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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by 조선일보

“일본은 독도 못 빼앗습니다, 왜? ‘독도는 우리땅’ 노래가 없으니까!”

한국 창작 동요 100주년

국민 응원가 작곡한 박문영

‘독도는 우리땅’ ‘한국을 빛낸 100명의 위인들’을 쓴 동요 작곡가 박문영씨가 5월 서울 광화문 이순신 동상 앞에 기타를 들고 섰다. 그는 “대한민국은 그냥 만들어진 나라가 아니다. 치열하게 싸워 독립을 쟁취한 국가”라며 “나 역시 나라 세우는 심정으로 노래를 한다”고 말했다. /양수열 영상미디어 기자

“그 누가 아무리/ 자기네 땅이라고 우겨도/ 독도는 우~리~땅/ 우리 땅!”


1982년 봄 어느 주말, 공중파에서 흘러나온 노래 한 곡이 전국을 뒤집어 놨다. KBS 코미디 프로에 임하룡·정광태 등 개그맨 4명이 나와 독도 지키는 포졸 복장으로 부른 ‘독도는 우리 땅’. 일본의 영토 침탈 야욕에 맞서자는 직설적 가사를 중독성 강한 3·3·7 박자에 얹은, 웃기고 들썩이고 충격적으로 진지한 노래. 이후 40여 년간 어린이 인기 동요이자 각종 응원가, 단골 선거송으로 자리 잡았다. 제2의 애국가로 삼자는 여론도 일었다.


이 노래를 만든 이는 동요 전문 작사·작곡가이자 가수로 활동하는 PD 출신 박문영(72)씨다. ‘독도는 우리 땅’을 시작으로 ‘한국을 빛낸 100명의 위인들’과 ‘김치 주제가’ ‘힘내라 힘’ ‘짜라빠빠’ 등 한국인이라면 따라 부를 수 있는, 왠지 신나고 왠지 울컥한 국민 응원가 500여 곡이 그의 손끝에서 나왔다. 그에겐 명확한 목표가 있다.


“대한민국은 그냥 만들어진 나라가 아닙니다. 어릴 때부터 뇌리에 박힌 우리 것에 대한 강렬한 기억, 그 마음이 한국과 한국인을 만드는 겁니다.”


박씨는 자신의 작품 세계가 일제강점기인 1923년 어린이날을 창안해 암울한 민족의 시야를 미래로 넓힌 독립운동가 소파(小波) 방정환, 그리고 1924년 최초의 근대 동요 ‘반달’ ‘설날’을 시작으로 독립의 염원을 영원한 동심(童心)에 담은 윤극영 선생에 뿌리 박고 있다고 말했다. 올해 한국 창작 동요 100년을 맞아 여전히 ‘나라 세우는 심정’으로 노래를 만든다는 음악가를 만났다.

◇코미디 프로 일회용 노래가 떴다

-’독도는 우리 땅’은 어떻게 나왔습니까.


“저는 서른 살, KBS 밤 시간대 라디오 음악 프로 PD였어요. 낮에는 TV 코미디 프로 대본을 썼죠. 어느 날 신문에서 일본이 독도 영유권을 주장한다는 1단 기사를 읽고 깜짝 놀랐어요. 당시 우리는 5·18 이후 내부 문제가 워낙 크고 외국의 시선이 두려워, 독도가 어디 있는지 그게 왜 분쟁 지역화되는지 신경 못 쓰는 분위기였어요. 코미디 프로 담당 PD에게 ‘이건 심각한 거 아니냐’ 이야기하니 ‘다음 주엔 독도를 짧은 노래로 만들어 내보내 볼까?’ 제안하더군요. 곧바로 백과사전에서 독도에 관해 너덧 줄 나온 걸 찾아 가사를 쓰고 신나는 멜로디를 붙였어요. 1시간쯤 걸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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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도는 우리땅 악보. 1982년 방송 일회용으로 만들었다가 쓰레기통에 버려졌지만, 곧 제2애국가 반열에 올랐다. 지난 2012년 곡 발표 30주년을 맞아 측량 단위 등을 일부 개사한 신 버전. /역사노래연구회

-작곡을 그렇게 쉽게 했다고요?


