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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by 조선일보

“안희정 조종하던 광신도들, 새 숙주로 갈아타…두고볼 건가”

[아무튼, 주말]

[정시행 기자의 드라이브]

진보 진영 위선 고발한

‘안희정 미투’의 조력자 문상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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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 전 한국에선 전무후무한 방식의 미투(Me too·'나도 당했다’는 뜻의 성폭력 고발 운동) 사건이 일어났다. 당시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의 유력 대선 주자 안희정 충청남도 도지사가 20세 어린 비서의 성폭행 폭로로 하룻밤 새 추락한 것. 피해자 김지은씨는 이례적으로 얼굴과 실명을 공개하고 나왔다. 극단적 장면의 대비에 충격받은 사람들은 그 정도면 끝일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것은 모든 추악한 이야기의 시작이었다.


“지금껏 아무것도 나아지지 않았습니다.”


2018년부터 김씨의 미투 폭로와 법정 투쟁을 도운 ‘첫 조력자’의 말이다. 바로 문상철(40) 전 충남도지사 수행·의전비서. 그는 오직 피해자 편에 서기 위해, 8년을 몸담은 안희정 사단에서 이탈해 내부 고발자가 됐다. 문씨는 “가해자와 가해자를 도운 이들은 서로의 뒤를 봐주며 잘 살고 있다. 그러나 피해자와 피해자를 도운 사람들의 삶은 망가졌다”고 했다.


문씨는 지난달 안희정 미투의 전말을 다룬 책 ‘몰락의 시간’을 펴냈다. 그간 검찰 코드네임 ‘김상훈’ 혹은 ‘문 선배’란 익명 뒤에 숨어 살아오다 처음 자신을 드러냈다. 왜 지금이냐고 물었다. 그는 “안희정 사건이 제대로 처리되지 못한 탓에 정치권에서 비슷한 문제가 반복되고 있어서”라며 “내 경험은 우리 사회가 같이 되짚어봐야 할 공공재”라고 말했다.


◇“도와줄게”… 세상이 뒤집혔다


-안희정 전 지사와 어떤 관계입니까.


“저는 2011년 충남도청에 메시지·여론조사 담당으로 들어갔어요.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팬이었습니다. 친노(親盧) 적자이자 민주 투사로 유명한 안 전 지사 밑에서 일해보고 싶었어요. 그의 수행·의전 비서, 대선 경선 수행팀장으로 뛰었습니다. 중앙정치 경험이 없는 그를 위해 각계 전문가를 모아 집권 플랜을 짜는 ‘안희정의 대통령 공부’를 4년간 기획했어요. 도지사 시절 저서를 제가 대필하다시피 해 인세를 나눠갖기도 했고요. 그는 저의 우상이었고, 안희정의 꿈이 곧 저의 꿈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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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5년 국회를 찾은 안희정 충남지사와 문상철 비서관(가운데 파란 넥타이 맨 두 사람). 문씨가 유력 대선주자였던 안 지사의 ‘대통령 공부’를 기획해 최측근으로 자리잡은 때다. /뉴시스

-김지은씨는요.


“제 후임이었습니다. 2017년 대선이 끝나고 저는 안 전 지사의 서울 복귀를 돕기 위해 여의도의 정세균 국회의장실에 배치됐습니다. 안 전 지사는 퇴임 후 미국 유학을 다녀와 민주당 대표 경선 혹은 총선 종로 출마 등을 저울질하며 2022년 대선 가도를 구상 중이었어요. 그때 지은씨가 도지사 수행비서가 됐어요. 도청 일이 끝물이다 보니 지은씨를 도와줄 사람이 없어 제가 원격으로 업무를 조언해야 했어요. 얼굴 맞대고 일한 적은 없습니다.”


-그런데 반년 만에 김씨가 울면서 연락했죠.


“2018년 2월 25일 안 전 지사 일정을 의논하려 통화하는데 지은씨 목소리가 너무 안 좋았어요. ‘무슨 일이야? 말해봐, 도와줄게’ 했더니 ‘선배, 저 지사님께 성폭행당했어요’라며 펑펑 울더군요. 머리가 멍했지만 ‘일단 수사 기관에 신고해. 도와줄게’라고 했습니다.”


