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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존·메타 판 美 억만장자들, 대신 담은 종목들

[WEEKLY BIZ] 작년 4분기 큰손들의 포트폴리오

글로벌 금융 시장이 긴축 공포에서 좀처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지난 2년간 무섭게 상승했던 미 증시마저 인플레이션이라는 악재와 견고한 기업 실적이라는 호재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며 방향을 잡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다만, 연초 이 같은 증시 변동성 확대는 어느 정도 예견된 일이기도 했다. 작년 4분기(10~12월)부터 미 연방준비제도(연준)가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매파적인 움직임을 보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연준은 11월 테이퍼링(자산 매입 축소)을 시작했고, 2022년에는 기준금리를 인상하겠다는 신호를 지속적으로 보냈다. ‘인플레이션 파이터’로 변신한 연준의 본격적인 정책 변화에 앞서 지난해 4분기 투자 대가들은 어떻게 포트폴리오를 조정했을까. 미국 주식 1억달러(약 1200억원) 이상을 굴리는 큰손들이 미 증권거래위원회(SEC)에 제출한 작년 4분기 투자 보고서(Form 13F)를 WEEKLY BIZ가 분석해 봤다.

◇빅테크 일찌감치 줄였다

큰손들은 그동안 증시 랠리를 주도해온 빅테크 주식을 일찌감치 정리해 차익을 실현했다. 헤지펀드계의 전설로 불리는 스탠리 드러켄밀러는 2014년부터 보유해온 페이스북(메타) 주식 10만5883주를 전량 처분했다. 페이스북은 이달 초 열린 4분기 실적 발표가 시장의 기대에 미치지 못하면서 하루 만에 시가총액 2320억달러(약 278조원)가 증발하는 수모를 겪었다. 드러켄밀러는 구글(2만2580주)과 아마존(4만주)도 일부 팔았다. 이로 인해 전체 포트폴리오에서 아마존의 비율은 10.4%에서 6.9%로 줄었다.


하버드대 수학 교수 출신 제임스 사이먼스가 이끄는 퀀트(계량 분석) 전문 대형 헤지펀드인 르네상스 테크놀로지는 마치 주가 하락을 예견이라도 한듯 지난 4분기 대형 반도체 기업 주식을 대량 매도했다. 미국 팹리스(반도체 설계 전문) 기업 AMD 주식 686만주를 전량 매도했고, 엔비디아(304만주), 퀄컴(317만) 주식 비율도 대폭 줄였다. 미국 대표 반도체기업들의 주가를 반영하는 필라델피아 반도체지수는 지난해 두 배 이상 상승했으나, 지난달 10% 넘게 하락하며 2020년 3월 이후 최악의 시간을 보냈다.


20세기 최고의 펀드매니저로 꼽히는 조지 소로스는 아예 기술주 전체 하락에 베팅했다. 소로스 펀드는 기술주 중심의 나스닥 지수를 추종하는 ‘인베스코 QQQ 트러스트 ETF(QQQ)’ 보유 지분의 97%에 해당하는 97만주를 팔아치웠다. 이뿐만 아니라 QQQ 풋옵션(향후 주식을 팔 권리)까지 71만주 매입했다. 풋옵션은 QQQ의 가격이 하락할수록 수익이 커지는 파생상품이다. 소로스 펀드는 아마존(1만7560주)과 구글(2만2767주) 비율도 각 19%, 38% 줄였다.


강세장을 잘 예측한다는 데이비드 테퍼의 애펄루사 매니지먼트도 트위터(124만주), 퀄컴(49만주), 알리바바(53만주) 등 빅테크 주식을 전량 처분했다. 미 경제매체 마켓인사이더는 “이번 13F를 보면 1월의 잔인한 투매 이전 이미 빅테크는 억만장자들의 손을 떠났다는 것을 알 수 있다”고 했다.

조선일보

◇돌아온 가치주의 계절

큰손들은 빅테크를 팔아치운 돈으로 그동안 상승장에서 소외됐던 전통의 가치주를 장바구니에 다시 담았다. ‘오마하의 현인’ 워런 버핏의 버크셔 해서웨이는 석유기업 셰브론 주식을 954만주 더 샀다. 버크셔는 2020년 4분기부터 셰브론 주식을 사들이기 시작했는데, 이후 유가가 급격히 오르면서 셰브론 주가는 57% 상승했다. 현재 셰브론은 버크셔 전체 포트폴리오에서 아홉째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드러켄밀러 역시 셰브론 주식 82만주를 새롭게 포트폴리오에 담았다.


‘분산 투자의 귀재’ 레이 달리오가 이끄는 세계 최대 헤지펀드 브리지워터 어소시에이츠는 가격 결정력이 높은 소비재 기업을 집중적으로 담았다. P&G(50만주), 펩시코(37만주), 코스트코(6만5000주), 코카콜라(32만주), 맥도널드(22만주) 등의 비율을 크게 늘렸다. 작년 3분기 브리지워터 포트폴리오에서 6위와 10위에 그쳤던 P&G와 펩시코는 4분기에 2위와 4위로 올라섰다. 브리지워터는 이달 초 발간한 보고서에서 “투자자들이 인플레이션의 강도와 연준의 공격성을 과소평가하고 있어 추가적인 난기류가 시장을 강타할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애펄루사 역시 전통적인 가치주로 꼽히는 자동차주 제너럴모터스(225만주)와 백화점주 노드스트롬(137만주)을 새로 담았고, 백화점 메이시스(310만주) 비율도 크게 늘렸다.

◇성장주 베팅에 희비 엇갈려

그렇다고 큰손 투자자들이 기술주를 아예 외면한 건 아니다. 차세대 빅테크로 성장할 가능성이 있는 중소형 기술주를 저가 매수한 큰손도 적잖았다. 다만 아직은 성과가 그리 좋지 않다. 사이먼스의 르네상스는 메타버스 게임 플랫폼 로블록스를 540만주, 화상회의 업체 줌비디오를 79만주 추가로 담았다. 로블록스와 줌 비디오의 주가는 올 들어 각 51%, 31% 하락했다. 소로스 펀드는 전기트럭 업체 리비안에 베팅해 큰 손실을 보고 있다. 소로스 펀드는 작년 4분기 리비안 주식 1984만주(약 20억5670만달러)를 사들였는데, 주가가 11월 고점 대비 64% 하락했다.


대박난 큰손도 있다. 버핏의 버크셔는 게임업체 액티비전 블리자드 주식 1466만주를 새롭게 포트폴리오에 담아 잭팟을 터뜨렸다. 지난달 마이크로소프트가 액티비전 블리자드를 주당 95달러에 인수하겠다고 밝히면서, 액티비전 주가가 25% 급등했기 때문이다. 버크셔가 보고한 액티비전 지분은 9억7252만달러(약 1조1636억원)인데, 현재 주가 기준으로 계산하면 지분 가치가 11억9405만달러(약 1조4287억원)에 달한다. 다만 여전히 버크셔가 액티비전 주식을 보유 중인지는 공개되지 않았다. 


신수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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