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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글이글 숯불에 갈빗살 올리자… “치익~” 동물적 식탐이 피어올랐다

[아무튼, 주말]

[정동현의 Pick] 소갈비

조선일보

서울 논현동 ‘노란상소갈비’의 정갈비. /장은주 영상미디어 객원기자

한 달에 한 번 부모님이 운영하던 당구장이 쉬는 날, 우리 가족은 꼭 외식을 했다. 어느 날 가족과 함께 길을 나섰다 발견한 건 ‘신장개업’ 입간판이 선 로스구이집이었다. 자리를 잡고 주문하려니 서울 말투가 들려왔다. 홀 매니저였다. 서울 출신인 부모님이 반가워 말을 걸었다. “부산에서 자리 잡기 쉽지 않네요.” 그녀는 바쁘게 고기를 뒤집으며 말을 이었다. 기억나지 않는 사정으로 서울에서 내려왔고 이 집 사장의 부탁으로 매니저 일을 하고 있다 했다.


20여 년 전만 해도 소고기는 대부분 ‘로스’라는 말로 퉁 쳐서 팔았다. 그날 나는 그 매니저 덕에 등심, 안심 구별을 해가며 처음 소고기를 먹었다. 중학생이던 나와 동생은 몽골군이 진격하듯 빠른 속도로 소고기를 씹어 삼켰다. 그 모습을 보는 부모님 얼굴이 돈 걱정에 굳어갔다. “이건 서비스니까 걱정 말고 먹어.” 마다하는 부모님 손사래를 뚫고 우리 형제 앞에 놓인 것은 소갈빗살이었다. 요즘 한우처럼 마블링이 화려하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분명 신경 써 내준 고기라는 것은 충분히 알 수 있었다.


지금이나 그때나 소갈비는 최고급 부위다. 갈빗대에 붙은 살을 얇게 저며 다이아몬드 칼집을 낸 소갈비는 단단한 각오가 아니면 먹기 쉽지 않은 가격이다. 소 한 마리에서 나오는 양은 한정적이고 찾는 이는 많다. 수요 공급의 법칙은 냉정한 것이다. 그럼에도 서울 압구정 ‘소나무’에 가면 조금은 가벼운 마음으로 소갈빗살을 먹을 수 있다.


한국 어디를 가나 볼 수 있을 법한 이름을 가진 이 집은 간판 역시 특이하지 않았다. 단출하게 ‘소나무’만 적은 본새를 보면 흔한 백반집 같기도 했다. 안으로 들어가니 평범한 인상이 말끔히 사라졌다. 테이블 앞에 놓인 커다란 나무 도마와 그 옆에 놓인 거대한 갈비짝은 흔한 풍경이 아니었다. 이 집에서 내놓는 갈비살은 손질하기 전 갈빗대가 다 붙은 짝갈비에서 정형한 것으로 갈빗살 외에 살치, 늑간 등 다양한 부위가 섞여 있었다.


목장갑을 낀 주인장이 숯불을 테이블에 넣어주고 동물적인 순수한 탐욕이 시작됐다. 섭씨 250도를 넘나드는 숯불의 열기가 얼굴에서도 느껴졌다. 고기는 숯불에 올려놓자마자 흰 연기를 내며 빠르게 익었다. 한 점 입에 넣으니 갈빗살에 낀 기름기가 참기름을 바른 것처럼 고소했다.


먹는 순서로 보자면 소금구이를 먼저 먹고 양념구이로 넘어가는 것이 좋다. 나물 무치듯이 즉석에서 간장 양념을 살짝 발라 내어주는 양념구이는 저절로 흰밥을 부르는 맛이었다. 2인당 하나씩 서비스로 내주는 선지해장국은 이 집을 찾아야 하는 이유 중 하나다. 큼지막하게 잘라 넣은 무와 아낌없이 넣은 콩나물이 어우러져 따로 돈 내고 먹어도 아깝지 않을 명쾌한 국물이 탄생했다.


강남구청역으로 가면 저녁 시간마다 줄을 세우는 ‘노란상소갈비’가 있다. 말 그대로 테이블 상판이 노란색인 이 집은 앞에만 가도 고기 굽는 냄새가 잔칫집처럼 진하게 풍겨왔다. 그 안에 앉은 손님들은 어린이날 선물을 기다리는 아이처럼 고기가 앞에 놓이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상호 그대로 갈비를 전문으로 한다. 특색이라면 단가가 나가는 한우는 신선한 육회 위주로 쓰고 구이로 나가는 갈비는 미국산을 쓴다는 점이었다.


자리를 잡자마자 시켜야 할 메뉴는 하루 판매 개수가 정해져 있는 ‘생갈비’다. 이 집의 가장 비싼 메뉴이지만 그것은 상대적인 비교일 뿐, 절대적인 가격은 납득을 넘어 ‘이 값이 가능해?’라는 의문이 들 정도였다. 상에 올라온 갈비의 밝은 선홍빛이 그림책에 나오는 이미지컷 같았다.


달궈진 불판 위에 고기를 올리자 “치익” 하는 소리가 경쾌하게 들려왔다. 얇게 저며서 낸 고기는 오래 기다릴 필요도 없었다. 한 번씩 가볍게 뒤집어 자르면 먹을 준비가 이미 끝났다. 구운 갈비살은 인간의 오욕칠정(五慾七情) 중 가장 원초적인 욕망과 기쁨을 정확하게 타격했다.


LA생갈비는 LA갈비 모양으로 정형했지만 그 두께가 아예 달랐다. 두껍게 잘라 숯불 위에서 이리저리 굴려가며 익히니 얇은 두께에서 나올 수 없는 맛이 밀도 있게 느껴졌다. 이 집은 양념갈비도 짙은 간장 양념에 절인 ‘이동갈비’와 은은한 단맛이 묻어나는 ‘정갈비’ 두 종류가 있다. 그중 특히 정갈비는 맛이 깔끔하고 단정하게 떨어져 봄바람을 맞은 것 같은 상쾌한 기분마저 들었다.


누군가에게 대접하고 싶을 때, 혹은 좋은 일이 있을 때 여전히 갈비를 먹는다. 그때 타향에서 만난 동향 사람에게 굳이 갈빗살을 내어준 마음도 비슷했을 것이다. 나의 부모님은 열심히 살았고 또 그만큼 힘들었다. 부산 어느 고깃집에서 일하던 그이도 그랬으리라. 서울 출신이라는 그 작은 실마리 하나만으로도 정을 내어준 것은 같은 궤적의 삶을 사는 이에 대한 격려, 혹은 스스로에 대한 위로가 아니었을까.


# 소나무: 한우소갈비살 2만1000원(100g), 된장찌개 5000원, (0507)1408-0154


# 노란상소갈비: 생갈비 2만5000원(220g), LA생갈비 2만3000원(230g), 정갈비 2만3000원(250g). (02)543-9290(강남직영점)


[정동현 음식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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