문씨가 통화한 날은 안 전 지사가 김씨를 상대로 마지막 범행을 저지른 다음 날이다. 법정 증언에 따르면, 김씨는 2월 24일 가족과 저녁식사를 하다 갑작스러운 전화를 받고 뛰쳐나갔다. 안 전 지사의 건설 업자 친구가 소유한 마포의 오피스텔이었다. 안 전 지사는 “너도 나 미투할 거냐?”라고 물었다. 미국 할리우드 등 각국에서 미투 폭로가 몰아치던 때였다. 경력과 생계를 자신에게 의존하는 하위 공무원에게서 “제가 어떻게 미투를 하겠어요”란 무기력한 대답을 얻어낸 안 전 지사는 그 자리에서 또 김씨를 성폭행했다. 이튿날 새벽 2시에 “빨리 청소하고 나가라”고 짜증을 부렸다.


훗날 김씨는 저서 ‘김지은입니다’에 “안희정에게 당할 때마다 도청 내 친한 이들에게 도움을 청했지만 다 외면당했다. 생업을 버리고 도망칠 수도 없었다. 그때 문 선배의 ‘도와줄게’ 한마디가 얼음 속에 박제된 나를 꺼내줬다”고 썼다. 문씨가 이 문제를 가해자와 먼저 상의하고 피해자를 거짓말쟁이로 몰아갔다면 미투도 좌절됐을 수 있다는 얘기다. 김씨는 3월 5일 한 방송에 출연해 안 전 지사의 범행을 세상에 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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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8년 3월 5일 TV에 나와 상관 안희정 충남도지사의 성폭력을 폭로하는 당시 김지은 충청남도 정무비서. 문상철씨에게 도와주겠다는 확답을 받은 지 열흘 만이었다. /jtbc 캡처

◇팩트가 무너뜨린 미래 권력


-당신은 가해자와 훨씬 가까웠는데, 왜 피해자 말만 듣고 자신의 인생을 걸었습니까.


“전 안희정의 사람이었어요. 그러나 사적 친분을 떠나 저도 나라 녹을 먹는 사람으로서 공적 책임을 가져야 했습니다. 아무리 스타 정치인이라도 그런 범죄를 저질러왔다면 신기루에 불과한 거죠. 사람을 짓밟는 행위 위에 무슨 미래가 있겠어요? 더구나 지은씨는 얼굴 내놓고 미투해서 얻을 게 없는 처지였습니다. 그 사람 말을 믿지 않을 이유가 없었어요.”


-김지은씨를 어떻게 도왔습니까.


“그저 사실을 말했을 뿐입니다. 저는 총 네 차례 검찰 조사를 받고, 3심에 걸친 재판마다 증인대에 섰어요. 안 전 지사 참모진과 가족은 변호인단 코치를 받아 두 사람이 불륜 관계였던 것처럼 몰아갔습니다. 그들은 지은씨가 성폭력을 당하면서도 가해자의 기분을 맞추는 언행을 하거나, 범행 장소인 호텔비 결제를 하고 식당을 알아봤다는 점 등을 들어 ‘피해자답지 못한 행실’ ‘안희정의 광팬’이라며 꽃뱀 취급했어요. 어떻게 그런 거짓말을 할 수 있는지... 저는 그것이 잘리지 않기 위해 할 수밖에 없는 수행비서의 업무였고 안 전 지사가 강요한 충성 문화라는 점을 일관되게 진술했어요.”


-안 전 지사는 중도진보 이미지로 상한가를 달렸죠. 2017년 대선 경선에선 2위를 했고, 문재인 대통령 당선 날 밤 무대에 올라 ‘뽀뽀’를 하며 차기 주자의 지위를 각인시켰고요. 그런 때 터진 미투라 국민들 충격이 컸어요.


“미투 직전까지 안 전 지사는 ‘미래 대통령’으로 통했습니다. 정계·재계·관계·법조계에서 미리 줄대려 안달했고 해외 유력인사들도 와달라고 했어요. 본인 자신감도 극에 달했고, 그와 가까울수록 권력의 크기는 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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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7년 5월 9일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으로 치러진 조기 대선날 밤 당선이 확정된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후보가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시민들과 함께하는 개표 방송’에서 안희정 충남지사로부터 ‘당선 축하 뽀뽀’를 받고 있다. 당시 민주당 경선은 친노 핵심 출신인 문재인과 안희정 두 사람의 양파전이었다. 안 지사가 2위, 이재명 후보가 3위를 했다. 추미애 민주당 대표가 뒤에서 웃고 있다. /조선일보 DB

-안희정 사단에서 김지은씨 편에 선 사람은 얼마나 됐습니까.


