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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주말] 사장은 신부·목사님, 스님도 후원… 3000원 청년 밥집을 아시나요

아무튼, 주말

‘청년밥상 문간’ 이문수 신부

전공은 김치찌개 밥 무한리필, 사리 500원… 굶주림에 세상 떠난 한 청년 소식 듣고 시작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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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면 그릇만 한 대접에 쌀밥이 한가득이다. 그 위에 잘 볶은 김치와 돼지고기, 계란 프라이 하나를 얹는다. 얼핏 보기엔 제육덮밥 같은데, 먹다 보면 충분히 졸인 김치찌개의 깊은 맛이 난다. 시원한 콩나물국도 함께. 메뉴 이름은 ‘김치 고기 덮밥’. 가격은 3000원.


서울 성북구 정릉시장 초입에 있는 '청년밥상 문간'은 온라인상에서 '가성비 밥집'으로 통한다. 지난 21일 오후 6시, 손님 5명이 가게에서 '김치 고기 덮밥'을 먹고 있었다. 단골이라는 대학생 양모(23)씨는 "가격도 저렴하고 맛도 좋아 자주 찾는다"고 했다.


이 식당의 원래 전공은 '김치찌개'. 밥은 무한 리필이고, 라면·햄 등 각종 사리는 500원이다. 그렇다고 해서 맛이 없거나, 재료가 부실하다는 오해는 금물. 김치는 가게에서 직접 담그고, 돼지고기 등 주요 재료는 국내산이다. 7~8월은 냉방 능력 한계 때문에 찌개 대신 덮밥을 내놓는다. 천장형 에어컨 한 대로는 각 테이블에 놓인 휴대용 버너의 열을 다 감당하지 못하기 때문.


이런 가격으로 남는 게 있을까. 식당 주인은 오히려 손님 주머니 사정을 걱정했다. "김치찌개는 3~4명이 와서 2인분만 시켜도 나눠 먹을 수 있는데, 김치 고기 덮밥은 단품이라 한 사람이 한 그릇밖에 못 시켜서 안 좋다. 내년 여름에는 냉방 시설을 고쳐서라도 찌개를 해야겠다." 주인의 이름은 이문수(46). 신부님이다.


절에서 쌀 기부, 목사가 2호점 운영


성균관대 고분자공학과를 다니다 사제가 된 이 신부는 이전까진 식당일을 해본 적이 없다. 2015년 가을, 이 신부는 인천에서 만난 수녀님에게 고시원에 살던 한 청년이 굶주림 끝에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들었다. 굶는 청년들이 있다는 걸 그때 자각했다. 그리고 시작한 게 '문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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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성북구 정릉 시장에 있는 ‘청년밥상 문간’의 입구. 청년과 세상을 이어주는 따뜻한 공간을 소망하며 문간이라 이름 지었다.

약 2년간의 준비 끝에 2017년 12월 정릉시장 상가 2층에 60㎡(약 18평) 규모의 식당을 열었다. 보증금 2000만원에 월세 165만원. 이 신부가 속한 글라렛 선교수도회에서 첫 월세와 보증금을 빌렸다. 음식 조리의 경우 전문 주방장을 뒀고, 그는 설거지부터 서빙 등 허드렛일을 도맡았다.


―이 가격으로 운영이 되나요?


"시작할 때부터 적자가 날 거란 생각을 했습니다. 영리를 목적으로 한 식당이 아니니까요. 사실 홀몸 어르신이나 노숙인을 위한 식당의 경우 100% 후원을 받아 무료 급식소로 운영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저희도 그렇게 할 수 있는데, 대상이 청년들이다 보니 돈을 받는 식당을 열기로 했어요. 청년들은 무료로 하면 더 오지 않거든요."


―구체적으로 얼마나 들어갑니까.


"임대료, 인건비, 재료비 등 한 달에 식당을 유지하는 데 드는 고정 비용이 1100만원입니다. 개업 첫해에는 한 달 평균 200만원, 그 이듬해에는 250만원씩 적자가 났습니다. 역으로 생각해보면 김치찌개 팔아서 한 달에 850만원 벌었으니, 수익이 적은 건 아니에요. 다만 가격이 저렴하다 보니 손익 분기점이 높습니다. 재료비가 음식 판매 가격의 50%를 넘으니까요. 올해는 특히 코로나 때문에 매출이 반토막이 나서 적자 폭이 지난해의 2배는 될 것 같습니다."


―그런데도 어떻게 2년 넘게 식당을 유지하셨나요.


"꾸준히 후원해주시는 분들이 계셔서 가능합니다. 삼양식품에서 매달 라면 사리 20박스씩 보내주고, 동원수산에서는 고등어 10박스씩을 보내주세요. 주변 이웃들이나 신자들이 쌀을 많이 후원해주셔서, 쌀 사본 적이 거의 없어요. 2018년 여름 딱 한 번 쌀이 떨어진 적이 있었어요. 제 소셜미디어에 이런 사정을 알렸더니, 근처 절에서 쌀 80㎏을 보내주셨습니다. 저희 식당을 지지해주는 불교 신자께서, 주지 스님께 말씀을 드렸더군요. 주지 스님을 찾아뵙고 감사하단 인사를 드렸습니다."


