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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집서 불나면 무조건 밖으로 대피? 그러다 더 큰일 납니다

[아무튼, 주말]

급증한 아파트 화재 공포

올바른 대처·대피 방법은

“제가 조심해도 이웃집에서 불이 나면 큰일 날 수 있다는 생각에 공포감이 확 들더라고요.”


서울 마포구 한 아파트에서 아내, 세 살짜리 딸과 사는 직장인 하모(38)씨는 최근 화재 대피용 생활 방독면 3개를 구입해 신발장에 넣었다. 지난 성탄절 서울 도봉구 방학동 아파트에서 발생한 화재로 딸을 구하려던 30대 가장이 사망한 뉴스를 접한 뒤였다. 하씨는 “방독면은 사 두었는데, 지금 사는 아파트에 불이 날 경우 어떻게 대피하는 게 맞는지 전혀 감이 오지 않는다”고 했다.


최근 서울을 비롯해 경기도 군포 등 수도권 아파트에서 연이어 화재가 발생해 사망자가 속출하자 ‘아파트 화재 공포’가 커지고 있다. 소방청 국가 화재 정보 시스템에 따르면 지난해 아파트 화재 건수는 2993건, 인명 피해는 405명으로 최근 5년 새 가장 많았다. 전문가들은 “아파트는 타인의 부주의로 발생한 화재로 본인이 피해를 볼 수 있는, 이른바 ‘통제할 수 없는 위험’이라 공포감이 더 크다”며 “올바른 대처 요령을 미리 알아두고 훈련을 해둬야 피해를 줄일 수 있다”고 입을 모았다.



조선일보

지난해 성탄절 서울 도봉구 방학동 아파트에서 화재가 발생한 모습. /도봉소방서

◇아파트 화재 인명 피해, ‘대피 중’ 가장 많아


서울 도봉구 아파트 화재처럼 이웃집이나 아래층에서 불이 나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일단 밖으로 대피하는 게 최선’이라는 생각이 들지만, 무작정 대피하는 게 오히려 위험을 초래할 수 있다. 이번 화재 사망자 2명도 불을 피해 창밖으로 뛰어내리거나 집을 빠져나와 계단으로 대피하다 숨졌다.


실제로 화재 통계 연감에 따르면 2019~2021년 공동주택 화재 인명 피해 중 ‘대피 중’에 다치거나 사망한 사람이 39.1%로 가장 많았다. 더 위험할 것처럼 생각되는 ‘구조 요청 중’(11.3%), ‘화재 진압 중’(18.1%)보다 월등히 많다. 한 소방관은 “도봉구 아파트 외에도 불이 다른 가구로 확산하지 않았는데 겁을 먹고 집 밖으로 대피하다 계단에서 연기에 질식해 사망하는 일이 심심찮게 일어난다”며 “화재 대피 요령이라는 명칭도 ‘화재 대처 요령’으로 바꿔야 하지 않나 싶다”라고 말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전문가들은 “대피가 가능하다면 가장 안전하겠지만, 대피가 가능한지 판단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이웃집 등에 불이 난 경우 우선 현관문 틈으로 연기가 들어오는지 확인해야 한다. 연기가 들어오고 있다면 이미 현관문 밖이 연기로 가득 찬 것이기 때문에, 밖으로 나가지 않는 게 더 안전하다. 이때는 현관문 틈으로 연기가 들어오지 않도록 테이프나 젖은 수건으로 틈을 막고 119에 신고하며 구조를 기다려야 한다.


연기가 보이지 않으면 열기가 있는지 확인하기 위에 현관문 손잡이를 잡아보고, 손등을 갖다 대어 뜨거운 느낌이 드는지 확인한다. 열기가 있다면 이 경우에도 대피하기보다 집에서 구조를 기다리는 편이 낫다.


연기도 들어오지 않고 열기도 느껴지지 않는다면 젖은 수건 등으로 입을 가리고 낮은 자세로 이동하며 대피를 시도해볼 수 있다. 다만 이때도 주의가 필요하다. 계단을 이용하는 중 연기나 화염이 보인다면 다시 집으로 들어가 구조를 기다리는 게 낫다. 공하성 우석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계단에 연기가 보인다면 이미 유독가스가 계단을 통해 확산하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무리해서 대피하다 더 큰 화를 입을 수 있다”고 말했다.


