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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렌드]by 조선일보

우리도 이제 ‘월클’ 수비수 보유국이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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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타르월드컵 소셜미디어에서 조명한 김민재. / FIF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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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과 3~4년 전, 누군가가 한국 영화가 미국 최고 영화제인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감독상을 비롯해 4관왕에 오를 것이라고 했다면 “거 참, 농담 심하게 하시네”라고 했을 겁니다.


한국 드라마가 미 최고 권위의 방송 시상식인 에미상에서 감독상·남우주연상 등 6관왕을 거머쥐고, 한국 가수가 미국 최고의 인기곡을 의미하는 빌보드 싱글차트 1위에 6곡(그 중 한 곡은 10주 연속 1위)을 올린다고 했을 때도 비슷한 반응이었겠죠.


그렇습니다. 기생충(2020년)과 오징어 게임(2022년), 방탄소년단(2020~2021년)이 최근에 해낸 일들이죠. 참으로 믿기지 않습니다.


그런데 문화 분야가 아닌 스포츠에서도 이른바 ‘국뽕’이 절로 차오르는 ‘사건’이 발생했죠. 손흥민(토트넘)이 2021-2022시즌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PL) 득점왕을 차지한 겁니다.


그것도 리그 최종전에서 노리치를 상대로 두 골을 터뜨리며 극적으로 득점왕에 올라 국내 팬들의 기쁨은 더했습니다. 23골로 모하메드 살라(리버풀)와 함께 공동 득점왕에 올랐죠.


박지성이 2005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유니폼을 입으며 1호 코리안 프리미어리거가 됐을 때만 해도 한국 선수가 PL 무대에 뛰는 것만으로도 대단한 뉴스였죠.


이제는 한국 출신 PL 득점왕이 나오다니 지금도 실감이 잘 안 납니다. 한국 스포츠사에 영원히 남을 업적입니다.


지난 시즌 손흥민으로 행복했던 한국 축구 팬들은 올 시즌에도 유럽 빅 리그에서 맹활약 중인 한 선수로 인해 기쁨을 감출 수 없습니다. 놀라운 건 그가 공격수나 미드필더가 아니라는 점입니다. 그동안 유럽에 진출한 한국 선수는 차범근이나 안정환, 박지성, 설기현, 이청용, 손흥민 등 대부분이 공격수나 공격형 미드필더였습니다.


중앙 미드필더로 스완지시티의 중원을 책임졌던 기성용이나 토트넘에서 두 시즌가량 주전 레프트백으로 뛴 이영표가 특별한 경우였죠.


그런데 올 시즌 중앙 수비수인 김민재가 유럽 축구계를 놀라게 하고 있습니다. 이번 시즌을 앞두고 이탈리아 명문 클럽 나폴리 유니폼을 입은 센터백 김민재는 이탈리아 세리에A와 UEFA 챔피언스리그에서 거의 매 경기 찬사를 받고 있습니다.


세계적인 중앙 수비수라면 좋은 체격과 몸싸움, 헤딩, 태클, 패스 차단, 위치 선정 능력, 스피드 등을 두루 갖춰야 하는데 늘 수비가 약점이라는 얘기가 나왔던 한국 축구에서 소위 말하는 ‘월클(월드 클래스)’ 수비수가 나온 겁니다.


김민재는 수비력뿐만 아니라 패스를 통한 빌드업, 세트피스에서 골을 터뜨릴 수 있는 득점력까지 보여 주고 있습니다. ‘괴물’이란 별명이 아깝지 않은 올 시즌 활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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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재는 나폴리 첫 시즌 유럽 최고 수준의 수비수로 올라섰다. / AFP 연합뉴스

◇ 세리에A 평점 3위, 수비수 중 1위

터키 페네르바체에서 뛰다가 올 시즌 나폴리로 이적한 김민재는 17경기에 출전했습니다.


이탈리아 정규리그인 세리에A엔 6라운드 스페치아전에서 휴식을 취한 것을 제외하곤 사수올로와 12라운드까지 매 경기 풀타임으로 나섰고, UEFA 챔피언스리그에도 6경기 모두 다 나왔습니다.


나폴리는 ‘김민재 효과’를 톡톡히 보고 있습니다. 2일 챔피언스리그에서 리버풀에 0대2로 패하기 전까지 공식 경기 13연승을 달렸죠. 세리에A에선 10승2무(승점 32)로 아탈란타(8승3무1패·승점 27)와 AC밀란(8승2무2패·승점 26) 등을 따돌리고 1위를 질주하고 있습니다.