“10명 중 1명쯤. 최측근 중에선 저 정도였고, 캠프 들어온 지 얼마 안 된 젊은 봉사자가 대부분이었어요. 그들이 ‘김지은과 함께하는 사람들’이란 모임을 만들어 법정 증언을 하고 탄원서를 썼습니다. 안 전 지사 가족 중에선 유일하게 차남이 피해자 말을 들어보려 했고요.”


-안 전 지사 측이 ‘배신자’ 낙인을 찍고 위협했는데.


“첫 재판 때 안 전 지사가 돌 무렵이던 제 아이를 안고 찍은 사진을 법정 스크린에 대문짝만 하게 띄우더군요. 우리가 이렇게 가까운 사이였다는 것, 등 돌린 대가는 제 가족이 감당하게 될 거란 협박이었습니다. 그나마 남아 있던 연민과 동정은 그때 다 사라졌습니다. 약자를 위하는 정의로운 세상을 만들자고 모인 동지들이었는데… 배신은 제가 아니라 안 전 지사가 한 거예요.”


안 전 지사는 1심에선 무죄를 받았지만 2019년 2심과 최종심에선 업무상 위력에 의한 간음으로 유죄가 확정됐다. 3년 6개월 만인 지난해 만기 출소했다. 향후 10년간 피선거권이 박탈돼 정치적 재기는 불가능한 상태다. 아내 민주원씨와도 옥중 이혼했다.


◇더 무너진 내부 고발자의 삶


-범죄 혐의를 남에게 떠넘기거나, 선거에 나와 ‘비(非)법률적 명예 회복’을 하겠다는 정치인도 있어요. 안 전 지사는 죗값을 치른 것 아닌가요?


“안 전 지사는 최소한의 사법적 처분만 받았을 뿐입니다. 아직 자기 계보를 유지하고 있어요. 여전히 찾아오는 정치인과 후원자도 많다고 들었습니다. ‘여자애 하나 때문에 아깝게 갔다’는 세간의 오해를 이용하고 있어요. 그에게 유리한 증언을 해주고 지은씨에게 악랄한 2차 가해를 한 사람들은 안희정계 의원들이 밀고 끌어줘 국회와 정부, 지자체 요직으로 승진했어요. 반면 안 전 지사는 피해자에겐 단 한번 진심어린 사과도, 금전적 배상도 하지 않았어요. 맹목적 충성엔 후한 보상을, 진실의 편에서 반기를 들면 벌을 준다는 걸 보여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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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희정 전 충남도지사가 '위계에 의한 간음' 죄로 2022년 8월 3년6개월간 복역을 마치고 경기 여주교도소를 나서며 측근들의 환영을 받고 있다. 당시 그는 빈센트 반 고흐가 그린 한 우체부 초상화를 투명 가방에 넣어 들고 나왔는데, 고흐는 이 모델을 "모진 성격이 아니고 완벽할 정도로 정직하지 않지만 매우 현명하고 따뜻하며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했었다. 일각에선 안 전 지사가 '억울하게 복역했다'고 항변하는 메시지로 읽기도 했다. /뉴스1

내부 고발자의 삶은 피폐해지기 십상이다. 법치·민주주의 수준이 낮은 나라일수록 그렇다. 김씨는 미투 직후 쏟아지는 인신 공격 속에 극단적 선택을 시도했었고, 아직도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로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다. 취업은커녕 고립돼 살면서 생활고에 시달리는 것으로 전해졌다. 김씨는 안 전 지사와 충남도청을 상대로 3억원 규모 손해배상 소송을 3년째 벌이고 있지만 결과는 불투명하다.


-당신의 삶은 어땠나요.