“음악을 전공하진 않았지만 어릴 때부터 좋아했어요. 머릿속에 늘 여러 운율이 떠돌아요. 대학(서울대 건축학과) 재학 중 기타 듀오 ‘논두렁 밭두렁’으로 활동하기도 했고요. 제대로 작곡해 발표한 곡은 ‘독도는 우리 땅’이 처음이에요.”


-반응이 어땠나요?


“개그맨들이 보고 부르게 가사를 전지에 써서 카메라 옆에서 들고 있었어요. 어차피 일회용 노래라고 생각해, 녹화 끝난 뒤 오선지는 휴지통에 버렸어요. 그런데 방송 직후 여기저기서 틀고 동네 아이들이 따라 부르기 시작하더라고요. 좀 황당했죠.”


-처음 부른 네 명 중 정광태씨만 ‘독도 스타’가 됐는데요.


“무슨 옴니버스 음반 맨 끝에 딱 2분이 빈다고 이 노래를 넣겠대요. 녹음실에서 개그맨 넷이 기다리는데 제작자가 늦어졌어요. 세 명은 바빠서 가버리고 정광태만 남았죠. 그래서 정광태 혼자 독도 가수가 된 거예요. 임하룡이 나중에 ‘조금만 더 기다릴걸’ 땅을 쳤죠(웃음). 저도 현직 음악 PD란 정체를 드러내지 않는 게 좋을 것 같아 ‘박인호’란 예명으로 앨범에 수록하게 했습니다. 그 자투리 곡이 폭발적 인기를 얻자 음반명이 ‘독도는 우리 땅’으로 바뀌었어요. 정광태는 신인 가수상을 탔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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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최동단의 아름다운 우리 땅 독도. 태극기가 꽂혀있다. /뉴스1

-한때 금지곡이었던 걸로 압니다만.


“왠지 독재를 비판하는 것 같고 수상하잖아요. ‘독도는 당연히 우리 땅인데 뭘 노래까지 해?’란 말도 나왔고요. KBS가 지레 겁먹고 자체 금지했어요.”


-어떻게 풀렸나요?


“어느 날 중앙청에서 저와 가수를 불렀어요. 갔더니 웬걸, 허문도 공보처 차관이 ‘각하께서 신경 쓰시는 곡’이라며 격려했어요. 국무회의 때 외교부 장관이 일본의 독도 도발을 보고하니 전두환 대통령이 ‘우린 노래가 있잖아’ 했다는 거예요. 제가 ‘지금 방송 금지돼 있는데요’ 하니 허 차관이 ‘뭐?’ 하며 여기저기 전화를 걸더군요. 나오는 길에 택시를 탔더니 라디오 모든 채널마다 ‘독도는 우리 땅’이 나왔습니다.”

◇한국인의 마음을 모은 천재들

이승만 대통령은 6·25전쟁이 한창이던 1952년 주변 수역에 ‘이승만 평화선(Rhee Line)’을 그어 독도를 국제법상 한국 땅으로 못 박았다. 일제의 불법적 한반도 점령으로 빼앗겼던 독도를 공식적으로 되찾은 것이다.


허를 찔린 일본은 독도 침탈 도발을 집요하게 이어왔다. 매년 3월 문부성 역사 교과서 검정, 4월 외교청서와 7월 방위백서가 새로 나올 때마다 독도는 일본 땅이란 주장이 연례행사처럼 버젓이 실린다. 이게 역설적으로 우리를 더 뭉치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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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문부과학성이 지난 3월 교과서 검정심의회를 열고 2025년도 일본 중학교 사회과 교과서 18종이 심사를 통과했다고 밝혔다. 사진은 이쿠호샤의 중학교 공민교과서에 '한국 측이 주장하는 이승만 라인'이라는 설명과 함께 '이승만 라인' 안에 한국 땅인 독도를 '竹島'(다케시마)라고 표시한 지도. 이승만 라인은 1952년 이승만 대통령이 인접 수역에 대해 선언한 공식 해양 주권선이다. /도쿄=연합뉴스

-그간 한국에서 나온 독도 관련 노래만 200곡에 이릅니다. 압권은 ‘독도는 우리 땅’이고요.