―2호점도 생겼습니다.


"2018년 3월 미국 LA에서 목회하던 목사님이 청년식당 2호점을 하고 싶다고 찾아오셨습니다. 목사님과는 일면식도 없는 사이였어요. 소셜미디어를 통해 저희 식당 소식을 들으시고는 바로 비행기를 타고 오셨대요. 사실 제가 식당을 하는 게 천주교 안에서는 조금 알려졌으니까, 수녀님이나 신부님 중에서 2호점을 하겠다고 오실 수는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다른 종교인이 올 거라고는 생각 못했어요. 2호점이라고 하기도 어색한 게, 프랜차이즈 식당처럼 비법을 알려주거나 지원이 있는 것도 아니거든요. 이름을 달리해도 된다고 했더니, 이 정신을 똑같이 공유하고 싶으시다며 은평구 불광동에 '청년밥상 문간'을 내셨습니다."


―3호점은 소식이 없나요.


"몇 분이 운을 떼기는 했지만, 실제 적극적으로 해보겠다고 나선 분은 목사님이 유일했습니다. 아무래도 수익이 나기 어려운 구조이니, 일반인이 하긴 어렵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낙인감 없이 배부른 한 끼 지난해 기준, '문간'에는 하루 평균 90명의 손님이 찾아왔다. 절반 이상이 청년이었다. 일주일에 평균 2~3명의 꿈나무카드(아동급식카드) 소지 아동이 왔다. 꿈나무카드는 경제적 빈곤상태에 놓여있는 가정의 아이들이 학교에서 급식을 먹지 못할 경우 학교밖에서 급식을 대체할 식사를 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카드다. 문간에서는 꿈나무카드 소지 아동의 경우 밥값을 받지 않는다.


―어떤 사람들이 주로 찾아오나요?


"남녀노소 누구나 와요. 처음에는 청년만 오게 할까, 일반인한테는 비싸게 받고 청년한테만 저렴하게 받을까 했는데 구별하기가 어렵겠더군요. 신분증 검사를 할 것도 아니고….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식당입니다. 박리다매라 많이 오실수록 좋아요(웃음)."


―어려운 청년들도 많이 오나요?


"어려운 청년이 몇 명이나 오는지를 물으시는 거라면, 사실 몰라요. 본인들이 밝히기 전에는 캐물을 필요도 없고…. 간혹 그렇게 생각하는 분들도 있어요. 정말 어려운 청년만 도와야지, 효율성이 떨어지는 것 아니냐고요. 그 말도 일리가 있는데, 그런 청년만 족집게로 집듯이 찾을 수는 없어요. 청년들은 '낙인감'이라는 말을 씁니다. 그걸 갖게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하루 평균 90명의 손님이 매장을 찾고, 그중 절반 이상이 청년층이에요. 그중 어려움을 겪는 청년이 1명인지, 2명인지는 알지 못하지만, 그 청년들이 편하게 자기를 드러내지 않고 식사하고 갈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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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인감'은 주변 사람들에게 자신이 취약 계층으로 알려져 낙인찍히는 것을 두려워하는 마음을 말한다. 취약 계층에게 후원 물품을 전달할 때 택배로 보내거나, '아동급식카드'의 디자인을 일반 체크카드처럼 바꾸는 게 모두 낙인감을 방지하기 위함이다.


―기억에 남는 손님이 있나요.


"한번은 식당 단골이던 한 청년이 저한테 찾아왔어요. '이런 식당이 있어서 매우 고맙다'며 '봉사를 하고 싶은데 해도 되느냐'고 묻더군요. 지난해 3월부터 일주일에 한 번씩 나와서 매장일을 돕고 있어요. 요즘엔 오전에 매일 오는 20대 후반 청년이 계속 생각나네요. 아점(아침 겸 점심)으로 드시는 것 같은데…. 사정을 묻지는 않지요. 다만 주방 실장님이 반찬을 듬뿍 주십니다."


―사목(司牧)은 언제 하시나요


"사제로서의 일도 하고 있습니다. 수도회에서 미사도 드리고, 외부 요청이 있으면 강연도 하고요. 식당 일도 사제로서 하는 일이에요. 이게 다 사목입니다. 예전에는 수도회에서 제 소임이 후원회 담당이었는데, 지금은 식당이 제 일이 된 거죠. 미사를 하거나 기도를 하지는 않지만, 청년들한테 보탬이 되고 위로가 되니까요."


―식당의 최종 목표는 무엇인가요.


“식당 운영을 잘해서 적자를 최대한 줄일 수 있도록 하는 게 목표입니다. 그래야 오래갈 수 있을 테니까요. 이 식당 하나로 대한민국 청년들의 밥이 해결되지는 못할 겁니다. 그래도 뭐라도 하고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고, 응원하고 격려한다는 걸 말해주고 싶습니다.”


[남정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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