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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by 조선일보

“이 목마름은 언제 끝날까요?” 묻는 그녀… 우린 이미 위로받았어!

[아무튼, 주말]

[길해연이 만난 사람] ‘멍’ ‘그녀와의 이별’ 부른 롱다리 디바 김현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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롱다리 가수 김현정은 “다 돌려놔/ 너를 만나기 전에 내 모습으로/ 추억으로 돌리기엔 내 상처가 너무 커~”로 흘러가는 히트곡 ‘멍’으로 유명하다. 1999년 당시 모습. /이덕훈 기자

“가수 김현정이 누나 좀 만나고 싶다는데?” 후배의 전화를 받은 나는 몇 번이고 되묻지 않을 수 없었다. “롱다리 미녀 가수 김현정? 다 돌려놔! 그 김현정?” 그 유명한 가수가 대학로에서 연극을 하는 사람을 왜 만나고 싶다는 건지 이유를 묻기도 전에 내 입에선 “그래, 그러자”라는 말이 튀어나왔다.


약속 장소와 시간을 정하자마자 “앗싸!” 신이 난 내 입에선 “다 돌려놔/ 너를 만나기 전에 내 모습으로/ 추억으로 돌리기엔 내 상처가 너무 커~”가 절로 흘러나왔다. 두 팔은 허공을 휘젓고 있었다. 그 시절 목이 터져라 “다 돌려놔!”를 외쳐보지 않은 사람이 몇이나 될까? 그 노래 제목이 ‘멍’이 아니라 ‘다 돌려놔’인 줄 알고 있던 나 같은 사람도 꽤 많았으리라.


2007년 겨울, 그렇게 우리의 만남은 시작되었다. 하던 일도, 살아온 것도 달랐던 띠동갑 두 여자는 만난 지 30분도 지나지 않아 서로의 손을 부여잡고 울고 있었다. “...어린 시절 저는 먼지 같은 존재라고 생각했어요. 말도 없고 존재감도 없는 소심 덩어리 꺽다리. 그게 저였어요.” 깊은 곳에 열망을 감춰둔 소심한 소녀 김현정은 뜨거운 가슴을 자전거와 헤비메탈로 식히며, 힘들 때는 자신만의 동굴에 숨어 침묵하고 좌절하고 번뇌했다고 했다. “그러다 1995년 2년간의 연습생 시절을 거쳐 ‘그녀와의 이별’을 발표했는데 그 음반은 빛을 보기는커녕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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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트곡 '멍'을 부르는 가수 김현정. /TV조선 캡처

그래도 가수의 꿈을 버릴 수는 없었다. 판소리를 배우고 코러스로 일하며 버티고 있었다. “그런데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어요. 90년대 길거리 테이프 노점상들 기억하시죠? 거기서 ‘그녀와의 이별’을 틀기 시작하고 나이트클럽들이 따라오면서 역주행을 시작한 거예요. 그 덕에 큰 기획사 들어가고 음악 프로 1위도 하고 정말 바쁘게 움직였어요. 차 안에서 양치를 하고 헬기를 타고 다음 공연장으로, 촬영장으로. 편하게 누워 잠든 날이 거의 없을 정도였어요.”


자신을 보살필 시간도 없는 일정들을 소화하며 ‘혼자 한 사랑’ ‘되돌아온 이별’에다 국민 떼창곡 ‘멍’까지 대단한 인기를 누렸지만 안타깝게도 그녀는 사람들의 갈채 속에 서서히 병들어 가고 있었다. 나를 찾아온 시기에 그녀는 성대결절 상태였다. 수술해도 계속 재수술이 필요할 거라고 해서 수술은 포기하고 좋다는 치료법을 다 찾아서 하는 중이었다. 그녀는 사람 만나는 일을 줄이기 시작했고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인간관계가 정리되었다. 그런 모든 상황이 당찬 가수 김현정을 다시 소심한 소녀 김현정으로 되돌려 놓고 있었다.


