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신없는 살인사건' 되어가는 고유정 사건..."이러다 처벌도 못하나"
이른바 ‘고유정 사건' 피해자인 전 남편 강모(36)씨의 시신이 사건 발생 한 달이 다 되도록 발견되지 않고 있다. 뼛조각 하나 제대로 찾지 못했다. 이대로라면 ‘시신 없는 살인사건'이 되는 게 아닐까 하는 우려가 적지 않다. 사체가 없다는 것은 살인사건에서 혐의 입증이 그만큼 어려워 진다는 이야기다. 이 때문에 온국민을 몸서리치게 했던 사건이 실체없는 사건으로 유야무야되는 것은 아닌지, 고유정(36)씨를 기소조차 못하게 되는 것은 아닌지 걱정하는 목소리가 점점 많아지고 있다.
만약 전 남편의 시신을 끝까지 못찾게 된다면 과연 그는 어떻게 될까. 법조계에서는 고유정의 살인 혐의를 입증하는 데는 현재까지 나온 증거만으로도 검찰이 기소하는 데 무리 없을 것으로 보인다는 전망이 나온다.
지난 15일 경기도 김포의 한 쓰레기 소각장에서 경찰이 고유정 사건 피해자의 유해를 찾고 있다. 제주동부경찰서는 이 소각장에서 뼈 추정 물체 40여점을 수습,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감정을 의뢰했다고 밝혔다. /연합뉴스 |
① 경찰은 왜 ‘시신 찾기’에 매달리나
경찰은 강씨의 시신을 찾기 위해 수중드론까지 투입했다. 총력을 다하고 있는 것이다. 제주와 진도에 파견된 경찰은 오는 7월 10일까지 해안가 수색을, 완도해경은 기한없이 해상과 수중 수색을 진행하기로 했다. 고씨가 강씨의 시신을 훼손한 곳으로 지목된 고씨 아버지 소유의 경기 김포시 아파트에서도 경찰 수색 작업은 이어지고 있다. 경찰은 지난 19일 이 아파트 배관에서 뼛조각으로 추정되는 물체를 발견해 국과수에 의뢰했다.
살인사건에서 시신이 없는 경우, 구체적인 범행 수법 등을 밝혀낼 수 없는 ‘증거 없는 경우'에 속해 살인 혐의 입증이 쉽지 않다는 게 일반론이다. 사인 등이 미궁에 빠질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법무법인 하나 강신업 변호사는 "통상 시신이 감쪽같이 사라지고 없으면 살인죄가 인정되기 어렵다"며 "시신이 살인의 직접증거가 되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어 "시체가 발견되지 않은 이상 강씨가 죽었는지, 살았는지를 모르는 추정 상태"라며 "검·경은 뼛조각 등 시신 일부라도 찾아 살해 혐의를 확실히 입증하고자 눈에 불을 켜고 찾으려 하는 것"이라고 했다.
남편을 살해하고 시신을 훼손·유기한 혐의로 구속된 고유정(36)이 유기한 것으로 추정되는 물체를 발견했다는 신고가 접수된 가운데 지난 13일 오후 전남 완도군 고금면 한 선착장 앞바다에서 완도해경이 의심 물체를 수색하고 있다. /연합뉴스 |
② 시신 없으면 감형될까?
'시신 없는 살인사건'이라도 계획범행이 입증되거나 간접증거가 종합적으로 고려되면 살인 혐의가 인정되기도 한다. 특히 고유정의 경우 본인이 살인행위를 인정하고 있다. 게다가 고씨가 강씨와 이혼 후 첫 면접교섭이 잡힌 날부터 보름여간 범행을 계획한 정황도 발견되고 있다. 강씨 DNA가 발견된 흉기 등 증거물도 89점에 달한다. 범행이 잔혹하고 계획적이며 치밀한 점도 살인 혐의가 인정될만한 근거로 충분하다는 게 법조계의 중론이다.
법무법인 이경 최진녕 변호사는 "시신 없는 살인사건에서 유·무죄를 다투는 경우는 피의자가 혐의를 부인할 경우"라면서 "하지만 이 사건은 고씨가 죄를 자백하고 있어 다른 케이스들과는 상당히 다른 사건"이라고 했다. 이어 "더욱이 온전한 시신을 찾지는 못했지만 범행 현장에서 발견된 혈흔과 흉기에 DNA 등 증거들이 있기 때문에 완전히 ‘시신 없는 살인사건'으로 볼 수 있을 지도 의문"이라고 했다.
전문가들은 고유정이 상대적으로 가벼운 형을 받을 가능성도 크지 않다고 봤다. 강 변호사는 "시신이 없다고 해서 감형되지는 않는다"며 "이 사건은 고씨의 사형을 요구하는 국민청원 등 국민 법감정을 고려했을 때 시신이 발견되지 않아도 사형까지 선고할 수 있는 정도가 된 것 같다"고 했다. 최 변호사는 "검찰에서는 사형을 구형할 수는 있겠지만, 전례에 비춰 1명을 살해하고 시신 유기를 했다고 해서 사형 선고까지 할 지는 의문"이라며 "현실적으로 무기징역이 선고될 가능성이 높을 것"이라고 했다.
전 남편을 살해한 혐의로 구속된 고유정(36)이 지난 6일 제주동부경찰서 유치장에서 나와 진술녹화실로 이동하고 있다. / 연합뉴스 |
③ 시신 없어도 '무기징역' 받는다
시신이 없지만 계획 범행임이 입증되거나 간접증거로 혐의를 입증해 무기징역까지 받은 판례는 더러 있다. 지난 2015년 발생한 ‘육절기(肉切機) 살인사건'은 경기도 화성시에서 세입자인 범인이 집주인 여성을 살해한 뒤 육절기를 이용해 시신을 훼손·유기한 사건이다. 훼손이 심해 사실상 시신없는 살인 사건이었다.
범인은 피해자와 이웃관계로 지내다 범인의 구애를 여성이 거절하면서 사이가 틀어졌고, 결국 계획적인 범행으로 이어졌음이 수사 과정에서 밝혀졌다. 범인은 여성이 실종되기 전 인터넷으로 ‘골절기' ‘인체해부도' 등을 검색해 자료를 따로 보관하고, 중고 육절기를 구입했다. 당시 재판부는 "합리적 의심 없이 살인혐의가 입증되고, 반성의 기색도 없어 사회로부터 영구 격리할 필요가 있다"며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보험금을 타내기 위해 지난 2010년 부산에서 취업 알선을 미끼로 20대 노숙인 여성을 유인한 후 살해한 사건은 간접증거로 혐의가 입증됐다. 범인은 피해 여성이 자신의 차 안에서 사망하자, 시신을 병원으로 데려가 마치 자신이 사망한 것처럼 꾸며 보험금을 타내려고 했다. 노숙인 시신은 화장(火葬)해 버렸다.
당시 범인은 살해 혐의를 완강히 부인했고, 실제로 2심에서는 시신이 화장돼 살인을 증명할 수 없다고 살인 혐의는 무죄 판결을 받았다. 다만 사체 은닉죄는 인정돼 징역 5년을 선고받았다. 대법원은 "빚 1억원에 수입도 없던 범인이 거액의 생명보험에 가입했고, 피해 여성의 사망 당시 증상이 범인이 갖고 있던 독극물에 의한 중독 증상과 일치한다는 점 등 간접증거로 볼 때 살인으로 판단된다"고 판단해 사건을 파기환송했고, 파기환송심은 그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백윤미 기자]