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9시부터 줄...삼각지 고깃집서 4년째 ‘갈비 오픈런’ 하는 이유 [라인업]
아침 먹을 시간에 ‘점심 고깃집’ 줄서는 사람들, 왜?
‘극악 웨이팅’으로 유명한 삼각지 짚불구이집
상품 접근성=新 소비력 지표
#에그스토리: 세상의 모든 줄서기, 라인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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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일인 지난 7일 오전 9시, 서울 삼각지 고깃집 ‘몽탄’. 굳게 닫혀 있는 식당 주변으로 롱패딩 청년들이 하나둘씩 모여들었다. 점심 시간에 맞춰 입장하기 위해, 아침 일찍부터 찾아온 손님들이다. 이날 아침 기온은 영하 3도, 발끝 시린 한겨울이었다.
①50m 인근 청년주택에 주차(※들어가기 전 주차 앱에서 5000원짜리 종일권 끊어 주차비 폭탄 피할 것)→②오전 9시~9시30분부터 빌딩 옆 골목에서 대기(※오전 10시쯤 근처 커피숍에서 500원 할인권 배부)→③오전 11시 대기자 명부 작성→④커피숍 등 인근 대기 후 낮 12시 입장(※일행 전부 오지 않으면 출입 제한)
SNS ‘삼각지 몽탄 오픈런’ 정보
아침 공복부터 삼겹살 생각에 몰두한다는 건, 예능프로그램 출연자들의 몫인 줄만 알았다. 아무리 고기가 좋아도, 식당 개장 3시간 전부터 줄이라니. ‘럭비공’ 같은 소비자 수요는 때때로 시장의 예상을 훌쩍 뛰어넘는다. 몇년 전까지만 해도 보기 힘들었던 ‘소갈비 오픈런’ 역시 그런 케이스였다.
오픈런(open-run): 상점 문이 열리자마자 쇼핑을 하기 위해 달려가는 것. 2020년 5월 샤넬 가격 인상을 앞두고 미리 제품을 구입하려는 소비자들이 백화점에 장사진을 치면서 ‘샤넬 오픈런’ 이라는 신조어가 생겨났다. 지금은 ‘절임배추 오픈런’ ‘요소수 오픈런’ 등 온갖 분야에서 쓰이고 있다.
2019년 문을 연 이 고깃집에선 코로나 불황을 뚫고, 4년째 오픈런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인스타그램 인증 사진은 10일 기준 약 3만8000여건. ‘오전 11시에 웨이팅 100팀’ ‘6시간 기다려 도장깨기 성공!’ 같은 방문 후기와 함께 ‘#극악웨이팅’ ‘#웨이팅지옥’이란 해시태그가 따라붙는다. 기자도 이날 3시간에 걸쳐 줄 선 사람들과 얘기를 나눠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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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 서야, 열릴지어다
이날 1등으로 도착한 사람은 32세 고등학교 교사였다. “얼마 전 근처로 이사를 왔는데, 오전 10시부터 장사진을 치는 모습이 신기해 찾아왔다”고 했다.
“대체 왜들 난리인지 궁금했어요.
”
2등은 IT회사에 다니는 오모(38)씨. “밥과 술로 스트레스를 푼다”는 그는 “이번이 두번째 도전”이라고 했다. 오씨는 2주 전 아침 10시 반쯤 고깃집에 도착했다가, 발길을 돌려야 했다. “오후 3~4시는 돼야 들어갈 수 있다는 거에요. 평범한 직장인은 엄두를 낼 수 없는 곳이죠. 오늘 마침 휴가여서, 재도전했습니다.” 1등 교사 역시 “방학 기간을 맞아 큰 마음 먹고 왔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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짚불에 초벌구이 한 미국산 소갈비(280g·2만8000원)와 국산 돼지 삼겹살(150g·1만5000원)을 솥뚜껑 불판에서 한 번 더 익혀 먹는 것이 이 집의 대표 메뉴다. 테이블은 모두 26개로, 하루 9시간 영업한다. 지금은 삼각지 주변으로 맛집이 많이 생겼지만, 2019년 개점 당시엔 유명 상권에서 한참 벗어난 위치였다.
트렌드에 밝은 사람만 일부러 찾아오는 곳으로 소문을 타더니, 이내 긴 대기줄이 생겼다. 시공간 제약으로 입장이 까다로워지자, 오히려 수요는 더 늘어갔다. 가격이 오를수록 많이 팔리는(’베블런 효과’) 에루샤(에르메스·루이비통·샤넬)처럼, 들어가기 어려울수록 맛보고 싶은 ‘한정판 고기’가 된 것.