30골(리그 1위)을 퍼부은 화끈한 공격력이 선두 등극의 원동력이지만, 김민재를 중심으로 한 수비진도 9골(리그 4위)만 허용하며 든든하게 뒤를 받치고 있습니다.


나폴리는 챔피언스리그 조별 리그에서도 1~5차전을 모두 승리하며 16강 진출을 일찌감치 확정했죠. 6차전에서 리버풀에 패하긴 했지만 조 1위로 16강에 올라갔습니다.


이탈리아 최대 스포츠지인 ‘가제타 델로 스포르트’는 매 경기 선수들의 평점을 매기고 있습니다. 김민재는 올 시즌 세리에A 전체 선수(10경기 이상 출전) 중에 평균 평점이 6.72로 2번째로 높습니다. 수비수 중엔 가장 높고요.


김민재는 ‘카테나치오(빗장 수비)’의 고장으로 수비라면 정평이 나 있는 이탈리아 무대에서 데뷔 첫 시즌에 리그 최고 수비수로 활약하고 있는 겁니다.


나폴리 팀 동료인 조지아 출신 공격수 흐비차 크바라츠헬리아(6.83)가 10경기 이상 나선 선수들 중에선 리그 평균 평점 1위를 달립니다. 흐비차는 지난 8월 세리에A 이달의 선수상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9월, 이번엔 김민재가 세리에A 이달의 선수상을 받았습니다. 수비수가 세리에A 이달의 선수를 받은 것은 2019-2020시즌 칼리두 쿨리발리 이후 처음이었습니다.


세계적인 수비수인 쿨리발리가 올 시즌을 앞두고 첼시로 떠나며 그 공백을 메우기 위해 들어온 선수가 김민재였기에 더 뜻깊은 수상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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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S로마의 에이브러험과 공을 다투는 김민재. / 신화 연합뉴스

◇ 하루가 멀다 한 칭찬 릴레이

김민재는 과거엔 전형적인 ‘파이터형 수비수’로 패스 차단과 태클, 헤딩 등 상대 공격을 막는 수비수 본연의 임무에 뛰어난 모습을 보였습니다. 프로 데뷔 이후 벌크업에 성공해 강한 피지컬을 갖추게 된 그는 파워와 스피드를 겸비해 상대 공격수에겐 공포의 대상이 됐었죠.


여기에 경력이 쌓일수록 정확한 패스와 과감한 드리블 능력까지 더해지면서 나폴리 ‘빌드 업’의 시발점 역할도 곧잘 하고 있습니다.


김민재는 양발을 모두 잘 쓰기 때문에 센터백 포지션에서 왼쪽과 오른쪽을 모두 소화할 수 있습니다. 실제 한국 국가대표의 센터백 조합은 왼쪽 김영권, 오른쪽 김민재로 구성될 때가 많은데 나폴리에서 김민재는 왼쪽 센터백으로 더 자주 출장하고 있습니다.


김민재는 지난해 유튜브 채널 ‘고알레(GOALE)’에 출연해 자신의 수비 비결에 대해 설명했습니다.


그는 “공격수가 잘하면 덤비지 않고 기다린다. 그리고 공격수를 따라 갈 때는 몸을 돌리면 한 템포가 늦기 때문에 앞 발을 빼면서 그대로 쫓아가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몸싸움을 할 때는 상체와 함께 하체도 같이 부딪쳐야 한다”는 팁도 전했습니다.


김민재 등장 이전 한국 역대 최고 수비수로 군림했던 홍명보 울산 현대 감독은 “나는 상대의 움직임을 예측하고 대응하는 스타일이었지만, 피지컬 면에선 좋지 못했다”며 “하지만 민재는 유럽의 큰 선수들과 맞설 수 있는 피지컬에 기술과 시야, 패스 능력까지 갖췄다. 그런 점에서 나보다 더 좋은 선수라고 본다”고 말했습니다.


FIFA(국제축구연맹)는 지난달 24일 공식 소셜미디어 채널을 통해 김민재가 왼쪽은 푸른 색 나폴리, 오른쪽은 붉은 색 한국 대표팀 유니폼을 입은 합성 사진을 게재하며 “바위 같은 수비, 리그 최고, 카타르 준비 완료”라고 적었습니다.