“노래 발표 직후 군 지원으로 행정선을 타고 독도에 처음 가봤어요. 당시만 해도 이 외딴섬에 파견되는 군경은 유배형이라도 받은 듯 침울했지요. 4~5년 뒤 다시 가보니 표정이 확 달라져 있더군요. 온 국민이 ‘독도는 우리 땅’을 부르니 독도 수비대 지원 경쟁률이 100대1이 넘었다고 해요.”


-노래 한 곡이 분위기를 바꿨군요.


“외교와 국방은 무력이나 법리 싸움으로만 하는 게 아닙니다. 국민의 단결된 의지가 뒷받침돼야 하죠. 만약 우리 독도 문제가 골치 아픈 외교 분쟁으로만 다뤄졌다면 국민도 독도를 그냥 섬 덩어리, 남의 일처럼 여겼을지 몰라요.”


-바로 지난달에도 일본 외교청서에 독도는 자기네 땅이라고 했는데요.


“일본은 절대 독도를 빼앗지 못합니다. 첫째, 독도는 당연히 한국 땅이고요. 둘째, 일본엔 ‘독도는 우리 땅’ 같은 노래, 열정과 신명이 없거든요. 국민을 한데 모으는 정신적·문화적 구심점이 없으면 말짱 소용없습니다.”


-한국의 구심점은 뭡니까.


“대한민국은 3·1운동 정신을 모태로 독립운동가들이 치열하게 싸워 만든 나라예요. 저는 특히 방정환과 윤극영을 천재라고 봅니다. 방정환은 일제가 시비 걸 수 없는 ‘어린이’라는 개념을 창안, 정체성을 잃어가는 식민지 국민에게 민족정신과 미래의 희망을 심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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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인 1923년 '어린이날'을 만든 독립운동가 소파 방정환(왼쪽), 그리고 1924년 '반달' '설날'을 시작으로 한국 창작동요라는 장르를 개척한 윤극영 선생. 박문영 작곡가가 '내 작품세계에 영감을 준 두 천재'라고 말하는 이들이다. /조선일보DB

-100년 전 동요가 그런 배경에서 탄생한 거군요.


“어린이와 동요는 독립운동을 위장하기 위한 발명품이에요. 윤극영이 1924년 선보인 창작 동요는 전에 없던, 세계 어디에도 없는 독창적 음악 장르입니다. 팝아트나 힙합처럼요. 그는 ‘가기도 잘도 간다/ 서쪽 나라로’(반달)라며 독립을 암시했지요. 이원수·홍난파는 벚꽃이 아닌 ‘복숭아꽃 살구꽃/ 아기 진달래’(고향의 봄)가 우리 꽃이라고 했고요. 이런 노래들을 마치 엄마 품처럼 한국인이 영원히 기억하지 않습니까? 이렇게 마음을 모으지 않았다면 광복을 맞지 못했을 수도 있습니다.”

◇내 노래, 反日 선동 수단 아냐

-요즘엔 동요 듣기가 어렵습니다.


“안타깝습니다. 창작 동요는 대한민국의 찬송가, 우리 민족 최고의 정신 자산이자 가장 가치 있는 무형문화재예요. 동요를 잊어선 안 돼요.”


-선생님 노래에 그런 염원을 담았습니까?


“저는 동요 작곡가로서 한국의 마음과 정신을 만든 거인들의 명맥을 이으려 노력했습니다. 나라는 하드웨어만으론 지탱되지 않습니다. 어떤 시대를 살든 한국인을 한국인답게 하는 것, 그 소프트웨어를 만드는 사람이 되고 싶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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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기생충’에서 기정(박소담)이 부잣집에 미국 유학파 출신 과외선생으로 위장해 침투하면서, ‘독도는 우리땅’을 개사한 ‘제시카 송’을 부르는 장면. 원곡이 세계적으로 회자되는 계기가 됐다. 봉준호 감독은 박문영 작곡가를 미리 만나 이 곡을 영화에 삽입한다는 사실을 알려주며 저작권료를 지불했다고 한다. /CJ ENM

-오스카상을 받은 영화 ‘기생충’이 ‘독도는 우리 땅’을 패러디하기도 했죠.


