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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플이 전기차 시장 흔든다고? 전기차가 애플을 빨아들였다

“전기차 산업의 구조적 격변, 애플 불러들여”

빅테크·자동차·부품 업체 간 ‘투쟁’과 합종연횡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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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플이 현대차그룹과 손잡고 전기차 산업에 뛰어들 준비를 하고 있다는 소식이 올 초 한국 증시를 흔들었다. 현대차 주가는 연초 대비 18%, 기아는 40%나 뛰었다. <27일 기준> 현대차·기아가 애플 브랜드의 자동차를 만들어 납품하면 2030년까지 연간 2600만대로 예상되는 전기차 시장에서 압도적 시장 점유율을 차지할 수 있다는 기대 때문이다.


산업 전문가들은 그러나 좀 더 큰 의미를 부여한다. “애플이 전기차 시장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전기차 시장의 구조적 변화가 애플을 불러들였다”는 것이다. “차세대로 가는 전기차 시장의 격변을 예고한 사건”이라는 말도 나온다. 단순히 IT 기업과 자동차 기업의 협력이 아닌, 미래 자동차 시장을 둘러싼 산업과 기업, 기술 간의 ‘투쟁’이 본격화하는 신호탄이란 해석이다.


전기차 시장에 어떤 변화가 시작되려는 것일까. 전문가들은 크게 세 가지 변화를 꼽는다. 전기차 요소 기술의 상향 평준화, 시장 중심의 이동, 배터리 기술의 도약이다. 선우명호 한양대 에이스랩 교수는 “지금까지 테슬라가 주도하던 전기차 시장에 올해부터 여러 플레이어가 뛰어들면서 ‘넥스트 테슬라’ 시대로 넘어갈 것”이라며 “이 세 가지 변화에 어떻게 적응하느냐가 (전기차) 제조 업체는 물론, 주요 부품 업체의 흥망을 좌우할 것”이라고 했다. Mint가 격변을 앞둔 전기차 산업의 미래를 미리 들여다봤다.


◇'타도 테슬라'로 급성장한 생태계


기존 전기차 산업의 대표 기업은 미국 테슬라다. 이 회사는 기존 내연기관차에서 엔진을 빼내고 전기모터와 배터리를 장착한, 닛산 리프(Leaf) 같은 ‘1세대 전기차’의 개념을 거부했다. 테슬라는 최초 설계부터 부품까지, 모두 전기차 전용으로 개발·생산했다. 이른바 ‘네이티브 전기차(Native EV)’다. 배터리를 차량 바닥에 배치한 ‘스케이트 보드’식 플랫폼, 수천 개의 원통형 배터리를 묶어서 만든 배터리팩, 전기차에 최적화한 신형 모터와 자율 주행 기능의 차량 운행 시스템 등을 모두 테슬라가 직접 개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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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슬라의 전기차는 마감 품질이 조악하다는 혹평에도, 성능과 편의성에서 기존 자동차 업체들의 전기차를 압도했다. 테슬라는 지난 2017년 하반기 ‘모델3′의 판매 개시 이후 줄곧 전기차 세계 시장 점유율 1위를 유지하고 있다. 2003년 창업한 신생 기업이 100년 넘는 역사의 미국 GM(제너럴모터스)과 독일 메르세데스 벤츠, BMW 등을 제친 것이다.


