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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by 조선일보

일타강사 포기한 전직교사 “한 과목에 월 500만원? 정답 아닙니다”

[아무튼, 주말]

‘사교육 줄이자’ 책 1만부

EBS 영어 강사 정승익

EBS 영어강사 정승익씨를 지난 11일 서울 강남인강스튜디오에서 만났다. 일타강사의 길을 가지 않고 사교육을 줄이자고 주장한 이유를 묻자 "아이들에게 또 다른 길도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며 "연봉에서 '0'이 두 개나 빠졌지만 내가 잘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다"고 했다. /주민욱 영상미디어 기자

“어머니, 사교육을 줄이셔야 합니다.”


EBS에서 영어를 가르치는 정승익(40) 강사는 지난 3월에 17년간 몸담은 교단을 떠났다. 작년에 유튜브에 올린 사교육과 관련된 자신의 생각에 많은 학부모가 공감 댓글을 다는 걸 보면서, 누군가에게는 불편할 수 있는 얘기를 자유롭게 하고 싶었다. 올해 1월에 낸 책은 벌써 13쇄를 찍었고 1만부 넘게 팔렸다. 교육 분야 책 중에 이런 유의 주장을 한 책이 10쇄를 넘기는 건 거의 없었던 일이라고 한다.


“사교육 시장 종사자나, 사교육을 시키는 부모 입장에서는 매우 듣기 싫은 얘기일 수 있어요. 그런데 예상 외로 아이를 학원에 보내면서도 불안해하는 부모가 많아요. 저는 학원을 아예 보내지 말자고 하는 게 아닙니다. ‘무엇이 정답일까’ 같이 고민할 기회를 갖자는 거죠.”


정승익 강사는 퇴직 후 5개월간 전국을 돌아다니며 휴일을 빼고 100회가 넘는 강연을 했다. 학부모의 관심이 그만큼 뜨겁다. “사교육을 없애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합니다. 줄이는 것도 참 어려워요. 그러나 너무 뻔하지만 부모의 욕망과 사회적 잣대가 아이의 미래를 정할 수는 없어요. 이 시대를 살아가면서 부모가 무엇을 가르쳐야 하나 한 번 더 생각하길 권합니다.”


◇“학원 보내지 말자는 운동 아냐”


정승익 강사는 사교육 선행학습의 정점을 초등의대반이라고 봤다. “미취학 유치원생도 요새는 미·적분을 배운다고요. 좀 지나면 태교를 할 때부터 선행을 할 수도 있어요. 빨리 개선하지 않으면 각종 문제가 생길 겁니다.”


-책을 낸 계기는.


“사교육을 하는 학생은 100명 중에 80명 정도 됩니다. 그런데 인서울 대학은 7명밖에 못 가요. 재수생 등 N수생까지 빼면 5명 안팎이죠. 학원에서 선행학습에 몰빵해도 목표 달성이 어렵다는 겁니다. 그런데도 학원만 가는 게 정답인가. 이런 얘기를 작년 6월에 유튜브에서 했는데 댓글이 엄청 달렸어요. ‘나도 학원 보내지만 너무 불안하다’는 내용으로. 그래서 용기를 내서 책을 썼어요.”


-그 책이 1만부나 팔렸어요.


“솔직히 저는 안 팔릴 줄 알았어요. ‘사교육 줄이세요’란 말이 공격적이고 기분 나쁠 수 있잖아요. 그런데 강연 요청이 쇄도하더라고요. 반가웠습니다. 비슷한 고민을 나눌 수 있어서요. 30만원 줘도 기차 타고 전국을 다녔습니다. 강연 듣는 200명 중 10명이라도 생각이 바뀌면 의미 있는 일이니까요.”


-사교육이 왜 문제라고 보나요.


“집단의 믿음, 곧 신화가 문제예요. 우리 아이는 재능이 없으니 빨리 학원 보내 공부시켜야 남을 이길 수 있다고 믿는 겁니다. 그게 선행의 신화예요. 그 믿음이 굳어져서 점점 매달리죠. 대치동에선 초등학생에게 월 500만원을 쓰는 부모도 봤습니다.”


-선행 학습이 나쁜 건 아니지 않습니까.