“봉준호 감독이 미리 알려줬어요. 기생충이 숙주로 침투하는 장면에서 ‘제시카 외동딸/ 일리노이 시카고/ 과 선배는 김진모/ 그는 네 사촌~’이란 가사에 멜로디만 썼더군요. 덕분에 원곡이 세계적으로 화제가 돼 기뻤습니다.”


-반일(反日)과 대정부 투쟁을 표방한 집회에서 많이 트는 곡이기도 한데요.


“저는 반일 하려고 ‘독도는 우리 땅’을 만든 게 아니에요. 역사적 진실을 알고 우리 자존감을 지키자고 이야기한 거예요. 그게 왜 ‘토착 왜구 척결하자’는 정치 선동에 이용되는지 모르겠어요. 저는 어린이·청소년 만나면 ‘이 노래는 정치 싸움의 도구가 돼선 안 됩니다’ 가르쳐요. 아이들은 잘 알아들어요.”


-어른들은 말을 안 듣나요?


“제가 좌파 연예인이 아니어서 그런지, 원작자의 말이 잘 먹히질 않네요. 미디어·연예계가 왼쪽으로 기울어진 건 제가 방송국에서 일하던 1980~90년대부터예요. 비(非)좌파를 소외시키는 문화가 강하죠.”


-반일 선동이 왜 나쁘다고 봅니까.


“저는 지금 대한민국의 가장 큰 적(敵)은 분열을 획책하는 극단주의라고 생각합니다. 좌파 운동권은 근거 없이 친일파 공격하고 반일 내세우면 정의인 줄 아는데, 사실은 한국 외 다른 세력에 이익을 주는 행위죠.”

단결과 긍정, 열정, 희망을 담은 응원가 500곡을 써온 박문영씨. “우리 역사를 부정하고 비하하며 내부 분열을 꾀하는 이들이 우리의 가장 큰 적”이라고 했다. /양수열 영상미디어 기자

◇우리 역사는 훌륭하게 흐른다

박문영씨의 또 다른 히트작은 1991년 발표한 ‘한국을 빛낸 100명의 위인들’이다. “아름다운 이 땅에/ 금수강산에/ 단군 할아버지가/ 터 잡으시고”로 시작, 상고시대부터 근대에 이르기까지 왕과 장군, 의적과 예술가, 기생과 순교자, 매국노와 허구의 영웅이 고루 등장한다. 박씨는 88 서울 올림픽 이후 ‘우리 역사를 알아야 세계로 뻗어나갈 수 있다’는 생각으로 초·중·고 교과서를 펴놓고 곡을 썼다고 한다. 한국사를 통째 아우른 대서사시는 또 한번 히트했고, 각종 역사 학습물이 뒤따라 만들어졌다. 초등학교 5·6학년 교과서에도 수록돼 있다.


-제가 6학년 때 ‘100명의 위인’ 열풍이 불었는데요, 구구단도 못 뗀 2학년 아들이 이 노래를 외우더군요.


“역사는 지루하게 배우면 안 돼요. 노래·춤·이야기로 재미있게 배워야 평생 가요.”


-그런데 등장인물을 세어보니 100명이 안 되던데요? 순서가 바뀌기도 하고, 소설 속 이수일과 심순애가 나오고….


“그런 건 어른의 시각이에요! 지금껏 숫자가 안 맞네, 누가 왜 들어갔네, 따지는 어린이는 한 명도 없었어요. 백은 아이들이 생각하는 가장 큰 수, 무한대를 상징하는 숫자입니다. ‘우리 역사에 위대한 인물이 엄청 많구나!’ 자부심을 가지라는 취지예요. 허구의 인물이라도 우리의 모습을 반영했다면 넣을 수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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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년 발표된 '한국을 빛낸 100명의 위인들' 악보. 역사 공부 열풍과 함께 숱한 연예인과 단체에 의해 '한국을 **한 100명의 ***' 등 여러 버전으로 패러디됐다. /역사노래연구회

-이 노래엔 주로 중국과 일본의 침략을 막아낸 영웅들이 나옵니다. 두 나라와 역사·영토 갈등이 계속되는데요.


