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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렌드]by 조선일보

'예쁜 빗물받이' 신촌 물바다 만들었다

再정비한 서울 침수취약구역 34곳

강남·광화문 등 33곳 멀쩡한데 신촌만 ‘물바다’

‘축제 거리’로 디자인…배수기능 놓쳤다

시간당 30mm 비에도 침수 "앞으로 계속 잠길 것"


지난 28일 저녁 서울 전역에 갑작스러운 기습폭우가 들이닥쳤다.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 부근 화장품 매장을 나서던 오모(22)씨는 눈 앞에 펼쳐진 광경에 깜짝 놀랐다. 연세로 일대가 순식간에 물바다로 변해 있었다.


"매장 출입문 바로 앞까지 빗물이 찰랑찰랑 차 올랐어요. 발목까지 물에 잠길 정도라, 사람들이 어쩔 줄 몰라 하면서 난리도 아니었습니다. 나중에 뉴스를 보니까 도심에서는 신촌만 물바다가 됐더라고요."

'예쁜 빗물받이' 신촌 물바다 만들었

28일 저녁 내린 폭우로 물에 잠긴 서울 서대문구 연세로 일대./ 독자 제공

서울 서대문구청에 따르면 연세로 스타광장 일대가 침수되기 시작한 시점은 지난 28일 오후 7시 40분부터다. 이로부터 약 한 시간 뒤인 오후 8시 30분쯤 물이 모두 빠졌다. 당시 소셜미디어(SNS)에는 ‘수영장’처럼 침수된 연세로 사진이 빠르게 확산되기도 했다.


신촌은 원래부터 침수에 취약한 곳이다. 이에 서울시는 2011년 신촌, 강남, 광화문, 구의·자양동 일대, 도림천 주변 등 34곳을 침수취약구역으로 지정하고 배수시설 정비에 나섰다. 2015년 신촌 현대백화점 주변에도 하수관 용량을 확충하는 공사가 이뤄졌다.


그런데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34개 침수취약구역 가운데 물난리가 난 곳은 신촌 하나 뿐이었다. 조선일보 디지털편집국이 ‘신촌 물바다’ 원인을 추적했다.


◇그날 신촌에만 ‘물폭탄’ 떨어졌나

기상청에 따르면 지난 28일 서울 서대문구 신촌동에는 97㎜의 비가 내렸다. 연세로가 잠긴 시점인 당일 오후 7~8시엔 32㎜, 오후 8~9시엔 23㎜의 강수량을 기록했다. 같은 날 서울 강남구 역삼동에는 시간당 10~30㎜의 비가 내렸고, 서울 종로구 광화문 일대도 비슷한 수준이었다.


신촌 하수관이 폭우를 감당하지 못했던 걸까. 2015년 배수시설 재정비로 신촌 현대백화점 일대에는 길이 1146m, 지름 450~1500㎜의 하수관거(오수나 빗물을 모아 처리장 또는 하천으로 보내는 상자 형태의 하수도관)가 신설·확장됐다. 서대문구청 관계자는 "2015년 이전에는 시간당 60㎜로 내리는 비에 대응할 수 있도록 하수관거가 설계돼 있었다면, 배수시설 재정비 이후에는 시간당 90㎜ 강수량에 침수되지 않도록 용량을 늘렸다"고 말했다.


유독 구멍이 촘촘한 신촌의 빗물받이

전문가들은 빗물이 제대로 빠지지 못했을 가능성을 제기한다. 실제 연세로 빗물받이(빗물 배수구)는 다른 지역과 달리 구멍이 유독 좁다. 이 빗물받이는 미끄럼방지 기능이 있고, 기존 빗물받이보다 튼튼해 파손의 우려가 적다고 한다. 그러나 홈이 좁아 본연의 배수기능은 기존 제품보다 떨어진다.