이탈리아에선 김민재에 대한 찬사가 쏟아지고 있습니다. 그 중 몇 개를 소개해 보겠습니다.


현재 MLS(미국 프로축구) LA FC에서 뛰는 조르지오 키엘리니는 이탈리아 대표팀에서 117경기(8골)를 뛴 전설적인 수비수입니다. 이탈리아 유로 2020 우승 멤버인 그는 유벤투스에서 16시즌을 뛰며 세리에A 우승컵을 9번이나 들었죠.


그는 김민재에 대해 “처음엔 그에 대해 잘 몰랐는데 보면 볼수록 감탄스럽다”며 “쿨리발리 대체자로 온 그는 여러 가지 능력을 갖췄고, 경기를 거듭할수록 발전하는 모습이 보인다. 그를 영입한 크리스티아노 지운툴리 나폴리 단장에게 찬사를 보낸다”고 극찬했습니다.


AC밀란과 AS로마, 레알 마드리드 등의 지휘봉을 잡고 세리에A 우승 5회, 스페인 라 리가 우승 2회를 일궈낸 이탈리아 출신 명장 파비오 카펠로는 “나폴리는 아무도 몰랐던 김민재를 데려왔다. 그는 쿨리발리보다 더 뛰어난 선수”라고 말했습니다.


나폴리에서 507경기(역대 2위)를 뛴 레전드 수비수 주세페 브루스콜로티는 “김민재는 예전 이탈리아의 단단한 수비를 보여준다. 나는 김민재에게 큰 감동을 받았다. 그를 나의 별명인 ‘Pal e fierr(철기둥)’이라 불러도 좋다”고 했죠.


네덜란드 토털풋볼의 주역 중 하나였던 수비수 뤼트 크롤도 김민재 칭찬 릴레이에 가세했습니다. 크롤은 “나는 수비수 출신이지만, 김민재가 이토록 파괴적인 임팩트를 보여줄 것이라 생각하지 못했다”며 “그는 경기의 흐름을 놓치는 법이 없고, 상황을 미리 다 읽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디에고 마라도나와 함께 나폴리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미드필더 살바토레 바그니는 “김민재가 이렇게까지 잘할 줄은 몰랐다. 그를 몰라봤던 점은 사과하고 싶다”고 했습니다.


‘악동’으로 악명을 떨쳤던 안토니오 카사노는 “나폴리는 약점이 보이지 않는다. 흐비차와 김민재, 지오반니 시메오네 등 높은 가치의 선수가 많다”고 칭찬했네요.


나폴리의 사령탑인 루치아노 스팔레티는 하루 하루가 행복할 것 같습니다. 그는 김민재의 나폴리 데뷔전인 헬라스 베로나전이 끝난 뒤 “그의 경기력은 완벽했다. 마치 쿨리발리를 보는 것 같았다”고 했습니다.


“까다로운 나폴리 스타일에 바로 적응했다” “김민재가 없었다면 경기를 어렵게 치렀을 것이다” “김민재는 엄청난 파워와 스피드를 가지고 있다. 위험한 상황에선 자신의 능력을 두 배 이상 발휘하는 짐승과 같다” 등 스팔레티의 칭찬은 끝날 줄 모릅니다.


쿨리발리도 첼시로 떠난 뒤 김민재가 자신의 공백을 완벽히 메우자 놀란 눈치입니다. 쿨리발리는 “내가 없이도 나폴리는 강하다”며 “스팔레티 감독과 이야기를 나눴는데 김민재가 있어서 내 공백이 느껴지지 않는다고 하더라”고 말했습니다.


이탈리아 언론들도 최근 김민재 띄우기에 앞다퉈 나서고 있습니다.


“김민재는 마치 감시탑 같다. 적을 발견하고, 아군에 명령을 내리고, 격퇴했다(일 마티노).”


“김, 김, 김(Kim, Kim, Kim). 나폴리 홈 구장은 이 한국 선수가 상대를 봉쇄할 때마다 열광에 빠졌다(투토 나폴리).”


“김민재 쪽으론 한 줄기 바람도 통과하지 않는다(라 레푸블리카).”


“김민재는 ‘통행금지’ 팻말을 들고 있는 것 같다. 상대는 그를 피할 수밖에 없다(일 마티노).”


“김민재의 공중볼 경합 능력을 탁월하다. 모든 공이 자석처럼 김민재의 머리에 달라붙는다(투토 나폴리).”