집에 화재 대피용 방독면이 있는 경우에는 대피를 계속 시도해볼 수 있다. 화염이 보이지 않고 연기가 있더라도 시야를 가릴 정도가 아니면 방독면을 쓴 채 계단을 통해 지상층으로 빠져나갈 수 있다는 것. 공 교수는 “다만 방독면도 지속 시간이 15~20분 정도이기 때문에 이 시간 내에 계단을 통해 대피가 가능한 상황에서만 시도해야 한다”고 했다.


대피하기로 결심했을 때는 옥상보다는 지상층이 더 안전하지만, 불이 난 가구에서 먼 쪽으로, 가능한 한 빨리 유독가스가 없는 개방된 공간으로 피하는 게 좋다. 옥상과 가까운 집이라면 옥상 문을 평소에 열어두는지, 잠겼더라도 비상시 문을 열 수 있는지 등을 미리 관리 사무소에 문의해 알아두는 게 좋다.


◇구조 기다릴 땐 문틈 막고 물 틀어야


연기가 이미 새어 들어오거나 계단에 연기가 들어찼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우선 가능하다면 창문을 다 닫고 현관문 틈을 테이프나 젖은 수건 등으로 막아 유독가스가 집 안에 침투하는 걸 막아야 한다. 이후 베란다로 피신해 외부에 구조를 요청해야 한다.


집에 경량 칸막이나 하향식 피난구, 완강기가 있다면 이를 이용해 대피를 시도할 수 있다. 경량 칸막이는 발로 차거나 몸으로 밀치면 부서져 옆 가구로 대피할 수 있는 벽이다. 정상만 한국재난안전기술원장은 “집 어디에 경량 칸막이나 하향식 피난구가 있는지 관리사무소에 문의해 미리 확인하고, 세탁기나 옷장 등으로 막지 말고 개방해 둬야 한다”고 했다.


경량 칸막이나 피난구가 없는 경우 2층까지는 창 밖으로 뛰어내리는 방식으로 대피를 시도할 수 있다. 하지만 3층 이상인 경우에 이 방법은 매우 위험하다. 정상만 원장은 “인간의 신체는 6~8m가 넘어가는 높이에서 맨몸으로 뛰어내렸을 때의 충격을 견디기 어렵다”고 조언했다.


만약 베란다를 거실로 확장했거나 베란다 쪽으로 불길이나 연기가 치솟으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이 경우 반대편 베란다로 피신하고, 그마저 어렵다면 화장실로 대피해야 한다. 화장실로 대피할 때는 화장실에 들어가기 전 환풍기를 켜고, 문을 닫은 뒤 욕조와 화장실 바닥 배수구를 마개와 수건, 옷 등으로 틀어막고 물을 최대로 틀어놓는 게 좋다. 공하성 교수는 “당장 불길이나 연기가 닥치지 않았더라도 미리 물을 틀어 욕조와 세면대에 물이 가득 차 넘쳐서 거실로 흘러갈 수 있게 해야 불과 연기가 번지는 것을 늦출 수 있다”고 말했다. 화장실은 별도 환기구가 있기 때문에 다른 방으로 피신하는 것보다 훨씬 안전하다.


전문가들은 “무엇보다 더 중요한 건 훈련”이라고 강조했다. 정 원장은 “아무리 교육을 많이 해도 방독면 쓰는 방법이나 대처 요령을 익히지 않으면 실제 불이 났을 때 제대로 쓰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공 교수도 “화재 발생 시 아파트 소방 담당자의 대피 안내, 상황 전파 등이 중요한데, 훈련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며 “아파트 주민들이 아파트 소방 담당자에게 철저한 훈련을 강하게 요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도봉구 방학동 아파트 화재처럼 유명무실한 방화문 시스템도 개선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정 원장은 “수동으로 여닫는 방화문은 닫아두면 복도가 너무 어둡고 생활에 불편함이 크다 보니 열어두는 경우가 많다”며 “앞으로는 수동 개폐식보다 일정 온도 이상이 감지되면 자동으로 방화문이 내려와 연기와 불을 차단하는 시스템으로 바꿔야 한다”고 했다.


[배준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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