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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by 조선일보

어깨 무거워진 ‘로즈란’… 정치권은 왜 스포츠 스타를 좋아하나

[아무튼,주말]

반복되는 자격 논란에도

체육인 정·관계 발탁 이유

‘로즈란’도 피해 가지 못했다.


베이징 올림픽 역도 영웅 장미란(40)의 문화체육관광부 2차관 임명을 둘러싼 후폭풍이 계속 불고 있다. 야당을 중심으로 체육 선수 출신이 고위 행정 관료에 오를 자격이 있느냐는 비난이 쏟아진 것.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팬카페에는 “장미란 2찍(보수 지지자)인 줄 몰랐네. 실망”이라는 글이 올라왔다. 장미란 자격 논란은 여야 정치 공방으로 번지고 있다. 민주당 안민석 의원이 페이스북에 “2019년 심석희 선수 미투와 최숙현 선수 사망 사건으로 체육계가 떠들썩했을 때 장 차관은 침묵했다”고 비판하자 국민의힘 윤재옥 원내대표는 “역도 선수가 뭘 아느냐는 식의 질 낮은 폄하 발언은 상식선에서 이해할 수 없는 극단적 대결주의의 소산”이라고 맞섰다.


스포츠 스타의 정·관계 진출은 역대 정권에서 보수·진보 진영을 가리지 않고 이뤄져 왔다. 그럴 때마다 자격 시비가 붙었다. 이런 논란에도 불구하고 정치권에선 어떤 이유로 스포츠 스타를 기용하는 걸까.



조선일보

문체부 2차관에 임명된 장미란을 비롯해 스포츠 스타가 정·관계에 진출할 때마다 '자격 논란'이 반복되고 있다. 사진은 2012 런던 올림픽에서 바벨을 들어 올리는 장미란. / 조선일보DB

◇국민적 인지도에 쏟아지는 러브콜


정치권의 체육 선수 출신 영입은 2000년대 들어 크게 늘고 있다. 올림픽·아시안게임 등 국제 스포츠 대회에서 메달을 따며 국민적 인지도를 얻은 스타 선수들이 대부분. 19대 국회에 새누리당(국민의힘 전신) 소속으로 국회에 입성했던 문대성 전 의원은 2004년 아테네 올림픽 태권도 금메달리스트다. 이에리사 전 의원은 1970년대 세계선수권과 아시아선수권을 제패한 한국 탁구의 전설이다. 21대 국회에선 ‘우생순’ 신화의 주인공인 임오경(민주당) 의원과 한국 썰매 종목의 기반을 다진 이용(국민의힘) 의원 등이 대표적인 운동선수 출신 정치인이다. 체육 선수 출신이 문체부 차관에 발탁된 것은 박종길(사격·박근혜 정부), 최윤희(수영·문재인 정부)에 이어 장미란이 세 번째다.


이처럼 정치권에서 선수 출신에게 러브콜을 보내는 것은 스포츠 선수가 갖는 스타성 때문으로 풀이된다. 통상 스포츠 스타는 진영을 가리지 않고 고른 지지를 받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더 많은 국민적 지지를 이끌어내는 카드가 된다는 것이다. 한 대학교수는 “검사, 변호사 등 법조 출신 국회의원이 많은 한국 정치 환경에서 스포츠 스타의 정·관계 진출은 신선한 자극제가 될 수 있다”며 “경기장에서 실력 하나로 승부하는 운동선수야말로 최근 우리 사회가 중시하는 공정 가치와 부합한다”고 말했다.


◇롱런은 드물어


체육인 출신의 정·관계 진출이 늘고 있지만 롱런하는 경우는 드물다. 농구 선수 출신으로 문재인 정부 시절 고용노동부 장관을 지낸 김영주 의원(민주당·4선)을 제외하면 국회에 입성한 주요 체육인 출신 의원 대부분은 초선에 그치고 있다.


이들이 뿌리를 내리지 못하는 원인은 정치권이 장기적 안목 없이 스타 선수의 이미지를 소비하는 데 급급하기 때문이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선거철에만 체육계를 찾아 지지를 호소하다가 선거가 끝나면 관심을 끊는 경우가 허다하다”고 했다.


이 때문에 과감하게 정치권 러브콜을 거절하기도 한다. 탁구 레전드 현정화(현 한국마사회 탁구단 감독)는 1991년 지바 세계선수권에서 남북 단일팀으로 우승한 이후 최근까지도 정치권에서 영입 제안을 받고 있지만 모두 거절하고 있다. 현정화는 지난해 한 인터뷰에서 “정치 제안이 자주 들어오지만 안 좋은 모습을 너무 많이 봐서 정치를 하고 싶지 않다”고 밝혔다.


◇운동선수에 대한 편견도 여전


일각에선 운동선수 출신에 대한 한국 사회 특유의 편견이 체육계의 정치 참여를 가로막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엘리트 체육으로 기울어진 국내에선 체육 꿈나무들은 학업을 포기하고 운동만 하도록 강요받는다. 이런 풍토에선 아무리 선수 은퇴 후 학위를 받고 전문성을 쌓아도 선수 출신에 대한 자질 논란이 나올 수밖에 없다는 것. 한 체육교육과 교수는 “10~20년 이상 한 종목에서 운동을 한 선수들은 누구보다 체육 현장의 난맥상을 잘 알고 있지만 ‘운동선수는 안 돼’라는 편견 탓에 이들의 노하우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는 게 안타깝다”고 했다.


이 때문에 정치권에선 “이번 기회에 전문성 검증을 마친 선수 출신에게 해묵은 체육계 현장을 개혁할 권한을 줘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한 전직 국회의원은 “프로야구 롯데의 레전드 최동원은 후배 선수들의 권리 신장을 위해 선수협을 만들려다 좌절한 뒤 1991년 부산에서 민선 지방선거에 출마했는데, 당시 지지세가 강한 민주자유당의 영입 제의를 거절하면서 결국 낙선했다”며 “하지만 이를 계기로 체육계의 요구가 높아지면서 결국 선수협이 만들어졌다”고 말했다.


[최인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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