실제로 요즘 유통업계에선 단지 지불 능력 뿐 아니라 ‘상품 접근 능력’을 새로운 소비력 지표로 보고 있다. 나이키 스니커즈 ‘래플(raffle·추첨 판매)’ 행사에서 높은 경쟁률을 뚫고 당첨되는 행운, 스트리트 브랜드 슈프림 매장 앞에서 밤을 새며 캠핑하는 체력과 정성 또한 과시와 차별화 요소다. SNS에 ‘드디어 몽탄했다’ 같은 게시물이 쏟아질수록 잠재 소비자들의 갈망은 간절해진다. 한 명품 줄서기 대행업체는 이런 수요를 잡기 위해 지난해 9월 ‘몽탄 오픈런’ 상품(3만원)까지 내놨다.
◇‘고기에 진심’인 MZ세대 100명이라니…
오전 10시를 넘어서자, 대기 인원이 순식간에 불어났다. 대부분 1990년대생이었다. “호캉스(호텔 바캉스)와 맛집 투어를 좋아한다”는 신모(28)씨, 영하 날씨에도 아이스 커피를 마시던 ‘얼죽아’ 취업 준비생 3인방(23), 과외로 돈 벌어 고기 사 먹는다는 대학생 최모(24)씨….
이날 줄을 선 100여명 중 최연장자로 보이는 남성에게 다가가 “실례지만 연식(나이)이 어떻게 되시느냐” 물었다. 고깃집 요리사 최모(47)씨였다. 그는 인파를 둘러보며 연신 “대단하다”고 했다. “코로나 탓에 연말 장사를 놓쳤어요. 오늘은 가게 문 열기 전에 동료들과 벤치마킹하러 왔죠. 이 시국을 어떻게 버텼는지 궁금해서요.”
오전 11시, 직원이 나와 대기 명단을 작성했다. 군대 조교처럼 일사불란한 움직임이었다. 명단에 이름을 올리면 자리를 떠도 된다. 문 열기까지 이제 한 시간. 대기손님 11명이 우르르 몰려간 근처 커피숍을 찾았다. 커피숍 사장 전모(55)씨는 “몽탄이 동네를 먹여살릴 줄 몰랐다”고 했다.
그렇다면 고기 맛은 어땠을까. 이 집 갈비 양념은 술이나 음료수 없이 먹기에는 간이 센 편이다. 단맛과 짠맛, 불향의 조화가 특징. 손님들은 대부분 흡족한 표정이었다. 테이블 곳곳에서 “3시간 떨었는데 맛이 없을 수 없다” “어떻게 찍어도 음식 사진이 잘 나온다” “고기 굽고, 밥 볶는 기술이 다른 집보다 현란하다”는 얘기가 들렸다. 트렌드에 뒤쳐지기 싫은 포모(FOMO·Fear Of Missing Out) 심리도 방문객들의 만족감을 한층 높여주는 것 같았다.
“줄섰노라, 맛봤노라, 인증했노라!
아침 9시, 갈비 오픈런은
‘재력 과시’가 아닌,
‘트렌드 감각’을 과시하는 행위다.
#에그스토리: 라인업
”
김성윤 조선일보 음식전문기자는 “시각적으로 압도적인 상차림, 요즘 유행하는 훈연한 불맛이 사람들의 궁금증을 계속 자극하는 것 같다”고 평가했다. 정동현 음식칼럼니스트는 “이 고깃집 메뉴들은 주인장의 오랜 연구와 기획의 산물임이 느껴진다”고 썼다. ☞칼럼 바로가기 https://url.kr/5dg4l2
못해도 아이 팔뚝만 하게 길게 자른 갈빗대를 윤이 반질거리는 솥뚜껑 불판 위에 올리면 화려한 세리머니가 시작된다. 스트라이크 존에 아슬아슬하게 들어가는 변화구처럼 단맛과 짠맛의 경계를 관통하는 맛이 치고 들어온다. 곁들인 무생채는 살짝 얼어 있는 상태로 나온다. 뜨거운 고기와 정반대인 차가움이 혀에 쾌감을 얹는다. 무심히 냉이를 수북이 올린 걸쭉한 된장찌개, 매콤하고 달곰하며 아삭한 양파볶음밥은 주인장의 오랜 연구와 기획의 산물임이 느껴진다.
조선일보 음식 칼럼 [정동현의 pick] 발췌
중소벤처기업부 ‘2021 소상공인 금융 실태 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대한민국 소상공인 46.3%가 지난해 3분기(7~9월) 벌어들인 월평균 순이익은 ‘0원’이었다. 적자로 손해 봤다는 사람까지 합치면 10명 중 8명은 장사를 해도 남는 게 없었다. 신년 특유의 희망찬 분위기를 느끼기 어려운 요즘, 삼각지 고깃집은 MZ세대의 ‘신개념 소비 문화’를 관찰할 수 있는 현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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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만원 들고 백화점 개구멍 찾는 ‘샤넬 노숙자들’ ☞주소 https://url.kr/m37xjz
[한경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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