“재판 때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다 보니 왼쪽 어금니가 깨졌어요. 정세균 국무총리실, 이낙연 민주당 대표실에 들어갈 기회가 생겼지만 민주당 사람들이 똘똘 뭉쳐 ‘원래 질이 안 좋은 애’ ‘이 판에 발 못 붙이게 하라’고 했어요. 평판 조회가 생명인 정치권에서 제 경력은 끝났습니다. 시민단체 ‘의인상’ 후보에 오르긴 했어요. 간신히 일반 기업에 취직했는데, 이번에 책을 냈더니 정치적 관심이 쏠려 불편했는지 일주일 만에 권고사직당했어요. 이제 아내가 생계를 책임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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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출소한 안희정 전 충남지사가 요즘 물밑에서 정치 활동을 재개하며 '비법률적 명예회복'을 꾀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가 최근 썼다는 메시지를 팬클럽 '38선까지 안희정'이 공개했다. 안 전 지사와 지지자들은 이달 초 1박2일 MT도 다녀왔다고 한다. /페이스북

-세상이 원망스럽겠군요.


“솔직히 이렇게까지 오래 문제가 해결 안 될 거라곤 예상 못했습니다. 제가 아는 안희정이란 사람은 잘못은 했더라도 참회하고 배상할 줄 알았어요. 다같이 반성하고 폐허 위에 일어설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습니다. 오판이었죠.”


안희정 미투 이후 한국의 미투는 다시 지리멸렬해졌다. 2020년 오거돈 전 부산시장이 여직원 성추행으로 사퇴하고 복역 중이지만, 피해자에겐 단돈 5000만원을 배상했다. 같은 해 박원순 전 서울시장은 비서의 미투가 예고되자 스스로 목숨을 끊어 공소권을 없애버렸다. 민주당은 피해자를 ‘피해 호소인’이라 조롱하며 ‘정치적 의도가 있다’고 음해했다. 오거돈과 박원순의 피해자들은 김지은씨와 달리 익명으로 남기를 택했다. 문씨는 “가해자끼리만 뭉치면 죄가 지워진다는 학습 효과가 있는 한, 피해자 한 명을 마녀로 만들어 화형대에 올리는 행태는 반복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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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박원순 전 서울시장과 오거돈 전 부산시장이 각각 지자체 내 여직원으로부터 성추행 폭로를 당했다. 박 전 시장은 수사가 시작되기 전 스스로 목숨을 끊어 공소권을 없애버렸고, 그의 피해자는 '피해 호소인'이란 민주당의 2차 가해에 시달렸다. /조선일보 DB

◇운동권의 性·계급 인식


-안 전 지사 여성 편력이 유명했다면서요?


“늘 여러 여자를 은밀히 만났고, 어느 자리에든 여자를 데려오게 했습니다. 정치인에 대한 기대를 이성(異性)으로서의 호감과 헷갈리는 것 같았어요. 참모들끼린 ‘봐도 못 본 거’라고 쉬쉬했어요. 제가 ‘이 사람한테 충성하는 게 맞나?’ 회의를 느끼기 시작한 것도 그것 때문이었어요. 지은씨 말고도 도청 내 성폭력 피해자가 많다는 걸 나중에 알았습니다. 그들은 침묵을 택했을 뿐이죠.”


-‘성폭력은 권력의 모든 문제가 결합된 악랄한 최종 결과물’이라고 책에 썼더군요.


“미투는 트리거(trigger·도화선)일 뿐, 정치인 개인을 신격화하는 퇴행적 정치 문화가 근본 문제라고 봅니다. 안 전 지사는 자신이 군부 독재에 맞섰고 앞으로 ‘큰일’ 할 사람이기 때문에 절대적 권력으로 보상받아도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욕구가 즉시 채워지지 않으면 신경질적으로 ‘…’이라는 문자를 보냈어요. 말 안 해도 알아서 모시는 ‘물 흐르는 의전’으로 떠받들라는 거죠. 슈트발 살린다고 펜·안경닦이조차 본인 주머니에 넣지 않고 비서가 챙겨야 했고, 따뜻한 농사꾼 이미지가 필요할 땐 공관에 텃밭 만들고 농학 박사들 시켜 농사짓게 했어요. 이런 식으로 권력을 확인하는 또 다른 방법이 성폭력이었습니다.”


-그게 86세대 운동권 문화입니까.


