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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처]by 조선일보

영구 50년, 바보 캐릭터 다시 볼 수 있을까

바보들은 다 어디로 갔나

“영구 없~다”를 안다면 당신은 적어도 불혹을 넘겼다. 개그맨 심형래는 1980년대 말 ‘유머1번지’에서 바보 영구를 연기하며 숱한 유행어를 만들었다. 하지만 우리 대중문화사에 가장 성공한 바보는 1972년 방영된 일일 연속극 ‘여로(旅路)’에서 태어났다. 배우 장욱제가 연기한 원조(元祖) 영구. 어느덧 50년을 바라본다.


영구, 칠득이, 맹구···. 바보들의 행진은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만 같았다. 그러나 ‘노브레인 서바이버’의 정준하를 끝으로 명함을 내밀 만한 바보 캐릭터는 감감무소식이다. 영화 흥행작으로 눈을 돌려도 2013년 ‘7번 방의 선물’의 용구(류승룡), ‘은밀하게 위대하게’의 동구(김수현) 이후 씨가 말랐다. 바보들은 왜 시장에서 사라졌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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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한 바보 캐릭터

◇장욱제를 찾아간 심형래

‘여로’는 가난 때문에 바보 영구와 결혼한 여인(태현실)이 고된 시집살이를 하는 드라마다. 시청률이 70%에 달했다. 방송 시간에는 거리가 썰렁했고 택시기사들도 영업을 멈추고 전파사 앞에 모였다. 아이들이 영구 흉내를 내 사회 문제가 될 정도였다. 이대영 중앙대 공연영상창작학부 교수는 “동네마다 바보 형이 한두 명쯤 살았고 너나없이 힘겨웠던 시절”이라며 “‘여로’의 영구는 가구마다 지닌 어떤 상처처럼 시청자의 마음 한구석을 파고든 것”이라고 했다.


전국을 강타한 이 바보 캐릭터는 남산 KBS의 공중전화 앞에서 탄생했다. 장욱제는 최근 전화 통화에서 “촬영 직전까지 영구를 어떻게 표현할지 막막했는데 한 남자의 통화를 우연히 듣고 ‘저거다!’를 외쳤다”고 술회했다. “목재를 납품하는 사장님이었는데, 전화통 붙들고 ‘못 6모짜리 3근 하고 3모짜리 10근 하고 지금 빨리 KBS로 가져와!’를 되풀이하고 있었어요. 그 말투를 밤새 연습했습니다. 그게 해결되자 걸음걸이, 손짓은 금방 완성됐지요.”


성공은 양날의 검이다. 장욱제는 바보 영구로 이미지가 굳어져 다른 배역을 맡기 어려웠다. 배우 생활을 접고 부산의 한 호텔에서 일하던 1984년, 심형래가 그를 찾아왔다. “영구를 개그로 되살리고 싶습니다.”(심형래) “특허를 낸 게 아니니 마음대로 하세요.”(장욱제) 심형래는 유머1번지에서 영구를 재해석해 큰 인기를 얻었고 ‘영구와 땡칠이’ ‘영구와 우주괴물 불괴리’ 같은 영화까지 흥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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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형래는 드라마 ‘여로‘의 바보 영구(장욱제)를 개그로 재해석해 인기를 끌었다.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실종된 바보, 돌아올 길은?

과거에는 ‘샌드백 코미디’라는 장르가 있었다. 얻어맞는 바보 캐릭터가 존재했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개그콘서트 시절부터 조금씩 균열이 시작되면서 바보 모습으로 뭔가 당하거나 웃음을 주는 개그 코드가 사람들을 불편하게 만들었다”며 “넓게 말하면 약자를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진 것”이라고 했다.


녹화가 아닌 공개 코미디 시대로 바뀌면서 여차하면 말실수로 ‘폭망’한다. 여혐, 장애인이나 외모 비하 등 콘텐츠에 금기(禁忌)가 많아졌다. 심형래는 “아이디어 회의를 할 때 무슨 말만 하면 후배들이 ‘선배, 요즘 그런 거 하면 큰일 나요’ 한다. 심의가 까다롭던 전두환 정권 때보다 훨씬 웃기기 힘든 세상”이라고 했다.


‘리어왕’을 비롯해 셰익스피어 희곡에 나오는 광대들은 하나같이 ‘현명한 바보’다. 왕에게 직언하고 진실을 마주하게 하는 쓸모 있는 존재다. 바보는 우리 곁으로 영영 돌아올 수 없는 것일까. 그렇지만은 않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강자를 대상으로 한 희화화는 가능하다. 심형래의 영구도 무식하다고 공격하는 사람을 오히려 당황하게 만들곤 했다”며 “바보에게 강자를 풍자하고 약자를 대변하는 기능을 주면 우리 시대에도 얼마든지 바보를 되살릴 수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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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2년 '여로'에서 바보 영구를 연기한 장욱제가 당시를 회고하고 있다. /송승환의 원더풀라이프

[박돈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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