“한·중·일은 같이 잘 살아야 합니다. 원래 가까운 형제끼리 싸우는 법이에요. 극도로 조심해야 하는 관계죠. 싸울 때 싸우더라도, 어깨 맞대고 사는 이웃이란 현실은 존중해야 합니다.”


-’김치 주제가’에선 “중국 음식 일본 음식/ 다 차려놔도(중략)/ 김치 없인 못 살아/ 정말 못 살아”라고 했어요.


“우리가 일본 식민지였으니, 중국이 계속 내정간섭을 하니 복수하고 계속 싸우자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문화적 자존심을 갖고 정신의 우위를 점하고 당당하게 나가자는 이야기예요. 그게 정석이에요.”

인기 동요와 명랑 가요 등 500여곡을 써온 박문영 작곡가. 국민 누구나 그의 노래들을 부르지만, 정작 저작권료론 통틀어 월 100만원 정도 밖에 받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그는 "다들 애국하겠다고 내 노래 갖다쓰는데 쫓아다니며 돈을 받을 수도 없고..."라고 했다. /양수열 영상미디어 기자

◇한국을 빛낸 101번째 위인은

-이런 작곡가는 저작권료 수입이 얼마나 됩니까?


“다 해서 월 100만원 되나. 제 노래들은 누구 건지 신경 안 쓰고 각종 행사에 틀고, 마음대로 개사하고 유튜브에도 막 갖다 쓰잖아요. 그런 사람들도 나름 애국하겠다는 건데, 제가 쫓아다니며 돈 받아낼 수도 없고요. 그냥 ‘나라에 헌납한 노래들이다’ 생각해요.”


-애국한다면서 우리 역사를 비하하는 세력도 있습니다. ‘정의가 패배하고 기회주의가 득세한 역사’라고 한 대통령도 있었고요. 우리 역사를 어떻게 보시나요?


“우리 역사는 큰 틀에서 발전하고 있다고 봅니다. 정의와 윤리가 무엇인가를 따지며 명분을 차지하려 노력해 온 훌륭한 역사예요. 유럽 등 다른 나라 역사를 보면 논리도 없는 패싸움과 살육이 난무하죠. 그래도 자랑스럽게 내세우잖아요. 단군 이래 5000년 우리 역사를 관통해 보면 볼수록 자긍심을 갖게 됩니다. 일제시대라든가 군부독재 등 과거사의 한 부분만 떼어내 지금의 잣대로 평가하고 스스로를 헐뜯고 부정하는 건 역사를 잘못 보는 거예요. 역사는 분열의 씨앗이 아니라 통합의 시발점이 돼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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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경기도 수원의 한 초등학교에서 '독도는 우리땅' 노래에 맞춰 독도 플래시몹을 펼치는 어린이들. 10여년 전부터 전국 초중고교생과 시민들 사이에 국토 수호 챌린지로 불붙은 독도 플래시몹 역시 박문영씨가 기획해 보급한 우리만의 문화 컨텐츠다. /뉴스1

-진보의 세례를 받은 세대는 ‘젊은 MZ세대가 역사의식이 없다’고 하는데요.


“천만의 말씀! 전 우리의 희망은 MZ세대와 어린이라고 봐요. 그들은 두뇌가 똑바르고 편견 없는 국제 감각을 갖고 있어요. 우리 역사를 세계 속에서 객관적으로 볼 줄 알고 문화적 자긍심이 높습니다. 좌우로 갈려 소모적 정쟁을 벌이는 기성세대가 물러나면 MZ가 아름답고 훌륭한 나라를 만들어갈 거예요. 확신해요.”


-만약 ‘한국을 빛낸 100명의 위인들’ 가사를 다시 쓴다면 누구를 넣고 싶습니까?


“저는 아이들에게 ‘네 이름을 101번째로 넣으라’고 말해줍니다. 각자가 한국의 위인이 될 거란 생각으로 노래하면 좋겠어요. 이 노래 부르며 자란 아이들이 외교관도 되고 과학자도 됐지요. 그게 가장 뿌듯해요.”


정시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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