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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드]by 조선일보

[아무튼, 주말] 빨리 나오고 맛도 있어야 한다? 을지로에선 가능합니다

아무튼, 주말

[을지로 터줏대감의 단골]

박종진 만년필연구소장



서울 을지로에서 ‘만년필연구소’를 운영하는 박종진(50· 사진) 소장이 지금까지 수리한 만년필은 2만 자루가 넘는다. 국내 최대 만년필 동호회 회장이기도 한 박 소장은 동호회 회원들의 만년필을 고쳐주다가 지난 2007년 아예 연구소를 을지로에 차렸다. 수리비는 받지 않는다. 단 만년필을 들고 직접 연구소로 찾아와야 한다.


박 소장은 “수리도 수리지만 만년필 연구를 위해 시간 날 때마다 연구소에서 지낸다”고 했다. 열 살 때 첫 만년필을 동네 문방구에서 구입한 이래 1000자루 넘게 그의 손을 거쳤다는데, 아직도 연구할 게 있을까.


“아유, 그럼요. 지금은 펜촉을 연구하고 있어요. ‘왜 사람들은 오각형 펜촉을 좋아할까.’ 다양한 펜촉이 있지만 결국 사람들은 이 전형적인 형태의 펜촉을 좋아하거든요. 그걸 알아보려고 신석기시대 돌 화살촉, 고대 메소포타미아 화살촉부터 따져보는 거예요. 이렇게 연구하다 보면 끝도 없죠.”


박 소장은 “코로나 때문에 요즘은 조금 덜 나오고 있지만, 15년 가까이 을지로에 있다 보니 외부 사람들은 모르는 식당을 꿰고 있다”고 했다. 그가 단골로 삼은 식당들은 “빨리 먹을 수 있으면서 맛있어야 한다”는, 병립하기 힘든 두 가지 조건을 모두 충족하는 곳들이다. “만년필 연구할 시간이 아까워서 빨리 먹고 싶어요. 그러면서 맛도 따져요.(웃음) 다행히 을지로에는 그런 식당이 많아요.”


청송손칼국수


“점심 때 지나가다가 인쇄소 일하시는 분들이 줄 서 있길래 들어가 봤는데 정말 맛있더라고요. 칼국수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이 집의 국물만 딱 맛보면 알 거예요. 멸치만 가지고 그만한 국물 맛을 내기 쉽지 않아요.”


을지로에서도 정말 좁고 외진 골목에 숨듯 들어서 있다. 좁은 가게는 진한 멸치 국물 냄새로 가득하다. 주문과 동시에 칼로 국수를 썰어 끓인다. 뽀얗고 진해서 사골 우려낸 국물처럼 보이지만, 맛을 보면 개운하면서도 시원해서 멸치를 쓴 것이 확실하다.


안동국시처럼 얇은 면발은 야들야들하면서도 쫄깃하다. 겉절이 김치도 맛있다. 국수를 더 달라거나 공깃밥을 추가해도 돈을 더 받지 않을 만큼 인심도 넉넉하다. 매일 직접 끓인다는 보리차도 정감 있다. 여름에는 콩국수도 낸다. 손칼국수·냉콩국수 각 7000원. 서울 중구 을지로18길 5.


동경우동


“워낙 좁아서 여럿이 가기 힘든 가게예요. 그래서 혼자 얼른 먹기엔 오히려 좋아요. 가격도 저렴하면서 우동은 말할 것도 없고 단무지, 오이절임 같은 반찬까지 맛있어요.”


‘빨리 먹을 수 있고 맛있어야 한다’는 박 소장의 요구에 가장 완벽하게 부합하는 을지로 맛집. 우동 면발은 쫄깃하고 국물은 시원하다. 같은 국물에 어묵이 잔뜩 담겨 공기밥과 함께 나오는 ‘오뎅백반’도 유명하다.


우동 4000원, 유부우동·오뎅우동 각 4500원, 튀김우동 5000원, 오뎅백반 5000원. 서울 중구 충무로 48.


진고개


“진고개(珍古介)는 오래되고 유명한 식당이지만 사람들이 잘 모르는 여름 메뉴가 있어요. 바로 ‘오이소박이 정식’이에요. 갈 때마다 새로운 걸 하나하나 주문해 먹다가 알게 된 메뉴죠. 커다란 대접에 가득 담긴 오이소박이에 밥이 딸려 나와요. 여름에 시원하게 한 끼 먹을 수 있지요. 겨울에 여럿이 모이면 어복쟁반을 먹고요.”


불고기와 갈비, 육개장으로 이름 난 이 노포(老鋪)에 이런 메뉴가 있는지 몰랐다. 정식 이름은 ‘오이 정식’. 진짜 단골이 아니면 모르는 메뉴다. 다른 식당에서 사다가 내놓거나 대충 만드는 오이소박이 같은 반찬도 이 식당에선 정성을 들여서 만든다.


오이 정식 1만원, 육개장 1만1000원, 어복쟁반 7만5000원, 불고기 2만3000원(200g), 불갈비 3만2000원(200g). 서울 중구 충무로 19-1.


안동장


“여기서는 무조건 굴짬뽕 먹어야죠. 배추가 들어가서 시원한 국물이 기가 막히죠.”


안동장(安東莊)은 국내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중식당으로 꼽힌다. 1948년 문 열었다. 굴짬뽕을 처음 개발했다고도 알려졌다. 굴짬뽕은 대개 날씨가 쌀쌀해져야 내는데, 여기서는 워낙 인기가 있어선지 연중 내내 낸다. 아직 기온이 높은 요즘 굴 먹기가 찜찜하면 일반 짬뽕도 훌륭하다.


짜장면, 군만두, 탕수육 등 흔한 중식 메뉴는 물론 화교(華僑)가 3대째 운영하는 곳답게 ‘중국식 매운탕’ ‘배추두부탕’ 등 다른 중식당에서 보기 힘든 요리도 많다.


굴짬뽕·매운굴짬뽕 9500원, 삼선짬뽕·매운삼선짬뽕 9000원, 짬뽕 8000원, 해선볶음면 1만1000원, 중국식 매운탕 1만5000원, 배추두부탕 1만5000원, 탕수육·고기튀김 1만5000~2만3000원. 서울 중구 을지로 124.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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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윤 음식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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