이젠 기존 자동차 업계가 테슬라를 추격하고 있다. 차세대 전기차 시장의 주역은 ‘테슬라 천하’에 도전하는 자동차 업체와 IT 업체, 부품 업체들이다. 업계 전체가 테슬라와 경쟁하기 위한 다양한 전기차 요소 기술 개발에 뛰어들고, 업체 간 합종연횡도 활발해지는 과정에서 전기차 산업 생태계의 기술력이 상향 평준화되면서 가능해진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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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컨대 LG화학과 삼성SDI, SK이노베이션 등은 치열한 경쟁을 통해 지속적으로 개선된 성능의 배터리를 내놓고 있다. 이들의 배터리를 이용해 기존 자동차 업체들이 한 번 충전으로 350~500㎞에 이르는 장거리 운행이 가능한 전기차를 출시했다. 엔비디아와 구글, 인텔 등은 범용(汎用) 자율주행 기술에서 테슬라와 어깨를 나란히 할 기술을 개발해 이 중 일부를 시장에 선보이고 있다. 또 캐나다 자동차 부품업체 마그나는 LG전자와 손잡고 전기차 전용 고성능 모터와 인버터(전기를 직류나 교류로 변환하는 장치) 등의 부품을 만들어 공급하기로 했고, 폭스콘 등 전문 제조 업체는 누구나 사서 쓸 수 있는 전기차 전용 플랫폼을 개발해 내놓을 예정이다.


송선재 하나금융투자 팀장은 “고성능 전기차 제작에 필요한 각종 부품과 기술을 확보할 수 있는 방법이 훨씬 더 넓어진 상황”이라며 “이를 통해 더 많은 기업이 전기차 산업에 뛰어들면서 산업 전체의 지평이 바뀔 수 있게 됐다”고 했다. 이는 기존 스마트폰 시장에서 벌어진 일과 유사하다.


◇누구나 전기차를 만들 수 있다


스마트폰 산업을 이끌어온 애플이 전기차 시장의 이런 변화를 놓칠 리 없다. 특히 전기차는 내연기관차 대비 부품 수가 3분의 1 수준에 불과하고, 기계 공학 못지않게 전기·전자제어 기술의 비중이 커서 정밀 IT 기기를 만들어본 기업들이 도전하기에 상대적으로 수월하다.


김필수 대림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애플은 결국 전기차 시장도 스마트폰 시장처럼 될 것을 예감했을 것”이라고 했다. 그는 “공급망(협력업체) 관리에 도가 튼 애플이라면 디자인과 핵심 기술 한두 가지만 확보하고, 적합한 협력 업체를 고르면 아이폰의 성공 신화를 전기차 시장에서 재현할 수 있다고 판단했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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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니가 올 초 CES2021에서 공개한 자사의 컨셉트 전기차 '비전S' 의 주행 영상. 작년 말 오스트리아에서 치른 공도 주행 실험 모습이다. /소니

아이폰을 위탁 생산하는 대만의 전자업체 폭스콘이 최근 중국 지리자동차와 전기차 합작사를 세우고, 일본 소니가 올 초 전기차 콘셉트카 비전S의 주행 영상을 공개하는가 하면, 미국 마이크로소프트가 일본 혼다 등과 공동으로 GM의 자율주행 전기차 자회사인 크루즈에 2조원을 투자한 것 역시 전기차 시장의 판이 격변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만큼 시장 진입의 장벽이 낮아진 것이다.


여기에 폴크스바겐은 앞으로 5년간 95조원, GM은 30조원을 투자할 예정이고, 피아트크라이슬러(FCA)와 푸조시트로앵(PSA)이 합병해 출범한 스텔란티스는 2025년부터는 범(汎)전기차(하이브리드 등 포함)로만 신차를 출시하기로 하면서 차세대 전기차 시장을 둘러싼 생존 경쟁은 더욱 치열해지게 됐다.


◇西進하는 전기차 시장


차세대 전기차 시장의 또 다른 특징은 서구 선진국으로 시장의 중심이 옮겨 간다는 것이다. 지금까지는 중국이 세계에서 가장 큰 시장이었다. 2019년 중국 내 전기차 판매량은 120만대로, 유럽(59만대), 미국(32만대)을 크게 앞섰다.