“안 전 지사의 오랜 측근들은 학생운동 때부터 봉건적 조직 문화를 이어왔어요. ‘우린 안희정 집안’이라며 형·동생 하고, ‘조배죽(조직을 배신하면 죽는다)’ 건배사하고, 취하면 김광석 노래 부르고, 회식 끝나면 도청 돌아가 초과수당 찍고... 저도 거기서 살아남아야 했기에 안 전 지사에게 노(No) 해본 적 없어요. 그래선 안 됐어요. 제가 배타적인 광신도 조직을 만드는 데 기여한 일종의 공범일지 모른다는 죄책감 때문에 지은씨를 도운 측면도 큽니다.”


-진보 진영은 ‘박근혜의 세월호 7시간’ ‘김건희 여사 전력’ 의혹 등 유독 여성의 정조·순결을 들춰 공격하곤 합니다. 최근엔 최강욱 전 민주당 의원이 ‘설치는 암컷’이란 표현을 썼고요.


“시대가 변한 걸 모르는 것 같습니다. 자기들끼리는 그런 가부장적 여성 혐오가 여전히 재미있고 상대의 아킬레스건이 된다고 여기는지 모르지만, 젊은 세대는 남녀를 떠나 그런 데 관심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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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상철씨는 김지은씨를 도운 이유 중 하나가 “나 또한 권위적인 안희정 조직을 만든 공범일지 모른다는 죄책감 때문이었다”고 했다. 문씨는 안 전 지사의 다양한 요구를 토대로 그를 왕처럼 떠받드는 방법을 망라해 ‘수행비서 업무 매뉴얼’을 만들었다.(위 사진) ‘해외 수행’ 항목의 경우 ‘호텔은 한국인 적은 곳에 잡을 것’ ‘기내에서 코냑 사서 지사님 숙소에 비치’ 같은 내용이 들어있다. 이 매뉴얼대로 일한 김씨는 주로 해외 출장 중 안 전 지사로부터 성폭력을 당했다. /양수열 영상미디어 기자

◇통제 불능의 팬덤 정치


-왜 지방자치단체 기관장들의 일탈이 계속 나올까요.


“충남도청도 그랬지만 지자체마다 의전 조직이 너무 세요. 공무원들이 떠받들어주니 제왕적 권력에 취할 수밖에 없어요. 중앙정부에 비해 언론과 의회의 감시는 약하죠. 지자체장 자신이 무슨 일을 저질러도 안전할 거란 착각에 빠지게 됩니다. 지자체 감사 빈도부터 높여야 한다고 생각해요.”


-무소불위의 안 전 지사가 두려워한 게 있습니까.


“팬덤입니다. 2017년 대선 경선에서 문재인 후보에게 밀리기 시작할 때였어요. 안 전 지사가 팬들이 보내는 맹목적 지지 메시지와 상대 비방, 유사 언론인들의 유튜브 같은 걸 틈만 나면 강박적으로 찾아보더군요. 문 후보 팬들이 우릴 미친 듯 공격할수록, 안 전 지사도 분노와 고통을 잊는 마약을 찾듯 자기 팬들에게 빠져들었어요.”


-문 전 대통령은 그걸 ‘양념’이라고 했죠.


“맹목적이고 거대한 팬덤은 다양한 사람과의 토론을 회피하게 하는 도피처가 됩니다. 개인 인권쯤은 우습게 여기는 빌미도 되구요. 그런 극렬 팬들은 특정 정치인을 존경한다기보다, 자신들의 이권이나 욕망을 대리하는 수단으로 삼는 거예요. 안희정을 떠받들던 사람들은 새로운 숙주를 찾아 자리 잡았어요. 그 숙주들이 다음 대통령 후보들로 불리고 있구요. 선출되지 않은 소수 선동가들이 국민이 뽑은 정치인을 꼭두각시처럼 부리는 세상이 올지 모릅니다.”


-책 인세는 한국성폭력상담소에 모두 기부한다고요.


“제가 성폭력 문제를 잘 아는 건 아닙니다. 그러나 현장 활동가들이 이름 없는 피해자들 손을 잡아주며 헌신하는 걸 지켜보니, 말만 앞세우는 정치인들보다 세상을 훨씬 낫게 바꾸고 있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작지만 도움이 되고 싶었습니다.”


[정시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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