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압에 굴하지 않은 마녀들… 카메라로 불러내다
제32회 이중섭미술상 '박영숙'
1세대 페미니스트 사진 작가, '마녀' '미친년 프로젝트' 등 수십년간 여성의 현실 담아
"카메라 메고 촬영 다니다가 오해받아 파출소 불려가기도… 비주류에 賞 주어지니 감격"
여기 '미친년'이 있다. 머리에 꽃을 달거나, 망토를 두르거나, 나체로, 혹은 칼을 든 채 이곳이 아닌 저곳을 바라보고 있다. "그녀들은 착한 여자 콤플렉스에 빠져 있었다. 삶, 자신, 육체, 지식, 의지, 희망, 미래까지 다 빼앗긴 채. 그러나 그녀 내면 깊숙한 곳에 속삭임이 있었다. 바보야 그건 네 삶이 아니야." 광기(狂氣)를 얻은 여자들은 신발을 구겨 신고 억압 밖으로 탈주한다.
올해 제32회 '이중섭미술상' 수상자로 선정된 1세대 페미니스트 사진가 박영숙(79)씨는 이른바 '미친년 프로젝트'로 대표된다. "세상이 많이 바뀌었다지만 당시만 해도 여전히 여성들에게 전통 사회의 잣대를 들이밀고 있었다." 가부장제의 희생자였으나 이윽고 각성하는 여성을 담아낸 일련의 사진전은 1999년부터 2005년까지 아홉 번에 걸쳐 열렸다. 피 묻은 생선 토막과 함께 식칼 들고 먼 데를 응시하는 여자('갇힌 몸 정처 없는 마음'·2002)처럼 사진은 섬뜩하며 강렬하다. "'미친년'은 동시대를 앞설 수밖에 없다. 억압에 굴하지 않고 자기를 드러내기 때문이다. 의식을 깨는 것이 프로젝트의 전부였다."
박영숙 작가는 “돈 안 되는 작업을 하는 나 같은 비주류에게 이 상이 주어지니 너무 놀랍다”고 말했다. 사진 속 카메라는 아버지가 물려준 독일 콘탁스 카메라다. /고운호 기자 |
다큐멘터리 사진 작업을 하던 그가 미치기 시작한 것은 나이 마흔이 돼서였다. "대학 졸업 후 3년간 잡지사 사진기자 하다가, 스물일곱에 결혼해 열심히 아이 길렀다. 아이가 일곱 살쯤 되니 그제야 시간이 되더라. 하지만 육아하면서도 1초도 사진을 놓지 않았다. 늘 사진을 생각했다." 서른아홉, 유방암이 찾아왔다. "지난날을 돌아보니 이뤄놓은 게 전혀 없었다. 내 주변의 역사를 기록하고 싶어 또래 예술가들을 찍었다." 그렇게 '36명의 포트레이트' 작업 이후 인물 사진으로 진로를 바꿨다. '여성과 현실' '또 하나의 문화' 등의 모임에서 여성주의를 접했다. "중세 마녀 이야기에 깊이 빠져들었다. 지혜로웠으나 그들의 도전적 에너지는 두려움이 됐고, 끝내 화형당했다."
(위부터) 1988년 작 ‘마녀’의 일부. 1999년 작 ‘미친년들’ 연작. /ⓒ박영숙 |
그는 마녀를 불러내기로 결심했다. 1988년, 경기도의 한 폐가로 들어갔다. 제자에게 검은 망토를 입히고, 희미하던 마녀가 멀리서 천천히 존재를 드러내는 효과를 흑백사진으로 구현했다. 작품명 '마녀', 페미니스트로서 내놓은 첫 사진이었다. "억울한 그녀들에게 위령제를 지내주고 싶었다. 아직 그 혼이 머물고 있다고 느낀다. 나는 마녀이고 싶다." 그는 김혜순 시인 등으로 구성된 페미니스트 모임 '영매(靈媒)' 멤버이기도 하다.
8남매 맏딸로 태어난 여성주의자, 그러나 그를 길러낸 건 남자였다. "토목업 하시던 아버지 카메라를 장난감처럼 갖고 놀았다. '저기가 어딜까' 생각만 하지 말고 '저기로 가봐라' 가르치시던 분이다." 아버지의 독일제 콘탁스 카메라로 사진에 입문한 그는 집창촌과 시장과 공장 등을 누비며 셔터를 눌렀다. "1975년 무렵 어느 날, 경찰이 집으로 찾아와 '당신 뭐 하는 사람이냐'며 파출소로 데려간 적도 있다. 간첩 이상으로 보였을 것이다."
1966년 첫 개인전 이래 50여 년. 돈 되는 작품이 아니었고, 녹록지 않은 시간이었다. 2006년 첫 사진 전문 갤러리(트렁크갤러리)를 열었으나 2018년 12월 폐업했다. "젊은 작가들의 사진을 미술관이 소장하도록 하는 게 목표였다. 돈 위주로만 돌아가는 미술판에 대한 저항이었다. 은행에 집 잡혀 한 달 이자만 800만원씩 나가기도 했다. 할 만큼 했는데 안 바뀌더라." 작년엔 운전 중 앞차를 들이받아 머리를 크게 다쳤다. "이런 것들이 나를 옥죌 수 없다. 나는 거의 회복됐다. 전혀 불행하지 않다."
이중섭미술상 심사평
그의 사진은 여성 욕망 드러낸 시각 자료… 페미니즘 미술에 큰 획
모든 작품은 작가의 경험과 사유와 노동의 산물이지만, 개인이 위치한 당대성 또한 지닌다. 한국 현대미술에서 이중섭이 큰 의미를 갖는 것도 그의 작품이 개인적 고난의 결과물이자 전쟁과 이산이라는 사회적 산물이기 때문이다.
작품이 작가를 벗어나 사회에 놓이는 이른바 '정신성'은 이중섭뿐 아니라 좋은 작품에서 공통으로 발견되는 요소다. 이 같은 예술의 정신성을 고려해, 심사위원 전원은 박영숙을 수상자로 선정함에 주저하지 않았다. 일찌감치 그는 피사체로서의 인간을 작가의 이상향을 표상하는 주제로 삼아왔다. 특히 그의 화면에서 여성은 주체로서 자신의 일상과 욕망을 드러낸다. 대표작 '미친년 시리즈'는 개인적 욕망을 사회의 틀에서 확인시키는 시각 자료로서, 한국 페미니즘 미술에서 중요한 지점에 있다. 현재 작가는 인간과 자연의 질서에 대한 성찰로 사유를 확장해, 뷰파인더를 생명 가득한 자연인 숲을 향해 두고 있다. 대중의 반응에 함몰되지 않고 탈억압의 지표를 제시하는 작가의 확장된 세계를 만나고 싶은 열망으로 그의 수상기념전을 기다린다.
제32회 이중섭미술상 심사위원회(위원장 윤석남, 위원 최태만·조은정·민병직·조수진)
정상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