그러나 지난해부터 시장의 중심이 미국과 유럽으로 움직이는 ‘서진’ 현상이 나타났다. 2020년 유럽에서는 코로나 사태 속에서도 전기차 판매만 크게 늘었다. 탄소 배출 규제가 강화되면서다. 스웨덴 시장조사업체 EV볼륨스닷컴은 “2020년 유럽 내 전기차 판매량이 약 140만대로, 중국(134만대)을 제치고 세계 1위 시장이 됐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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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세계 최대 자동차 시장인 미국의 변화가 심상치 않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25일(현지 시각) 정부 자동차와 트럭을 미국산 전기차로 교체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친환경 ‘그린뉴딜 정책’의 일환으로 미국 생산 전기차 보조금을 확대할 가능성도 크다. 각 주 정부도 전기차 충전소 인프라를 확충하고 있다.


업계는 미국과 유럽 전기차 시장을 겨냥한 설비 증축에 뛰어들었다. BMW는 독일 뮌헨 공장을, 폴크스바겐은 독일 엠덴 공장을 전기차 전용 공장으로 전환하고 있다. GM도 본사가 있는 미 디트로이트 공장을 전기차 공장으로 바꿀 계획이다. 배터리 업계도 그 뒤를 따른다. LG에너지솔루션은 오하이오주에, SK이노베이션은 조지아주에 배터리 생산 공장을 짓고 있다. 유럽에선 이미 폴란드·헝가리에서 공장을 가동 중이다.


◇배터리의 한계를 뛰어넘다


전기차가 내연기관 차를 완전 대체하려면 일단 차 값이 싸져야 한다. 또 한 번 충전으로 서울~부산 정도를 달릴 수도 있어야 하고, 충전 시간도 짧아져야 한다. 무엇보다 사고가 났을 때 화재·폭발 위험성이 없어야 한다. 모두 배터리와 연관된 문제다. 차세대 전기차 시장의 마지막 구성 요소는 배터리 기술의 도약이다. 전기차의 경쟁력을 확 끌어올릴 새 배터리 기술들이 전기차 시장의 문을 활짝 열 것으로 기대된다.



첫째 후보는 고밀도·고성능 배터리다. GM이 LG에너지솔루션과 공동 개발한 ‘얼티움 배터리’는 ‘NCMA 배터리'다. 주요 재료인 니켈(N)·코발트(C)·망간(M)·알루미늄(A) 중 에너지 용량을 담당하는 니켈 함량을 높여 옛 모델 대비 에너지 효율을 60% 높였다. 더불어 값비싼 코발트의 함량을 줄여 생산 단가도 20~30% 낮췄다. GM은 CES에서 “얼티움 배터리를 이용, 한 번 충전으로 최대 600마일(966㎞)까지 달릴 수 있는 전기차를 곧 내놓을 수 있다”고 밝혔다.


둘째는 ‘C2C’(Cell to Chassis) 배터리 기술이다. 배터리를 자동차 뼈대(Chassis) 안에 들어 가는 구조물로 쓰는 방식이다. 현재는 배터리 안전성을 높이기 위해 전기가 저장되는 ‘셀(cell)’을 여러 번 감싸 팩이나 모듈 형태로 만드는데, 셀을 차체 안에 내장하면 안전성은 유지하면서 차 전체의 무게를 줄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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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물간 기술로 여겨졌던 리튬인산철(LFP) 배터리도 다시 주목받고 있다. LFP 배터리는 주행 거리는 상대적으로 짧지만, 값이 싸고 폭발 위험성도 낮다. NCM 배터리가 1kWh당 100~120달러 수준이라면, LFP는 60~80달러 안팎이다. 전기차 배터리 시장조사업체 SNE리서치의 김광주 대표는 “충전 인프라가 확장되면 주행 거리에 덜 얽매이게 되어 LFP를 이용한 값싼 전기차가 쏟아질 수 있다”고 했다.


이 밖에도 음극재 소재를 흑연에서 실리콘으로 바꿔 충전 시간을 단축하는 방법(실리콘 배터리), 전해질을 액체에서 고체로 바꿔 폭발 위험성을 낮추는 방법(전고체 배터리) 등도 연구 중이다. 개발이 완료되면 모두 ‘게임 체인저’가 될 수 있는 기술로 꼽힌다.


[윤형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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