'예쁜 빗물받이' 신촌 물바다 만들었

연세로 일대에 설치된 빗물받이. 구멍이 좁아 보행을 방해하지는 않지만 낙엽 등 이물질이 끼기 쉽다./ 손덕호 기자

왜 이런 빗물받이를 설치했을까. 서울시는 "연세로 일대가 ‘문화가 있는 거리’로 조성되면서, 축제에 적합한 빗물받이가 필요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도로 위에서 위에서 ‘물총 축제’ ‘맥주 축제’가 열리니까, 사람들이 정신 없이 뛰어다닙니다. 그러다 보면 안전사고가 일어날 우려가 있어서, 튼튼하고 미끄러지지 않는 빗물받이가 설치된 겁니다. 구멍이 좁아야 하이힐 뒷굽이 빠지지도 않고요."

'예쁜 빗물받이' 신촌 물바다 만들었

연세대 맞은편 성산로에 설치된 일반적인 빗물받이./ 손덕호 기자

빗물받이 구멍이 좁아 낙엽·담배꽁초 같은 이물질이 끼기도 쉽다. 서대문구청 관계자는 "물이 빠진 뒤 확인해 보니, 가로수에서 떨어진 낙엽이 빗물받이 구멍을 틀어 막고 있었다"라며 "기상청에서 미리 집중호우 예보를 했으면 환경미화원에게 낙엽을 치우라고 말했을 텐데, 갑자기 비가 쏟아져 대처하지 못했다"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호우가 계속되던 지난 30일에도 연세로 일대 빗물받이는 젖은 낙엽들로 막혀있었다.


◇평평한 연세로, 빗물이 도로 가운데 고였다

보통 도로는 볼록렌즈처럼 정가운데가 튀어나왔고, 양 끝이 낮다. 빗물이 자연스럽게 빗물받이로 흘러 들어가게끔 하는 구조다. ‘차 없는 거리’, ‘문화가 있는 거리’로 조성된 연세로는 대패로 깎은 것처럼 평평하다. 물이 빗물받이로 흘러 들지 못하고, 도로 가운데 고이는 것이다.

'예쁜 빗물받이' 신촌 물바다 만들었

지난해 7월 30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연세로에서 열린 ‘2017 신촌물총축제’ 모습. 차도와 보도 구분 없이 사람들이 이동하며 축제를 즐겼다./ 조선일보 DB

시청 측은 ‘안전한 축제운영’을 위해 인도(人道)·차도(車道)의 높이도 같게 맞췄다. 이것도 신촌 침수의 한 원인이다. 통상 인도는 차도보다 약 18cm 높다. 차량이 인도로 진입하지 못하도록 턱을 설치한 것이다. 동시에 차도에 빗물이 고이더라도 인도까지는 침수할 수 없게끔 하는 역할도 한다. 그러나 ‘물총 축제’ 참가자들이 턱에 걸리지 않도록 인도·차도를 높낮이 구분 없이 낮추다 보니, 보행자들은 18cm 높이의 빗물 방어선 없이 그대로 침수에 노출됐다.


조원철 연세대 토목공학과 명예교수는 "신촌 일대 배수시설이 디자인 단계부터 잘못됐다"면서 "하수관거 용량만 크면 뭐하느냐. 빗물이 흘러들 빗물받이 구멍이 작고, 숫자 자체도 절대적으로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정부가)시간당 90㎜ 강수량에 견딜 수 있다고 큰소리 쳤지만, 30㎜ 빗물도 견디지 못하고 물바다가 됐다"면서 "이것은 앞으로 비가 많이 내릴 때마다 신촌은 계속해서 물바다가 된다는 의미"라고 덧붙였다.

'예쁜 빗물받이' 신촌 물바다 만들었

28일 물에 잠겼던 서울 서대문구 연세로 일대. 인도와 차도의 높이가 같다./ 손덕호 기자

서대문구청은 횡단보도처럼 도로를 가로로 가로지르는 형태로 빗물받이 추가 설치를 검토하고 있다. 구청은 이 공사의 검토→설계→시공→을 연말까지 마무리한다는 방침이다.


[손덕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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