“맞아요. 대다수가 그 선행을 따라간다는 게 문제인 겁니다. 당장 아이가 힘들고 부모는 맞벌이하면서 한 명 월급을 사교육 시장에 쏟아요. 그런데 인서울, 의대 등 목표 달성을 못 한다? 다 같이 패배자가 됩니다. 그렇게 불행해지는 가정을 많이 봤어요.”


-초등의대반이 우후죽순처럼 생겨요.


“곧 미취학, 유치원생 의대반도 생기겠죠. 전국적으로 퍼질 겁니다. 특별한 기술이 필요한 게 아니잖아요. 인력풀이 대상만 바꾼 거니까요.


-그럼 무엇을 해야 할까요.


“실제 살아가는 데 더 중요한 건 노력이에요. 제가 늘 말하는 건 ‘재능×노력+선행’입니다. 노력이 제로면 그냥 제로인 거예요. 누가 도와줘서 하는 건 의미 없고 스스로 해야 하는데, 학원에만 의지하죠. 인내와 근성이 있어야 공부도 하는데 그걸 기를 시간이 없는 거예요.”

/주민욱 영상미디어 기자

◇“비난이 아니라면 비판은 환영”


그는 지난 5개월간 전국을 돌아다니며 학부모 5000여 명을 만났다. 도움이 됐다며 감사를 전하는 이들도 있지만 “지금이 어느 시대인데 그런 소리를 하냐”는 핀잔도 들었다.


-너무 이상적이고 뜬구름 같다는 비판도 있는데.


“맞아요. 그런데 이런 얘기를 해주는 선생님이 별로 없어요. 미래에 대해 고민하고 다양한 경험을 하라는 얘기요. 저는 빈둥거리는 시간도 필요하다고 합니다. 내가 진짜 뭘 좋아하는지 생각해야죠. 또 뻔한 얘기지만 꿈이 없으면 인생은 실패한다고 봅니다. 하지만 사교육을 많이 하는 애들은 생각을 못 해요. 시간이 없으니까. 그 부작용으로 가정도 학교도 무너지는 겁니다.”


-그래도 엄마들은 불안하니까 학원에 보내죠.


“초, 중까지는 학원 다니면 어느 정도 잘한다는 소리를 들어요. 하지만 고등학교 와서 성적이 나빠지면 바로 포기해버리는 아이들이 정말 많아요. 왜일까요. 참고 견디고 노력하는 법을 몰라서예요.”


-인내심, 근성 이런 건 어떻게 길러야 하나요.


“결국 부모의 몫입니다. 못해도 기다려줘야 해요. 최소한의 선행학습은 해야겠지만. 그러나 선행만으로는 절대 길러지지 않아요.”


-어려운 말이네요.


“그런 비판도 환영합니다. 저는 어떤 운동처럼 주장하는 게 아니에요. 사교육을 비판하는 사회 단체도 많잖아요. 그런데 저는 현실적으로 인서울, 의대 가고 싶은 그 욕망을 인정합니다. 그러나 모두가 100명 중 5명에 들 수 없다는 얘기를 해주고 싶은 거죠.”


-윤석열 대통령도 ‘킬러 문항’을 지적하며 쉬운 수능을 얘기했어요. 사교육 시장에 대한 경고로도 읽혔고.


“킬러 문항 없애는 건 동의합니다. 수년 전부터 수능 난이도가 너무 어렵다고 했어요. 영어도 마이클 샌델 교수의 책 ‘공정하다는 착각’을 원서 그대로 출제합니다. 제가 우리말로 봐도 어려운데 아이들은 미치는 거죠. 이미 수능은 난이도의 끝을 찍었어요.”


-그런데도 대통령이 공격을 많이 받아요.


“해결책이 없어서 아닐까요. 변별력이 떨어지면 다르게 줄을 세워야 하는데, 그럼 면접 같은 거로 대입이 결정되는 겁니다. 할 게 더 많아지는 거죠. 결국엔 그쪽에 맞춰서 변할 테고 사교육 시장이 더 커질 겁니다.”


-또 도돌이표네요.


“사교육을 없애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합니다. 중국처럼 국가 정책으로 금지하지 않는 한. 하하. 저도 사교육을 아예 하지 말라고 주장하는 게 아닙니다. 선행의 신화에 사로잡혀 있어 놓치는 것들에 대해 잠시 멈추고 다시 생각해보자는 차원입니다.”


