영업을 했다.
21그램은 예약제로 운영된다. 장례 지도사 팀장 2명이 번갈아가며 24시간 전화를 받거나 온라인으로 예약을 받는다. 장례 지도사 6명은 접수부터 봉안까지 전 과정을 책임진다. 장례 비용은 기본 25만원(화장, 기본 유골함 포함)이다. 15㎏ 이상 대형 동물은 45만원이다. 장례는 보통 1시간 반~3시간이면 끝난다. 슬픔을 압축해서 겪기 때문인지 사람 장례식장보다 분위기가 훨씬 무겁고 조용했다. 21그램의 권신구(38) 대표는 “반려동물을 잃은 슬픔은 자식을 먼저 떠나 보냈을 때의 슬픔과 유사하다고 한다”고 설명했다.
이곳에는 화장 시설도 4개가 있다. 지난 2일 오전 11시. 한 가족이 커튼이 쳐진 유리벽 너머에 앉았다. 커튼이 걷히고 유리벽 건너편에서 장례 지도사가 3㎏의 포메라니안 강아지를 화장 가마 트레이 위에 올려놓았다. 미리 받은 사료와 간식도 한 줌 같이 놓인다. 이제 작별이다. 가마 문이 닫히면 커튼도 닫힌다. 무게 5㎏ 정도인 동물은 30~40분, 30~40㎏ 대형견은 3시간 이상 걸린다.
◇건축학도 둘이 공장 같은 장례문화 바꾸자고 창업
전 세계적으로 반려동물 인구가 늘어나면서 관련된 펫코노미(펫+이코노미) 시장은 성장하고 있다. 반려동물용 음식뿐 아니라 제약·장례 등 다양한 분야에 뛰어드는 스타트업이 많다. 글로벌 시장조사 업체 유로모니터에 따르면 전 세계 반려동물 관련 시장은 2018년 1230억달러에서 올해 1398억9500만달러로 팽창할 것으로 전망된다. 국내 시장 규모도 14억8860만달러(2018년)에서 17억2900만달러(2020년)로 성장할 전망이다.
대학 건축학과 동기이자 같은 건축설계사무소에서 일하던 권신구 대표와 이윤호 이사는 남들보다 펫코노미 분야에 눈을 빨리 떴다. 권 대표는 “2014년에 동물 장례식장을 설계해달라는 의뢰가 들어와 국내 장례 업체들을 답사하던 중 충격을 먹었다”고 했다. 이 이사는 “공장 같은 곳에서 ‘안전제일' 조끼를 입고 유골을 삽으로 퍼올리더라”고 말했다. 반려인이기도 한 둘은 “우리 아이들은 이런 데서 보낼 수 없다”고 의기투합했다.
사명인 21그램은 흔히 알려진 사람 영혼의 무게에서 따왔다. 사람과 동물의 영혼 무게가 다르지 않다는 뜻에서다. 하지만 당장 장례식장을 세울 돈은 없었다. 처음엔 집 모양의 원목 유골함 등 장례용품을 디자인해 팔았다. 이후 두 창업자는 반려동물 장례를 컨설팅하고 장례식장을 연결해주는 플랫폼 사업에 나섰다. 예약 관리 시스템도 직접 만들었다. 두 창업자의 목표는 21그램 장례식장을 프랜차이즈화하고, 반려동물 장례율을 80%로 끌어올리는 것이다. 현재 장례율은 20% 정도다. 이윤호 이사는 “반려동물을 책임지고 키울 수 있도록 등록제를 의무화해 장례도 함께 의무로 치를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됐으면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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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형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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