표현이 아주 기가 막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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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현대 시절 김민재. / 조선DB

◇ 한국의 나폴리에서 伊 나폴리까지

그럼 세리에A 최고 수비수로 우뚝 선 김민재의 축구 인생을 살펴볼까요.


그는 경남 통영 출신입니다. 통영의 별명이 ‘한국의 나폴리’인데 그가 지금 나폴리에서 활약하는 걸 보면 뭔가 운명적인 느낌도 드네요.


김민재는 최근 현지 인터뷰에서 “나는 ‘한국의 나폴리’라는 별칭이 붙은 통영이라는 바닷가 도시에서 태어났다”며 “나폴리에서 뛰다 보니 마치 태어난 곳으로 돌아온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국가대표 수비수였던 김호 전 수원 삼성 감독, 김호곤 수원FC 단장도 통영 출신입니다. 김민재까지 등장하며 통영은 명수비수의 산실이 됐습니다.


김민재는 190cm·88kg의 큰 체격에도 나폴리 팀 내에서 두 번째로 빠른 스피드(순간 최고 속도 시속 35km)를 자랑합니다.


이는 부모님에게 받은 선물입니다. 김민재의 아버지는 대학 때까지 유도 선수를 했고, 어머니는 육상 선수 출신입니다. 아버지의 체격과 힘, 어머니의 발을 물려받았습니다.


김민재의 부모님은 2017년까지 통영에서 통영바다막썰어횟집을 운영했습니다. 김민재는 테이블 6개가 전부인 작은 횟집에서 부모님, 형과 함께 살았죠.


그는 어린 시절을 “가난했다”고 표현합니다. 학창 시절엔 돈이 없어 선배들이 신던 축구화를 물려받은 그는 “누구보다 간절하게 공을 찼다”고 말했습니다.


중학교 때 상대를 제치는 것보다 상대의 공을 빼앗는 것이 훨씬 재밌다고 느껴 공격수에서 수비수로 전향했다고 하네요.


김민재는 박지성의 고등학교 후배이기도 합니다. 거제 연초중을 거쳐 수원공고로 진학한 그는 2014년 전국고교축구선수권에서 주장으로 팀에 우승컵을 안기며 수비상을 받았습니다.


연세대 유니폼을 입었지만, “일찍 성인 무대에서 경쟁하고 싶다”며 2학년 때 자퇴했고, 2016년엔 내셔널리그(실업축구) 경주 한국수력원자력에 입단했습니다. 그리고 6개월을 뛰고 전북 현대 유니폼을 입습니다.


김민재가 입단할 당시 전북은 이미 2009년과 2011년, 2014~2015년 K리그 정상에 오른 강팀이었습니다. 워낙 스타가 많아 ‘신인들의 무덤’이라 불리기도 했죠. 스쿼드가 워낙 두꺼워 신인이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었거든요. 더구나 최강희 감독은 베테랑을 중용하기로 유명한 지도자였습니다.


하지만 김민재는 곧바로 최 감독의 눈을 사로잡았습니다. 시즌 개막과 함께 주전 센터백으로 기용된 그는 맹활약을 이어가며 전북의 2017시즌 우승 주역이 되었습니다. 시즌 베스트11과 영플레이어상의 영광도 안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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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베이징 궈안의 김민재. / 한국프로축구연맹

김민재는 2018시즌에도 전북의 우승을 일군 뒤 2019시즌을 앞두고 중국의 베이징 궈안으로 이적합니다. 한국을 대표하는 차세대 수비수가 유럽이 아닌 중국을 선택하자 팬들의 비난이 거셌습니다.


당시 중국 슈퍼리그는 자본이 한창 몰릴 때라 헐크와 오스카, 그라치아노 펠레, 알렉스 테세이라, 알렉산드리 파투 등 제법 알려진 스타 공격수들이 많았습니다. 축구 선수로 경쟁력을 더 올려야 하는 김민재로선 나쁘지 않은 환경이었던 거죠. 2019시즌 34경기를 뛰며 신화통신이 선정한 슈퍼리그 베스트11에 이름을 올린 그는 2020시즌엔 23경기에 나섰습니다.


유럽 진출을 노리는 과정에서 각종 루머가 난무했던 김민재는 2021년 8월 튀르키예(터키)의 명문 클럽 페네르바체 이적을 확정합니다. 베이징에서 받는 연봉보다 낮은 조건이었지만, 유럽에서 새로운 도전을 택한 그에게 팬들은 박수를 보내주었습니다.