◇학교가 무너지고 있다


인천 지역 특목고 등에서 17년간 영어를 가르치면서 교사로서 절망적인 경험이 있었다고 했다. “초년 때는 전화받기가 무서웠어요. 지금도 콜포비아(통화 기피증)가 있어 메시지로 주고받는 게 편해요.” 정승익 강사는 교권 추락의 원인도 경쟁의 패러다임에서 찾았다. “학교에서도 입시에 필요한 것만 얻어가려고 해요. 공감과 배려가 필요 없는 거예요. 부모는 자기 아이가 뭘 잘못했는지 가르쳐주길 원하지 않아요. 교사도 안 가르치죠. 오히려 욕을 먹으니까.”


-교권 추락이 사회문제인데.


“그래도 학교가 버티고 있는 건 좋은 선생님들 덕이라고 생각해요. 좋은 선생님은 누구냐? 쉽게 풀면 졸업생들이 많이 찾아오는 선생님이에요. 그만큼 인생에 좋은 영향을 미쳤다는 뜻이니까요. 그런데 지금은 그런 선생님이 가장 위험합니다. 학생과 더 많이 관계를 맺고 그들의 삶에 더 많이 개입하니까요. 못 본 척하면 문제가 없는데 훈화하려고 애쓰면 다쳐요. 아이러니죠.”


-왜 이렇게 됐을까요.


“대다수가 가정 교육을 안 해요. 옛날에는 밥상머리 교육이 있었어요. 저녁 식사라도 같이 했죠. 요새는 다 학원에 다니느라 대화를 못 해요. 초등학생들도 선행학습 하러 가고 집에 와도 숙제를 해야 하니 대화를 못 하죠. 그러니까 아이들이 잘못한 게 뭔지 진짜 모를 수 있습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래서 사교육을 줄이라고 하는 겁니다. 학교에 17년간 있어 보니 아이들은 체육대회, 수학여행, 소풍, 모두가 웃는 시간을 좋아해요.”

/주민욱 영상미디어 기자

◇“다른 길 가고 싶었다”


정승익 강사는 교사 일을 하면서 EBS, 강남인강 등에서 10년간 영어를 가르쳤다. 인기 있는 강사였지만 사교육 시장 ‘일타 강사’의 길은 택하지 않았다. “저라고 왜 고민하지 않았겠어요. 연봉에서 ‘0′이 두 개나 빠지는데요. 그래도 남들이 가지 않는 더 의미 있는 길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교사를 그만둔 진짜 이유는요?


“17년간 많이 배우고 많이 성장했어요. 저도 제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싶었어요. 5년 정도 고민했어요. 아내에게도 말하지 않고 사표를 냈죠.


-EBS 강사 하다가 학원으로 많이 가잖아요.


“그 길도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돈 많이 버는 선생님들이 정말 열심히 연구하고 교재 만들죠. 그런데 저는 ‘왜 저런 선택을 했지’ 이럴 수도 있지만 다른 영감을 주고 싶었어요. 또 이 일도 누군가 해야 하는 건데 그렇다면 내가 잘할 수 있지 않을까 했고요.”


-일타 강사를 꿈꾸는 아이들도 있는데.


“이 시대가 만든 산물 아닐까요. 잘못된 건 아니에요. 그러나 꼭 그 길만 있는 건 아니라는 걸 보여주고 싶어요. 그리고 그 삶을 사는 게 나쁘지 않다는 것도요. 저는 수퍼카는 타면 안 되죠. 하하.”


정승익 강사는 사교육을 줄이자는 책에 대한 관심이 세상을 변하게 할 수 있는 힘이라고 믿는다. 초등학교 4학년, 1학년 아이를 둔 아빠인 그는 그래서 오늘도 고민한다고 했다. “학원을 안 보내기 때문에 아내와 저도 불안합니다. 교육에 확신이란 게 있겠어요? 그래도 아이를 정신적으로 튼튼하게 키우고 싶어요. 더 많이 대화하고 아이가 원하는 것에 귀 기울이면서 ‘진짜 공부’가 뭔지 찾아가는 중입니다.”


[김아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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