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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배우 노출의 영악한 셈법 보여준 '상류사회'

‘은교'의 김고은, ‘아가씨'의 김태리... 성공적인 노출 연기

작품성? 착취? 감독의 관점에 따라 여배우 평가 달라져

‘상류사회'... 두 여배우 노출에 대한 카메라의 차별적 시선 아쉬워

여배우 노출의 영악한 셈법 보여준 '

강도 높은 노출 수위로 화제가 되고 있는 영화 ‘상류사회'의 수애와 박해일. 변혁 감독이 상류사회의 파격적인 민낯을 공개한다.

#스포일러로 여겨질 수도 있는 글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한국의 여배우들에게 노출은 매우 부담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영화에서 한번 노출을 하게 되면 포털에 거의 반드시 ‘노출’이라는 단어가 연관 검색어로 따라 붙는다. 사회는 여배우의 노출에 이중적 시선을 보낸다. ‘과감하다’는 칭찬을 하지만, 그건 표면적인 것이다. 한쪽에서는 여배우의 나신을 구경하고픈 관음증이 작동하고, 한편으로는 ‘조신한 여성’ 이데올로기를 동원한 윤리적 힐난이 따라 붙는 것이다.


사회의 이 위선적 시선은 영화 현장에서 여배우들의 노출을 둘러싼 복잡한 셈법을 만든다.


1999년 말 개봉한 ‘해피엔드’에서 전도연은 당시로선 꽤나 파격적인 베드신을 선보였다. 과감한 노출도 불사했다. 직전에 개봉한 ‘접속’ 등의 영화로 상종가를 달리던 전도연에게는 상당한 모험이었고 도전이었다. 그 모험의 결과 전도연에게 CF가 뚝 끊겼다.


상황이 이러하니, 이른바 잘 나가던 여배우들은 자연스럽게 노출을 꺼리게 되었다. 아무리 시나리오가 괜찮다고 할지라도 여배우들은 이미지 손상을 염려해 노출 수위가 높은 배역을 주저하게 된 것이다. 대신 그런 배역은 거의 신인 여배우들의 전유물이 되었다. 신인 입장에선 그렇게라도 배역을 따내는 것이 중요하기에 노출 연기를 거부하기가 쉽지 않다.


‘인간중독’(2014)의 임지연은 상당히 과감한 노출 연기와 베드신을 선보였다. 역시나 당시 그녀가 신인이었기에 그런 배역이 주어졌다. 이듬해 그녀는 ‘간신’(2015)이라는 시대극에 출연해 또 한번 벗었다. 한 번 벗은 여배우에게는 계속 그런 배역 제안만 들어온다. ‘방자전’(2010)의 조여정이 ‘인간중독’ ‘워킹걸’ 등 이른바 야한 영화에 자주 출연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여배우 노출의 영악한 셈법 보여준 '

정지우 감독의 영화 ‘은교'로 혜성처럼 등장한 김고은과 상대역 박해일. 김고은은 이후 한국 영화에서 대체불가능한 존재가 됐다.

그러나 신인이어서 벗은 게 반드시 마이너스 효과만 부르는 건 아니다. ‘은교’(2012)의 김고은은 오히려 그 작품 이후 시쳇말로 ‘떴다.’ 이후의 작품들에선 사실상 노출과는 상관 없는 역할을 맡았다. 노골적인 동성애 장면이 등장하는 ‘아가씨’(2016)의 김태리도 마찬가지다. 지난해 말 개봉한 ‘1987’을 비롯해 최근 인기 상종가인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까지, 김태리는 충무로의 가장 핫한 연기파 20대 여배우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그렇다면 임지연, 조여정의 사례와 김고은, 김태리의 사례는 어떤 차이가 있는 것일까. 똑같은 노출과 수위 높은 베드신인데 왜 어떤 배우는 다른 연기 영역으로 점프업할 수 있는 것일까. 그건 결국 작품에 달렸다. 정확하게 말해 노출과 베드신이라고 다 똑같은 게 아니다. 수위의 문제로 단순화시킬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여배우의 몸을 대하는 연출자의 태도에 달렸다. 즉, 그가 여배우의 노출을 통해 관객들에게 무엇을 줄 것인가, 이것이 관건이라는 얘기다.


‘은교’에서 김고은이 보여준 노출은 스토리적인 맥락에서 타당했을 뿐더러 매우 아름다웠다. 그것은 포르노그래피적인 시선을 유도하지 않았고, 김고은은 단순히 야한 연기를 한 신인 배우로 기억되지 않았던 것이다. 연기력도 단순히 벗기만 하는 여배우라는 낙인으로부터 그녀를 스스로 구원했다.


그런데 사실상 배우 자신의 연기력은 둘째 문제다. 감독이 여배우의 몸을 영화적 맥락 안에서 얼마나 타당하게 보여 주느냐는 매우 중요한 관건이다. 유감스럽게도 임지연의 노출은 감독에 의해 착취 당한 경우다.

여배우 노출의 영악한 셈법 보여준 '

파격적인 노출로 주목받았던 박찬욱 감독의 영화 ‘아가씨'의 김태리와 김민희. 이 영화 이후 두 여배우는 각자 다른 길을 갔다.

지난주 개봉한 영화 ‘상류사회’에서는 두 가지 태도가 동시에 등장한다. 이 영화의 주연인 수애는 영화 속에서 벗지만 벗지 않는다. 정황적으로만 벗었을 뿐, 그 모습이 보여지지는 않는다. 노출 연기에 대한 부담감을 덜어주려는 감독의 의도가 읽힌다. 그런데 박해일의 비서관으로 등장하는 김규선은 처음부터 박해일을 성적으로 유혹하며 베드신에서 전라를 노출한다. 왜 수애는 베드신에서 단지 어깨 정도만을 보여주는데 김규선은 다 벗었을까. 차이는 앞서 설명했다. 배우의 지명도와 인기도의 차이다.


자신의 성관계 장면이 찍힌 동영상에 대해 수애는 말한다. "사랑? 그 동영상 좀 봐. 사랑이라고 부르는 게 얼마나 추한지." 정작 그 동영상 속의 벗은(?) 수애는 상대 남자 배우의 등에 의해 가려져 있다. 카메라의 위치상 도저히 나올 수 없는 앵글 속에서 수애는 안전하게 벗고 있다. 결코 추해 보이지 않는다. 동영상은 수애의 대사를 배신하고 있다. 박해일과 비서관의 정사신이 매우 노골적으로 등장하는 것과 대조적이다. 변혁 감독은 심지어 일본 AV 여배우까지 캐스팅해 사실상 포르노그래피에 가까운 베드신을 연출했다. 감독이 의도한대로, 그 장면은 추하다.


영화 ‘상류사회’는 욕망의 세계 속에서 철두철미하게 자신들의 기득권과 잇속을 챙기는 대한민국 상위 1%의 민낯을 고발한 작품이다. 감독의 주제의식은 유의미하다. 그러나 감독이 그 유의미한 주제를 실어 나르는 방식은 상위 1%의 영악함을 닮았다. 만만한 여배우의 몸을 시각적으로 착취하는 것 말이다.

 

최광희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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