김민재는 유럽 무대 적응에 대한 우려를 바로 날려버리며 페네르바체에서 2021-2022시즌 40경기에 출전, 팀의 주축 수비수로 맹활약했습니다. 지금도 페네르바체 팬들은 수시로 김민재의 인스타그램 계정 등에 ‘돌아와라’ ‘우리는 여전히 너를 사랑한다’는 등의 글을 남기며 진한 그리움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김민재는 페네르바체에서 한 시즌을 보내고 나폴리로 오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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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폴리 시절의 마라도나. 그는 나폴리의 신으로 군림했다. / 조선DB

◇ 마라도나 이후 첫 우승에 도전

이탈리아 남부의 나폴리는 축구에 미친 도시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나폴리 인근엔 2000여년 전 폭발했던 베수비오 화산이 있는데 나폴리 팬들은 “우리는 베수비오의 아들~ 언젠가는 터지더라도 그럼에도 이번 생을 너와 함께~”라는 열정적인 가사의 응원가를 부릅니다.


베수비오처럼 뜨거운 열기를 내뿜는 나폴리 홈 구장(5만4000여명 수용)은 나폴리 선수가 골을 터뜨리면 큰 목소리로 선수의 이름을 연호하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김민재도 지난 8월 몬차전에서 골을 넣자 아나운서가 “민짜에!”라고 외쳤고, 팬들은 “킴!”이라고 화답했습니다.


1926년 창단한 나폴리가 세리에A 정상에 오른 건 딱 두 번입니다. 둘 다 나폴리의 신(神)이라 불리는 디에고 마라도나와 함께한 기록이죠.


유벤투스와 AC밀란, AS로마, 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 등 이탈리아 명문 클럽을 두고 1984년 나폴리에 입단한 마라도나는 1986-1987, 1989-1990시즌 나폴리의 세리에A 우승을 이끕니다.


나폴리는 마라도나를 앞세워 UEFA컵(1988-1989시즌)과 코파이탈리아(1986-1987시즌) 우승컵도 한 차례씩 들었죠. 세리에A와 UEFA컵 우승은 마라도나 이전에도, 그리고 이후에도 나폴리의 역사엔 없습니다.


그의 등번호 10번은 나폴리의 영구 결번이 됐죠. 나폴리는 2017-2018시즌과 2018-2019시즌엔 유벤투스에 밀려 세리에A 준우승에 만족했습니다.



마라도나가 2020년 11월 세상을 떠나자 나폴리 구단은 홈구장 이름을 ‘스타디오 산 파올로’에서 ‘스타디오 디에고 아르만도 마라도나’로 바꿉니다.


마라도나의 생일이었던 지난달 30일엔 마라도나의 새 동상이 홈구장에서 공개됐습니다. 왼발이 ‘황금색’으로 된 동상이죠. 나폴리 시민들은 이날 그의 생일을 맞아 마라도나 벽화에 경의를 표하는 등 기념행사를 가지기도 했습니다.


나폴리는 올 시즌 마라도나 이후 첫 우승에 도전하고 있습니다. 워낙 압도적인 전력을 보여주고 있어 조심스럽게 33년 만의 세리에A 정상 등극 가능성이 점쳐집니다.


지난 시즌부터 나폴리의 지휘봉을 잡은 스팔레티 감독은 우디네세, AS로마, 인테르 등을 이끌었던 베테랑 사령탑입니다. 나폴리는 올 시즌 공격적인 4-3-3 전형을 주로 가동하고 있는데요.


이탈리아 출신의 거장 아리고 사키는 “나폴리는 리누스 미헬스의 아약스, 펩 과르디올라의 바르셀로나, 그리고 나의 무적 밀란 등 과거 위대한 팀의 발자취를 따라가고 있다”며 “스팔레티 감독은 일정한 전술에 얽매이지 않으면서 영혼이 깃든 아름다운 축구를 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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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폴리의 사령탑 스팔레티. / 로이터 연합뉴스

나폴리에선 김민재와 함께 올 시즌 새로 온 조지아 출신 공격수 흐비차가 맹활약을 펼치고 있습니다. 그는 ‘가제타 델로 스포르트’ 평균 평점에서 리그 전체 1위(10경기 이상 뛴 선수)를 달리고 있죠. 흐비차의 주 활동 무대가 좌측 측면이다 보니 나폴리는 약간 왼쪽으로 치우친 공격 형태를 보이고 있습니다.


