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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렌드]by 조선일보

우승국이 받는건 순금 아닌 도금 복제품? 월드컵 트로피의 비밀

[알베르티의 유럽 통신]

월드컵이 시작됐다. 불운하게도 이탈리아가 출전하지 못한 이번 대회에서 나는 집에서 TV를 보며 새로운 승자가 우승컵을 들어 올리는 장면을 기다리고 있다. 그 순간은 내 조국 이탈리아가 이긴 것처럼 자랑스러울 것이다. 왜냐하면 1974년부터 월드컵 시상식마다 등장하는 우승컵은 이탈리아의 뛰어난 장인이 만든 걸작이기 때문이다.


우승컵은 밀라노 외곽의 작은 도시 파데르노 두냐노에 있는 공예품 제조업체 ‘GDE 베르토니’라는 회사에서 만들었다. 창업자의 증손녀이자 현 CEO인 발렌티나 로사와 최근 만나 월드컵 우승컵 제작 이야기를 들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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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업주인 증조부 때부터 4대째 가업을 이어온 발렌티나 로사 GDE 베르토니 대표가 이 회사가 만든 대표적인 국제 축구 대회 우승컵을 소개하며 밝게 웃고 있다. 왼쪽부터 UEFA 챔피언스리그 우승컵, FIFA 월드컵 우승컵, UEFA 유로파 리그 우승컵. /Paolo Vezzol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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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로피 제작 스튜디오에서 맞아준 로사는 쾌활하고 다정다감한 여성이었다. 스튜디오는 좌우로 바닥에서 천장까지 각종 스포츠들의 트로피로 가득 차 있었다. 에스프레소를 마신 뒤 로사는 회사의 역사를 들려줬다. GDE 베르토니는 1900년 밀라노에서 설립돼 상패와 공예품을 만들어왔다.


가업을 물려받은 로사의 할아버지는 종업원이 100명에 이를 정도로 회사 규모를 키웠다. 오늘날에 이르러 다시 단출해졌고, 지금은 12명의 직원이 고품질의 메달·트로피 및 공예품 제작에 주력하고 있다.


1970년 멕시코월드컵에서 브라질이 통산 3회 우승을 차지하면서 쥘리메컵의 영구 소유권을 획득한 뒤 FIFA(국제축구연맹)는 새 트로피가 필요했다. 50여 개 업체가 우승컵 제조권을 따내기 위한 FIFA 공모전에 참가했고 최종 승자가 GDE 베르토니였다. 1971년 로사의 아버지와 할아버지는 유명 조각가이자 회사의 예술 부문 책임자 실비오 가차니가와 함께 제안서를 짰다. 격론 끝에 나온 최종 디자인은 두 명의 운동선수가 지구를 들고 있는 모양이었다. 이 디자인은 3차원 모델로 구현돼 프레젠테이션을 위해 스위스 취리히로 운반됐다. 로사는 “이런 식의 모델 구현은 요즘에는 일반화됐지만 당시엔 드물었고, 승부의 추를 우리 쪽으로 기울게 한 요소가 된 것 같다”고 미소 지었다.


우승컵은 두 가지 형태가 있다. 하나는 금으로 된 오리지널 트로피이고, 다른 하나는 우승팀에 전달되는 도금 복제품이다. 우승컵은 대대로 전해진 수작업 기술로 제작됐다. 쇳물을 밀랍 모형으로 만든 틀에 붓는 방식으로 만들어나가는 이 기술을 ‘로스트 왁스 주물’이라고 한다. 일단 컵의 형태가 만들어지면, 여러 명의 장인들 손을 거치며 완성품의 형태를 갖춘 뒤 불순물을 제거하고 광택을 내는 과정으로 이어진다. 청동에 도금한 복제품 역시 이들이 만들어 낸다. 이런 작업 끝에 나온 결과물은 우리 모두가 일생에 한 번은 꼭 쥐고 싶어 하는, 값어치를 따질 수 없이 귀한 공예품이다.


