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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연은 사소한 질투에서 시작돼요

일본 작가 가쿠다 미쓰요

 

악연은 사소한 질투에서 시작돼요

/박상훈 기자

평범한 사람의 마음에 어떻게 악의가 깃드는가. 소설 '종이달'로 유명한 일본 작가 가쿠다 미쓰요(51· 작은 사진)는 평온한 일상에 균열이 가고 조금씩 무너져 내리는 과정을 그려낸다. '종이달'은 계약직 은행원이 된 주부가 고객의 예금에 손을 대기 시작하면서 거액을 횡령하는 이야기. 미야자와 리에 주연의 영화(2015)로도 만들어지면서 국내에 알려졌다.


이번엔 유치원 입학을 앞둔 아이를 키우는 엄마들이 주인공인 소설 '숲속에 잠든 물고기'(나남)가 최근 국내 출간됐다. 비슷한 또래를 키우며 친해진 엄마들은 관계가 깊어질수록 다른 아이가 앞서나갈까 불안해하고, 양육 방식을 두고 묘한 경쟁의식에 휩싸인다. 1999년 유치원 입시에 실패한 주부가 합격한 다른 이웃의 아이를 살해한 사건이 모티브가 됐다. 한·일 문화 교류 20주년 기념 북 콘서트를 위해 최근 내한한 가쿠다는 "가능하면 작은 사건, 어쩌면 나도 범인이 될 수 있지 않을까 공감할 만한 사건을 다루려고 한다"고 말했다.


―'종이달'에 이어 이번 작품에서도 주부가 주인공으로 나온다.


"주부라기보단, 여성의 문제를 다루고 싶었다. 일본 사회는 아직도 남성 중심의 사회다. 남성이 겪는 문제는 표면화되기 쉽고, 크게 이슈가 되지만 여성은 그렇지 않다. 여성의 문제는 숨겨져 있지만 그만큼 심각하기 때문에 소설로 다루고 싶었다."


―심리 묘사에 공을 들이는 이유가 있나.


"현실에서도 그렇지만 소설 속 주인공도 악의를 갖고 행동하지 않는다. '이렇게 하면 좋지 않을까' 선의를 베풀지만 속으론 상대보다 우위에 있고 싶어한다. 상대보다 나한테 좋은 일이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 선의에 섞여 있다. 그 선의가 꼬이기 시작하고 악의보다 더 큰 영향력을 발휘하게 된다. 그런 부분에 집중하다 보니 심리나 일상의 대화에 공을 들이게 됐다."

악연은 사소한 질투에서 시작돼요

영화‘종이달’의 한 장면. 평범한 주부 리카(미야자와 리에)는 계약직 은행원으로 일하며 고객의 돈에 조금씩 손을 대다 거액을 횡령한다. /오원

―특히 질투하는 마음이나 남들과 비교하는 심리가 자주 그려진다. 자녀를 유명 학교에 보내는 기분을 명품 가방을 들고 다니는 것에 비유하기도 한다.


"심각한 문제나 균열도 작은 경쟁심이나 질투에서 시작된다고 봤다. 인간관계가 꼬이는 이야기를 쓰려고 할 때 질투나 욕망을 집어넣는 편이다."


―소설에서 옷 가격이나 상품 브랜드를 유독 구체적으로 밝히는 편이다.


"금액에서 인간관계가 드러날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처음 만난 연인이라면 화려한 술집에서 있어 보이는 안주를 시킬 것이다. 사귄 지 오래돼서 5년쯤 지나면 술 가격도 내려가고, 안주도 저렴하게 먹지 않을까. 그런 심리가 가격을 통해 표현된다고 생각했다."


―한국에만 30여 권의 소설과 에세이가 번역됐다. 다작(多作)의 비결이 있나.


"서른 살부터 일하는 방식을 바꿨다. 집이 아닌 곳에서 샐러리맨처럼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시간을 정해서 썼다. 당시 사귀었던 남자가 회사원이었고 데이트 시간을 맞추다 보니 그렇게 됐다."


―40대의 운동 도전기를 쓴 에세이 '무심하게 산다'가 한국에서도 인기였다.


"2012년에 스포츠 잡지사의 청탁으로 도쿄 마라톤을 달리고 체험기를 썼다. 이후로도 13번 정도 마라톤에 참가해서 전 구간을 달렸다. 한국 제주도에서 열리는 마라톤에도 꼭 출전해보고 싶다."


―지금은 집필을 중단하고 일본 고대소설인 '겐지 모노가타리'를 요즘 언어로 바꾸고 있다고 들었다.


"존경하는 작가가 고전 전집을 만드는데 나한테도 부탁해왔다. 아주 긴 이야기라 4년 전부터 작업을 시작해 다른 글을 못 쓰고 있다. 앞으로도 1년 정도 더 시간이 걸릴 것 같다. 죽기 전에 '겐지 모노가타리'처럼 3세대에 걸친 긴 이야기를 써보고 싶다."


[백수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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