이번 시즌 나폴리의 강점은 다양한 득점 루트입니다. 세리에A와 챔피언스리그를 통틀어 15명이 골망을 갈랐습니다.


빅터 오시멘(나이지리아)과 흐비차가 각각 8골을 터뜨렸고, 디에고 시메오네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감독의 장남으로 유명한 지오반니 시메오네(아르헨티나)도 6골을 기록 중입니다. 자코모 라스파도리(이탈리아)는 5골을 넣었고요. 김민재도 2골을 사냥했죠.


스팔레티 감독은 수비 라인을 올리는 것을 선호합니다. 중앙 수비수들에게도 앞으로 나가 적극적으로 공을 끊고 압박하라고 하죠. 센터백이 공을 몰고 전진하라는 주문도 합니다. 김민재는 올 시즌 스팔레티의 지시에 부합하는 움직임을 종종 보여주고 있습니다.


김민재는 최근 라 레푸블리카와 인터뷰에서 “나폴리는 리그와 챔피언스리그에서 모두 1위를 달리고 있다. 석 달 만에 내 상상을 초월한 일이 벌어졌다”며 감격해 했습니다.


그는 “나폴리라는 도시가 30년이 넘도록 우승을 기다려온 것을 안다. 지금처럼 한다면 우리가 스쿠데토(세리에A 등 이탈리아 리그의 우승 팀이 다음 시즌 유니폼에 붙이는 작은 방패 문양)를 차지할 것이라고 확신한다”고 말했습니다. “이탈리아에서 내 여정은 이제 막 시작했다. 어려운 순간도 분명히 있을 것”이라며 “무엇보다도 이 팀에서 우승한다면 정말 기쁠 것 같다”고 덧붙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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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월 카메룬전의 김민재. / 뉴스1

◇ 카타르월드컵이 눈앞에

나폴리의 희망으로 떠오른 김민재에겐 팀 우승에 앞서 또 다른 큰 도전이 당장 눈앞에 있습니다. 이번 달 열리는 2022 카타르월드컵입니다.


김민재는 2017년 8월 이란과 벌인 러시아월드컵 최종 예선을 통해 한국 국가대표로 A매치 데뷔전을 치렀습니다. 당시 부진 끝에 물러난 울리 슈틸리케 감독을 대신해 ‘소방수’로 투입된 신태용 감독이 전북에서 활약 중이던 김민재를 과감히 발탁했고, 그 결정이 큰 성공을 거뒀죠. 김민재는 안정적인 수비력으로 단숨에 대표팀 주전 자리를 꿰찼습니다.


하지만 이듬해 5월 대구전에서 오른쪽 다리에 실금이 가는 부상으로 김민재의 2018 러시아월드컵 출전은 무산됐습니다. 분루를 삼킨 그는 이어 열린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에 참가해 손흥민·황의조·황인범·이승우 등과 함께 금메달을 합작합니다.


2019 UAE 아시안컵이 성인 국가대표로 맞는 첫 메이저 대회였지만, 그는 좋은 활약을 보여주었음에도 팀의 8강 탈락을 막지 못했습니다. 그해 동아시안컵에선 한 차원 높은 실력을 선보이며 한국 우승에 힘을 보탰죠. 작년엔 도쿄올림픽에 와일드카드로 뽑혔지만, 소속팀 차출 반대로 대표팀엔 합류하지 못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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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월 카메룬전에 나선 김민재. / 조선DB

지난 5월 김민재는 카타르월드컵 출전의 꿈을 이루기 위해 발목에 뼛조각을 제거하는 수술을 받았습니다. 생애 첫 월드컵 출전을 기다리는 김민재는 “세리에A 경기를 뛰면서 좋은 경험을 많이 하고 있다”며 “4년 전 부상 탓에 러시아 월드컵에 나서지 못한 게 끔찍한 트라우마가 됐다. 이번 대회에서는 한국 대표로 출전할 기회를 얻을 것 같은데 내겐 정말 큰 성취”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잘 하고 싶고, 좋은 결과도 가져오고 싶다”며 “4년 동안 성장한 만큼 더욱 이번 월드컵이 정말 기대된다”고 설레는 마음을 드러냈습니다.


월드컵은 이제 3주도 남지 않았습니다. 한국의 ‘괴물 수비수’는 과연 월드컵 무대에서도 포효할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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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민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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