최고의 고음 가수, 라이브의 여왕이라는 찬사를 듣던 그녀에게 성대결절이라니. 나는 눈물이 그렁그렁해진 그녀 앞에서 적절한 위로의 말을 찾지 못해 한참을 주저하다가 말없이 손을 잡아 주었다. 그러자 잠금장치가 해제된 눈물 탱크처럼 그녀는 눈물을 터뜨렸다. 건강을 돌보지 못한 것에 대한 후회, 노래를 못 하게 되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이 통곡처럼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곤 손을 잡고 함께 우는 것뿐이었다. 나중에 그녀가 이런 말을 했다.


“사실 그때 언니를 찾아간 이유가 있었는데 언니 얼굴을 보자마자 잊어버렸어요. 그냥 제 얘길 털어놓고 싶어진 거예요. 근데 갑자기 눈물이 나고…. 감정을 추스르려고 했는데 언니가 같이 울고 있지 뭐예요. 하하. 그래서 핑계 김에 엉엉 목 놓아 울어버렸어요. 지금도 궁금해요. 내가 왜 언니를 찾아갔는지.”


그렇게 만난 그날 이후 그녀는 눈이 오면 보고 싶다고, 비가 오면 울적하다고, 날이 좋으면 화창하다고 전화를 했다. 어디에 있건 단숨에 달려오곤 했다. 내가 있는 곳은 꿉꿉한 곰팡내가 진동하는 지하 연습실이거나 어두컴컴한 극장이었는데 그녀는 떠나질 않고 자리를 지켰다. 한동안은 나보다 대학로 공연을 많이 보고 뒤풀이 장소까지 따라다니며 연극하는 이들의 이야기에 귀를 쫑긋 세우곤 했다. “연극은 라이브잖아요. 현재 진행형…. 이게 살아 있는 거구나, 하는 느낌. 제가 무대에 섰을 때 느끼는 감정과 비슷한 것 같아요.”


그녀는 그렇게 기운을 차리기 시작했고 2014년 드디어 제2의 전성기가 펼쳐졌다. 각종 음악 프로에서 90년대와 2000년대 초 노래들이 다시 불리기 시작했고 그녀의 노래들이 역주행한 것이다. 기쁘면서도 한편으로 걱정이 앞섰다.


어린 시절부터 몸에 밴 습관 때문일까? 그녀는 지나치리만큼 부지런했고 새로운 것들을 배우고 익히는 데 온 시간을 쏟아붓고 있었다. 통화할 때도 그녀는 편안하게 널브러져 있던 적이 없었던 것 같다. 도대체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이 있긴 한 것인지, 너무 혹독하게 자신을 몰아붙이는 것은 아닌지 마음이 아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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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이해랑연극상을 수상한 배우 길해연(왼쪽)과 하객으로 온 가수 김현정. /길해연 제공

“완벽할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늘 목이 말라요. 벌써 26년 차인데 아직도 무대에 오를 때 떨려요. 이게 마지막이 되진 않을까 두렵기도 하고. 그래서 이렇게 미친 듯이 노력하고 고민하는데…. 이 목마름은 언제나 끝이 날까요?”


답이 없는 질문을 던지는 그녀에게 “널 만나게 되어 참 고맙다” “네가 있어 참 든든하다”고 위로를 건네며 등을 토닥거리는 게 고작이었다. 언젠가 자신의 라이브 공연 영상을 찍어 보내곤 괜찮은지 묻는 그녀에게 이제야 나는 대학로에서 만난 후배의 말을 빌려 답을 보낸다.


“선배님, 가수 김현정씨랑 친하시죠? 만나시면 제가 광팬이라고, 그리고 정말 고마워하고 있다고 전해주세요. 군대 있을 때 여자 친구에게 이별 통보를 받았어요. 가슴이 터져 죽을 것 같았는데 김현정의 ‘멍’을 따라 부르며, 다 돌려놓으라고 고래고래 소리 지르며 정말 큰 위로를 받았거든요. 그래, 이별도 슬픔도 당당하게 풀어 버리자. 징징거리지 말고. 그 노래가 절 구해줬어요.”


이 친구의 말처럼 너는 이미 우리에게 추억이라는 큰 선물을 줬어. 또 어떤 노래로 우리를 위로해 줄지 기대하고 있을게. 초조해하지 말고 천천히…. 나이 들어가는 가수 김현정의 선물은 어떤 것일지, 그날의 기쁨을 아끼면서 기다리고 있을게!


[길해연 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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