실제 가격은 얼마나 될까? 스위스 FIFA 본부에 보관된 진품 우승컵은 18캐럿 골드로 만들어졌고, 높이는 약 36㎝, 무게는 6㎏을 살짝 넘는다. 현재 금 시세를 적용하면 35만달러(약 4억7740만원) 정도다. 그러나 실제 가치는 아마도 수천만달러에 달할 것이다. 실제 한 스포츠 수집품 수집상이 최근 추산한 가격은 2000만달러(약 272억8000만원)가 넘는다.


로사가 작은 비밀을 알려줬다. 진품 우승컵이 유지 보수를 위해 회사로 오면, 자신의 사무실에 두고 바로 옆에서 잔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곁에서 볼 때마다 행복하지만, 스위스로 돌아갈 때 안도감을 느낀다. 마치 집 벽에 모나리자 초상화를 걸어놓은 기분”이라고 했다.


로사는 아버지를 여읜 뒤 덜컥 회사를 이끌게 됐다. 디자인 분야에서 일하던 그는 당시 차기 경영자로서 준비가 돼있지 않았다. 그때를 회상하면서 “회사 경영은 내 인생에 절대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며 “아버지와의 강력한 연대가 도움이 됐다”고 했다. 로사는 어릴 때부터 회사에서 살다시피 했고, 대부분의 직원들과 알고 지냈다. 그렇지만 그들로부터 직업인으로서 존중받는 것은 쉽지 않았다고 털어놓았다. 직원들이 자신을 아꼈지만 어디까지나 ‘사장의 딸인 발레(발렌티나의 애칭)’였다는 것이다. 그는 “사장의 딸이자 여성, 아이 엄마가 갑자기 사장이 됐고, 가족적인 회사로 바꿔나가는 노력 끝에 오늘에 이를 수 있었다”고 말했다.


로사는 “여전히 남성들이 지배하는 축구계에서 힘든 일도 겪었지만, 여성이라는 것은 여러 겹의 축복”이라며 여성 경영인으로서 뿌듯했던 사례를 소개했다. 전원 여성으로 구성된 이탈리아 축구연맹 여성국의 부탁으로 여자축구 대회에서 수여되는 메달과 트로피 제작을 도맡게 된 것이다. 특히 세리에A와 코파 이탈리아 승자 간에 벌어지는 여자축구 최강전 ‘수퍼컵’ 트로피는 로사가 직접 디자인했다.


월드컵 우승컵과 관련한 알려지지 않은 숨은 뒷얘기도 들려줬다. FIFA 방침에 따라 역대 우승국들은 소장하고 있는 복제품 우승컵을 주기적으로 GDE 베르토니에 보내 유지·보수를 맡긴다. 그런데 한번은 한 우승국이 가짜 복제품을 보낸 걸 그가 잡아냈다. 이를 FIFA에 즉시 신고했고, 가짜 컵을 보낸 회원국은 “뒤죽박죽된 상황이 있었다”고 해명했다. 로사는 “문제의 국가는 유럽에 있는데 이탈리아는 아니다”라고 했다.


현재 우승컵도 사용 연한이 다가오고 있다. 이 컵의 공간에는 2038년도까지의 우승국 이름만 새길 수 있기 때문이다. 로사의 시선은 이미 2038년 이후로 향해 있다. 그는 고품질 전통을 유지하면서 생산품을 다변화하는 방안을 강구하고 있다. 언젠가 오게 될 경영권 승계 시점과 관련해서 “아직은 생각하기 이르다”고 했다. 로사의 세 딸은 여전히 어리고, 그중 막내딸만이 “엄마 일을 하고 싶다” 관심을 갖고 있지만, 승계 수업을 하긴 너무 이르다는 것이다. 회사 청사진에 대해 얘기하던 로사는 눈을 반짝이며 “이탈리아 팀은 비록 이번 월드컵에 참가하지 못하지만, 우리 독창성의 상징인 우승컵이 함께하고 있어 뿌듯하다”며 미소 지었다.


[프란체스코 알베르티 이탈리아 저널리스트·前 마이니치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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